Ⅰ.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많고 다양한 사업 속에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특이한 존재가 섞여 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정책전문가들도 잘 알지 못하는 소위 ‘종교문화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명칭만으로는 마치 문화정책의 한 부류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종교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20조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물론 각급 지방정부 차원에서 종교계를 위한 각종 재정적 지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종교에 대한 지원’이라고 명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대신 문화 혹은 관광과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예컨대 종교문화행사 주최, 종교문화시설 건립, 전통문화 보존, 종교유적지 관광자원화 등의 사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문화정책으로 위장된 종교지원사업은 헌법의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행정의 일반 준칙에도 어긋날 우려가 매우 크다. 나아가 종교갈등의 불씨가 될 위험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종교문화정책 혹은 종교지원사업에 대한 논의는 정책 현장은 물론 학계에서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김정수, 2015: 163-164). 본 논문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종교 지원사업의 실체와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정책의 부당성을 논증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렇게 부당한 정책이 지속되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책 전문가 및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공론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논의를 위한 구체적 사례로 1) 종교시설물 건립을 위한 종무실 예산지원과 2) 종교적 성역화 사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업들의 문제점을 공공정책이 지향하는 기본 가치라는 관점에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종교 지원사업들이 계속되는 이유와 그 위험성에 대해 논의한다.
Ⅱ. 종교문화정책에 관한 논의의 빈곤
종교는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 공동체의 문화 속에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종교적 의미가 함축된 부분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정책에는 종교문화정책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종무실이라는 종교행정 전담부서가 있다. 통상적으로 종무실(2018)의 예산사업은 종교문화 활동지원, 종교문화시설 건립지원, 그리고 전통종교문화유산 보존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사업들은 실상 종교단체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공식적으로는 항상 ‘종교문화’에 대한 지원이라고 표기된다. 이는 국가행정에서 가급적 ‘종교’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프레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즉, 종교문화정책은 ‘종교’를 지원하는 ‘종교정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문화’를 지원하는 ‘문화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종교 문제가 정책과정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는 매우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의제임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종교만큼 뜨거운 논쟁거리도 드물다. 종교는 인간 내면의 “가장 궁극적인 존재의 의미”(최우영, 2009: 333)를 형성한다. 종교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공리주의적 계산을 통한 타협이나 교환이 있을 수 없는 전형적인 “보호된 가치(protected value)”다(Baron and Spranca, 1997: 1). 이러한 보호된 가치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 이성적인 토론이나 양보, 타협을 통한 합리적 문제해결은 대단히 어렵게 마련이다(양정호, 2007; 서준경, 2008).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야 할 주제로 여겨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칫 걷잡을 수 없는 격렬한 (말)싸움으로 번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문제를 둘러싼 침묵은 종교 관련 정책을 다루는 일선 현장 및 관련 학계에서 더욱 심하다. 예컨대 종교인에 대한 비과세 관행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드물게 비판 여론이 제기된 적도 간혹 있으나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잠시 논란이 일다가도 곧 잠잠해지곤 했다. 또한 공공행정이나 정책에 관한 전문 학술지에서도 종교정책에 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행정학보」의 경우, 1967년 제1권부터 2018년 제52권 제4호까지 총 2,639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그런데 종교와 관련된 연구는 고작 0.15%인 4편밖에 되지 않는다(최병학, 1985; 이승종, 2010; 김정수, 2015; 배수호·공동성·정문기, 2016). 「한국정책학회보」의 경우, 1992년 1권 1호부터 2018년 27권 4호까지 수록된 총 1,212편의 논문 중 종교에 관한 정책문제를 다룬 것은 전무하다. 「문화정책논총」의 경우, 1988년 제1집부터 2018년 제32집 제3호까지 총 478편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중 종교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논문은 단 4편으로 전체 0.8% 수준에 머문다(석창훈, 2005; 정명희, 2012; 김정수, 2013; 허청·김정수, 2014).
우리 사회의 종교-국가 관계의 실상을 고려할 때 종교문화정책에 관한 논의의 빈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국교가 인정되지 않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국가다. 하지만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종교와 국가는 정치적 지지와 정책적 특혜를 은밀하게 서로 주고받는 “불륜에 가까운” 유착관계를 지속해왔다(김정수, 2015: 181). 이러한 모순적이고 표리부동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지원 정책에 관한 사회적 담론이나 학문적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개적인 숙의와 치열한 논쟁이 결여된 정책결정은 공익에 저해되는 비합리적 자원배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논문은 이러한 우려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다음 장에서는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수행되는 종교지원의 실태를 종교적 시설건립 및 성역화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이어서 그러한 예산지원사업들이 과연 공공정책으로서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지 논의한다. 그리고 정당성이 결여되었음에도 종교문화 지원사업이 계속되는 원인은 무엇이며, 그로 인한 폐해는 무엇인지 고찰한다.
Ⅲ. 종교문화 지원사업의 실태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종교문화 지원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다. 종무실의 예산 규모는 [그림 1]에서 보듯이 2000년대 들어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99년 종무실 예산은 27억 원으로 문화부 전체 예산의 0.3%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6년에는 무려 1,192억 원으로 44배 이상으로 폭증했다.1) 이는 1990년대의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종교행정이 종교계에 대한 재정지원 위주로 재편되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종무실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갑자기 크게 급증한 시기는 네 차례 있었다. 먼저 2000년에는 전년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65억 원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성균관 유도연수원’ 건립 및 호놀룰루 한인기독교회 광화문 누각복원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20억 원과 7억 원이 각각 신규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2002년에는 전년도 대비 약 250% 증가한 162억 원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 지원을 위해 70억 원이 신규 책정되었고, 아울러 ‘전통사찰 정비 및 보존’을 위한 예산지원액이 전년도보다 31억 원 증가한 51억 원으로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2012년에는 전년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524억 원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구축지원 예산 100억 원이 신규 편성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시설 건립지원을 위한 예산이 전년도 21억 원의 약 8배 정도인 178억 원으로 폭증했기 때문이다(‘원불교 국제마음훈련원’ 건립지원 54억 원을 비롯해 9건 신규 책정). 넷째, 2016년도 종무실 예산은 전년도 대비 약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이는 ‘10·27 법난기념관’ 건립비를 지원하기 위한 633억원 이 책정되었기 때문이다.2)
종무실의 국고지원사업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즉, ① 종교문화 활동지원, ② 전통종교문화유산보존, 그리고 ③ 종교문화시설건립으로 분류된다. 이 중 세 번째인 종교문화시설건립 지원사업의 대상은 실상 ‘문화시설’이라기보다는 ‘종교시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0년대 들어 종무실 예산이 크게 증가한 이유는 바로 이 종교시설 건립지원 예산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3년의 경우 종무실 전체 예산에서 시설건립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5%나 되었다. 1999년부터 2018년까지 20년간 종무실의 ‘종교문화시설건립 지원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총 1,771억 원이었다. 이 수치는 법난기념관 지원예산 1,316억 원(2015~2018년)은 제외한 것이다. [그림 2]에서 보듯이 2000년 이후 증가하던 시설건립 예산은 2000년대 후반 다소 감소하다가 2012년 이후로 다시 크게 증가했다. 2016년의 경우, 종무실 시설건립 예산은 약 77억 원 수준에 머물렀으나 여기에 그해 법난기념관 예산을 더하면 무려 810억 원이나 된다.
종무실의 연도별 예산계획서를 검토하면 구체적인 지원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법난기념관 예산을 제외하고 살펴보도록 하자.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총 1,251억 원의 국고가 43건의 종교시설 건립을 위해 지출되었다(연도별 및 사업별 구체적인 내역은 부록의 표를 참조). 각 종교별 지원 규모를 보면 먼저 불교가 가장 많은 14건에 339억 원이었고, 그다음으로 유교가 10건에 337억 원, 천주교가 역시 10건에 217억 원이었다. 그리고 개신교는 5건에 90억 원이었으며, 민족종교와 범종교계가 1건씩 각각 20억 원과 29억 원이었다. 종교별 건당 평균 지원예산은 불교 약 24억 원, 유교 약 34억 원, 천주교 약 22억 원, 개신교 약 18억 원이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2015년 종교별 신도수 비율이 44.9%로 가장 높은 개신교에 대한 예산지원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신도수 비율 0.4%밖에 되지 않는 유교에 대한 지원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표 1>은 법난기념관을 제외하고 종교별 시설건립 지원예산 및 사업건수와 비중을 정리한 것이다.
종교단체가 자신들의 종교적 사연을 근거로 특정 지역을 성역화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의 하나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종교의 성역화 사업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는 경우다. 여기서는 두 가지 최근 사례를 살펴본다. 하나는 천주교와 관련된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와 관련된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이다.3)
이 사업은 2011년 7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중구청에 서소문 공원 일대를 천주교 순교성지로 조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2012년에 전문가 자문회의가 구성되었으며, 그 후 국회의원 42인 및 서울시의원 61인의 청원이 서울시에 제출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특별시의회 서소문 역사공원 조성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7월에는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계획>이 수립되었다. 2013년 10월 서울시 투자심사를 통과하고, 2014년 3월에는 안전행정부 중앙투융자심사를 통과했다. 2015년 11월에 서울시의 기본설계 건설기술심의를 통과했고, 2016년 2~9월에 기존 지하주차장이 철거되었다. 2016년 10월에 본 공사 낙찰자가 선정되어 11월에 기념관 건립공사가 착공되었다. 2017년 3월에 기초공사가 완료되었으며, 2018년 3월에는 지하층 골조공사가 완료되었다. 한때 종교편향 논란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2019년 2월 20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서소문공원 주차장 폐지 재상정 안을 가결함으로써 곧 완공될 예정이다.
이 사업의 총 예산은 약 565억 원이며 전액 공공 보조금으로 충당된다(서울특별시 관광체육국, 2018). 이를 재원별로 보면 국비 50%(약 282.5억 원), 시비 30%(약 169.5억 원), 그리고 구비 20%(약 113억 원)로 구성된다. <표 2>는 연차별 사업예산액을 정리한 것이다.
구 분 | 계 | 기투자 | 2015 | 2016 | 2017 | 2018 이후 | |
---|---|---|---|---|---|---|---|
재 원 별 | 계 | 56,498 | 2,000 | 6,425 | 6,000 | 21,859 | 16,231 |
국 비 | 28,249 | 1,000 | 3,213 | 3,000 | 12,921 | 8,115 | |
시 비 | 16,949 | 500 | 1,927 | 1,800 | 3,770 | 4,970 | |
구 비 | 11,300 | 500 | 1,285 | 1,200 | 5,168 | 3,146 |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을 시행하는 서울시 및 중구청은 이 사업을 어디까지나 문화정책이자 관광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2016)는 이 사업의 골자를 “역사, 문화, 종교적 가치가 높은 서소문 공원 일대를 활용하여 기존의 근린공원과 지하주차장을 역사공원 및 전시체험 공간으로 재조성함으로써 시민의 문화향유기회 확대와 새로운 도심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공식적인 사업 목적은 “시민의 문화향유 기회확대”와 “새로운 도심 관광인프라 구축”이라고 제시되어 있다(서울특별시 중구청, 2016). 그러면서도 사업계획서를 살펴보면 천주교 순교성지 조성이라는 사실도 언급은 되어 있다. 하지만 사업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문화와 관광에 놓여 있다. 천주교 입장에서는 과거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순교를 기리는 성지라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시로서는 단시 역사적 사건으로서 의미가 있는 곳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 사업의 골자는 “서울의 전통문화 보존 및 육성을 위해 견지동 일대(경복궁, 인사동, 조계사)에서 관광객들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를 조성”하는 것이다(서울특별시, 2015). 사업기간은 2015~2022년이며, 10·27 법난기념관 건립을 비롯하여 조계사 정비, 불교전통문화복합시설 건립, 불교문화 아케이드 건립, 견지동 일대 전통문화 체험시설 건립, 관광버스주차장 건립 기반 마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업의 주체는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국무총리실 소속)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며, 민간자본보조 방식으로 추진된다. 실제 사업운영은 조계종단 내 신설된 ‘총본산 성역화 불사 추진위원회’가 담당한다.
이 사업의 발단은 2008년 공포된 <10·27 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이었다. 당초에는 국방부 예산 1,500억 원으로 ‘10·27 법난 명예회복을 위한 역사교육관’을 건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2010년 3월 조계종단의 요청으로 조계사 일원에 법난기념관 신축을 포함하여 ‘역사문화지구’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 조계종은 서울시 측에 견지동 일대를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그리고 실무협의를 거쳐 2013년 8월 20일 서울시 박원순 시장과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기획재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주는 결정을 내렸고, 서울시 의회는 2014년에 <서울시 전통문화 보존·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그리고 11월 17일 조계종단은 실제 사업운영을 추진할 기관인 ‘총본산 성역화 불사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사업을 위한 전체 예산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한 공식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당초 서울시(2015)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표 3>에서 보듯이, 총사업비는 약 3,5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부담하는 국비 약 1,500억 원은 주로 1단계 사업인 10·27 법난기념관 건립 및 법난피해자 치유시설 조성을 위해 사용된다. 서울시에서 부담하는 약 1,500억 원은 주로 2단계 사업인 조계사 일대 관광자원화 개발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조계종단에서 부담하는 약 500억 원은 조계사 부지 내 정비를 위해 사용된다.
구분 | 근거 | 사용내역 | 금액 |
---|---|---|---|
국비 | 10.27 법난피해자 명예회복 법률 제3조 | 10·27 법난기념관 및 법난피해자치유시설 조성 | 최대 1,500억 원 |
시비 | 서울시 전통문화보존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2014. 3) 제6조 | 관광자원화 개발지원 | 최대 1,500억 원 |
조계종단 부담 | - | 조계사 부지 내 정비 | 최대 500억 원 |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의 핵심은 조계사(대한불교조계종 본사)가 위치한 서울 견지동 일대를 사실상 ‘불교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계종단에서는 이 사업을 공식적으로 “성역화 불사”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사업을 어디까지나 서울의 전통문화를 활용한 관광벨트 조성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2015)가 발표한 공식 자료에 의하면 이 사업의 효과는 “서울 도심에서 중요한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위상을 차지하는 광화문, 경복궁, 종로 인사동과 연계되는 견지동 일대의 관광을 활성화하고 도시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것이다.
Ⅳ. 종교적 성역화·시설건립 보조금 지원에 대한 비판적 검토
모든 공공정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우리 사회의 공익을 증진하는 것이다(김정수, 2016b: 94). 정부가 공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준거기준으로는 합법성, 효과성, 형평성, 투명성, 민주성 등 행정가치를 꼽을 수 있다. 합법성이란 법에 의한 행정, 즉 법에 따라 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법치행정을 말한다(백완기, 2006: 61). 효과성이란 정책목표가 성취된 정도를 의미한다(김정수, 2016b: 200). 형평성이란 구성원 간에 사회적 이익 또는 가치가 적절하게 배분되는가에 관한 개념이다(이종수·윤영진 외, 2008: 180). 투명성이란 정부의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있어서 제반 활동내용들이 외부로 명확하게 공개되는 것을 뜻한다(이종수·윤영진 외, 2008: 188). 민주성이란 정책과정에서 전체 국민의 의사가 적절히 반영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백완기, 2006: 62). 이러한 가치들은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판정하는 데 핵심적 기준이 된다.
종교문화정책은 국가가 시행하는 공공정책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정책과 같이 종교문화정책 역시 공공정책의 제반 준거기준을 충실히 준수할 것이 기대된다(김정수, 2015).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종교적 성역화 및 시설건립을 위한 지원사업들은 이러한 행정의 핵심가치들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공공정책의 기본적 준거기준에 어긋나는 사업들이라면 공공정책으로서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합법성, 효과성, 형평성, 투명성, 민주성 차원에서 각각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 보기로 한다.
종교적 성역화 및 종교시설물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은 특정 종교를 위한 특혜라는 점에서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합법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물론 이 사업들이 내세우는 공식적인 목적은 ‘국민의 문화 향유권 증진’ 혹은 ‘관광자원 개발’ 등과 같은 세속적 가치다. 하지만 각 사업의 본질적 실체는 결국 종교적 효과(각 종교의 진흥 및 선전)를 위해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의 경우, 서울시가 내세운 공식적인 사업목적에 “종교사적 유일한 정소성과 순교 정신 함양”, “천주교 순교자의 정신적 가치 체험” 등과 같은 종교적 목적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다.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 사업의 경우, 불교계에서는 이를 ‘조계종 총본산의 성역화 불사’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 종교의 시설 건립을 위한 국고지원은 정교분리라는 헌법 규정에 어긋나므로 공공정책으로서 정당성이 결여된 것이다.
종교문화 지원사업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목표와 사업시행으로 성취되는 실제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효과성이 결여되어 있다. 종교적 성역화 사업은 각 해당 종교인들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성취이겠지만 타 종교인 및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종무실에서 공식적으로 천명한 ‘종교문화시설 건립’ 사업의 목적은 “전통종교문화 체험시설, 종교화합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종교문화시설 건립 지원으로 국민의 문화향수 기회 확대”다. 또한 이러한 국고지원 사업의 수혜자는 “일반 국민”이며 그 목적은 “국민의 문화 활동 기회 확대”와 “국민의 여가향수 기회 확대”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원사업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실제 효과는 “일반 국민”과는 거리가 멀다. 명백하게 특정 종교 혹은 종교단체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
예컨대 10·27 법난기념관, 원불교 국제마음훈련원, 기독교체험관, 세계불교센터, 천태종 전통문화유산전승센터, 대한불교 진각문화 전승원, 유도연수원 등은 명백한 ‘종교건물’들이다. 특정 종교인들만 사용하게 될 종교용 건물을 ‘종교문화시설’이라 칭한다고 해서 타 종교인이나 일반 시민들도 같이 사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문화 지원사업을 통해 성취되는 것은 해당 종교를 위한 혜택일 수는 있어도 결코 일반 국민들의 문화향수 기회 확대는 아니다.4) 이처럼 정책의 공식목표와 실제 달성된 성과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 이들 사업의 정당성은 인정되기 어렵다.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및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 사업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먼저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의 경우, 서울시/중구청의 공식 사업계획서에 ‘천주교 순교 성지’라는 점이 명시적으로 강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을 자초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해당 지역은 조선 초기 사육신의 처형 장소인 동시에 근대 동학혁명 지도자들이 처형된 동학의 성지이기도 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금으로 특정 종교의 성지를 조성하는 것 자체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문제이지만 “「나의 성지 만들기」가 「남의 성지 지우기」”(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 2015: 22)가 되는 것은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의 경우, 특히 1단계 사업인 10·27 법난기념관 건립에 대한 국고지원은 형평성 차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총 1,5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국비가 지원됨에도 사업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기획재정부의 예비 타당성 검사가 면제되었다. 또한 2016년도 법난기념관 지원예산은 약 633억 원이었다. 이는 같은 해 종무실 전체 예산총액(약 549억 원)보다 84억 원이나 더 많은 규모이며, 다른 10곳의 종교문화시설 건립지원금(약 77억 원)의 무려 8배가 넘는 엄청난 수준이다. 그뿐 아니라 부산 민주항쟁기념관(1999년) 지원금 160억 원, 거창사건 추모공원 193억 원,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383억 원, 그리고 제주 4·3 평화공원 592억 원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은 금액이다(KDI 공공투자관리센터, 2015). 한편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총 38곳의 종교문화시설 건립사업 예산의 총액은 약 1,093억 원이었다. 그런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배정된 법난기념관 단 한 곳의 지원예산이 그와 비슷한 약 1,060억 원 수준이었다(법난위원회 운영비를 포함하면 약 1,110억 원). 이는 아무리 10·27 법난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한다 해도 국가예산 배분의 형평성을 완전히 무시한 엄청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종교시설 건립을 위한 국고지원은 종교간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종교별 신도수와 지원예산 규모 및 지원건수가 전혀 비례적이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 동안 법난기념관을 포함하면 모두 44건의 종교문화시설 건립사업에 총 2,567억 원의 국고가 지원되었다. <표 4>는 종교별 신도수, 지원금, 지원건수의 비율을 비교한 것이다. 먼저 각 종교별 신도수(2015년) 비율과 시설건립 지원금(2008~2018년) 비율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종교인구의 35.3%를 차지하는 불교, 0.4%인 원불교와 유교가 각각 총지원금의 68.6%, 7.6%, 11.6%를 차지한 반면, 신도수 44.9%인 개신교와 18.0%인 천주교에 배정된 예산은 총지원금의 3.1%와 7.5%에 머물렀다. 그뿐 아니라 종교별 지원건수의 비율을 비교해봐도 역시 상당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종교 | 신도수 비율(2015)(%) | 지원금 비율(%) | 지원건수 비율(%) |
---|---|---|---|
개신교 | 44.9 | 3.1 | 11.4 |
불교 | 35.3 | 68.6 | 34.1 |
천주교 | 18.0 | 7.5 | 22.7 |
원불교 | 0.4 | 7.6 | 4.5 |
유교 | 0.4 | 11.6 | 22.7 |
민족종교/기타 | 1.0 | 0.7 | 2.3 |
이처럼 종교적 성역화 사업 및 종교문화 시설건립을 위한 공적 보조금 지원은 형평성 차원에서 여러 모로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정당한 공공정책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종교문화 지원사업들은 대부분 투명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공공정책으로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종무실에서 발표하는 종교문화정책의 예산 내역은 대개 포괄적으로 기재되어 있어 그 실제 내역을 상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공식자료에 제시된 사업의 명칭이나 목적 등을 보면 종교의 색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만 보면 마치 평범한 문화정책 혹은 관광진흥정책 정도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실상은 명백하게 종교에 대한 지원인 경우가 많다. 즉, 문화정책이나 관광정책으로 위장된 종교지원정책인 것이다.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은 그 핵심이 천주교 순교자를 기념하는 성지화다. 그럼에도 사업의 명칭만 보면 중립적인 용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종교와는 무관한 정책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명세서를 보면 이 사업에 대한 예산항목은 종무실의 종교문화 지원사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2015년에는 문화정책관 소관의 ‘지역문화 진흥사업’으로, 그리고 2016년에는 ‘창의적 문화정책구현’ 프로그램 중 ‘지역·전통문화 진흥사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 사업 역시 그 명칭에 불교를 의미하는 용어는 없다. 조계종단과 MOU를 체결한 서울시에서는 이 사업이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견지동 일대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사업 시행 주체인 조계종단에서는 이 사업을 “조계종 총본산 성역화 불사”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또한 1단계 사업인 10·27 법난기념관 건립의 경우, 당초 ‘역사교육관’이라는 명칭으로 2009년에 건립계획이 수립되면서 예산도 1,500억 원으로 의결되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 국방부가 사업의 주무부처였기 때문에 2010년부터 4년간은 국방부 예산에서 지원금이 배정되었다.5) 이처럼 명백하게 불교 조계종단을 위한 국고지원 사업임에도 외부에서는 그 사실을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종교문화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그 모든 과정이 대단히 비민주적이라는 점에 있다. 종교에 대한 각종 재정지원사업들은 거의 대부분 종교계 인사들과 소수 관료 및 정치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일반 시민의 참여 혹은 사회적인 공론화 절차는 전혀 없다. 이는 사실상 밀실행정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가 없는 세금 지출은 결코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국민 모두의 공익보다는 특정한 소수의 사익을 위한 정책이 수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반 시민은 우리나라 중앙정부에 종교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식부서(종무실)가 존재하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른다(김정수, 2015). 그리고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종교계를 위해 얼마만큼의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지출하는지도 잘 모른다. 국가행정을 연구하는 행정학자들 역시 우리나라 종교행정의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이처럼 일반 시민은 물론 행정 전문가들도 대부분 종교에 대한 재정지원의 실태를 모르기 때문에 반대와 항의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반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곧 찬성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종무실 예산지원사업 각각의 정당성에 관한 필자의 약식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다수 응답자가 반대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김정수, 2015). 결국 대다수 국민이 잘 모르는 사이에 소수의 이해당사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책결정은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Ⅴ. 샤일록의 딜레마와 그 위험
그렇다면 그토록 정당성이 결여된 종교문화정책에 그토록 많은 예산이 계속 지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종교와 국가와의 정치적 권력관계가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강인철, 2006; 김정수, 2015). 하지만 정책문제 자체의 특성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종교학자 Tillich(1959: 42)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종교와 문화를 서로 단절된 것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안국진·유요한, 2012: 189). [그림 3]과 같이 종교는 문화, 관광, 전통 등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세속적 가치가 혼재된 ‘종교문화 활동’과 전적으로 순수한 ‘종교 활동’을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문화체육관광부, 2009: 95). 사실 종교문화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업은 대개 종교적 가치 이외에 세속적 가치도 혼합된 경우가 많다. 여기서 종교만 따로 완벽하게 분리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문화 향유, 관광 진흥, 혹은 전통 보전 등은 공공 지원의 정당성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세속적 가치다. 그런데 이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다 보면 결국 그와 얽혀 있는 종교에 대해서도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종교에 대한 지원을 ‘종교문화’, ‘관광자원’, ‘전통문화’에 대한 지원이라고 포장하는 것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궤변은 아니다. 예컨대 불교와 유교는 우리 민족과 오랜 역사를 함께해오다 보니 자연히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그 흔적이 깊이 배어 있다. 우리나라 국보의 56.4%, 보물의 65.3%가 불교 문화재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불국사, 석굴암, 팔만대장경 등은 단순히 불교계의 소중한 자산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적 유산인 동시에 훌륭한 관광 자원이기도 하다.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과 관련하여 박원순 서울시장도 언급했듯이 “불교는 하나의 종교이자 전통문화이며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불교신문」, 2015. 11. 16).
이러한 중첩성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샤일록은 자신에게 돈을 빌린 안토니오가 갚을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칼을 들고 약속대로 그의 가슴의 살을 파내려고 한다. 이때 판사 포오셔는 계약서에 쓰인 대로 살 한 파운드를 베어내되 피는 절대 흘려서는 안 된다고 명한다. 이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샤일록은 분해하면서도 결국 살덩어리 도려내기를 포기하고 만다.
이러한 샤일록의 딜레마는 우리나라 종교문화정책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속국가에서 종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처사다. 하지만 문화, 관광, 전통 등을 위한 보조금 지원은 정당한 국정업무 수행이다. 종교와 문화, 관광, 전통 등이 중첩되어 있는 사안의 경우, 종교 영역만 철저히 도려내고 순수한 문화, 관광, 전통에만 지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계는 자기네 종교 자체가 아니라 그와 얽혀 있는 문화, 관광, 전통 등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요구한다. 예컨대 불교계에서는 ‘전통사찰보전’과 관련한 국고 보조는 ‘불교’가 아닌 ‘전통문화’에 방점을 찍은 조치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65% 이상이 불교문화재인 만큼 이를 관리 유지하는 종단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는 것이다(「불교신문」, 2018. 7. 25). 그리고 정부도 이는 종교에 대한 지원이 아니며 세속적 목적을 위한 정당한 지원사업이라고 자위하며 딜레마를 회피한다. 예컨대 2017년의 한 정책토론회에서 나종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불교에 배정된 종무실 예산은 “공익목적사업에 대한 합법적인 지원일 뿐 불교에 대한 편애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화재 및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예산을 종교에 대한 지원으로 인식하거나 특정종교 특혜로 몰아가는 시각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항변했다(「불교신문」, 2018. 7. 25).
한국 정부는 종교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세속적 정책목표를 위한 지원이라고 강변함으로써 종교문화정책에 있어 샤일록의 딜레마를 회피해왔다. 그러나 명백하게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 있음에도 계속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응한다면 자칫 사회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 특히 정부 보조금을 놓고 종교 간에 상호 비방과 치열한 이전투구가 벌어질 우려가 크다(화엄광장·불교미래사회연구소, 2013). 구체적인 사례로 대구 팔공산 공원 건립계획을 들 수 있다(허청·김정수, 2014).
2010년 1월 대구시는 1,200여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팔공산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의 골자는 국제관광선원 건립, 초조대장경 천년 르네상스 문화공원 조성, 대장경 천년축제 등이었다. 당시 대구시는 ‘문화콘텐츠 발굴을 통한 관광산업 진흥’을 정책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불교, 화랑도 등 역사적 수행공간인 팔공산에 국제관광선원이 조성되면 신 한류 문화상품으로 해외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매일신문」, 2010. 1. 13). 이처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에 대구시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한 정책사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계획이 발표되자마자 기독교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국민의 세금을 특정 종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전국의 기독교연합단체 및 교회들과 연대하여 대구시가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특정종교를 지원하는 편향적인 행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팔공산 역사문화공원은 실상 불교를 위한 ‘불교테마공원’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대구 불교계에서는 이 사업을 불교 포교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며 적극 지지했다. 국제관광선원이 들어서기로 계획되었던 동화사측은 “한국 선불교의 대중화와 세계화로 불교 부흥을 꿈꾸는” 것이 팔공산 공원조성의 더 큰 목적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국민일보」, 2010. 4. 19). 그러자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교를 폄훼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기도 했다. 대책위원회는 정부 청사 앞에서 종교편향적 예산집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한편, 공사 중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종교편향 논란과 갈등이 심화되자 결국 그해 7월 15일 대구시는 팔공산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사태는 종결되었고 두 종교간 갈등도 잠잠해졌다. 이 사건은 정부의 종교 지원정책(비록 선의의 세속적 목적이라 해도)이 자칫 종교 간 갈등을 초래하고 나아가 심각한 종교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Ⅵ. 맺는 말: 행정의 원칙과 종교의 순수성 회복을 위한 길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불사를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예산 지원받아 2년 만에 불사하려 하기보다 10년이 걸리더라도 신도들과 사부대중이 십시일반으로 불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지난 2010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이 대폭 삭감될 상황이라고 알려지자 당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이렇게 선포했다(「불교포커스」, 2017. 7. 24). 그러면서 조계종은 이제 정부의 예산지원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단호히 선언했다. 자승 총무원장의 분노의 일갈은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자해성 겁박이었고, 결국 허언으로 끝나버렸다. 이후 정부의 템플스테이 지원예산은 그 전보다 더욱 큰 규모로 증가했고, 조계종 측에서는 그 돈을 다 받아썼기 때문이다. 입장 번복에 대한 별다른 해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며 타박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는 종교계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원래의 진정한 정책목표가 무엇이었든 간에, 신성해야 할 종교를 천박하고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처럼 종교국가가 아닌 세속국가에서 종교에 대한 혜택 제공은 필연적으로 비종교부문과의 형평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 종교문화정책은 보조금 지원사업 위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종무실측도 스스로 인정했듯이, 전체 국민과 공익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종교단체에 대한 행정 서비스”로 전락할 우려가 매우 크다(문화체육관광부, 2009: 94). 예컨대 2013년 종무실의 종교시설 건립지원금은 무려 204억 원 이상이었고, 불교계를 위한 관광국의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만 해도 124억 원 이상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보건복지부 사업 중 ‘저소득 장애인 지원’ 예산은 127억 원, ‘장애인 재활지원’ 예산은 187억 원이었다. 장애인 복지는 소외계층을 위한 국가지원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정당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결코 핍박받는 소외계층이 아니라 오히려 막강한 특권계층에 가깝다. 그런데 국고지원금까지 더 많이 받는다면 이는 행정의 형평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종교계에 대한 국고지원은 종교 간 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잠재적 위험성이 대단히 심각하다(김정수, 2013). 종교적 성역화 조성이나 종교시설물 건립을 위한 대규모 국고지원 사업마다 격렬한 종교편향 시비가 따라붙곤 한다. 2008년에 있었던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을 위한 범불교도대회’에서 보았듯이, 정부의 종교적 편향성 시비로 인한 갈등은 엄청난 사회적 분열과 대립으로 비화되기 쉽다(헌법파괴·종교편향 종식 범불교대책위원회, 2009). 종교는 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절대적 근간이 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폄하나 무시는 곧 그 종교를 믿는 개인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 때문에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적 신념으로 인한 갈등보다 종교적 갈등의 위험이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종교문화에 대한 지원이 종교편향 시비와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려면 정부의 철저한 중립적 자세가 필요하다. 국고지원사업이라면 마땅히 ‘일정한 사회문화적 효과와 의미를 갖는 활동인지’가 최우선적 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95). 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른바 ‘순수 종교활동’과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는 ‘종교문화 활동’을 구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및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의 경우만 해도 명백한 종교편향적 특혜라는 비판과 문화·관광 진흥사업이라는 옹호가 공존한다. 따라서 종교문화정책이 지원사업 위주로 계속되는 한 아무리 정책결정과정상의 투명성과 중립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갈등의 소지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박명수, 2010; 백종구, 2010; 이은선, 201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정부와 종교 각자 자신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먼저 정부는 공익 추구에 있어 합법성, 효과성, 형평성, 투명성, 민주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종교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주무부서인 종무실은 폐지될 필요가 있다. 특히 종교를 병들게 하고 타락시킬 가능성이 다분한 보조금 지원사업들은 주관부처를 불문하고 모두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종교와 문화·관광·전통 등을 완벽히 분리해내기 어려운 경우라면 그냥 지원해줌으로써 샤일록의 딜레마를 회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잠재적 문제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사업에 대해서는 아예 지원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방책이다. 그것 말고도 종교적 색채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문화, 관광, 전통 영역이 훨씬 더 많고 넓기 때문이다. 정당성도 없고 위험만 있는 보조금 지원사업은 전면 중단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종교계는 속세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정책으로 위장된 종교계 보조금은 마치 “마약”(김정수, 2015: 203)과도 같아서 “보조금 중독”(강인철, 2012: 51) 현상을 초래하기 쉽다. 마약 중독자를 치유하려면 당장은 괴롭더라도 마약을 끊어야 한다. 재물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욕망에 탐닉하여 온갖 추태를 다 보이고 있는 한국의 일부 타락한 종교계를 정화하기 위해서라도 보조금이라는 마약은 중단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예산지원을 결연히 거부하던 자승 총무원장의 엄숙한 선언은 종교계 큰 어른의 가르침으로서 마땅히 문자 그대로 실천에 옮겨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