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Cultural Policy
Korea Culture & Tourism Institute
Article

혁필화(革筆畵)의 계승과 대중화를 위한 연구

서동진1,*
Dongjin Seo1,*
1서동진_혁필가(革筆家), 한국민화학회 회원
1Hyukpilhwa artist, A Member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Folk Art
*Corresponding Author : Hyukpilhwa artist, A Member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Folk Art E-mail: flowing-colors@naver.com

© Copyright 2020 Korea Culture & Tourism Institut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an 20, 2020; Revised: Mar 26, 2020; Accepted: Apr 07, 2020

Published Online: Apr 30, 2020

국문초록

혁필화는 가죽 조각에 물감을 묻혀 그리는 전통 문자 그림이다. 나뭇가지를 짓이겨 붓 대신 쓰는 비백서에서 유래했으며, 조선 시대 장식과 교육수단으로 유행한 문자도의 이념을 담고 있다. 비록 비백서, 문자도와 함께 혁필화도 중국에서 전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근대 초 발생한 색채 혁필화는 우리만의 독창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장돌뱅이들이 생계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천시되었고, 지금은 단절 위기에 처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혁필화의 계승·보전 및 저변확대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서두에 혁필화의 개념과 재료를 설명했고, 원로들에게 전수한 도구와 형상 제작방법을 도면이나 영상으로 정리했다.

현재 혁필화가 쇠퇴한 원인이 과거 방식을 지나치게 고수(固守)했기 때문이며, 과거 기법의 재현보다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혁필화의 계승발전과 작가들의 자생력 제고를 위해 혁필가, 사회,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를 각각 제시한다. 향후 다른 문자의 글씨쓰기 작업에 비백서 기법을 적용하여 한국의 혁필화를 세계에 홍보할 계획이다.

Abstract

Hyukpilhwa is a traditional art form that presents a character that is combined with a painted image. Hyukpilhwa is performed with pieces of leather; it originated from the pictorial handwriting style of Bibaekseo, which is done with tree branches instead of a brush. It contains the philosophy of Munjado, which was a method of decoration and education in the Joseon Dynasty. Even though it is believed that Hyukpilhwa originated from China along with Bibaekseo and Munjado, a color version of Hyukpilhwa in early modern times is recognized as a Korean art form.

However, it was undervalued because itinerant vendors painted for a living; notably, it is now on the verge of becoming a cultural disconne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nsure that the practice of Hyukpilhwa is preserved, expanded, and passed on to future generations. The concepts and materials of Hyukpilhwa are explained in this research; moreover, the methods of making the tools and the presentations of drawing skills are arranged in the images and videos.

I concluded that the cause of the decline of Hyukpilhwa was the result of the excessive protection of past methods along with modern applications being considered as more useful than the reproduction of past techniques. In addition, I will present several issues to be solved by artists, society, and the government in order to promote the inheritance and development of Hyukpilhwa and to improve the creativity of painters.

I plan on promoting Korean Hyukpilhwa around the world by applying Bibaekseo techniques to calligraphy work of other letters.

Keywords: 혁필화; 혁필; 가죽붓 문자그림; 비백서; 문자도
Keywords: Hyukpilhwa; rainbow calligraphy; 花文字; 花鳥字; 飛白書

Ⅰ. 서론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서화가인 유한준(兪漢雋)의 발문 중에 최근 유행한 글이 있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知則爲眞愛),

사랑하면 참이 보이나니(愛則爲眞看),

보인다고 다 모으면, 그것은 모으는 것이 아니리(看則畜之而非徒畜也).

만물 이치 개념의 이해가 우선임을 강조한 글이라고 이해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현대화 이후 얼마나 많은 전통문화가 왜곡되고 단절되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왜곡된 정의는 바로 잡을 여지가 있지만, 단절된 개념은 재생의 필요성도 사라져버리니 안타깝다.

18~19세기 ‘속화(俗畵)’로 불리던 우리 전통 민화(民畵)가 1971년 ‘겨레 그림’으로 정의된 적이 있다. 현재 해외에서 주목받는 민화의 인기에는 작가와 연구자의 공로가 크다. 하지만, 민족의 정서와 미적 감각이 담긴 그림이라는 개념을 잊지 않은 우리 겨레의 애정도 한몫을 한다.

민화의 분류 맨 아랫자락에 ‘혁필화’라는 장르1)가 있다. 혁필화는 붓 대신 가죽으로 그리는 문자 그림이다. 우리 선조의 독창적인 미술 영역이지만, 미술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지금은 거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혁필화가 ‘가죽 혁(革)’에 ‘붓 필(筆)’이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젊은 세대는 가죽 천위에 그리는 그림으로 오해한다.

정부가 문화예술 활성화를 계속 지원하고 있으나, 극히 일부가 전통예술 보존에 쓰이고 있다. 또 그중 일부가 전통미술과 민화에 할당되니, 종사자가 줄어드는 혁필화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글은 혁필화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개념과 제작방법을 공유함으로써, 혁필화가 향후 계승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썼다. 혁필화의 탄생과 현황을 언급하고, 앞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결론의 글들은 이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이글은 제2장에서 혁필화의 정의와 역사적 내력을 다루고, 제3장에서 더 많은 지면을 통해 혁필화에 사용되는 재료와 도구 제작법, 기초 운필법을 설명했다. 혁필가들 사이에서 전수(傳授)되어 온 다양한 기법은 공통 사항이나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정리했다. 혹시라도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는 초심자들에게는 이 자료가 시행착오를 줄여 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제4장에서는 혁필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혁필가, 사회, 정부가 할 수 있는 과제를 결론으로 남긴다. 이 연구조사를 통해 혁필화의 개념을 새로 알고 사랑하게 되어, 전통예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Ⅱ. 혁필화에 대하여

1. 혁필화의 의의
1) 혁필화의 정의

우리나라는 글씨와 그림의 혼합인 혁필화(rainbow painting)를 그림으로 본다. 1960~1970년대 민화 연구를 선도한 조자용2) 선생이 민화로 분류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1991)는 “가죽이나 질긴 천에 여러 가지 색의 안료를 묻혀서 그리는 그림”으로, 한글글꼴용어사전(2011)은 “가죽 끝을 잘게 잘라 먹과 무지개 색깔을 묻혀 글자를 쓰거나 형상을 그리는 것”으로 각각 정의한다. 최근 자료들을 종합할 때 혁필화를 비백서(飛白書)와 함께 민화의 한 양식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반면, 우리를 제외한 다른 나라는 혁필화3)를 글씨로 보는 경향이 많으며, 영어권 국가에서는 레인보우 캘리그라피(rainbow calligraphy)라고 한다. 우리 혁필화의 기원도 서예 기법에서 출발했지만, 민화적 요소가 많아서 서양의 캘리그라피 개념과 같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혁필화는 선조의 창의성으로 변형 탄생한 ‘가죽붓 문자 그림’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혁필화는 모필의 ‘선’이 아닌 가죽 조각의 넓죽한 ‘면’을 사용한다. 가죽 조각의 양 모서리에 안료와 물을 각각 묻히면 농담(濃淡)효과가 생기고, 양 끝과 중앙에 여러 색을 묻히면 혼색 효과(blurring effect)도 나온다. 요즘은 가죽 대신 구하기 쉬운 인조가죽이나 양모(羊毛)를 뭉쳐 만든 천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죽 붓(이하 ‘혁필’)은 아니지만 실제로 혁필의 재료를 가죽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으며, 다른 재료를 통해 혁필화의 느낌과 멋을 살리고 있으므로 넓은 범위에서 혁필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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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현재 활동 중인 원로 혁필가의 한자 혁필화 작품 ‘수산복해(壽山福海’ (27×79cm) - 남상준(2012)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27×79cm) - 황정진(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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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혁필화의 특징과 기능
(1) 혁필화의 특징

혁필화의 특징은 신속성, 간결성, 장식성이다. 먼저, 제작과정에서 보이는 신속한 붓의 움직임은 혁필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번짐 효과를 위해서는 방금 그린 그림과 붓에 묻은 안료가 채 마르기 전에 다음 획을 그려내야 한다. 그래서 보통 한글 이름 석 자를 혁필화로 그리면 1분을 넘지 않는다. 오히려 힘과 속도를 조절하여 재빨리 뿌리는 마무리 획의 기교는 혁필화의 과장된 운필이나 투박한 그림·문양에 멋과 무게감을 줄 때가 많다. 속화(速畵)이기에 갖는 장점 중에 하나다.

둘째, 혁필화는 표현이 간결하고 자유롭다. 일반적으로 한글이나 알파벳, 일본 히라가나보다 획이 많은 한자가 더 쓰기 어렵다. 하지만, 가죽으로 아무리 폭이 좁은 붓을 만든다고 해도 모필(毛筆)의 섬세한 표현을 따라가기 어렵다. 글씨를 아예 크게 쓰는 것도 방법이지만, 복잡한 획은 자연히 단순화되고 간결하고 상징성 강한 그림으로 대체된다.

셋째, 혁필화는 문자와 그림의 조합으로 장식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혁필화의 예술성을 논하면 이견이 많다. 아직도 서예나 민화 장르에서는 혁필화를 예술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글씨와 그림, 예술과 유희(遊戱) 활동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 같은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혁필가는 종이에 붓을 대는 순간 구도와 마무리까지 염두에 둔다. 그림의 색상, 문양과 획의 디자인, 전체적 균형이 필요하기에 작가의 창의력과 심미안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어느 손재주 많은 선조가 유희로 시작했을 혁필화는 창조라는 목적성을 가지며 독특한 예술 영역을 구축했다. 문자를 매개하는 특성상 어느 예술 장르보다 메시지의 전달성도 명확하다. 와타나베 마모루(1975)가 분석한 자기 목적성(Autotelie)과 전달성을 지닌 예술 활동 영역에 부합한다.

(2) 혁필화의 기능

혁필화는 화려한 장식적 기능, 주술성 강한 벽사적(僻邪的) 기능, 교육적 기능을 가진다. 예부터 혁필화는 집안 장식인 화조(花鳥) 그림과 함께 안방, 서재, 사랑방 벽에 붙여 장식물이 되었다. 글자의 의미를 아름답게 전달하면서 한편으로 소원의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조상들이 나쁜 기운과 역병을 막기 위해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웠듯이 혁필화에도 주술적 신앙을 담았다. 재료로 사용되는 오방색(五方色)4), 용이나 호랑이 그림, 무병장수(無病長壽)·부귀공명(富貴功名)·부귀다남(富貴多男) 같은 문구들로 혁필화가 생활 속에서 간절한 벽사의 기능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혁필화는 과거 유교의 생활윤리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담아 당시 교육적 기능을 담당했다.

혁필화에서 구사되는 조형적 의미는 우리 민족의 도교적 세계관이나 토속신앙이 문자와 결합한 결과였다. 우리 조상들은 벽에 걸린 혁필화를 작품으로 보면서 쉽고 자연스럽게 생활윤리를 익혔다. 그래서 혁필화는 당시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는 귀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2. 혁필화의 생성(生成)
1) 혁필화의 기원
(1) 비백서(飛白書)

혁필화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비백서와 문자도를 알아야 한다. 비백서는 붓에 먹을 충분히 묻히지 않은 채로 쓰는 글씨체로서, 획이 날아가듯(飛) 하고 희끗희끗한 여백(白)이 보인다. 혁필화는 서예 기법의 하나인 비백서와 형태적 유사성을 가진다. 그래서 결과물을 기법으로 볼 때 혁필화와 비백서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비백을 중국 동한 시대 유명한 학자이자 서예가인 채옹(蔡邕)이 창조했다고 설명한다. 조직이 질긴 나뭇가지를 짓이겨서 만든 버드나무 붓(柳筆), 칡나무 붓(葛筆), 대나무 붓(竹筆)이 주로 쓰였다. 비백 방법에서 붓의 재료가 가죽 조각으로 바뀌면서 혁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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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우리나라와 중국의 비백서 우리나라 비백서 ‘淸風明月 등’ (26×100cm, 1900년대 추정) - 개인 소장 중국 비백서 -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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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비백서는 문헌에 근거해 18세기 이전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5)된다. 만일 일반 모필(毛筆)로 비백효과를 내려면 대단한 필력이 요구되지만, 혁필의 경우 평편한 가죽에 서너 군데 칼로 홈을 파면 쉽게 비백효과를 낼 수 있다. 비백서에서 유래한 혁필화의 내용이나 철학적 주제는 우리 토속신앙이나 전통문화와 습합(習合)하면서 발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 비백서 관련 연구나 유물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2) 문자도(文字圖)

문자도는 문자를 소재로 한 장식성 강한 민화인데, 혁필화는 문자도에서 파생했다.

문자도를 통해 조선 시대 후기의 교육관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주제에 따라 수복(壽福)·벽사(辟邪)·화(花)·효제(孝悌) 문자도6)로 나눈다. 윤열수(2004)는 문자도가 중국 춘추(春秋) 말기부터 시작됐고, 명말(明末), 청초(淸初)에 들어 일반 장식화 양식으로 구축됐다고 한다. 다른 미술 장르보다 윤리적이고 이념적인 면이 강했는데, 정작 중국에서 전래7)된 조선의 문자도는 당시 중국보다 유교적인 색채가 더 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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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효제문자도 문자도 -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우측부터) 출처: 한국데이터진흥원(소장 국립민속박물관, 20C 경, 각 98×2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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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문자도는 18세기 후반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오순경(2017)에 따르면 문자도가 점차 글자에 회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그림으로 변해 왔다. 정병모(2017)는 처음에는 문자도가 해서체 글씨 안에 관련된 이야기를 배치했고, 해당 이야기가 점점 알려지자 획 자체가 그 인물화의 대표적 상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결국, 문자도는 상징과 기호 등 원래 형식이 파괴되면서 그 양식을 잃고 길상(吉祥)적인 의미의 꽃들로 구성된 장식화로 바뀐다.

(3) 색채 혁필화의 탄생

혁필화는 비백서의 기법과 문자도의 이념에 영향받아 독창적으로 발전한 우리 전통의 미술 영역이지만, 그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당시 대부분 문화와 예술이 그랬듯이 혁필화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소개되었을 것이라는 게 비백서 연구가들의 추측이다. 하지만, 강완주(1998)는 1930년대에 ‘색채’ 혁필화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여 6·25전쟁 후에는 피난민 혁필가들이 많이 생겨 시골 장터마다 볼 수 있었다고 밝힌다. 이름·가훈·덕담 글을 받으려는 손님들은 늘 있었고, 화가는 한 글자라도 빨리 그려 돈을 벌기 위해서 가죽으로 그리는 색채 혁필화를 개발했다. 다만, 당시 민화는 정통 화단으로부터 천한 그림으로 취급되던 때였으니, 혁필가는 대부분 그림으로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장돌뱅이8)였다.

최정심(2000)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문자도 병풍을 제작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중소도시에서 제작유통도 여의치 않게 되자 속화이면서 작업공간도 작은 혁필화가 유행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그보다 전쟁의 대혼란과 시대적 변화를 통해 기존 사회계급이 해체되면서 서민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대중화된 점을 근본 이유로 보는 것이 맞다. 혁필화는 복을 부르고 벽사하는 적극적인 선조들의 바람과 상징적 이미지가 조화된 결실이다. 추상적으로 막연히 복을 소원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글자와 그림으로 소원을 표현했다.

2) 혁필화의 유파

혁필화는 글자 상단에 그림이 크게 위치하는 마산체(馬山體)와 글자 획에 그림이 혼합되는 낙산체(洛山體)로 나눈다.

마산체 방식으로 쓰는 한자는 낙산체와 비교하면 상징성이 강해 그림만으로 글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생활화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용호도(龍虎圖)는 용과 호랑이를 혁필화로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물의 모양을 글자화 한 상형(象形)문자가 아닌 하나(一)나 위(上)처럼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지사(指事) 문자의 경우 마산체는 곧 표현의 한계를 보인다. 마산체 화가들은 글자의 뜻과 상관없이 위에 학이나 호랑이를 그려놓고 글자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마산체가 생긴 후, 의미전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글씨에 더 많은 상징적 그림을 넣었고, 그렇게 화려해지는 과정에서 낙산체가 파생했을 것이다.

표 1. 혁필화 유파의 구분
구 분 마산체(馬山體) 낙산체(洛山體)
다른 명칭 영남파(嶺南派) 기호파(畿湖派)
특성(구성) 글자 상단부에 글자의 이미지를, 하단부에는 글자의 획으로 구성한다. 글자의 상·하단부 구별 없이 그림이 자연스럽게 글자의 획으로 침범하여 화려하다.
사용 붓 평붓을 주로 사용하며, 5~6개의 붓을 쓴다. 평붓 이외에 빗살붓을 자주 사용한다. 붓의 넓이도 1~6cm까지 다양하며, 가지 수가 많다.
사용 색상 먹, 황, 녹, 적, 청 등의 5색을 기본으로 사용한다. 오색 이외에 다른 색을 추가해 7~10가지로 색상이 다양하다.
가독성 비교적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쉬운 편이다. 그림으로 대체되는 획이 많아서 마산체보다 가독성이 떨어진다.
기타 상단부에만 혁필가의 장식성이 개입하므로 누가 쓰던지 비교적 일정한 형태로 나타난다. 혁필가에 따라 글자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주요 활동지역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역 낙산거사가 거하던 계룡산 주변

출처: 최정심(2000), 「조선 후기 비백서(飛白書)에 대한 고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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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혁필화의 현황(現況)
1) 우리나라 혁필화의 성장과 쇠퇴

1950~1960년대에는 거리마다 혁필가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워낙 창작 기법에 원칙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작품은 창의적일 수 있었다. 대신 정통성을 유지하며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9)가 발생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혁필가들은 급속히 감소하였다. 시대적으로 우리나라가 갑자기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사회에는 더 나은 일자리가 생겨났고, 자연스러운 이탈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그나마 1974년부터 홍지성(1995년 타계)이 한국민속촌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하며 혁필화를 홍보했다. 1970~1980년대 함께 활동을 이어온 작가로는 남상준, 황정진10), 정홍주11), 최수성, 노상윤, 이강재, 채용현, 강완주 등이 있다. 혁필화는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 방문객들을 위한 관광 상품으로서 인기의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점차 쇠퇴하였다.

몇 년 전 혁필가 세 분께 ‘우리는 왜 혁필가들의 네트워킹이나 협력활동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아직도 붓의 재료나 제작방법이 공공연한 비밀인 상황인지라 과거에는 정보를 나누어 경쟁자를 만들기 싫었다고 한다.12) 웬만큼 큰돈을 받지 않으면 굳이 제자를 만들지 않았고, 구경꾼 앞에서도 물감 통을 감춰가며 신속하게 작품을 그려야 했다. 동료끼리 거리에서 악연을 맺는 경우도 많았고, 제자에게 재료 구입처를 숨기는 스승도 있다. 자신의 실력이 최고라는 자신감 속에서도 늘 다른 화가를 경계해야 했다. 자연히 함께 모일 이유도 없었지만 모여도 갈등이 생겼다.

현재 일부 혁필가만 지원신청이나 축제·행사 섭외를 위해 임의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한다. 그나마 임의단체도 구성원이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65세 이상 원로 혁필가는 8명 정도 된다. 전문 혁필가들이 모여 설립한 공식 협회나 단체는 아직 없으며, 혁필화를 배우려는 사람의 상당수가 이민 계획자들이다.

2) 다른 나라의 혁필화 현황

일본과 중국은 혁필화를 각각 화문자(花文字), 화조자(花鳥字)라고 부르며 그림 아닌 글씨로 본다. 원로 혁필가 남상준(南相駿)13)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에는 2010년대 들어 혁필화를 배운 재일교포 몇 명이 활동했을 뿐이고, 현재까지도 혁필화를 직업으로 하는 일본인이 거의 없다. 최근 들어 중국 이주민들이 혁필화를 그려 온라인 판매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 사회가 기술과 공예를 우대하는 분위기라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판매되는 혁필화 작품은 일본인 취향에 맞춰 변화하다 보니 색상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불필요한 장식이 많아 우리나라의 혁필화와 비교할 때 무게감이나 자연미가 부족한 편이다.

한편, 미국은 1980년대만 해도 전역에 혁필가가 10명을 안 넘었으나, 1990년대 중반에는 샌프란시스코에만 7~8명이 활동하게 되었으며, 당시는 색채 혁필화의 종주국답게 대부분의 혁필가들이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미국 거리의 중국 출신 혁필가의 수가 우리를 훨씬 앞선다. 전 세계 중국인 혁필가의 활동 규모는 파악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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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우리나라와 느낌이 다른 중국과 일본의 혁필화 작품 중국의 혁필화(張柏芝) - 작가 미상 일본의 혁필화(足産選乎會) (43×1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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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혁필화 그리기와 운필 방법

1. 그리기 전 준비사항
1) 혁필(革筆) 만들기
(1) 클립 제작

혁필은 일반적으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클립(clip)이 가죽 조각을 물고 있는 형태다. 나무나 아크릴 클립은 폭이 같은 조각을 모아 접착제로 붙여 만든다. 금속클립은 중앙을 한번 구부리면 집게 모양의 클립이 된다.14) 일반적으로 금속 붓은 나무보다 필력에 무게가 실리고 나무 붓은 가볍고 섬세한 표현이 자유롭다. 성인 기준으로 클립 길이는 5~7cm, 너비는 2.5cm가 적당하다. 남성적이나 여성적이라고 말하면 고리타분하지만, 금속과 나무 붓 각각의 특색과 멋이 확연히 다르다. 초심자는 금속클립으로 시작해서 나무 클립으로 옮겨갈 것을 추천한다. 같은 젓가락 문화에서도 나무젓가락만 쓰던 민족은 쇠젓가락을 처음 사용하기 어려운 것과 이유가 같다. 가능한 다양한 재료와 도구에 숙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가죽 끼우기

가죽은 각종 동물의 내피(內皮)15)나 구하기 쉬운 인조가죽16)이 사용된다. 인조가죽 조직의 미세한 공간이 가죽의 모공처럼 안료를 적절히 흡수하고 배출한다. 따라서 가죽의 표면은 염색이나 방부처리가 돼 있으면 안 된다. 화학약품이 가죽의 모공을 막아 안료 흡수가 어렵다. 가죽의 두께는 재질에 따라 달라진다.17) 가죽 길이가 너무 짧으면 몸통에서 빠지기 쉽고, 클립 너비보다 넓으면 흡수된 안료가 손에 묻으니 주의해야 한다. 클립 끝으로 나온 가죽 길이는 0.7~1.0cm가 적당하다. 붓은 7개 정도만 있어도 충분한데 2개는 빗살처럼 홈을 파서 비백효과를 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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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혁필(革筆) 제작도면((좌) 금속클립, (우) 나무 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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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료(물감) 준비
(1) 안료 선택

혁필화용 안료는 발색력(發色力)이 강하고 빨리 말라야 좋다. 동양화물감이나 단청(丹靑) 안료, 먹(墨) 등이 주로 사용된다18). 다소 비싸더라도 단청 안료를 사는 것이 좋다. 색은 전통 오방색 중 황(黃), 청(靑), 적(赤), 흑(黑) 4가지19) 색을 준비하면, 백(白)색은 종이의 하얀 바탕이 대신한다. 일단 한 붓의 양쪽에 두 종류의 물감을 번갈아 찍으면 붓의 중간에는 초록색, 보라색, 주황색 등의 혼색(gradation)이 나온다. 하지만, 물과 안료를 이용하여 농담을 조정할 경우 그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혼색과 번짐의 조합은 무한하다.

간혹 오방색이 주는 강렬한 분위기 때문에 혁필화가 특정 종교의 예술품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예부터 우리 민족은 화려한 색채가 악한 것을 몰아낸다고 믿어왔다. 허균(2016)에 따르면 조상들이 오방색을 상생의 원리에 맞게 배열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발동하여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우주의 법칙이 음양과 오행이고,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이 오방색이었다. 특정지역이나 문화에서 조상 대대로 왠지 모르게 친근한 색채는 그 민족에게 의미도 깊은 법이다.

(2) 안료 통 준비

혁필화에 안료를 묻히는 과정은 매우 간단하지만, 방법을 모르면 안료를 쏟기 쉽다. 먹물에 푹 담그는 모필과 달리 혁필은 끝에만 안료를 조금 묻혀야 종이가 찢어지지 않고 깔끔한 그림이 나온다. 하지만, 매번 손끝의 감각과 눈대중으로 안료의 흡수량을 조절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용기 입구 1cm 못미처까지 스펀지를 잘라 넣은 후 안료를 스펀지 표면까지 채우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 물에 타서 사용하는 단청안료는 수분 증발이 쉬우므로 빈 통 하나는 물통으로 쓴다. 각각의 색깔별 안료 통은 큰 밀폐 용기에 담아 함께 보관하면 된다.

3) 종이와 기타 재료

혁필화는 가능한 다양한 재료 위에 연습하면 좋다. 처음에는 저렴하고 흡수력 좋은 모조지가 무난하고, 흡수가 너무 좋고 얇아서 찢어지기 쉬운 화선지는 적당하지 않다. 숙달되어 본격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경우, 미색 켄트지나 한지를 사용하면 멋이 있다. 이후 새로운 재료를 시험 삼아 두방지, 족자, 교반수(膠礬水)로 포수(泡水)한 순지, 비단 등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종이 크기는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기술이 숙련될수록 자연스럽게 고객 취향에 맞춰 크기가 줄어들 것이다.

나머지 기타 준비물은 서예 도구와 비슷하다. 종이가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는 문진(文鎭), 연적(硯滴)을 대신하는 작은 물통, 서화용 깔판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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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혁필과 단청 안료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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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혁필가의 마음가짐

혁필화를 그릴 때 제일 먼저 생각할 점은 지면을 어떻게 구성할지 계획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여유를 가지고 그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당장 그리는 획보다 완성될 큰 그림을 염두하고 연습하면, 작품의 구성이 알차지고 지면의 여백도 아름다움을 더 한다.

혁필화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처음 2~3년을 넘기는 것이 고비다. 배워도 국내에서 상품화가 어렵기 때문에 대개 취미로 시작한다. 목표나 간절함이 없으니 원하는 운필과 문양이 안 나오면 대개 중도 포기하고 만다. 갓 배운 실력으로 거리로 나가 ‘판’을 벌이는 자만심도 경계해야 한다. 대개 시작한 지 5년이 지나야 글씨에 균형이 잡힌다. 이때 붓의 크기와 상관없이 글자의 형태도 균일해진다. 하지만 제대로 된 명인(名人) 소리를 들으려면 10년을 넘겨야 한다. 모든 예술 분야의 입문 때와 같이 혁필화를 배울 때는 조급함을 멀리해야 한다.

2. 기본 운필법
1) 붓 쥐는 자세

붓은 클립의 양 측면을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쥐고 중지로 클립의 밑을 받치는 모습이 원로 혁필가의 공통된 자세다. 처음에는 불편하더라도 나중에 획에 힘을 자유롭게 싣고 곡면을 그리기 쉬운 자세다. 엄지와 검지의 위치는 가죽과 가까울수록 기교가 자유롭다. 붓은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가볍게 쥐고, 손목과 어깨의 힘을 빼야 운필의 힘 조절이 쉽다. 반대편 손은 자연스럽게 책상 위에 두어 어깨가 수평을 유지하게 지탱한다.

종이에 물감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붓의 넓죽한 면이 종이에 닿자마자 한곳에 머물지 말고 가볍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혁필화의 본질은 선이 아니라 면을 활용하는 그림이다. 혁필의 모서리를 세워 불필요한 선을 자주 그려 버릇하면 미관에도 좋지 않고 방식에도 맞지 않는다. 연습 과정은 가로획, 세로획, 점과 삐침, 원의 순서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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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혁필화를 쥐는 올바른 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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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 그리기

가로획은 서예의 원필(圓筆)처럼 획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을 둥글게 보이도록 회전시킨다. 세로획은 기울지 않고 곧게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고, 이때 긴 왼 삐침(약 掠)과 우로 파임(책 磔)을 함께 연습한다. 직선 이후 물결선이 숙달되면 엄지를 중심으로 검지를 돌려 원이나 반원을 연습해야 한다. 혁필로 원 등을 그릴 때는 어렵더라도 종이를 돌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손목과 팔꿈치를 충분히 꺾은 후 돌리면 혁필은 360도까지 회전이 가능하다. 이런 기초 기법들을 활용하여 간단한 동물이나 문양을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다.

혁필화는 빗자루질하듯 유연하게 종이 위를 쓸어내려야 한다. 유턴은 가능하지만 한 방향으로 그리다 갑자기 역행(逆行)하면 붓이 망가지고 안료가 사방에 튀기 쉽다.

3. 주요 형상 만들기
1) 대나무(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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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다양한 선 그리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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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필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식물 중 하나가 대나무다. 대나무는 주로 글씨의 세로획을 대신하고, 가로로 그리면 죽어서 누운 대나무라 하여 피한다. 대를 치는 방법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는 방법과 위로 그리는 방법이 있다. 둘 다 각 마디 부분에서 붓을 0.3cm 정도 뗀 후 다음 마디를 그리고, 마디의 경계선은 맨 나중에 몰아 찍는다. 아래로 내리는 대는 붓끝을 차분하게 돌려 마무리하고, 위로 올리는 대는 붓끝을 위로 힘차게 뿌리면 좋다.

대나무의 줄기는 단색으로 그려야 기품이 있다. 붓 중앙에 물을 엷게 묻히면 입체감이 생긴다. 여백을 살펴 댓잎을 3~5개 홀수로 그려 넣으면 좋다. 안료의 색과 필력에 따라 대나무는 우죽(雨竹, 비 오는 날 대나무), 풍죽(風竹, 바람에 맞선 대나무), 청죽(晴竹, 맑은 날의 대나무), 운죽(雲竹, 구름 낀 대숲)의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특성인 대마디와 마디 선, 댓잎만 표현해도 무난하다. 입문 초기에는 너무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욕심에 묘사가 과한 경우가 발생한다. 어느 정도 숙련되면 자연스럽게 사실성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생략될 것이다. 북송 때 소동파는 마음속에 있는 대나무의 본질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대나무의 모양이 소나무 같든 버섯 같든 상관이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2) 꽃과 새(花鳥)

혁필은 넓은 면으로 그리지만 결국 붓의 바깥 외곽선이 형태를 좌우하므로 소묘(drawing)가 능한 사람이 유리하다. 가장 멋스러운 그림은 꽃과 새의 조화다.20) 한국 민화에 화조(花鳥) 그림이 절대적으로 많은 이유와 관련하여 김철순(1979)은 집을 단장하는데 아름다운 꽃과 짐승의 그림이 가장 알맞고, 옛날부터 한국인들이 이런 꽃과 짐승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21) 우리 조상들은 부부가 생활하는 방 한쪽에 예쁜 꽃에 둘러싸인 새 그림을 장식해 놓았는데, 윤열수(2014)에 따르면 화조도는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삶의 소망을 상징하는 자연경관의 일부였다. 언뜻 화조는 꽃과 새만 국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원복(2015)은 화조에 풀꽃과 벌레(花卉草蟲)도 포함되며, 나아가 새만이 아닌 동물 전체를 아우른다고 설명한다. 혁필화에는 꽃과 새 못지않게 꽃과 나비의 조합도 자주 등장한다.

혁필화에서 단독으로 그리는 꽃이나 나비는 각종 문자의 점, 짧은 가로획이나 짧은 왼 삐침(탁 矺), 오른 삐침(책 策)을 대신한다. 얼핏 형상의 가짓수가 적어 보이지만 좌우 방향과 자세를 달리하면 경우의 수가 수백 개를 넘는다. 꽃은 서너 종류로 측면과 위에서 내려다본 형태를 6가지 이상을 연습해 두면 표현이 반복되는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나비를 그릴 때 오른손잡이의 경우 좌향(左向) 나비가 그리기 쉬우나, 꼬리부터 역순으로 그리는 연습을 하면 우향 나비도 표현할 수 있다. 나비는 날개의 외곽선 부분의 색을 바꾸면 여러 마리의 나비를 그려도 단조로워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꽃과 나비의 전통 문양을 똑같이 재현해도 좋고,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여 창조하면 재미있다.

3) 기타 형상

보통 새와 나비 그림은 표현이 단순하고, 크기도 작아서 작가마다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학이나 용22)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개발하여 다른 혁필가와 차별화하는 것이 좋다.

요즘 국내외 신세대 작가들은 10여 가지나 넘는 물감으로 캥거루, 로봇, 우주선,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그리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 보기에 재미있고 화려하여 당장 인기몰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우리 전통 혁필화와 비교하면 글씨의 깊이와 느낌의 차이가 있다. 글씨를 표현함에 있어 김정택(2013)은 글이 뜻하는 바와 그 의미가 무언지 생각하고 주제를 설정하여 그 주제에 맞게 구도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꽃과 새 옆에 현대적인 물건을 너무 많이 넣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차라리 현대미적 추상화 구현 방향으로 혁필화를 연습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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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혁필화의 주요 형상 그리는 방법(제작 동영상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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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현대적 느낌의 한글 및 한자 혁필화 작품 한글 이름 ‘동욱’ (13×18cm) - 서동진(2018) 한자 이름 ‘혜공’(惠空 ) (15×23cm) - 서동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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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대적 해석과 글씨 구성

그림과 글자의 조화는 생각보다 어렵다. 사용되는 물감이 화려하고 문양이 복잡할수록 글씨의 가독성은 떨어진다. 가독성을 높이려면 그림을 줄이고 단색으로 하면 되는데, 대신 장식성이 떨어진다. 넓은 붓으로 가독성과 장식성을 모두 유지하려면 오랜 내공이 요구된다.

처음 배울 때는 한글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글의 모든 획만 능숙해지면 알파벳이나 히라가나, 한자에도 응용하여 혼자 창작이 가능하다. 선 그리기에서 기본을 다지지 않으면 획이 많은 한자보다 오히려 획이 적은 글자에서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다.

1) 혁필화의 원칙

혁필화의 원칙은 신속성, 간결성, 가독성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독성이다. 그림과 장식이 과도하여 작가 본인만 읽을 수 있는 글씨는 곤란하다. 한자의 경우 그림으로 대체되는 부분 이외에는 설령 획이 중첩(重疊)되더라도 모든 획을 혁필로 표현해야 맞다. 가독성이 부족한 일본 혁필을 반면교사 삼아 색채의 다양화보다 형태의 정확성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작가 나름의 원칙을 세우면 도움이 된다. 가령 글자당 그림은 1~2개만 넣거나, 입문 초기에는 반드시 정자(正字)로 쓰고, 한 획에 너무 많은 색상을 섞지 않는 것 등이다. 그림 이외의 획을 아예 모두 단색으로 처리하는 것도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혁필화 그리는 도중 그림 일부에 모필을 사용할 것인가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완성된 혁필화에 가는 모필이나 붓 펜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것이다. 나비 더듬이, 새의 눈알, 잉어의 수염, 꽃술 등을 붓으로 그리면 깔끔하고, 세련돼 보인다. 작품 전체를 혁필로 갈 것인가, 혁필화에 모필을 섞을 것인가는 작품의 정체성과 장식성 사이에서 작가가 결정할 문제다.

2) 글자 구성의 요령

시작 전 그림의 전체 구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구성이 너무 파격적이면 가독성이 떨어지지만, 세련된 현대 캘리그라피 구성을 응용하면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한자는 종이 위에 마음속으로 정사각형을 그리고 그 안을 꽉 채운다는 느낌으로 써야 한다. 히라가나는 아래위로 둥그런 타원에 중앙정렬로, 한글은 타원에 우측 정렬하여 그리면 균형이 잘 맞는다.

과거에는 일본인들이 작은 글씨를, 한국인들이 큰 글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큰 글씨의 액자나 족자를 벽에 붙여두는 일도 드물어 받는 사람에게도 애물단지가 된다. 모든 글씨를 크고 균일하게 쓴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지면에 핵심어만 크게 강조하거나, 이름 서너 글자나 바람을 적고 여백을 남겨 구성하면 좋은 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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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한자 혁필화(수복, 壽福) 목숨 ‘수(壽)’23) (18×13cm) - 서동진(2017) 복 ‘복(福)’24) (18×13cm) - 서동진(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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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와 상징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한자로 수복(壽福)이 자주 쓰인다. 인류는 언어문자 이전에도 조형 문자로 장수와 행복을 기원했을 것이다. 인간이 소원하는 오복 중에 으뜸은 장수(longevity)다. 장수의 대표 상징으로서 장생물(長生物)인 학, 해, 구름, 바위, 불로초 등이 있다. 하지만, 장수를 염원하는 상징이라고 해도, 한 화폭에 십장생 모두를 그리지는 않는다. 한 문구에 두어 종류만 그려도 의미전달이 된다. 무한한 장수와 행복을 바라는 수산복해(壽山福海)의 경우 산(山)은 글씨를 아예 산의 풍경 그림으로 대신하거나, 해(海)의 매양 매(每) 상단에 장수의 상징 거북이를 그려도 좋다. 봄을 맞이하여 좋은 일을 기원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도 혁필화의 좋은 주제다. 봄의 의미에 맞게 꽃을 많이 넣어 장식하면 멋스럽다.

혁필화의 표현은 현대적 감각으로 구성하되, 과거 기복(祈福) 의지가 강한 문양이나 상징은 될 수 있는 대로 유지하는 것이 의미 있다. 대상이 한글세대일 경우 한문을 지양하고, 사라진 우리 전통 풍속인 세화(歲畵)를 대신하여 주면 감사의 의미가 깊을 것이다.

표 3. 혁필화에 자주 등장하는 형상과 상징
구 분 상징 관련 고사성어
잉어 효도(孝道) 왕상빙리(王祥氷鯉)
죽순 효도(孝道) 맹종설순(孟宗雪筍), 맹종읍죽(孟宗泣竹)
물고기와 용 등용(登龍), 입신출세(立身出世), 시험합격 어변성룡(魚變成龍), 등용문(登龍門)
소나무 충절(忠節), 지조(志操) 송죽지절(松竹之節), 설중송백(雪中松柏)
새우 화합(和合), 충절(忠節) 하합상하(蝦蛤相賀)
대나무 충절(忠節), 지조(志操) 송죽지절(松竹之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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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결론

1. 우리나라 혁필화의 발전 과제
1) 혁필화 계승 노력 및 혁필협회 구성
(1) 작가의 자긍심과 계승 노력

혁필가 스스로 혁필화의 가치에 자긍심을 갖고 계승에 힘써야 한다. 사실 작품의 창작과 판매과정은 다른 장르 예술가와 차이가 없다. 길거리라는 장소적 특성은 이미 행위예술, 거리예술, 시민예술의 실연을 통해 깨진 지 오래다. 몇 개월 통해 완성한 작품들을 화랑에 걸고 고객을 기다리는 과정과 주문을 받아 그들이 원하는 작품을 즉석에서 그려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하지만 후자의 사례는 과거부터 예술계에 항상 존재했다. 혁필가는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주문자가 던진 주제에 맞춰 즉석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창작한다. 시대에 맞는 세련미를 갖추고 좋은 의미가 그림과 조화까지 이룬다면 남녀노소를 떠나 선호하는 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붓과 종이의 크기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가지지 말고 작가로서 자유로운 발상과 도전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가로서 자부심을 가져 자기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활동의 맥이 끊이지 않게 계승에 힘써야 한다.

(2) 사회 분석과 고객과의 소통

혁필화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현장의 고객과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고객의 주문 주제·취향에 따라 즉석에서 문양을 가감(加減)하고 보완할 수 있다. 만일, 혁필가가 자기 스타일에 매몰되어 장식이 과해지면 가독성을 잃기 쉽다. 고객이 작품을 읽지 못하는 순간 문자의미 전달이 생명인 혁필화는 가치가 반감된다. 이름을 쓸 때 상대에게 어원(語原)을 풀이하거나 관련 덕담을 하면 만족도와 감동이 깊어질 것이다.

혁필화 같은 거리예술은 작가와 고객의 상호소통 과정에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전통방식 재현이 목적이 아니라면, 혁필가는 현재 사회의 분위기를 읽고, 구성원의 특성을 꾸준히 조사하여 소통해야 한다. 가령, 미술관 아트숍이나 서예·민화 전시장, 각종 학술세미나를 방문하여 사회적 유행과 고객의 기호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다. 서동진(2006)은 거리예술이 사회구성원에게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소속감을 증대시키고 사회 정체성 확립을 돕는다고 주장한다.

(3) 혁필협회의 구성

혁필가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공식 활동하는 협회가 필요하다. 우리 전통 혁필화가 후대에 전승되도록 작가 자신만의 기법과 경험을 공유하고, 대외 홍보 및 후진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 최근 갑자기 민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로 그간 전국 단위의 협회·동호회 활동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시 무형문화재에 혁필화가 종목지정조차 안 된 상황에서 혁필화 협회 명의로 종목지정 신청부터 서둘러야 한다. 혁필화의 전통 양식은 유지하되, 협회를 중심으로 표현기법을 체계적으로 현대화해 나간다면, 수요계층도 확대될 것이다. 중국·일본과 민간차원의 혁필화 전시 교류도 진행하면 홍보에 도움이 된다. 또한, 심사의 당락(當落)에 상관없이 협회 자격으로 꾸준히 정부 예술지원사업을 신청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에게 혁필화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가 지원예산의 일정 부분을 혁필화에 할애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2) 사회적 관심과 인식 전환

전통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비주류 예술인의 지위 보장이 요구된다. 예술인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앞에서 다룬 혁필가의 의무와 책임의 선결(先決)을 전제로 한다. 전시 관람과 작품구매를 통해 작가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 소외 받는 장르를 배우거나 후세에 전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문환(1996)은 예술가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먼저 모든 예술가의 도덕적, 물질적 권리 인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혁필화는 중국·일본과 다른 우리 고유의 형태로 살아남았다. 외국인들에게 높이 인정받는 우리 혁필화가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는 외면받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작가로서 아쉬운 점이다.

3) 정부의 지원 및 문화관광 상품화
(1) 장르별 특성화된 지원방안 연구

혁필화뿐만 아니라 단절될 위험이 있는 모든 전통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보유자와 이수자 현황을 파악하고, 전통예술 보존을 위한 중장기 지원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원사업의 목적과 방향성이 정립되면, 장르별 맞춤형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기법 전수에 긴 시간이 요구되는 전통예술은 그 특성을 참작하여 단년보다 다년도 지원사업으로 개편하고, 연로한 작가들의 예술지원 신청이 쉽도록 통합안내창구 운영도 고려할 만하다.

문화재위원회는 혁필화와 같은 비주류 전통예술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필요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단기간에 지원체계의 개선이 어렵다면 먼저 원로 예술인을 대상으로 증언과 기법을 영상매체로 기록하고, 몇몇 작품은 보존하는 아카이빙 사업도 필요하다.

(2)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한 창작공간 지원

태생이 길거리이며 속화인 혁필화는 인두로 지져서 그리는 낙화(烙畫)와 함께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미를 알리는 관광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현재 「서울특별시 보도상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고, 보도(步道)의 가로판매대 운영자23)의 일정 부분을 사라져가는 전통예술 이수자에게 할당할 것을 제안한다. 관련 공공기관에서 공정한 심사를 통해 작가를 선정하고, 초기 운영까지 지원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만일 이런 제안이 실현될 경우 혁필가들은 매월 시설 이용료를 내고 거리 위에 당당히 자신만의 창작공간을 가지게 된다. 단속에 신경 쓰지 않고, 경제적 지위도 상승하게 되면 혁필화를 배우려는 사람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

(3) 단계적 문화관광 상품화 지원

우리나라의 독특한 색채 혁필화는 비백서의 멋과 단청(丹靑)의 화려함을 모두 갖추었다. 세계적인 문화관광상품으로서 성공 가능성이 크다. 가로판매대를 이용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작품의 재현·판매가 활발해지면, 다양한 간접지원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기초단체 차원에서 노인복지관과 문화센터 등을 활용하여 주민을 교육하면 혁필화에 대한 저변확대에 도움이 된다. 각종 지역축제, 구민 행사에 공인된 전통예술인을 우선 섭외하여 홍보의 기회를 주고 보수를 지급할 수 있다. 외국 관광객이 많은 대도시 주요 지역에 매주 토요일마다 관공서 앞마당을 개방하고, 전통예술 아트마켓을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전통예술작품의 이미지가 담긴 교통카드, 각종 기념품의 세련된 디자인 상품 제작을 위해 중소기업과 연계를 지원하고, 전국 국립박물관 아트숍에서 정식 판매될 수 있도록 선정심사에서 일부 가점을 주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2. 맺음말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예술의 계승과 대중화를 위해서는 작가의 노력, 사회적 관심, 정부의 지원이 동시에 요구된다. 한번 단절된 장르를 부활시키려면 유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시기를 놓쳐 개념과 의미까지 흐려지면 재현의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래서 혁필화와 같이 당장 단절 위기에 직면한 전통 장르의 경우 정부의 직접지원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지정을 신속히 검토하고 이수자를 지정한 후 자생력이 생길 때까지 체계적으로 장기 지원해야 한다. 일단 예술작품의 홍보와 유통시장이 안정화되면, 작가의 경제적 지위와 작품의 상품화 가능성도 자연히 높아질 것이다.

최근 「‘AI의 창작활동’, 예술의 위기인가 지평 확대인가」라는 기사는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작품을 만든 사건을 언급하면서, 예술가와 예술 활동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 바 있다. 물론, 미래에 문자 쓰기나 읽기가 일부 불필요할 수도 있다. 명령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상상만 해도 인공지능(AI)이 왕휘지24)의 서체나 혁필화를 출력해 낼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볼 때 결과물이 똑같다고 해서 AI가 예술가의 전달 의미, 관객을 향한 배려와 소통 의지, 재료가 주는 표현의 느낌까지 복제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스티븐 로저피셔(2003)도 읽기·쓰기가 주는 이점과 재미는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컴퓨터 음성인식체계를 통한 혜택과 즐거움보다 더 클 것으로 내다본다. 문자와 인류의 읽기 쓰기는 결국 문화 고유의 중요성과 교육적 가치를 가질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영화 ‘서편제’25)에서 길거리 화공 낙산거사가 혁필화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1분 남짓한 이 장면으로 인해 당시 한국민속촌에 손님이 배 이상 몰리는 등 혁필화가 한동안 국내에 유행했다고 한다. 원로 혁필가들도 혁필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항상 일정한 주기가 있었다고 기대한다. 이 연구가 사라져가는 전통 혁필화의 마지막 활동에 사회적 관심을 퍼뜨리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Footnotes

윤열수(2011)에 따르면 민화의 표현기법 중 하나인 필화(筆畵)는 모필화와 혁필화로 나누기도 한다. 한편, 2014년 12월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발행한 “무형문화유산과 지식재산권”의 ‘무형문화유산 온라인 전수조사사업의 분류체계 및 주요 사례’(p.34~36)를 보면 혁필화는 ‘전통공예기술’(대분류) - ‘서화’(중분류) 아래에 분류된다.

조자용 선생(1926~2000)은 해방 이후 민화의 보급과 연구에 헌신하여, 오늘날 민화 부흥의 기반을 다진 연구가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구조 공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뒤, 전국에서 수집, 연구한 자료를 모아 충청북도 보은에 ‘에밀레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만든 ‘민학회’는 한국민예를 연구하는 단체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筆)은 사전에서 단순히 ‘필기구(筆記具)’ 이외에도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릴 때의 ‘필법(筆法)’, 글자를 쓰는 ‘행위(동사)’, 친필의 ‘그림’이나 ‘글씨’ 등으로 정의된다.

오방색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서 풀어낸 다섯 가지 순수하고 혼합이 없는 우리 전통의 기본색이다. 오정색(正定色), 오색(五色), 오채(五彩)라고도 부른다. 오색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으로 구성되며, 오행의 다섯 기운과도 직결된다. 음귀를 내쫓기 위해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는 것, 무병장수를 기원해 아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는 것, 잔칫상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황토집이나 붉은 부적처럼 전통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

유득공 선생이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 “비백서라는 서체는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가른 다음 먹을 묻혀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등의 글자를 쓰는 것인데, 점찍기, 긋기, 파임, 삐침 등을 임의로 하여 물고기, 게, 새우, 제비 등의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효제문자도는 현재 남아 있는 작품 수가 가장 많으며, 삼강오륜과 유교적 윤리관을 드러내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글자를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상징을 이해하면 글자를 읽지 않아도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문자도는 기복적인 내용의 길상화를 주로 그렸다. 조선시대 기록은 광해군 2년(1610) ╓광해군일기╜에 남평현감 조유한이 명나라에 갔을 때 백수도(百壽圖) 한 폭을 들여와 진상하였다고 한다. 조선의 문자도는 글을 잘 모르는 백성들에게 유교 이념을 전파하려 의도됐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시대 몰락 이후 장돌뱅이들은 호객이 유리하도록 ‘수복강녕’ 네 글자나 구매자의 이름을 대신 속필로 쓰는 방식으로 혁필화를 간략하게 변화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천대받았던 장돌뱅이 덕분에 혁필화와 비백서는 지금까지 명맥이 끊이지 않은 셈이다.

혁필화가 정통성을 유지하며 계승되기 어려웠던 이유로는 당시 혁필화가 정통계파가 아닌 잡기술로 천시되었기 때문이다. 서민이 그려서 서민 사이에서 유통되던 창작품이라서 큰 돈벌이가 못 되었으며 종사자도 적었다. 당연히 정식 교육기관도 없었고, 최근까지도 대학교 동양화과나 서예과에서 과목으로 다룰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황정진(黃正進) 선생(1942년생)은 한국민속촌 등에서 활동했고, 현재도 종로에서 활동 중이다.

청산(靑山) 정홍주(鄭洪周) 선생(1943년생)은 한국민속촌, 수원화성 행궁 등에서 활동했다.

만일 같은 장터에 혁필가가 두 명이 오면, 당장 그날의 수입이 줄어들지만, 결국 누군가 한 명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제작과정이 현장에서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혁필화는 작가들의 재량과 작품 수준이 쉽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허운(虛雲) 남상준 선생(1927년생)은 팔산 홍지성을 사사한 후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호주, 미국 등에서 활동했다. 2013년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국내와 일본에서 활동 중이다.

혁필화의 붓대(클립)는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혁필가가 직접 붓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신만의 방법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클립은 몸통이 너무 길면 손안에서 회전이 어렵고, 너무 짧으면 손끝에서 놓치기 쉽다.

소가죽이나 양가죽처럼 부드럽고 내구성이 좋은 가죽의 내피(內皮)가 좋다. 과거에는 개가죽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인조가죽은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원단 상가(동묘앞역)에서 구할 수 있다.

인조가죽은 보통 두께 0.3cm를 구하여 너비 2.5cm, 길이 3.0~4.0cm 정도를 자른 후 클립에 끼운다. 투명테이프로 클립 끝단을 단단히 동여매서 가죽 조각이 빠지지 않도록 한다.

안료는 각각의 재료에 장단점이 있다. 먹(墨)은 저렴하고 글자의 획이 많아도 가독성이 유지된다. 숙련된 작가의 대형 그림일 경우 작품에 무게감도 더해진다. 대신, 발색(發色)이 약하고 이를 보완하려고 아교 농도를 높이면 가죽이 쉽게 굳어진다. 단청안료는 먹에 비해 비싸지만, 농담과 혼색이 자유롭고 화려하며, 시간이 오래 지나도 안료의 발색이 유지되어 좋다.

단청안료는 일반 동네 화방에서도 찾기 어렵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4가와 을지로 5가 사이에 있는 안료 상가에서 살 수 있다. 초보자는 안료가루를 사서 물에 직접 타서 쓰지 말고, 아예 액상형으로 각 1kg 정도 사면 몇 년간 사용할 수 있다. 황(黃), 청(靑), 적(赤), 흑(黑) 4가지 외에 녹(綠)을 더 사서 5가지 색을 사용해도 좋다.

민화에서 자주 그리는 조수충어(鳥獸蟲魚)처럼 혁필화에서도 새, 학(鶴), 용(龍), 호랑이, 나비, 잉어 등이 자주 등장한다.

세화(歲畵)나 선물로 상대에게 꽃 그림을 주는 것은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본 혁필화에 유독 꽃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자현(2014)에 의하면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 따라 용의 모습은 수백·수천이다. 구(九)는 무한 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용이 우리 머릿속의 용과 닮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

현재, ╓서울특별시 보도상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관한 조례╜ 제2조에서는 가로판매대의 사용 운영자로 의사상자, 노숙인, 장애인만을 지정하여 운영 중이다.

중국 동진(東晉)시대의 서예가로서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다. 해서·행서·초서 서체를 각각 완성하여 예술로서의 서예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청준 원작, 김명곤 각색,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정일성이 촬영하였다. 태흥영화사에서 제작하여 1993년 4월,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관객 113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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