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 제기
과거의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일에 중점을 두는 곳이었다. 책이 보관된 곳은 기본적으로 열람자들의 방문과 연구(자료) 활동(수집)이 이루어지는 공간 확보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새로 건립되는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이자 자료의 수장고로 기능할 수 있었다. 기념관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명사(名士)나 다양한 이슈 혹은 역사적 사건을 테마로 설립된 기념관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방문자들이 전시 대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사적 의의를 확보하려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도서관과 기념관은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그 지식과 관념의 저장고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다 보니, 기존 도서관이나 기념관은 다소 수동적인 입장에서 관람자를 맞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보 접근 방식이 바뀌고(열람에서 검색으로), 이용자들의 성향이 변모하면서, 이러한 과거의 운영 방식 역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도서관은 자료를 보관하고, 서적의 열람을 지켜보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자료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관련 내용을 체계적으로 상대에게 제공하는 능동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할 변화에 따라, 기념관 역시 방문자의 수동적인 접근이나 특수 목적으로 관람에 국한되지 않고, 해당 자료(전시물)의 폭넓은 활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당위로 삼아야 한다.
그러니까 도서관과 기념관이 전통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기능과 역할이 과거 이상의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개진되기에 이르렀다. 도서관이나 자료실 혹은 기념관은 관련 콘텐츠나 해당 텍스트 혹은 문화적 소스(source)를 이 사회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종용하고, 관련자들에게 자료의 가치를 능동적으로 소개하는 역할을 요구받기에 이른 것이다. ‘찾아오는 자발적 열람자를 위한’ 도서관과 기념관이 아니라, ‘자료 활용자를 발굴하고 그 활용을 적극적으로 종용하고, 자체 추진하는’ 도서관과 기념관이 되어야 할 목표가 제시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미래의 한국문학관이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이러한 사회적 필요성이나 운영의 당위성을 부각하는 정책과 운영 방안이라고 해야 한다. 문학 자료(이 연구에서는 근현대 희곡 문학과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임무는 한국문학관이 일차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겠지만, 문학관의 역할이 수집과 보관의 전통적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활용과 재창조라는 진전된 결과를 지향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학과의 존립 여부는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국문학관은 미래의 도서관이자 변모하는 기념관으로서, 해당 자료와 수집 서적의 활용과 제공에 대한 새로운 필요를 창출하고, 잠재적인 이용자를 적극적인 사용자로 바꾸는 작업을 선도해야 한다. 자료의 개방이 아니라 활용을 염두에 둔 운영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문학관의 설립과 활용 그리고 경영 목표와 실질 운영에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고, 제언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하에 시행되었다. 한국문학관에는 다양한 분야가 요구되는데, 그중에서도 콘텐츠의 변환과 활용의 측면에서 기존의 문학 관련 자료와 차별화되는 아카이브 방식을 요구하는 희곡(극문학의 범칭) 분야에 관한 방안과 제언에 집중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희곡 분야는 연극의 대본인 희곡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의 대본인 시나리오,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본인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을 포함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근대 이후 산출된 극작품을 넘어 탈춤과 전통극, 고전 연희와 전승 기예를 포괄하고 있다.
해당 기예와 예능은 기본적으로 문화 예술로 폭넓게 지칭되고 분류될 수 있지만, 그 공연을 위하여 작성 집필 유통 참조되는 대본은 문학의 범주 내에 포함되어 마땅한 대상이다. 설령 이러한 범주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해당 유산은 이후의 연기, 예능, 공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료인 만큼 소중하고 효율적으로 관리, 보관, 활용, 재창조될 수 있는 형태로 관리되어야 마땅하다. 극문학 관련 자료의 중요성은 비단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만 지니지 않고, 변환 작업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여타 문학 장르와는 차별화된 집성 방안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희곡 문학(극 장르)은 일차적인 독서물로 그치거나 연구의 대상으로 국한되는 장르(양식)에 머물 수 없다.1) 희곡 문학은 공연물(performing arts)의 근간 텍스트로 활용되어야 하며, 문화 콘텐츠로 다양하게 변모하기 위하여 더욱 다양한 장르로 전유되어야 할 원천 소스로서 가치를 지녀야 한다. 희곡 문학을 간직하고 보관하는 한국문학관은 이러한 콘텐츠의 활용 방안과 그 시행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그 생산적 가치를 (재)창출하는 기획자이자 연구소 겸 아카이브(문서고)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2)
따라서 희곡 문학 자료 구축과 집적에 구체적으로 관련되는 ‘한국문학관’은 문학의 다양한 존재 방식으로 확인하고, 문학의 새로운 향유 방법(학자들에게는 연구 방법)을 선도하는 운영 목표를 뚜렷하게 천명할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기념관이 수행해 온 자료의 수집과 보관, 분류와 열람으로만 그 기능을 한정할 것이 아니라, 문학(혹은 문화 콘텐츠) 작품(자료)을 요구하는 각종 분야에 원천 소스(source)로서의 텍스트와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미래의 한국문학관이 수행해야 할 자료 집적처로서 방향타가 되어야 한다.
Ⅱ. 희곡 문학의 집성 사례와 소개
양승국은 두 차례에 걸쳐 한국희곡(극문학) 작품집과 극문학 관련 비평집(학술)을 집성한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1989년에 발간된 「한국근대희곡작품자료집」(1~10권)이 그 최초 형태이다. 한국 학계에서는 1980~90년대 한국희곡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고, 일종의 극문학 붐을 형성하며 문학의 소외 장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자료집은 이러한 활동과 연구 영역 확대에 기여하는 기반 저서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희곡연구를 개시하는 상당수 연구자가 이 자료집을 통해 근대(혹은 근현대) 희곡의 흐름과 존재 양상을 살피고, 자신의 연구 분야를 결정하는 기저 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초기 연극학자로서 김재철, 이두현, 유민영, 서연호 등이 연극(사)의 개념과 장르로서의 희곡(사)의 개념을 전파하는 데에 주력했다면, 서연호를 필두로 한 일련의 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텍스트의 확정과 확장으로 눈을 돌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 양승국의 집성 작업은 희곡 문학(작품)을 일차적으로 수집하여 한 곳에 모아 간행하는 ‘집적’ 작업을 목표를 삼고 있다.
양승국은 이와 동시에 「한국근대연극영화비평자료집」 (1~17권)도 출간하였다.3) 이 자료집은 연극(희곡)과 영화(시나리오)에 관련된 근대극 초창기 비평(학술) 자료를 집적한 결과였다. 이 자료집은 1993년에 다시 출간된 바 있었고,4) 2006년에 연극과 인간에서 재출간되면서 전체 20권의 비평 관련 자료집으로 증간되었다.5) 편찬자인 양승국이 자료의 보완을 통해 관련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두 자료집(희곡집과 비평집)은 한국 근대 극문학(연극, 영화) 관련 작품들과 공연 관련 기록(비평문과 학술 기사)를 대거 망라한 작업이자 그 소산으로서의 저작이었다. 이 작업으로 인해 한국 희곡(극) 문학과 관련 학계는 한국 희곡 문학의 지형도를 대강이나마 그릴 수 있었다. 일종의 희곡 분포와 맥락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중요한 성과였다고 하겠다.
이 두 자료집이 주목되는 이유는 근대극 관련 연구자들에게 대상 작품의 존재 양상과 그 범주를 획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후의 연구자들은 상당한 기간 이 작품집과 자료집을 바탕으로, 자신이 연구해야 할 대상 혹은 시기 내지는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자료집이 그 길잡이 역할을 한 셈이다.
서연호는 두 가지 형태의 희곡집을 출간했다. 첫 번째는, 근현대 희곡 유산 가운데 특정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는 선집 형식의 희곡집이었다. 1989년 열음사에서 간행한 「한국의 현대희곡」6)이 그 시작이다. 이 작품집에는 조일재(조중환)의 〈병자삼인〉을 위시하여, 조명희의 〈김영일의 사〉, 김정진의 〈기적 불 때〉 등의 근대극 도입기 초기 작품들(1권), 1930년대 유치진의 〈소〉를 비롯하여 오태석의 〈자전거〉,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이강백의 〈쥬라기의 사람들〉 등의 한국 대표 극작가와 대표 희곡 작품(2권), 그리고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나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 등과 같은 형식/양식상의 대표작을 포괄하고 있다(3권).
이러한 선별 작업은 근대극 도입기의 가장 중요한 시기로 간주되는 일제 강점기 희곡 지형도 선별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1996년 서연호는 태학사에서 「한국 희곡 전집」(1~5권)을 출간했다. 1권 첫 번째 작품은 1912년 11월(17~25일)에 수록된 〈병자삼인〉이었고, 그 이후 대체로 시간적 흐름에 따라 한국 희곡의 발표 양상과 창작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다. 5권에 이르면 1940년대 작품(1945년까지의 작품)도 수록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박영호의 〈좁은문〉(「조광」(98~99호), 1943년 12월~1944년 1월)에서 마감되고 있다.7)
서연호의 선별 작업은 근대극 도입기와 성장기―대략 1890년대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의 시기―의 한국 희곡 중 주요 작품과 미학적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장점을 부각했다. 비평적 선택을 동반한 희곡 선별 작업은 결과적으로 미학적으로 정련된 작품을 골라내는 선택과 배제의 기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한국 희곡의 흐름과 전개에 대한 한결 진전된 학술적 개입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한국 근대 희곡(사)의 주요 맥락이 드러날 수 있었다.
한편, 이러한 선택과 배제의 작업은 다양한 맥락 추출로 이어졌다. 서연호의 집성 작업은 시기별 주요 작품 선별에서 분리 진행되어, 극작가별 전집 출간 작업으로 이어졌다. 서연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오태석,8) 이윤택,9) 이현화,10) 그리고 김영수11) 등을 손꼽았으며, 이들의 희곡(시나리오) 작품들을 시기적으로 연계하는 종합적인 전집(선집)을 출간해야 할 당위성을 찾아냈다. 이러한 작업은 주요 극작가의 창작 맥락과 활동 사항을 점검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는 연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해야 한다.
이처럼 서연호는 희곡 작품 집성 작업을 두 가지 형태로 수행 정리하였다. 하나는 근대극의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별하여 시기별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요 작가의 이력과 활동상이 분명하게 드러내는 전집류의 출간을 시도한 것이다. 두 작업은 ‘선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 선별 영역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이러한 차이가 희곡 문학의 집성에 관한 새로운 방식과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해야 한다.
결국 서연호의 집성 작업은 독립적인 학문(연구와 비평) 영역을 개척한 편찬자가 작품을 선택(혹은 배제)하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대표작과 우수작 모음으로 한국 희곡의 계보를 그릴 수 있도록 돕거나, 주요 작가의 이력과 활동이 낱낱이 공개되도록 그 흐름을 보여주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고 하겠다. 이것은 비평적 개입에 의한 선별 작업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은 흔히 동양(학) 관련 자료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는 한국과 관련된 자료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이용해 잃어버린 한국 연극사(희곡사) 한 지점을 보완한 편찬자가 이재명이다. 애초 옌칭도서관에 1940년대(1942~1945년) 시행된 연극경연대회 관련 희곡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연구자는 이미원이었다.12)
이후 이미원의 발견 사실을 바탕으로 해당 자료의 열람이나 복사 작업을 시행하는 연구 작업이 이어졌고, 이재명의 술회에 의하면 “옌칭도서관 소장 공연대본 중에서 박영호의 희곡 작품을 소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공연대본 전체를 정리하여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13)
이러한 필요에 따라 이재명은 한국연구재단(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고,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관련 자료를 확대 발굴하여 결집한 이후, 옌칭도서관 소장 자료를 9권의 「근대 희곡 · 시나리오 선집」으로 간행하기에 이른다. 이 선집에 집성된 작품의 집필(발표) 시기가 1940~1945년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이 선집(작업)은 기존 희곡집 간행에서 비교적 소외된 시기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속성을 자연스럽게 띠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승국의 「한국근대희곡작품자료집」의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재명의 시도와 자료 집성 노력은 한국문학관의 현 상황에 대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문학관에서 희곡 작품(자료)을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희곡집과 자료집을 일차적으로 수용하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존 집성 작업을 착실하고 면밀하게 검토하여 누락되고 소외된 부분(분야) 혹은 관련 작품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발굴 작업은 이러한 작업 방식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시행된 집성 작업을 전반적으로 정리하면 발굴 작업이 진행되어야 할 부분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문학관의 경우에도 이러한 이재명의 발굴 작업의 개요를 수용하여, 기존 자료 집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그 위에서 필요한 분야로 접근할 수 있는 연구 시각의 겸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재외한인의 희곡 문학 전/선집(희곡집)을 국내에서 발간한 첫 번째 사례는 김흥우 편 「최정연 희곡집―옥녀동」으로 여겨진다.14) 1988년 국내외 해금 조치가 시행되고, 1990년대 연변 조선족과의 문화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이 희곡집의 출간이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와 때를 함께 하여 1990년대 국내 문학(문화) 잡지에서 연변 조선족의 초기 희곡 유산으로 꼽히는 〈혈해지창〉 같은 작품들이 소개되었고, 김흥우,15) 서연호,16) 김재석17) 등의 학자들은 연변 조선족의 희곡 문학을 개괄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특히 김재석은 해당 연구와 병행하여, 2005년에 「중국 조선민족 희곡 선집」(1~4)을 간행하였다.18) 이 선집은 1949년부터 2000년까지 발표된 중국 내 조선족의 희곡 문학 중에서 한국어로 발표된 작품을 주 대상으로 한 선별 제시형 희곡집이었다.
참고로 「중국 조선민족 희곡 선집」 1권의 편제를 보면, 최정연의 〈새집짓는 이야기〉(단막극)와 〈귀환병〉(단막극), 김세영의 〈젋은 부부〉(촌극), 황봉룡의 〈새각시〉(단막극), 황봉룡·박응조의 〈청산은 여전히 푸르다〉(장막극), 황봉룡·박영일의 〈장백의 아들〉(장막극) 그리고 연극론(연극 〈장백의 아들〉 연출 수기), 마지막으로 김재석의 관련 논문 「조선민족 극문학의 극적 특성과 공연기법」19)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정리하면, 연변 조선족의 주요 작가인 황봉룡과 최정연의 희곡(장/단만극 혼합)을 중심으로, 연변에서 산출된 작품 관련 자료와 편저자의 해당 연구가 혼용된 형태로 간행된 희곡(선)집인 셈이다.
이러한 희곡집의 출간은 한국 근현대 희곡의 외연을 확장하고, 한국문학의 범주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이끌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즉, 연변 조선족의 희곡을 한국 희곡의 범주 내로 포함하려는 강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고, 한국 근현대 희곡의 정신사상(사)적 맥락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근한 사례는 중앙아시아 고려인(CIS) 문학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2010년대에 출간된 관련 서적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 희곡 문학 선집(작품집)을 들 수 있다.20)
김흥우, 김재석, 국제한인문학회 등이 선별하여 편찬한 이러한 희곡집은 한국 내에서 출간되면서 연변 조선족과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희곡 문학을 한국 희곡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 인식과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한국 희곡(문학)의 범주는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확정되지 않았지만, 희곡 자료의 간행과 정리는 관련 문제의식을 확장하려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상당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문학관의 희곡 문학 집성 작업에서는 이러한 점이 더욱 깊이 있게 논구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중앙아시아 고려인 극장의 공연 희곡 자료의 완전한 정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까레이스키 공연예술의 꿈」 간행 작업에서 편찬자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재외한인 희곡작가의 선별 제시와 연구 병행이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고 할 때, 이 작업부터 수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고 해야 한다.
아단문고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그 흔적과 자취로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료의 보고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늘 제한적인 연구자들에게만 제한적인 자료가 개방되면서, 자료의 효과적인 활용뿐만 아니라, 진위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관련 연구자들에게는 그 안을 엿보고 자료를 활용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금지의 도서관이었지만, 동시에 그 내부 자료의 유출이나 열람이 제한되면서 그 안에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 대한 의구심 역시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의혹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던 아단문고 자료가 차츰 개방되더니, 2013년 서재길의 주도하에 「아단문고 미공개 자료 총서 2013」이 출간되었다. 이 총서 1권의 목차를 보면, 영화소설 〈아리랑〉, 〈풍운아〉, 〈잘 잇거라〉, 〈사랑을 차자서〉, 〈사나희-연애편〉, 〈철인도〉, 〈유랑〉, 〈세동무〉 등 나운규 관련 영화의 대본에 해당하는 영화소설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21)
이 아단문고의 공개와 편찬 작업은 위의 범주 가운데 ‘발굴’에 해당한다. 특히 발굴 작업을 통해 수장고 바깥으로 자료를 공개하면서, 체계적인 집성 작업을 거쳐 필요한 영역으로 자료(희곡과 시나리오 등)를 수집 분류한 점은 크게 주목되는 작업이다. 기본 작업은 발굴 집성 작업이었지만, 이를 선별하는 작업도 함께 수행된 셈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편찬 작업에서 소명출판이 개입한 점이다. 소명출판은 단순 자료의 집성을 넘어, 이를 체계를 갖춘 집성 작업으로 연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이러한 집성 작업은 과거의 희곡 문학을 집적, 선별, 발굴해 온 과거의 이력을 관찰하고, 그 장단점을 파악한 결과로 여겨진다. 특히 전통적인 수장고 격 아단문고의 범주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의 집성 체계를 갖춘 점도 주목된다.
통시적으로 고찰할 때, 한국 희곡 문학은 지금까지 크게는 네 가지 형태로 ‘집성’되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다시 정리하는 재간행까지 추가하면 다섯 유형으로 잠정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관련 희곡(혹은 비평 자료까지)을 저인망을 훑듯 모두 한 곳에 모으는 ‘집적’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희곡의 전체 지형도를 그리고 존재하는 작품의 양상을 분류 조망하는 데에 유용한 방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희곡 작품 중에서 질적 수준이 높고 희곡적 완성도가 탁월한 작품을 ‘선별’하여 비평적 시야와 함께 제시하는 집성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의 희곡 문학 유산 중에서 옥석을 가리고, 그 특징을 요약적으로 살필 수 있는 이점을 가져온다. 더구나 이 선별 방식은 선택과 배제의 작업을 통해 비평적 기준을 적용해야 하므로 그 결과, 주요한 선별 맥락을 도출한다는 장점도 생겨난다.
또 다른 하나는 부재하는 자료를 찾고, 사라진 작품을 찾아내는 작업을 근간으로 하는 ‘발굴’ 작업이다. 이재명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작품집과 자료집의 편찬 과정에서 생겨난 사각지대로 인해 누락 작품이거나 특정 이유로 소외된 채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 내지는 해외 혹은 북한 등에 방치된 작품을 수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작업을 어느 정도 전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집요한 추적과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할 때 유용하다는 점에서, 한국 희곡의 주요 작업이 이루어진 상태에 있는 한국 희곡(연극)계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 하겠다.
마지막 하나는 해외에서 창작 유통되는 재외한인의 희곡 문학 유산을 정리 발굴 출간하는 작업이다. 김재석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연변 조선족의 희곡 문학을 한국 희곡 문학의 범주로 포함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희곡 작품을 한국 희곡 작품에 등재하고, 추가하여 그 외연과 내포를 ‘확대’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작업은 시야를 확대하기만 한다면, 다양한 사례로 확장될 수 있다. 중앙아시아 고려극장이 대표적이며,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작가의 활동 범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순 희곡 대본에서 영화 자료로 넓힌다면, 더욱 확장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외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 영화, 이국땅에 방치된 과거 영화 등이 이에 해당하며, 꾸준히 그 확대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주시해야 할 집성 방식이 아닌가 한다. 넓게는 북한 희곡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Ⅲ. 희곡 문학과 관련 자료 집성 방향에 대한 제언
희곡(극) 문학 작품의 집성과 관련 희곡집 편찬 역사에서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주요 방안으로 대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 우선, 자료의 수집 과정에서는 집적 작업이 우선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보완하는 형태의 추가 작업이 늘 후속 조치로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집적의 형태로 희곡을 정리한 양승국의 사례에서 이러한 방안을 추출할 수 있겠다. 양승국 희곡 자료 집적이 반드시 희곡 작품의 집성과 분류를 마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양승국의 작업은 이후 여러 차례 보완되면서 근본적으로는 전체적 지형도를 그리는 사전 작업으로 전제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문학관에서 시행해야 하는 자료 집성의 우선 원칙은 관련 자료의 집적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곳에 모아서 쌓는다는 ‘집적’이라는 개념은 희곡 문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문학 관련 자료 집성 작업에서 근간이 되어야 할 개념이다. 기본적으로는 집성 작업을 거친 이후에 이후의 집성 방안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후속적으로 고려하고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희곡 문학이 어느 정도는 이러한 근간 작업에 따라 정리되었다고 할 때, 이제는 그 방향을 다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근대 자료 이전의 극문학(전통 연희)에 대한 체계적인 집성을 통해, 고대 이후 희곡(극) 문학의 자료 집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넓은 의미에서의 극문학(전승 연희나 고전 희곡) 장르에 속하는 판소리, 탈춤, 전통 연희 등의 채록, 기록 대본에 대한 전수 조사와 통합 작업이 수행되어야 하면, 기존의 근대 희곡 문학(유산)과의 면밀한 연계와 조합 가능성이 타진되어야 한다.
현재 고전 희곡(근대 이전 연희 관련 자료)과 관련하여 이러한 집성 작업은 보다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며, 새롭게 출범하는 국립한국문학관에서 이러한 집성 작업의 토대를 온전하게 구축할 방안을 충실하게 기획 추진해야 한다. 1911년 이후 형성된 근대 희곡의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그 범위가 100년의 기간에 불과하고, 관련 종사자(작가, 연출가)나 연구자(학자, 비평가) 혹은 관계 기관(가령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국립극단(아카이브),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등)에서 이러한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기존 자료의 집적 작업은 이후 집성 방안을 추진하기 위한 기반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때 이러한 집적 작업에 대한 고전 희곡 분야의 분발과 관련 작업 추진은 매우 시급하다고 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고전 희곡 분야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가 추가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집성 작업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탈춤을 비롯하여 판소리, 전통 음악, 한국 춤(무용), 전승 연희, 무극(굿) 분야의 각종 자료와 공연 대본(공연보, 무보, 악보 등)을 집성하는 작업이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계획도 수립되어야 한다.22)
근대 희곡과 시나리오 분야만을 극문학 장르로 간주하고, 근대 이후의 자료와 대본만을 수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균형을 가져오는 그릇된 정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극문학 분야 내에서의 관련 자료와 해당 대본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자료의 보관과 정리에서도 이점을 가져오지만, 이를 활용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도 막대한 이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전술한 대로 기존 집성 작업의 시행 방안에서도 나타나듯, 집적 작업 이후에 선별 작업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후속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희곡(극) 작품 자료를 총망라한다고 해도 관련 연구와 인접 활동 자체를 최우선으로 지원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수많은 희곡 작품 중에서 연구자, 공연자(제작자), 일반인들이 필요한 작품을 선택하여 제시할 수 있는 적극적인 형태의 선별 작업이 후속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
동시대의 도서관(아카이브)은 자료를 모으고 수집하고, 보관하는 기능에 못지않게, 집성한 자료를 선택하여 범주화하고, 관련 정보와 텍스트를 이용자(열람자)에게 연계하여 그 가치를 증폭시키는 역할도 병행해야 한다. 오히려 후자의 비중이 실질적으로 증가한다고 할 때, 한국문학관의 희곡 작품 정리 작업은 필요한 이들에게 이를 소개할 수 있는 선별 제시 작업을 반드시 포괄하고 있어야 한다.
희곡(극문학)에서 가장 주요한 요소 중 하나가 플롯과 함께 인물(캐릭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 플롯과 인물(캐릭터)는 극문학을 이끄는 주요한 서사적 요소였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작품의 이름에도 캐릭터의 이름을 붙이는 선택을 감행한 바 있다. 현대의 시나리오 학자 로버트 맥기는 플롯은 캐릭터를 추동하는 힘으로 정의하면서,23) 두 요소의 결합이 시나리오(극문학)의 핵심 요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의 창작자(콘텐츠 기획자)들은 이러한 캐릭터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한국문학과의 이용자들에게도 특화된 캐릭터 구축, 정리, 활용 방안은 상당한 영감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따라서 극문학 자료를 선별하는 방안 중에서 캐릭터에 대한 세분화된 정리 방안을 고안할 수 있다.
이미 국내의 문화콘텐츠닷컴이나 외국의 DC코믹스에서는 캐릭터를 검색하고, 추출하고 그 특성을 분류한 아카이브를 선보인 바 있으며, 빌리아일랜드 만화 도서관도 이러한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24) 이러한 선행 작업은 상당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국립한국문학관에서는 이러한 테마별 섹션(구획)과 자료 축적(정리) 그리고 열람(조사) 가능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반드시 캐릭터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플롯과 함께 캐릭터는 희곡(극문학) 분야에서 핵심 요소인 만큼 주요 표제어로 활용되어야 한다.
선별 작업은 해당 자료를 찾고, 그 대본을 공유하도록 하는 기능 이외에, 직접적인 형태의 콘텐츠 열람(영화, 동영상, 웹툰)을 전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례로 영상자료원이나 웹툰 아카이브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참조가 될 것이다. 영상자료원은 극문학으로서의 시나리오 대본과 관련 자료도 정리했지만, 그러한 극문학 요소를 활용하여 생산된 필름(영화)를 보존 열람할 수 있는 기능도 장착하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의 VOD서비스는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이다.25) 웹툰 아카이브에서도 이러한 열람 방식은 필수적이라고 해야 한다.26)
학계 일각에서는 영화를 통해 특정 교육을 수행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피교육자에게 파급력과 영향력이 강한 영화를 통해 필요한 과목 교육을 수행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의견의 정합성은 차치하고라도, 영화 중에서 특정 분야(여기서는 교육)와 관련된 주제와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작품을 선별하여 이를 통해 특수 테마 섹션을 구성하거나 추천하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즉, 영화(시나리오) DB를 활용한 연계 활동과 특수 전문 작업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문학관에서 영화 DB를 구축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확장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문학관에 영화 DB를 위한 시나리오 DB나 문학 작품으로서 시나리오 아카이브를 별도로 설치하는 일은 본연의 임무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시나리오라는 특수한 분야에 부합하는 선별 작업이 필요하고, 이러한 선별 작업은 역사 교육이라는 더욱 전문화된 분야에도 대입 가능하며, 나아가서 시, 소설, 수필, 비평 등의 다른 장르에서도 해당 장르에 걸맞은 특수/전문화된 선별 작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선별 작업은 관련 자료의 집적 이후에 다양한 방식과 시대의 필요에 따라 능동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문학관에서 정리 제공하는 희곡 문학(텍스트와 함께 관련 자료)은 크게 세 가지 부류의 인물들에게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를 연구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공연하고 콘텐츠를 변환하려는 실용적 목적의 사용자(제작자)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한국문학관을 이용할 수 있는 일반 이용자들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세 층위의 이용자들은 서로 다른 열람 방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귀중한 연구 자료로 한국문학관 소장 자료를 바라볼 것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창안하려는 이들은 상업적 가능성을 지닌 소재로 소장 자료를 간주할 것이며, 일반 이용자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작품으로 소장 자료를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필요(방식)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서비스와 콘텐츠의 제한 없는 개방(가령 디지털 열람)은 삼자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고 있다. 저작권을 준수하면서도 보다 폭넓은 형태의 자료 열람과 향유 그리고 활용을 위해서는 선별된 정리와 가용한 공개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료의 집성 작업에서부터 집적과 선별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이후 단계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러한 이후 단계를 통해 최종 열람(공개)에 이르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두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문학관에 일차적으로 집적된 자료는 이러한 특수 용도의 사용자들에게 활용될 수 있는 선별 제시 방식에 의해 최초부터 수집, 보관, 전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계획은 한국문학관의 운영 활동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희곡 자료의 집성 작업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와 비평 작업이 병행되어왔다. 양승국의 「한국근대희곡작품자료집」 발간과 「한국근대연극영화비평자료집」의 발간은 무관하지 않으며, 서연호의 작가별 전집 발간 작업은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인터뷰, 작품 분석 등의 관련 연구가 동시에 산출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27) 이재명(편저)의 경우에도 관련 학술대회와 각 작품집 해제를 발표한 바 있으며,28) 김재석(편저)의 경우에는 자신의 관련 연구를 「중국 조선민족 희곡 선집」의 말미에 부기한 바 있다.29)
연구 작업의 병행은 비단 학문적인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나 연구자들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공연 단체들이 이 시대에 적합한 공연 작품을 찾고 있는데, 과거 혹은 해외 희곡 유산은 이러한 모색에 중요한 단서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세계의 선진 아카이브는 자료 수집, 자료 보존, 시네마테크 이외에도 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활동(특히 연구)은 한국의 영상자료원의 활동으로 제안된 상태이다.30) 다만 상대적으로 연구 기능에 관한 관심이 덜하고 상대적으로 부수적 기능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연구 업무의 중요성을 반드시 학문적 성과에만 한정하지 않고, 이용자의 편의와 관심 유도에 활용하는 시각이 곁들여지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학문적 성과의 도출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과를 작품에 대한 심화된 이해나 확장된 관심으로 유도하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조류와 맥락을 조명하는 관련 지식과 정보의 확대 작업으로 연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희곡 창작과 콘텐츠 전환(OSMU)을 도모하는 창작자(기획자)들에게도 이미 창작된 희곡(극) 문학 유산의 섭렵과 참조는 중요한 기초 작업이 될 수 있다. 도서관과 기념관에 쌓여 있고 열람을 통해서만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기존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보완하여, 관련 연구와 비평을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문화 콘텐츠의 확산과 새로운 창작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공연 콘텐츠의 비평 작업이 기존의 방식대로 희곡의 무대화된 공연에 국한된 연극비평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인 필요가 사라져 한국 학계와 동시대의 문화 환경 속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희곡 비평이 재개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필요한 희곡 콘텐츠를 찾으려는 이들에게 신속하고 중요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는 협력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희곡 자료 집성 작업을 일변하면 문학관이 기존에 수행했던 역할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희곡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선별하고,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여 발굴하고 그 영역을 확대하여, 자료의 집성(작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로 인해 협소한 측면에서 수행된 수집, 정리, 체계화, 보존 방식이라는 일관된 집성 작업은 수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의 집성 작업은 기존 집성 작업에서 벗어나 보다 생산적인 성과를 추구해야 하는 소임과 기대 효과를 겨냥해야 한다. 미래의 집성 작업은 기존의 집성 작업에서 조금씩 단초를 드러낸 것처럼, 단순한 자료 정리나 연구 자료 토대 마련을 위한 작업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이러한 희곡 문학을 이용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전환할 방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집성 작업의 변화는 문학관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즉, 문학관은 기존 집성 작업을 한 단계 진전시킬 미래의 기제가 되어야 하고, 본연적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문서고가 자료의 집적과 보관에 중점을 두었다면, 동시대와 미래의 아카이브는 보관자와 연구자 그리고 활용자를 연계하는 기능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 특히 전폭적인 자료 열람이 매우 필요하다. 현재 운영 중인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 열람 방식은 큰 참고가 될 수 있다. 이 중앙도서관에서는 과거 잡지와 제한된 지면에 수록되어 있는 문학 작품의 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연구와 관련하여 살펴 보면, 과거 특정 도서관에서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 희곡(작품)의 원본이나 관련 비평문 역시 직접 열람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설립되는 한국문학관에서 이러한 기능은 필수적이고, 또 의무적이라고 해야 한다. 나아가서 새로운 한국문학관은 검색에 의한 자료 공개라는 틀에서 벗어나, 검색 기능 자체를 확장하여 초보자와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관련 자료 선택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사서가 책을 찾는 역할이었다면, 미래의 도서관 사이버 사서는 책을 찾을 수 있는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보조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본연적으로 한국문학관은 이를 위한 선별 작업과 연구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희곡집을 간행하는 초기 경우에는 영인을 중심으로 한 원본 수용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였다. 희곡이 실린 상태를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이기(移記)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오류를 줄이고, 원본 상태를 확인하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원본 상태가 현 시점과 다르고, 인쇄 불량이나 오탈자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었다. 관련 연구자가 아니면 이러한 자료를 이용하는 데에 상당한 수고가 요구되었다. 이에 점차 현대어 역이 우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 역은 오류나 오판이 개입될 여지가 컸고, 무엇보다 진위의 왜곡도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적극적으로 각주와 해제 작업이 병행된 경우도 나타났다. 이재명의 경우는 해제와 주석 심지어는 번역도 함께 삽입된 경우였다.31)
이러한 과정과 작업은 각각 장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료의 적극적이고, 일반적인 활용이라는 점에서 점차 진전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당연히 온라인상에서의 자료 검색과 열람을 강화하는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 위배가 아니라면 각종 자료들은 더 넓게 보급되고 또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 희곡 문학 작품(유산)에 대한 활용도는 높다고 할 수 없다. 한국문학관은 이러한 자료 활용도를 제고할 방안을 추구하는 운영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집적되고 선별되고 발굴되고 확대된 자료를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자료로 탈바꿈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 그 방안을 논의한다면, 자료 검색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히 요청된다. 자료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그들 자신이 원하는 자료의 구체적인 결과물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지라도—가령 관련 연구 분야나 관심 대목과 관련된 자료 중에 어떠한 자료가 존재하는지 파악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미래의 한국문학관은 그 열람자의 필요를 보다 능동적으로 파악하여 열람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자료까지 찾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찾아오는 방문객과 자료 열람자 혹은 연구 기획을 세우려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자료만 찾아주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의 문학관은 이용자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자료까지 제공할 수 있도록 자기 안에 존재하는 자료와 문헌의 가치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내부 자료와 축적 문헌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까지 강구할 수 있겠다. 문학관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융합하여 시행할 수 있는 연구나 독서 혹은 전시 등을 기획하고 계획된 결과(성과)를 심화할 수 있는 이들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보존하고,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에서 나아가 정보를 집성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창조된 지식을 새로운 체계와 성과로 확대 보편화할 수 있는 기획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문학관의 역할은 분명 전통적인 문학관의 역할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매우 요원해 보이는 미래의 기능을 담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물품 창고가 상품 전시대가 되고, 물품을 보관하는 곳에서 상품이 거래되는 곳으로 변화하는 사례는 사회와 현실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고, 수요자가 공급을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학관도 과거의 고유한 기능에 안주하기보다는 그 내부의 정보와 지식과 체계와 성과를 정리하고 산출할 수 있는 미래를 겨냥해야 할 것이다. 도서관이나 기념관이 자료의 보존 서고가 아니라, 활용처이거나 창구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미래라고 하겠다. 콘텐츠의 보급과 활용 그리고 변형과 재창조라는 관점에서 도서관 혹은 기념관을 바라본다면, 이러한 미래나 가능성은 요원한 꿈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Ⅳ. 희곡 라키비움의 건설과 운영에 대한 제언
최근 전세계적으로 ‘기록관’, ‘도서관’, ‘박물관’의 기능을 통합하여 복합 공간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이러한 추세에 따라 ‘라키비움’의 건립과 운영 체제를 겨냥한 시스템 정비와 새로운 개념의 시설 건립을 위한 모색이 강구되고 있다. 보존 가치가 있는 자료를 모아 기록하는 기록관, 책과 정보를 축적하고, 그 이용을 촉진하려는 도서관, 유물 유적을 수집하여 역사적 궤적과 흐름을 보여주려는 박물관이 그 기능상 통합되어 한 사회의 문화시설(복합 시설)로 탈바꿈되려는(혹은 탈바꿈되어야 한다는) 신개념과 사회적 정책 동향이 확산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라키비움(Larchiveu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그리고 ‘박물관(museum)’의 합쳐진 말로 각각의 시설이 지닌 특성이 통합되는 양상을 지칭한 새로운 개념어라고 하겠다.32)
이로 인해 새로운 시대의 자료 보관실(아카이브)은 도서관과 박물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러한 변화된 공간에 시네마테크나 연구소의 일부 기능까지 결합되는 복합적 시설로 기획 설립 운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현재의 문학관 역시 기대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33) 하지만 이러한 통합적 기능은 보다 본질적인 결합을 지속적으로 겨냥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용의 결합이고, 단계적으로는 생산자와 유통자와 소비자(향유자)의 연계이다. 새로운 아카이브(라키비움)는 전통적인 측면에서의 온/오프라인 열람과 활용 자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34) 생산자가 곧 소비자(향유자)라는 단순한 명제를 능동적으로 따를 준비와 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시네마테크가 자료실이면서 영사실(극장)이어야 하며, 온라인 영상 관람 공간을 갖추어야 하는 이치와 유사한데, 이러한 시네마테크도 보다 확장된 의미에서의 라키비움으로 전환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라키비움의 개념은 점차 도서관 건립과 운영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선구적인 도서관들은 이러한 개념을 수입하여 미래의 독서관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특히 도서관에서 라키비움과 관련하여 중점을 두는 분야는 “독서와 자료 열람, 학습 기능 중심에서 휴식과 커뮤니티 기능, 문화와 창작, 창업과 협업”인데, 미래의 도서관은 이러한 관련 기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정보와 사용자, 사용자와 사용자, 사용자와 미디어를 서로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복합 공간 플랫폼으로 건립”되어야 한다고 믿어진다.35)
이러한 라키비움의 전략적 도입은 궁극적으로는 첫째, ‘정보와 문화 그리고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서의 한국문학관의 건설을 가능하게 하고, 둘째, ‘창의적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이용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며, 두 사이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매개자 역할을 가동하게 하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36)
그렇다면 한국문학관은 더이상 책을 쌓아 놓고 그 책의 내용을 안내하는 공간에 머무르는 공간으로 구축되어서는 안 된다. 학문적으로는 책(저술)의 내용을 풀어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저작과의 관련성과 연계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서 관련 내용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물리적으로 한국문학관에서 독서와 문화 그리고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향유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동시에 시행할 수 있어야 하고,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처럼 문학(대본)의 최종 결과물(공연작 혹은 예술품)에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라키비움의 개념이 충실히 반영된 문학관이어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도서관이고 수장고이자 문학과 관련된 박물관이기도 하고, 영화관이거나 공연장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다목적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그냥 저술과 저서를 저장하는 과거의 수장고로 기획된다면 그 의의와 필요성 심지어는 호응도 역시 격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문학관 건립과 운영의 측면에서 융합적 라키비움의 요소와 세부 지침을 참조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문서고나 수장고로서의 물리적 공간 확보는 더 이상 자료적 가치조차 올곧게 지니지 못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과의 연계, 자료들 사이의 시너지 효과, 창작과 소비의 주체들 간의 상호 작용이 없다면 자료를 보관하는 것만으로는 기존의 시설과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관이 건립과 운영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보관, 정리, 전시, 열람되는 자료 사이의 연계(망) 구축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