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국제사회는 그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사회 환경을 당면하게 되었다. 문화예술계 역시 그 변화로 인해 기약없는 활동의 중단 또는 제한이라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창작과 제작, 유통, 향유를 포함한 분야 전반에 미친 영향을 경감시키고자 코로나19 긴급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즉각적인 대응으로서의 정책 방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 정부에서도 모색 및 시행되었고, 범지구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같은 시기에 당면하게 된 이례적이고 긴급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고자 각국의 대응정책을 공유하고, 적용 가능한 교훈(lesson)을 도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제기구들은 저마다 저개발국 대상 문화·창의산업계 지원패키지 제공, 웨비나(webinar)와 온라인 토론회 등을 통한 정보교류의 활성화 등(Wahba, Ottone, & Amirtahmasebi, 2020) 대응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그 중, OECD, UNESCO, World Bank는 보고서 발표를 통해 문화·창의분야의 경제 규모와 중요성을 상기시켜 각국 정부에 해당 분야 지원을 촉구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따라 공중보건 관련 정책이 국민 안전을 위한 최우선순위로 재편되었고, 그 여파로 문화예술·창의산업 분야에 대한 지원과 보호가 재차 정책 후순위에 머무르게 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상 현 위기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책과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지불해야 할 비용이 더욱 커질 뿐만 아니라, 그 회복의 과정 역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UNESCO, 2020a), 상황 변화에 따른 유연한 대응과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마련이 촉구된다.
팬데믹으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온라인 플랫폼을 포함한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적거나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창작자와 향유자, 관련 분야 전문인들로 하여금 디지털 세계로 계획되지 않은 이주를 강행하도록 하였다(Ponte, 2020). 이처럼 갑작스러운 비대면 사회의 도래는 디지털 가속화(digital acceleration)로 이어졌고, 디지털 환경에의 적응은 곳곳에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와 데이터 보완 문제, 지식 재산권과 결부된 예술적 표현과 보상이라는 문제들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Yang, 2020). 제기된 문제들은 단기적인 대응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특성을 동반한다. 문화예술계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회복력(resilience)을 위한 정책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아직 아날로그적인 의사결정 및 실행과정에 편중되어 있는 정책모델을 비롯한 구조적인 변화를 함께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대한 논의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이슈화되면서 급진적으로 확대되었다. 2017년 한국에서도 과학·기술, 산업·경제, 사회·제도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 대응방안 논의가 개진되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도로 범부처적 정책 추진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문화예술정책은 해당 논의에서 고려되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서우석·심보선·김혜인, 2019). 이후 2018년에 들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급진적 조류 가운데 지원사업의 방향 모색과 기초 예술 분야의 발전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해당 보고서의 저자들은 “문화예술 분야의 경우, 디지털 기술, 모바일 플랫폼 등 3차 산업혁명의 기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에서 3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기술에 관한 논의”가 동시에 이루지는 것으로 진단했다(박순보 외, 2018: 87). 3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기술은 제조업의 전산화(digitization)를 특징으로 하며, 3D 프린팅, 정보·커뮤니케이션의 디지털화를 포괄하는 각종 웹 기반(web-based) 서비스를 의미한다(The Economist, 2012). 이로써 문화예술계는 컴퓨터정보화 또는 데이터의 전산화(digitization)가 여전히 진행되는 과정 가운데 IoT(Internet of things), AI(artificial intelligence), 빅데이터를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 기술의 적용과 문화예술 영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가 맞물려 시작된 것으로 나타난다(박순보 외, 2018).
주지하다시피 한국도 이미 갖추고 있던 기존 디지털 기술과 제반 인프라를 활용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 어느 정도 가능하였으나, 팬데믹은 보다 빠른 디지털 기술의 수용과 실행을 요구하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를 견인하고 있다(Koetsier, 2020; Soto-Acosta, 2020; World Economic Forum, 2020). 이에 한국 정부는 2020년 7월 14일 범정부 차원에서⌜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디지털 뉴딜’ 정책을 발판으로 현 팬데믹 위기 상황 대응을 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발표된 ‘디지털 뉴딜’ 정책은 4개의 추진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DNA(Data-Network-AI) 생태계 강화’가 핵심 추진 방향이자 향후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촉진을 위한 과제이다(김경훈, 2020). 문화예술 및 창의산업 분야에 대한 ‘D.N.A. 생태계 강화’ 추진과제는 주로 AR, VR, MR, XR 기술을 활용한 실감콘텐츠 제작과 비대면 문화예술 콘텐츠 지원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난다(<표 1> 참조). 그 밖에 ‘디지털 뉴딜’ 정책 추진과제인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와 연계 가능한 문화예술 지원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제시 내용이 없었다.
자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2020.7.14.)의 내용 일부 재구성.
이처럼⌜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의 문화정책 관련 내용은 주로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비즈니스 전환’에 제한되어 있다. 온라인 공연과 실감 콘텐츠 제작, 온라인 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등 문화재(cultural goods)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창작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양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국내 주요 문화예술정책 연구기관에서 도출한 디지털 환경에 대비한 주요 문화정책과제는 ‘이해관계자 역량 강화’와 ‘시스템 변화’를 포괄하여 디지털 제반 인프라, 법·제도(예: 저작권 제도), 민관협력 거버넌스, 관련 인력의 역량 강화, 디지털 격차 해소와 실험적·혁신적 예술창작 지원 등을 상정하고 있다(백선혜·이정현·조윤정, 2020; 양혜원 외, 2020; 임학순 외, 2020). 해당 보고서들은 각각 공연예술계, 지역문화재단, 문화예술정책이라는 영역 및 정책 범위를 바탕으로 현 팬데믹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 제시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현장지원 정책 방향성 논의를 담고 있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 드러내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제한적 접근은 2021년 2월에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업무계획⌟에도 드러난다. 문화산업 디지털 콘텐츠 육성과 저작권 기반에 대한 정책이 두드러지는 한편, 창작활동, 예술가 지원, 문화인프라 등 기초예술분야에 대한 지원 정책에 대하여서는 기존의 정책사업에서 예산을 증액하거나 규모를 확대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팬데믹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을 넘어 디지털화의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에 적합한, 보다 확장된 문화예술정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생태계 전반의 이슈를 포괄적이고 구조적으로 탐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따라서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문화예술 정책안 탐색 과정의 일환으로,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거시적인 흐름(macro-trend)을 고찰하고, 그에 상응하는 해외정책 사례를 분석하여 국내 문화예술정책 과제와 쟁점을 탐색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디지털 전환과 교훈 도출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흐름(macro-trend)은 문화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쳐 새로운 형태의 심미적 경험을 창조하는 것과 시장 변화에 따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과거 한 세기의 시간적 격차를 두고 발생했던 1차, 2차 산업혁명(각 18세기 말, 20세기 초)과는 달리 3차 산업혁명(1960년대)과 4차 산업혁명의 주기는 단축되어 전환되었다. 3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Digital Revolution)’이라고 불리며, 정보의 전산화(digitization)를 통해 산업의 혁신을 가져왔고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문화예술계는 3차 산업혁명의 과정과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이 중첩되어 이루어짐에 따라 용어의 정의와 사용에 혼란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디지털화 관련 용어 정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n.d.)는 ‘전산화(digitization)’를 정보와 데이터의 형태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것으로, ‘디지털화(digitalization)’는 산업에서의 정보통신기술 활용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전산화’와 ‘디지털화’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위해 필요한 선행 단계이며, 디지털 전환은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하여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n.p.).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2020)은 디지털 전환의 핵심을 1) 수요자 중심의 비즈니스 혁신(새로운 가치 창출)과 2) 다중 이해관계자의 역량 강화(소비자, 공급자와 파트너, 정부와 사회), 그리고 3) 선순환 시스템 구축(소규모 비즈니스 역량 강화), 세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그림 1] 참조). ‘디지털 전환’은 문화예술 생태계에도 영향을 주어 가치사슬로 대변되는 창작, 제작, 유통, 소비의 과정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러한 예술계의 가치사슬 변화는 시민의 문화예술 참여 환경과 형태, 예술경영 체계와 전략, 그리고 다양한 문화예술정책으로 그 영향이 확대될 것을 보인다(임학순, 2019). 현재 문화예술계 ‘디지털 뉴딜’ 정책이 ‘기회 1: 비즈니스 전환’에 대한 지원사업에 집중된 양상임을 상기해 볼 때(<표 1> 참조), 향후 이해관계자의 역량 강화 및 시스템 변화를 포괄한 정책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환경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변화와 시도, 기회가 생태계(ecosystems)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어 향후 정책 어젠다 설정에 있어서도 모든 사고와 활동을 포괄하는 ‘생태계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김경훈, 2020; World Economic Forum, 2020).
팬데믹 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 여러 국가들은 코로나19 대응정책 성공사례를 자국의 정책에 적용하고자 서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팬데믹과 같은 범지구적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간 정책 방안의 이전과 확산이 주요 정책결정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다(Weible et al., 2020). 그러나 위협, 불확실성, 위급함이라는 상황의 환경적 특성(Moynihan, 2009)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따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긴박함이 압력으로 작용하여 영향을 받는 정책 입안자나 정치계가 정책 이전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타국의 정책 목적과 방법에 대해 부정확한 이해와 불충분한 분석 등 적절한 평가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 정책 이전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Powell & King-Hill, 2020; Weible et al., 2020).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정책 이전에 앞서 다양한 정책 모델과 정보수집 과정은 정책 결정(policy-making)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정책 이전(policy transfer)에 대한 분석틀(framework)을 제시한 돌로위츠와 마쉬(Dolowitz & Marsh, 2000: 5)는 정책 이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책 이전은 “어느 한 정치적 체계(political system, 과거 또는 현재)에서 실행되었던 정책에 대한 지식정보와 행정적 신념과 제도, 방식을 다른 정치적 체계의 정책과 행정적 신념, 제도, 방식을 개발하는 데 활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책 이전을 고려할 수 있는 범위는 꽤 넓다. 시간적, 지역적 제한 없이 과거에 시행되었던 정책이나, 국내 지역별(광역, 기초) 정책사례, 또는 타국의 중앙, 광역, 기초 단위 정책 중 정책 문제나 주요 배경에서 유사성을 띠는 것이라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때 적합한 정책 선정과 성공적 이전을 위해 접근 가능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필수로 지목된다. 대상 정책의 목적, 내용, 수단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정책사업 및 실패 사례에 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이 함께 수행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Dolowitz & Marsh, 2000; Evans, 2009; Mossberger & Wolman, 2003). 또한, 해당 국가가 근거하고 있는 법·제도 구조와 맥락, 문화적 배경, 경제적 상황과 정치 방식의 유사성이 정책 이전의 성공률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도 정책사례 선택 시 고려되어야 한다(Weible et al., 2020). 러그랜드(Legrand, 2012: 330)는 이러한 국가 간 발생하는 정책 이전(cross-national policy transfer)이 타국의 정책 성공과 실패 여부에 근거하여 실효성이 높게 점쳐지는 정책과 정책 수단을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정책 이전은 증거기반 정책 결정(evidence-based policy-making) 방법에 속한다고 보았다. 타국에서 선행된 정책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해당 정책에 대한 사전 예측과 평가를 용이하도록 하며, 이는 곧 사례 검증의 일환으로서 사료되기 때문이다(Mossberger & Wolman, 2003). 이 같은 정책 이전은 국가 간 정책을 조사 및 평가하여 실행되거나, 국내 지역 간 정책 이전, 또는 OECD와 UN 등 국제기구에서 협의된 정책 전략과 가이드라인이 한 국가의 정책으로 수용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정책이전의 증가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세계화(globalization)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Mossberger & Wolman, 2003) 이해되는 한편,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한 세계 경제가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국제사회의 연대와 국제기구(예: EU, IMF, World Bank)의 정책도 주요한 영향 요인으로 지목된다(Parsons, 1996 재인용; Dolowitz & Marsh, 2000; Legrand, 2012). 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합의 체결과 같이 반드시 특정 정책을 이행해야 하는 경우, 체결에 따라 부과된 의무 사항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는 강압적 특성을 가진 정책 이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의무적 성격을 나타내지만, 국제사회의 연대에 참여하고, 더 나은 국제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 차원에서 정책 이전을 이행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한국을 포함한 UNESCO의 회원국들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에 체결하고, 자발적으로 관련된 정책을 이행함으로써 회원국의 의무를 실행한다. 이처럼 정책 이전의 동기와 의도(intentionality)가 한 국가의 안으로부터 또는 외부로부터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정책 이전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론적 구분과 달리 실제 현상에서 볼 때 국제기구의 역할을 정책 이전에 대한 자발적 참여 유도 또는 강압적 이전으로 볼 것인가 사이에서 명확한 구분짓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국제기구의 주도 또는 개입을 통해 발생하는 정책 이전의 경우에는 혼성적이며 연속성을 가진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Dolowitz & Marsh, 2000).
로즈(Rose, 1993)에 따르면 “교훈 도출(lesson-drawing) 논리는 불만족스러운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시간 또는 지역적 제한에서 벗어나 유사정책을 분석하고”(신혜선·김인설, 2016: 112),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직관적 정책 시사점을 활용하는 자발성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정책결정과정(policy-making process)의 초기 단계인 ‘정책의제설정(agenda setting)’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진다(Dolowitz & Marsh, 2000; Kingdon, 2003). 따라서 향후 문화예술계 디지털 전환 관련 정책 어젠다 설정에 있어 생태계 관점으로 구조적 변화를 설계한다면 교훈 도출은 유용한 증거기반 정책 탐색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분석대상이 되는 정책사례의 완전성과 수집 가능한 지식정보의 질(quality)에 따라 합리성의 완전성과 제한성을 특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교훈 도출에 대한 이 같은 구분은 정책사례의 지식정보 수집이 언제나 완전할 수 없다는 현실성을 반영한 것으로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는 불완전성이 교훈 도출 과정에서 용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상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교훈 도출은 제한된 정보를 통해 실행되기 때문에 ‘제한된 합리성’을 근거한 정책내용의 수용은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난다(Dolowitz & Marsh, 2000).
본고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화정책 어젠다를 논의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사회와 경제의 변화 및 기회’ 동심원 모형(World Economic Forum, 2020: 3&7)을 바탕하여 국제기구의 정책 제안과 외국 사례를 구조적으로 분석하였다([그림 1] 참조). 국제사회의 정책 트렌드는 국제기구 내 회원국들의 협의와 합의를 통해 체결된 내용으로 구성되며, 각국의 관련 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미국 연방정부는 과거 OECD 문헌을 토대로 국제사회의 정책 트렌드를 검토한 후, 호주의 정책사례를 채택하여 정책 이전을 위한 분석을 시행한 바 있다(Bruel, 1996). 더 나아가 복수의 정책사례를 선정하는 ‘혼합형 검색(mixed scanning)’(Etzioni, 1967)이 활용되기도 하는데, 사례 선정 이전에 다양한 정책모델에 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적합성이 증진된 정책 이전으로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Mossberger & Wolman, 2003: 436 재인용).
본 논문은 미국 사례와 같이 두 단계 검토 과정과 혼합형 검색을 차용하였다. 국제기구가 발표한 정책 담론과 방향성을 우선 검토한 후, 해외 모델 정책 사례에 대한 지식정보와 행정 목표, 정책실행 방식을 검토하는 두 단계의 검토 과정을 통해 거시적 흐름과 미시적 실행 과제를 동시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연구 방법은 도구적 접근(instrumental case study)을 바탕으로 한 다중사례연구(multiple case studies)로서 사례분석을 통해 연구 주제에 대한 통찰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Stake, 2000; Yin, 2009). 자료수집은 OECD, UNESCO에서 발행한 보고서와 정책 가이드라인, 로드맵 등의 회의결과 보고서, 그리고 사례 국가의 공공기관 발행 연구보고서와 논문, 통계자료, 미디어 기록 등을 활용하였다.
국제적 정책 흐름을 조망하기 위해 OECD와 UNESCO가 발표한 문화예술정책 또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회원국 정책 가이드라인 및 로드맵을 자료로 활용하였고, 해외사례 조사는 연구 주제와의 연관성과 자료의 접근성을 기준으로 영국과 캐나다의 정책 사례를 선정하여 비교·분석하였다. 영국과 캐나다의 경우, 팬데믹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디지털 환경변화에 대비한 문화예술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온 선사례로 인식되고 있다(UNESCO, 2020b). 앞서 언급하였듯, 각국의 법제도와 정치 방식, 문화와 경제적 배경에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국가사례 비교연구의 내재적 한계이다. 다만, 그러한 한계점을 국제기구 자료와 혼합형 검색이라는 연구설계를 통해 보완하여 정책사례의 목적, 내용, 수단에 대한 유의미한 교훈 도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Ⅲ. 국제사회의 문화예술정책 담론과 방향
국제사회와의 신뢰 구축과 연대형성의 측면에서 OECD와 UNESCO의 문화예술정책 담론을 고찰하고, 제시된 주요 정책 현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OECD와 UNESCO의 역할과 주요 분야가 각각 경제와 문화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지만, 팬데믹 위기 상황 관련 문화예술정책 방향에 대한 두 기구의 주요 담론은 중첩된 부분을 드러낸다. 공통적으로 문화예술 및 창의산업 분야의 기술적 개선과 증진 외에도 구조적 혁신, 그리고 협력을 강조한 포용적 발전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예기치 못한 환경변화로 인해 그동안 수동적 태세를 나타냈던 문화예술 현장(안성아 외, 2019)에서도 디지털 기술 활용에 대한 수용도와 공감대가 증가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디지털 전환의 모멘텀을 배경으로 OECD와 UNESCO와 같은 국제기구가 주목하는 문화예술정책의 현안과 대응방안을 고찰하여 우리나라 중장기 디지털 문화예술정책 개발에 적용 가능한 교훈을 도출하고자 한다.
문화예술 생태계의 변화를 주도할 새로운 디지털 환경은 디지털 기술 활용으로 인한 전산화의 확대와 IoT, AI, 빅테이터를 적용한 문화예술 콘텐츠, 매체, 산업 구조 및 체계를 총칭한다. 이는 문화예술 가치사슬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예술의 경계와 정의 그리고 문화와 제도, 인간의 삶에도 지속적인 질문과 도전을 제공하며, 해당 분야의 진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OECD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가 현시대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인간 삶의 변화를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보고, 2017년부터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논의를 이어왔다.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과 여파가 산업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친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산업 중 하나인 문화·창의 분야(cultural and creative sectors)에 대한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대응 현황과 향후 개선 방향을 발표하였다(OECD, 2019a; 2020). 디지털 환경이 가져올 다양한 선택과 새로운 경험 등의 혜택이 기대되는 한편, 국가별, 산업별로 AI 기술과 빅데이터 보유, 보급력, 활용 역량 등의 격차로 인한 시장 진입장벽 제한과 시장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거듭 지적되고 있다. OECD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로 인한 잠재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며, 디지털 전환 전략 개발 시, “접근과 활용, 혁신, 일자리(jobs), 사회적 번영, 신뢰, 시장 개방성” 측면이 상호 밀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적시하였다(OECD, 2019a:12). 여기서 주목할 것은 OECD가 제시하는 디지털화 관련 문화정책의 방향은 수직적 발전과 함께 수평적 공생이 교차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국가 간, 분야 및 시장 간, 사회계층 간 포착되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예방하기 위한, 더불어 최종 사용자의 권리가 강화될 수 있는 법·제도 마련 및 관련 정책이 구조적으로 재편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주 오이시디 대한민국 대표부, 2019).
OECD(2020)는 코로나19 팬데믹 극복방안을 논의하는 보고서에서 연계성(connectivity), 포괄성(inclusiveness), 혁신성(innovation)을 중심으로 한 문화 생태계의 세부 영역 간 상호협력 기회 창출과 디지털화에 따른 기술 혁신 강화를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하였다. 우선, 분야 간, 장르 간 연계와 포괄적인 접근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축소된 예술 활동을 극복하고, 아날로그적인 수익구조 및 경영방식에 대한 혁신적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데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았다. 문화 생태계(cultural ecosystems)를 구성하는 영역이 가진 각각의 전문성과 역할 및 특성이 과거에는 독립된 전문성을 구축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동력으로 작동했다면,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영역 간 경계의 모호성이 강조되며, 비영리, 상업, 공공 분야의 상호 연계와 협력이 주요한 전략이자 정책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면, 이미 일부에서는 시도되는 상업예술(문화산업) 영역과 기술 중심의 산업 분야 간 연계, 그리고 문화·예술과 비(非)문화예술계(예: 교육)의 협력 정책 방안을 꼽을 수 있다(OECD, 2020:11-12). 또한,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한 교류와 분산화된 창·제작 과정은 문화예술 소비층의 확대 및 다양화와 함께 문화예술 창작 콘텐츠의 다양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비대면 사회가 촉진시킨 새로운 방식의 예술 경험과 예술단체의 경영 모델 개발은 혁신성으로 대두되는 디지털 환경변화 과정에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Ibid.:24). 따라서 앞으로의 문화·창의 분야는 IoT(Internet of things), AI(artificial intelligence), 실감콘텐츠를 중심으로 혁신적이고 확대된 소비자층을 포용할 수 있는 창작 콘텐츠의 강세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 생태계의 변화는 시장에만 의존할 경우, 앞서 언급되었던 기술 격차로 인해 시장의 불균형과 소수의 시장 독식이 우려된다. 따라서 구조적인 재편이 공공의 개입 및 민관 협력을 통해 실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주 오이시디 대한민국 대표부, 2019).
<표 2>는 OECD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수집한 문화·창의 분야 코로나19 극복 지원 정책을 항목별로 종합한 자료 중, 지원사업 중심의 단기대응정책 부분은 제외하고, ‘구조개편정책(structural change policies)’ 부분만을 채택하여 재구성한 것이다.1 ‘구조개편정책’과 관련 정책 항목은 코로나19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 정책으로서 문화·창의 분야의 회복역량 강화와 디지털화 기반 수립을 위한 제도와 정책구조를 중점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구조개편정책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세부 항목은 관련 1) 인력의 역량 강화와 2) 구조 개편에 필요한 지식정보의 지속적인 생산, 그리고 3) 근거 법제도 마련을 통한 실제 디지털 기술 활용 환경 조성 등 사이에 상호보완적 관계성을 가진다. 더불어 ‘디지털화(digitalization)’, ‘기술 혁신(innovation)’, 그리고 ‘저작권 제도(copyright licensing)’처럼 창작과 분배, 향유를 포괄하는 가치사슬의 조직적 구조 개편방안은 2019년에 발표한 OECD 디지털화 관련 주요 논의 내용이 반영됨이 확인된다. 따라서 팬데믹 위기 상황의 극복을 위해 장기적인 대응방안은 디지털 전환의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료 : OECD(2020:33-35, 51-54)의 재구성.
문화·창의 분야의 디지털 환경 대응 정책구조에 대하여 OECD가 제시하는 내용은 기술 혁신성에 수반된 경계의 모호성과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직면, 그리고 포괄적이고 상호 연결 가능한 실험과 가능성 모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알린다. 또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영역 간 협력이나 디지털화와 관련된 문화예술정책 모두 민간과 공공, 그리고 비영리와 영리 영역 간의 협력과 거버넌스가 요구되고 있다(OECD, 2020: 24-25). 이를 위해 OECD(2019b)는 행정관리의 과정 또한 사용자 중심으로 탈중앙화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문화 생태계의 내부적 협력과 연계를 통한 혁신적 변화의 실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정책 어젠다 수립 외에도 행정구조의 혁신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UNESCO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문화예술 생태계의 가치사슬(창작, 제작, 유통, 향유방식)과 문화예술계가 입은 타격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위기 인식 제고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회복력 증진을 위한 방안 마련을 촉구하였다(UNESCO, 2020c). 특히, 팬데믹 종식 이후의 삶이 그 이전에 누리던 삶의 환경과 동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전제를 바탕으로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창작물 유통과 분배(distribution) 방식의 변화와 대응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더불어 예술가, 문화예술 현장 전문가, 정책입안자, 연구자들이 논의할 수 있는 장(‘ResiliArt’)을 마련한 바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유통이 문화예술 및 창의산업 전반에 의존적 대체 방안으로 활용되면서 콘텐츠 산업 중심 시장과 소위 순수예술 분야의 적응 속도에 차이를 드러내었다. Netflix, Spotify 등 OTT 플랫폼의 급격한 신장과 서비스 확대, 새로운 가입자 유입이 두 영역 간의 격차를 대변한다(Vlassis, 2021).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등 현장 중심의 예술 분야의 경우, 제작과 유통의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 적용을 시도함에 있어 시간적 제약을 경험하고, 예술적, 심미적 경험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한계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순수예술 분야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팬데믹 위기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 한정적인 대안으로서 바라보는 시각도 상존한다. 한편, 홍콩 아트바젤(Art Basel Hong Kong)을 비롯한 국제아트페어 사례에서는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전시를 개최하여 관람객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디지털 전환의 성공적인 사례를 남기기도 하였다(UNESCO, 2021).
이처럼 문화산업, 순수예술, 예술교육 등 분야별 처한 환경과 예술 장르별 제작, 소비, 유통의 특성에 따라 상이한 디지털화 과정과 디지털 전환의 진행 속도가 예상된다. 이것이 문화예술계의 불균형적 공급과 향유/소비, 더 나아가 문화예술 다양성의 퇴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디지털화로 야기될 수 있는 문화다양성 위기 문제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으로 인해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에 대한 범영역적 수요와 동의가 형성된 것이지, 새로운 디지털 환경이 형성된 것이 아님을 고려하여 UNESCO가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발표한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증진’ 협약 내용을 고찰하고자 한다.
팬데믹 상황 이전,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맞추어 UNESCO는 향후 협약국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을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실행 가이드라인(operational guidelines)’과 ‘오픈 로드맵(open road map)’을 발표하였다(UNESCO, 2017; 2018). 협약의 목적에 맞게 표현의 자유와 문화다양성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보호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과 로드맵에서 기술적 내용과 제도적 방안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화다양성 이행’ 목표는 크게 ① 법·제도와 문화정책의 보완과 신설, ② 디지털 생태계의 다양화를 위한 지원사업과 정책 마련, ③ 편중되지 않은 문화적 재화와 서비스 육성, ④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와 기술, 능력 강화, ⑤ 인권과 최소한의 자유·권리를 육성하는 것으로 요약된다(UNESCO, 2018).
위 목표와 상세 내용을 본고에서는 ‘디지털 전환의 세 가지 기회’ 측면에서 재고찰하였다([그림 1] 참조). 문화예술 가치사슬의 과정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정책과제와 쟁점은 1) 시간적 동시성과 상호교류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형식의 창의적 활동 지원, 2) 교육을 통한 디지털 역량 강화와 유관 법안 개정, 3) 거버넌스 시스템 강화와 다양한 협력 지원으로 도출될 수 있다(UNESCO, 2017; 2018). 첫째, 문화예술 분야의 디지털 비즈니스 전환과 관련하여 오프라인에서 가능했던 다양한 예술적 표현의 시도와 작품 선택의 자율성을 디지털 플랫폼에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지원 마련이 제안되었다. 이는 예술의 실시간, 상호교류 특징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지원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로운 창의적 아이디어 구현과 향유자의 체험 욕구 충족과 연관성이 깊게 나타난다. 더불어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비즈니스를 실현하기 위해 추천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분류체계 개선도 함께 지적되었다.
둘째, 디지털 환경에서의 창의성 발현과 혁신적인 예술표현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활동가와 협력 인력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연구와 개발(R&D) 지원은 새로운 예술적, 심미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창발함으로써 다양성 기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가 타 분야의 전문언어를 습득하고 상호 이해를 구축함으로써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실험과 협력 중심의 창의·예술 활동에 필수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지원을 제공할 것이 촉구되었다(UNESCO, 2018). 역량 강화의 측면에서 시민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주요한 정책과제로 언급된다(UNESCO, 2017). 사회 구성원의 문화향수권 보장 측면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화예술 접근성 신장뿐만 아니라, 콘텐츠 해석역량에도 필수적인 역량이므로 해당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민관 파트너십과 거버넌스 시스템 강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 및 방안 강구의 필요성이 시스템 변화와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다. 최근 증가세를 보이는 1-2인으로 구성된 마이크로 규모 단체와 지식정보 수집과 활용에 필요한 인력 활용이 제한될 수 있는 중·소규모 단체에 대한 지원 방안과 민관 파트너십 모색은 소규모 단체의 역량 강화 측면에서 중요한 정책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규모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단체들의 문화예술계 참여가 관찰되는 현 상황에서 민간단체와 기업 간 협력과 다양한 거버넌스 구조 모색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제기된다(UNESCO, 2018).
이로써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UNESCO가 제시하는 정부의 역할은 문화예술계 현장과 생태계 전반이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과정 중심 지원과 법·제도를 포함한 환경 조성 지원 제공에 중점을 둔 것으로 확인된다(UNESCO, 2020).
문화예술 생태계 전반에 디지털 기술이 미칠 변화에 대비하여 북미와 유럽의 몇몇 국가 정부는 창작(미디어아트, 융합연구, 혁신)과 소비(관객 개발), 조직 운영 또는 경영(역량 강화,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예술의 상징성과 표현을 통해 발생할 사회적 영향 등을 포괄하는 영역별 문화정책 전략 개발에 나섰다(Canada Council for the Arts, 2016; 임학순, 2019 재인용). 그 가운데 영국은 팬데믹 발생 이전부터 문화예술·창의분야 디지털화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한 국가로 꼽힌다. 2017년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는 기존 명칭에 ‘디지털’을 추가하여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epartment of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 이하 DCMS)로 변경함으로써 부처의 행정 범위와 정책 방향성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전환되었음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트렌드에 적극적인 태도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영국은 DCMS의 문화예술·창의분야 정책을 통해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선사례로 인식되었다(Kulesz, 2020).
팬데믹 이전부터 디지털 문화예술정책을 시행해온 영국의 디지털 및 디지털 전환 정책은 오히려 OECD의 팬데믹 위기 극복을 위한 문화예술 생태계 구조개선정책 국가별 현황 자료(<표 2> 참조)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영국의 디지털 문화예술정책 사례분석을 위한 문헌자료로 코로나19 위기 상황 이전에 발간된 정책 보고서와 팬데믹 대응 방안으로 시행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포괄적으로 살펴보았다.
2018년도 ‘Culture is Digital’ 정책 보고서에 제시된 DCMS의 디지털 정책 방향은 1) 기술 활용을 통한 관객의 예술참여 확대, 2) 문화예술단체의 디지털 역량 증진과 법제도 구축, 3) 기술의 창의적 가능성 촉발을 위한 미래전략 수립으로 구성되어 있다(DCMS, 2019; Finnis & Kennedy, 2020). 영국 정부가 문화예술 디지털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드러낸 특징은 공공기관과 민간 전문단체, 그리고 해외 공공기관 등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다원적 협력관계이다. 특히, 영국의 디지털 문화정책사업의 구조와 연구·개발, 지원사업 운영, 네트워크 구축 과정을 살펴보면 네트워크 간 협력이 주요한 부분으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 및 공유, 재정자원의 투입, 단체의 역량강화 툴(tools) 제작 등의 과정에서도 공공기관 간 협력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민관 파트너십이 일관성 있는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파트너십의 구성은 정책실행을 주도하는 잉글랜드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와 국립문화유산복권기금(National Lottery Heritage Fund)의 리더십이 중심축이 되며, Nesta, Culture24, University of Leicester 등 공공기관과 민간단체, 교육기관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자료의 수집과 관리, 사업 운영의 기술 및 문화예술 전문성 확보, 전반적 정책 전략과 거버넌스 구축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팬데믹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서 설치된 ‘문화적 회복과 회생을 위한 영국위원회(UK Commission for Cultural Recovery and Renewal)’ 사례에서도 문화예술 및 창의 예술분야 현장 전문가와 민간단체, 공공기관과 중앙정부 간 협력체계가 중심이 되어 각 전문분야의 현장 수요와 평가,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artscouncil.org.uk, n.d.). 거버넌스 중심의 영국 문화정책사업은 수평적 구조를 특성으로 한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모델로 사료된다. DCMS의 디지털 정책의 협력기관 중 하나인 Culture24의 CEO, 제인 피니스(Jane Finnis)는 웨일즈 예술위원회와의 인터뷰를 통해 디지털 정책의 수평적 구조와 파트너십 중심의 전략은 필연적인 것임을 설명한 바 있다.
“디지털은 수직적이지 않다. 사무실 한 쪽에 놓인 도구로 어떤 프로젝트에서 한 가지 기능만을 담당하고 그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은 수평적이며, 반드시 프로젝트와 수행과정 전반을 엮어내는 것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Golant Media Ventures, 2017:14).
전반적인 정책실행 과정에 전제된 협력관계와 거버넌스 구조 외에도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 및 개발과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실무자와 전문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일례로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의 ‘디지털 문화네트워크(Digital Culture Network)’ 사업은 잉글랜드 전역의 문화예술분야 인력에게 기술적 역량 증진의 기회 제공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영국의 문화유산복권기금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구글과의 협력관계를 추진하여 잉글랜드 전역에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DCMS, 2019). 이 사업에서 주목할 것은 일명 테크 챔피언(‘Tech Champions’)이라 명명한 기술분야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교육내용의 범위이다. 교육연수의 내용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 웹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검색엔진 최적화를 통한 마케팅, 전자상거래, 고객관계관리, 디지털 전략 및 데이터 분석” 등 창작과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제작과 분배, 그리고 마케팅과 재정, 수익관리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임학순 외 2020: 63). 즉, 디지털 환경에서 단체 운영에 필요한 지식정보의 전반을 교육하며, 예술경영 인력의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를 드러낸다.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혁신 사업의 운영은 비즈니스 전환을 견인하는 콘텐츠 개발의 기술 도입에서도 발견되고, 향후 미래전략을 구축하는 장기적 변화 추진에도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문화예술분야 디지털 정책에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단기적 사업과 장기적 계획을 수반하는 시스템 변화 전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 ‘디지털 뉴딜’ 정책에서의 문화예술분야 지원이 AR, VR, XR, 실감형 콘텐츠 개발을 위한 단기적 기술 투자에 집중해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다자간 협력 환경 마련과 탈 영역 간 협력 기회를 위해 장기적 투자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국 디지털 정책에서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자의 행동 분석을 바탕으로 한 관객 개발과 전략에도 활용되며, 또한 문화예술단체의 디지털 전환 과정을 자체 평가(self-assessment)할 수 있는 지표개발(‘Digital Culture Code and Maturity Index’)에도 활용되고 있다. ‘사용자 정의 접근(user-defined approach)’ 방식을 활용한 데이터 가공을 통해 문화예술단체 운영 인력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관객 소비와 수요를 평가할 수 있는 툴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은(DCMS, 2019) 이러한 분석툴을 개발하기 어려운 소규모 예술단체의 운영과 디지털 전환 비즈니스 모델 적용에 초석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디지털 데이터의 이 같은 활용은 문화예술 생태계의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에도 일면 긍정적 기여가 가능한 정책 방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캐나다 예술위원회(Canada Council for the Arts)는 2020년 4월 캐나다 연방정부가 긴급 시행한 코로나19 대응 지원금 정책이 예술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실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반응을 확인하고자 전국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를 통해 예술위원회는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단체와 예술가 및 분야 전문가들이 처한 위기 상황과 어려움에 대한 실제적 이해를 도모하고, 예술 분야의 환경적 특성에 적합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자 하였다(Canada Council for the Arts, 2020). 시기상 팬데믹 초기 상황에 대응하는 긴급 지원 정책이었던 만큼 연방정부의 대응 지원금 정책은 보조금 지급과 임금지원 등 단기 대응 방안이 대부분이었으며, 예술 분야에 특화된 지원은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시행한 설문 응답자 중 61%가 연방정부의 긴급 지원금이 도움이 되었다고 답하기는 했으나, 프리랜서와 소규모 비영리 단체의 분포도가 높은 문화예술계가 실효성이 있는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개선된 대책안 마련이 필요했다. 설문에 응한 현장 전문가 및 예술가들 역시 지원 대상 기준을 문화예술계에 적합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캐나다 예술위원회는 ‘디지털 오리지널(Digital Originals)’ 사업을 시행하여 기존에 창작된 작품 또는 새로운 창작작품의 온라인 유통을 지원하였다. 지원금 5천 달러(한화 약 450만 원)에 한하는 소액 지원사업이기는 하나, CBC/Radio-Canada와 협력하여 해당 방송사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 등 온라인 플랫폼과 전문 기술력 활용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외부 활동이 제한된 시기 동안 예술가들의 창작작품 노출 기회를 일부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현장 인력들이 온라인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이해와 역량 강화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Canada Council for the Arts, n.d.). 다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예술 분야의 디지털 전환 전략 방안을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책의 방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이전 수립된 예술위원회의 ‘2016-2021 전략계획’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캐나다의 문화정책은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확립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주요 기조로 한다. 따라서 창의·문화산업의 콘텐츠 개발과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모색함에 있어서도 캐나다의 고유한 이야기와 국가 이미지 등의 활용이 반영되어 나타난다(Davis & Zboralska, 2018). 2017년 캐나다 문화유산부(Ministry of Canadian Heritage)와 혁신과학경제개발부(Ministry of Innovation, Science, and Economic Development)가 발표한 창의산업위원회(Creative Industries Council) 창설계획 등 협력 정책안을 살펴보면(Government of Canada, n.d.), 디지털 전환과 창의·문화산업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캐나다 문화정책에 새로운 기회와 위기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접국인 미국의 상업예술 콘텐츠와 OTT 산업의 파급력에 대응할 필요성이 한층 커짐에 따라, 자국의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및 국내·외 유통/분배 구조 개발, 저작권 법안 개정, 그리고 지역 저널리즘과 공영방송의 현대화 등 예술·창의산업의 강화를 목표로 한 문화산업정책이 등장하였다(Government of Canada, 2017).
이 같은 문화정책의 조류 가운데 캐나다의 디지털 문화정책은 크게 연구와 조사, 협력과 네트워킹 중심, 실험적 시도를 특징으로 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먼저 캐나다 예술위원회는 정책 수립 준비과정으로 2016년 ⌜디지털 세계에서의 예술(The Arts in a Digital World–Literature Review)⌟보고서를 발간함으로써 디지털 문화정책의 지식정보 기반을 마련하였다. 연구보고서에서 새로운 디지털 환경이 가져온 사회와 예술의 변화에 대한 담론을 고찰하고, EU, 영국, 뉴질랜드, 에스토니아 등 7개국의 예술 및 창의 산업 관련 디지털 정책 사례조사를 통한 교훈도출을 시행하였다. 이를 토대로 1) 창작과 관객참여, 2) 역량 개발, 3) 조직 개편(transformation)을 골자로 한 정책과제가 도출되었다(Canada Council for the Arts, 2016).
이어서 캐나다 예술위원회는 ⌜2017-2021년 창의 캐나다 정책 계획(Creative Canada Policy Framework)⌟의 일환으로 8,850만 달러(한화 약 815억 원) 예산 규모의 디지털 전략 기금(Digital Strategy Fund) 사업을 발표하였다. 디지털 전략 기금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사회 환경에 캐나다 예술가와 예술 분야 종사자와 예술단체들이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이해 증진과 혁신적 시도를 감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Finnis & Kennedy, 2020). 주목할 부분은 ‘디지털 전략 기금’을 통해 예술 분야 구성원이 전반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그 변화의 과정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또한, ‘디지털 전략 기금’은 예술 분야 종사자들의 자율적인 디지털 관련 학습과 네트워크 형성에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디지털 리터러시와 지식정보’ 사업은 예술가 및 예술단체의 디지털 관련 연구모임과 워크숍과 포럼, 그리고 연구를 통해 고안한 실험적 예술 활동을 실행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Canada Council for the Arts, n.d.). 시범사업(pilot)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인 시도와 개선안 탐색이 가능한 것은 유연한 지원금 사용을 허용(Finnis & Kennedy, 2020)하기 때문이다. 사업참여 단체 및 예술가로 하여금 단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절감해주는 사업의 특성(Canada Council for the Arts, n.d.)이 예술가 및 현장 전문가들이 기꺼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실험을 감행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의 초기 단계에서 투입되는 투자성 지원은 실험적 시도에 대한 지원을 우선시하며, 지원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실상 디지털 전략 기금과 지원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캐나다 디지털 문화정책 초기 단계에 시행된 정책사업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전략 기금’ 정책은 디지털 전환의 시작 단계에서 드러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캐나다 예술위원회가 새롭게 발표한 ‘2021-26 전략계획(Reimagine the Arts: 2021-26 Strategic Plan)’에서는 디지털 혁신을 지원하는 정책 방안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측된다. 예술분야 종사자 대상 설문조사와 다양한 회의와 논의를 수렴하여 작성된 해당 문화정책 5개년 계획서는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가운데 예술계의 지속가능성을 주요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이주와 디지털화에 대한 투자의 혜택이 예술계에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을 설계하려는 목표와도 연결되어 나타난다(Canada Council for the Arts, 2021). 그러나 빠른 변화의 과정에서 예술 생태계가 지속가능성과 디지털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원사업의 운영 방식과 그 사업이 미리 규정하고 있는 고정된 개념에 대한 유연성 확보가 요구되고 있다(Ibid.: 20-21).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자립도가 더욱 취약해진 예술계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행정 논리와 모더니즘적 사고 체계에 머물러 있는 지원사업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캐나다 예술 현장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한 캐나다 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운영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으나, 혁신성과 새로운 시도의 실천은 기존의 개념 정의를 뛰어넘는 창의적 사고 및 실행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디지털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에 급진적 도전과제를 제기하는 내용으로 사료된다.
IV. 결론 및 논의: 정책과제와 주요 쟁점
본문에서는 정책 이전의 초기 단계인 정보수집과 분석의 과정으로서 국제사회의 디지털 시대 문화예술정책 트렌드와 선정한 국가별 관련 정책사례를 문헌 분석하였다. 위에 제시한 <표 3>은 분석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팬데믹 상황이 전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에 관한 논의 및 정책어젠다 수립이 가속화된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실상 2016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후, 국제기구와 몇몇 국가에서는 정책 방향을 설정하였고, 이미 실행단계에 이른 국가도 있었다. 현장성과 참여가 주요한 문화예술계에서는 관련 논의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었으나, 언제 끝날지 모를 팬데믹 상황은 신속한 정보교류와 대안 마련을 촉구하였다. <표 3>에 나타난 바와 같이, 문화예술 생태계의 디지털 전환 전략 방안은 분야 구성원들의 역량 강화부터 구조적 개선까지 다각적이며 총체적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OECD와 UNESCO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소수 문화와 예술 장르에 대한 정책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문화정책 모델 개발을 위한 주요 정책과제와 쟁점이 다음과 같이 도출되었다.
첫째, 디지털 전환이라는 사회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문화정책과 행정구조에 있어서도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주요한 특성인 디지털 환경에서 단기적 성과도는 예측 가능한 결과를 기대하고 실행하는 정책이나 지원사업의 운영과 평가는 더 이상 과거 아날로그 환경에서처럼 동일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대표적인 예로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창·제작되었던 문화 재화와 서비스를 단순히 전산화(digitization)하여 아카이빙으로 축적하는 것은 온전한 디지털화 지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 국제기구의 정책 방향성과 해외사례가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과 같이 문화예술 생태계 전반을 고려하고, 한 예술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걸친 지원이 제공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영역과 분야를 연결하는 협력과 실험적 시도가 활성화될 수 있는 지원 방안이 확대되어야 하며, 유통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플랫폼의 환경과 특성에 적합한 작품과 문화예술 서비스를 창·제작할 수 있도록 현장 예술가와 관련 전문가, 단체들이 실제적인 실험과 개발 경험을 통해 디지털 역량을 증진 및 강화할 수 있도록 예술 활동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요구된다.
둘째,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과 도입을 포괄한다. 따라서 창작 중심의 연구개발(R&D)을 넘어선 디지털 마케팅과 예술경영에 필요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 지원도 필요하다. 동시에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이 문화예술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시장실패로 인한 디지털 격차와 문화예술 생태계의 내부적 불균형을 우려하여 그에 대응하는 공공지원과 정책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OECD, 2019; 2020). 그러한 차원에서 문화예술 콘텐츠 유통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 마련과 같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법·제도 마련과 지원사업 운영 등 공공 영역의 필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전문성과 현장 밀착형 정책 수립을 위해 민간 영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 즉 거버넌스 체계 구축 및 강화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OECD, 2020).
셋째, 제시된 문화정책 개발과 실행을 위해 관련 전문가, 정책입안자 및 행정가들의 디지털 역량 증진 및 강화가 중요하게 나타난다. 공공기관 인력과 정책입안자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역량 강화가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창작부터 유통, 접근 및 향유까지 문화예술 활동의 전반적인 과정에 결합되어 있는 활동의 해석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히, 사용자 주도와 수요자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서는 예술가와 문화예술 전문가들의 언어와 표현을 읽어내고 행정적으로 해석하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소통 역량이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논의와 활용은 영역과 지역에 따라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 역시 중요한 정책 의제로 등장한다. 지역별 재정 상황과 디지털 인프라의 불균형에 대한 조사와 그에 적합한 법·제도 수립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더불어 지속적인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과 회복력(resilience)의 강화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교육과 연수 지원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계의 디지털 전환을 바라보며, 국제사회의 문화예술계 디지털화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정책과제와 쟁점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아직 팬데믹 위기가 끝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문화예술계에 대한 디지털 전환 관련 정책 논의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코로나19 대응 방안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거나, 여전히 단기적 대응 중심의 초기 단계 논의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해외정책 사례의 다양한 수렴과 적용 측면에서 한계가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정책 구상의 시작점에서 이 논의가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화예술정책 방향성에 유용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