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불평등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문화예술분야는 타 분야에 비해 여성 종사자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다는 인식으로 여초분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예술인과 종사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예술이라는 탈상품화된 노동력 착취, 여성의 경력유지 어려움,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성별 직종분리 현상 및 성별임금 격차 등이 문화예술분야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예술인과 종사자들의 의사결정권 자리에서의 배제로 인한 과소대표, 비가시적 성불평등 존재, 성희롱·성폭력 문제 등 인권침해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육주원, 20221); Diana L. Miller, 20162)). 또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요구받는 여성예술가들의 경우, 일에 대한 헌신과 열정, 비가시화된 무급 가사노동, 육아 등의 가족 돌봄에 대한 책임성 등에 의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여성예술인에 관한 기존 문헌들은 사회적 재생산 책임과 일과 가정의 갈등이 성평등의 주요 장벽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여성예술인들은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을 더 자주 경험하며(Stohs 1992; 문화체육관광부 2021), 돌봄이라는 여성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예술경력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Brooks and Daniluk 1998; Piito 1991; 홍기원, 2019). 또한, 성공한 많은 여성예술인들도 자녀를 낳거나 키우는 것이 자신의 예술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자제하기도 한다(Cowen 1996; Parker and Pollok 2013; Diana L. Miller, 2016: 122 재인용). 이러한 문제들은 여성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성공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구조적 변화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불어 예술 환경이 여성예술인들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여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문화예술분야에서의 권력형 젠더폭력에 기반한 성불평등은 어릴때부터 예술인으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을 받는 학생, 잠정적 예비 예술인, 또는 막 예술활동을 시작하는 신진 예술인들에게 더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 이는 곧 성희롱·성폭력 등과 같은 범죄적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해 더욱 문제적이다. 문화예술분야의 성불평등 문제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이끄는데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촉발의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문화예술분야의 성불평등은 여전히 가부장제 남성중심적 노동환경 구조, 도제식 교육과 유명세에 따른 제한적 진로 선택,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침묵의 카르텔 형성 등의 권력형 위계 등에 의해 대부분 개인(사)적이며 폐쇄적 구조 속에서 다른 분야에 비해 이러한 문제가 늦게 드러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불평등은 어떻게 작동하며 실제 환경은 어떠한지, 성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 정책,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평등 실현, 나아가 문화예술분야에서 성별, 성 정체성 및 지향성, 연령, 계층, 장애, 지역 등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통해 성별 편향성이 어떻게 작동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을 위한 지속적인 담론이 필요하다.
현재 문화예술분야에서는 다양한 성평등 지원 정책과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와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주로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역의 특수성과 필요에 맞춘 성평등 정책의 구체적인 적용과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응 정책에 집중되어 있는 현행 정책들은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평등을 촉진하기에는 부족하다. 다시 말해,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응 정책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답습하는 형태로는 성평등 정책의 범위와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더욱이 성평등 정책은 시대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해 왔다. 이는 성평등 문제의 다차원적 접근을 필요로 하며, 시대에 따른 정책의 변화와 그 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역 성평등 정책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성평등 정책 사례가 중앙정부 차원의 성평등 지원 정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보완할 수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먼저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 정책 현황과 한계점을 살펴보고, 지역의 성평등 지원 정책 사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이를 통해 얻은 시사점을 바탕으로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선행 연구, 통계자료, 보도자료, 인터넷 자료 등을 활용하여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에 대한 주요 이슈와 실태, 2023년까지의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 정책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역의 문화예술 성평등 프로그램 사례를 중심으로 담당자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문화예술 분야 성평등 지원정책의 접근 방향을 모색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성평등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II.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의 현황과 과제
최근 몇 년 동안 미투 운동을 통해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불평등과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이렇듯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평등은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으며, 성평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성불평등과 성희롱·성폭력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논의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분야의 성불평등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먼저,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환경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에 본 절에서는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환경, 성평등 인식, 성희롱·성폭력 실태 등을 중심으로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환경 실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문화예술분야의 예술인 및 종사자는 남성보다 여성의 수가 많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문화예술분야의 특성상 예술인 및 종사자는 단기 계약직 등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계약 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나 여전히 구두계약을 통해 입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관계로 이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 통계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의 통계 등을 토대로 문화예술분야의 여성 과소대표, 성별 고용형태 및 임금 격차, 경력단절의 주요 요인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에 의하면, 2023년도 예체능계열 학사 학위 취득자는 여성 65.0%, 남성 35.0%, 석사 학위 취득자는 여성 69.3%, 남성 30.7%이며, 박사 학위 취득자는 여성 57.2%, 남성 42.8%로 대학 및 대학원 과정의 학위 취득자 모두 여성의 비율이 높았으며, 특히, 석사 학위 취득자에서 성별 격차가 가장 높이 나타났다. 이렇게 여성의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대학과정 예체능계열 전임교원은 여성 1,906명(37.1%), 남성 3,231명(62.9%)으로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은 예체능계열의 성별 학생 비율과는 상반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 통계에 따르면, 문화예술분야 예술인 및 종사자는 2024년 2월 말 기준 전체 178,073명 중 여성 98,274명(55.2%), 남성 79,799명(44.8%)으로 여성예술인이 남성예술인보다 약 2만 명 정도 많았다. 그러나 김혜인(2018: 47-50)에 의하면, 대부분의 문화예술 기관이 절반 혹은 3분의 2 정도가 여성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직급별 여성 비율에서 무기계약직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고위직 여성 비율은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 주요 기관 192개관의 기관장 중 여성 기관장은 단 9.9%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여초분야로 알려진 문화예술분야에 수직적 성별 직종 분리 현상과 의사결정의 주체인 고위·관리직에서의 성별 불균형이 확연히 드러난다. 즉 고위직으로 갈수록 성별 대표성 부분에 있어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업과 겸업(예술활동 직업, 예술관련 직업, 비예술 직업) 모두에서의 예술인 고용형태로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1인 사업체)’, ‘정규직’,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모두 높게 나타난 반면, ‘기간제·계약직·임시직·촉탁직’, ‘일용직·파트타임·시간제’에서는 여성의 분포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58-61).
그리고 예술인의 성별 수입 현황을 살펴보면, 가구 총 수입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개인수입 중 예술활동 수입(여성 570.3만 원, 남성 832.9만 원), 개인수입 중 예술관련 직업(교수, 강사 등) 수입(여성 416.5만 원, 남성 597.2만 원), 비예술 직업 수입(여성 875.6만 원, 남성 1,694.5만 원)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입을 보인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83-86). 이러한 고용형태의 차이는 임금 격차로 나타나는데, 여성예술인의 불안정한 창작·노동 환경이 곧 낮은 임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분야의 성별 고용형태에 따라 성별 임금 격차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경력 단절 경험의 경우, 여성 37.9%, 남성 34.5%로 여성이 더 높았으며, 예술경력 단절 기간은 여성 2.5년, 남성 2.0년으로 경력단절 기간 역시 여성이 남성보다 긴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경력 단절 이유로는 남성(77.8%)과 여성(63.15) 모두 ‘예술활동 수입 부족’이 가장 높았으나, 다음으로는 남성은 기타(13.3%), 여성은 출산·육아(14.0%)를 경력단절의 큰 요인으로 꼽았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106, 108, 109). 이렇듯 많은 예술인들은 수입 부족으로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데, 예술분야의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낮은 임금이라는 특성상, 특히 단기 계약직과 같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많은 여성예술인들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 어려움을 경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출산과 육아로 인해 예술활동과 가사·돌봄을 균형 있게 하며, 자신의 경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여성예술인들의 경우, 일시적 경력 중단이 곧 은퇴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인식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보다 효과적인 정책 수립과 교육 및 인식 개선을 위한 방향과 지원 정책을 설계하는 데 유용하다. 따라서 문화예술분야의 예술인 및 종사자의 인권 실태조사 연구들을 바탕으로 성평등 인식을 파악하고자 한다.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환경에서의 양성평등 수준에 대한 물음에 ‘남녀 평등’ 65.2%, ‘여성이 불평등한 처우를 받음’ 26.8%, ‘남성이 불평등한 처우를 받음’ 8.0%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남녀 평등’ 응답자의 성별·연령별 분포도를 살펴보면, 남성(75.5%)이 여성(55.9%)보다 높고 연령이 높을수록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문화체육관광부, 2021: 80). 이러한 경향은 박근화·김지학(2021: 31-39)의 연구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불)평등에 대해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은 성별과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성불평등은 주로 성별 직무분리, 성별 임금격차, 남성중심적 권력문화에 따른 노동시장 구조,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인식 부재, 여성예술인들의 외모강조와 성적 대상화 등으로 나타났다.3)
이와 같은 문화예술분야의 ‘특수성’ 논리와, 성평등과 존중의 부족은 문화예술분야의 성불평등 문제를 더욱 비가시화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때문에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평등 인식을 개선하고, 확산(류정아, 2018; 박근화·김지학, 2021)을 위한 지원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 이후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정책적 차원에서 분야별 실태조사 및 정책환경 분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박근화·김지학, 2021: 3). 이에 2017년 「예술분야 성폭력 실태 시범조사」를 시작으로, 공연예술, 출판, 대중문화, 영화계 등 분야별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가 실시되었다(박근화·김지학, 2017, 2018, 2021; 박근화 외, 2018; 류정아, 2019; 윤우석 외, 2019; 김동식 외, 2018; 이나영 외, 2018).
박근화·김지학(2021)의 문화예술분야4)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경험한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26.7%였으며, 여성(31.8%)이 남성(20.5%)보다, 연령이 낮을수록 피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 행위자는 주로 소속기관 상급자(43.8%)로 나타났으며, 외부 동종분야 종사자(22.4%), 문화예술인(22.1%), 교수·강사(19.4%) 등이 뒤를 이었다(박근화·김지학, 2021: 74-75, 77).
피해 발생 시 대응 방식으로는 응답자의 76.9%가 ‘참고 넘어간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여성은 주변인과 상의하는 등 개인적인 차원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더 높았다. 피해를 관련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신고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52.1%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성별로는 남성(61.9%)이 여성(47.1%)보다, 그리고 연령이 높을수록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30.7%), ‘가해자와 사이가 불편해질까봐’(26.1%), ‘아무도 조치를 취할 것 같지 않아서’(21.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박근화·김지학, 2021: 79-80, 88-90).
이처럼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실태를 살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피해 경험이 높았으며, 주로 지위나 권력이 높은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건 발생 후 신고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신고를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거나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가해자는 복귀하고 피해자가 문화예술분야를 떠나게 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성희롱,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인지를 못하는 경우도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문화예술분야의 ‘특수성’ 논리가 매우 견고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앞에서 언급한 선행연구들의 결과와 일치한다(박근화·김지학, 2017, 2018; 이나영 외, 2018). 미투 운동 이후,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문화예술분야의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인식, 피해사건 이후 대처 방식 등이 성별, 세대 간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 있어서 향후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예술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기 위해 2011년 11월에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을 근거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면서 예술인 복지정책이 전개되고 있다. 이후 2021년 9월 「예술인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약칭: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었고, 동법 내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을 위한 별도의 장(제4장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제16조~제19조))을 구성함으로써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 정책의 근거와 체계를 마련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블랙리스트 사태와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라는 사회적 사건이 큰 계기가 되어 제정되었고(배성희, 2023: 10), 예술인에 대한 권리침해 행위 방지, 피해구제 방안 마련, 성평등한 예술환경 조성 등의 내용을 담고는 있으나, 「예술인 복지법」의 예술인 직업적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한 복지 지원 정책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체가 되어 예술인 자녀돌봄지원, 성평등교육 및 성희롱·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양성, 예술인 신문고 등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 외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재단, 문화재단 등에서 자체적으로 성평등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성평등 지원 정책을 중심으로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 현황과, 이를 토대로 성평등 지원 정책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예술인 자녀돌봄지원은 예술인의 육아부담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예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학로반디돌봄센터, 마포예봄센터 등 2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원대상은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 자녀 24개월부터 10세까지로 규정하고 있으며, 긴급 시 11세~13세 자녀도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운영시간을 확대하여 예술인들이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안심하고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인 자녀돌봄지원은 예술인들이 자녀를 돌보는 부담을 덜어주고, 예술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인 자녀돌봄지원 정책은 수도권(서울)에 집중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정책 수혜의 형평성면에서 고민을 해 봐야 할 지점이다.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및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은 예술인 권리보호 교육 내에 포함되어 진행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성평등·성폭력 예방교육’ 과정은 문화예술계 특수성을 반영하여 문화예술계 내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고 성평등 인식 확산 및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하는데 주요 목적을 두고 있으며, 온라인 교육과정과 찾아가는 교육과정이 있다. 온라인 교육과정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 문화예술계 성 차별적 구조와 성희롱·성폭력 사례와 판례, 문화예술계 2차 피해 예방과 피해자 지원제도, 문화예술계 성평등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한 약속 등 총 5차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찾아가는 교육은 10인 이상의 수강자가 있는 단체에서 교육 신청 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욱 전문강사에 의해 교육 1회당 약 90분~180분 정도, 대면 또는 실시간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이 외,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무엇이 달라지나?’의 예술인 대상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 ‘예술인 권익보호의 이해’의 수어·문자 통역 대상 ‘성폭력 예방 및 대책’ 등 성평등교육 및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의식 변화를 위해 전문인력 양성 사업이 전개된 바 있는데, 전문강사 양성 제도는 문화예술분야 종사자 교육을 통해 예방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고자 하는 목적하에 문화체육관광부(한국예술인복지재단)와 여성가족부(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를 중심으로 2018년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 양성은 예술계 성폭력의 특징과 구조를 이해하는 전문인력 양성 특화 과정으로, 80시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전문강사로 1기 19명(2018년), 2기 17명(2019년)이 위촉되었다(송인자 외, 2018; 임지혜, 2020: 427).
문화예술계 맞춤형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강사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와 콘텐츠 구성에 필요한 교과목을 개발하여 그 결과를 2018년 문화예술계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이 시범적으로 운영된 바 있다. 시범운영 참여자는 총 43명 대상을 시작으로, 25명의 교육생이 교육과정을 이수했으며, 최종 19명이 전문강사 1기로 위촉(송인자, 2018), 2019년에는 17명이 위촉되었다. 이렇게 중앙에서 양성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들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중심으로 전국 문화예술분야 단체를 대상으로 예술인을 위한 성평등 교육과 찾아가는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예술인 및 예술단체의 활동 및 환경 여건이 상이하다는 점, 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크다는 점, 전문강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으로 교육의 혜택이 고루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문화예술계 성평등·성인지 교육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임지혜, 2020: 428)는 점은 한계와 과제로 남아 있다.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신고·상담 센터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신문고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상담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성평등센터 보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등 3개 기관이 있다. 예술인 신문고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상담센터’는 예술활동 또는 예술교육활동 관련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입은 「예술인권리보장법」제2조제2호6) “예술인”에 해당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운영한다. 신고인이 희망 시 국가인권위원회 및 해바라기센터 등에 연계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콘텐츠성평등센터보라는 콘텐츠산업계 종사자 대상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고, 한국영화성평등센터든든은 영화·영상관련 종사자 대상 (사)여성영화인모임에서 운영하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2023년 1월 26일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 구제 위원회’를 발족하고, 2023년 12월 19일에 ‘예술인 권리보장센터’를 개소하였다. 예술인 권리보장센터는 예술인 권리보장과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를 운영하고, 피해 상담부터 피해구제 전 과정을 진행하는 등 예술인 권리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통합 창구의 역할로 보다 적극적 지원이 가능해 보인다.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 외 지역의 예술인복지지원센터, 여성재단, 문화재단 등에서 일부 성평등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의 예술인복지지원센터7)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단독으로 수행하고 있는 예술활동증명 업무를 다양한 기관으로 분산시켜 업무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문화체육관광부, 2023; 배성희 2023: 31). 이에 대부분의 지역 예술인복지지원센터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활동증명서 발급 대행 서비스,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창작준비지원금, 의료지 지원, 예술인 신문고, 성폭력피해 신고 상담지원, 법률상담지원 등 성평등 지원 사업을 일부 위탁 운영하거나 연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되나 일부 지역 예술인복지지원센터에서는 지역 예술분야의 복지지원 수요 파악은 물론, 지역의 성평등 이슈를 발굴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대상 성평등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부산예술인복지지원센터의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 전북예술인복지증진센터의 ‘성평등인식 개선사업’ 등은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각 기초광역문화재단8)에서는 분야별, 대상별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예술분야 성평등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성평등 정책은 주로 성평등(자문)위원회 운영, 성평등 인식 개선을 위한 사업 및 캠페인, 성평등·성폭력 예방교육 등이 있다. 가령,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청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 경기문화재단의 ‘경기도 성평등 캠페인-성차별 언어 개선 아이디어’ 및 ‘성평등·성폭력 예방 교육’, 광주문화재단의 ‘성평등 예술환경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등이 있다.
본 절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에 몇 가지 한계점이 있는데, 첫째, 성평등 지원 정책의 범위와 규모가 제한적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정책 수혜의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 중앙정부의 성평등 지원 정책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일부 진행됨에 따라 예산과 인력 부족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지역의 관련 기관들의 환경은 더욱 열악하여 성평등 지원 프로그램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한 정책 수혜의 형평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성평등 지원 정책의 목표와 내용, 방향성이 모호하다. 현행 성평등 지원 정책은 주로 성희롱·성폭력 예방 또는 후속조치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화예술분야의 성별 편향, 성불평등 발생 원인에 대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이 미흡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지원 정책의 범위를 확대하고, 내용을 보다 포괄적으로 구성하여 문화예술분야의 성불평등 발생 원인들에 대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을 더욱 강화하여 문화예술분야 전반에 성평등을 증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III. 문화예술 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의 새로운 모색
앞서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환경과 지원정책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정책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성평등 정책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부분의 성평등 정책이 ‘문화예술 분야’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중앙의 여성정책 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의 여성정책의 흐름을 통해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본 절에서는 한국의 성평등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그 근간이 되는 한국의 여성정책을 시대별 흐름에 따라 변화를 분석한 선행연구(배은경, 2016: 20-34)를 바탕으로 크게 6개의 시기로 나누어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가야 할지 그 방향성에 대해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1948년 해방 이후부터 미군정기를 거쳐 이승만이 집권한 1960년까지를 초창기로 분류했다. 해방 후 미군정기의 시기까지는 정책 대상으로 ‘여성’에 대한 논의가 전무 했다. 보건후생부에 부녀국이 신설되어 담당 기구는 있었지만 이 시기의 여성과 관련된 정책은 정부 수립을 위한 지역 하부 조직으로서의 여성 집단의 간담회 활동이나 일제강점기 시절 공창제와 같은 악습을 폐지하는 것 정도였다. 1948년 제1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사회부의 부녀국에서 여성 관련 정책을 담당했지만, ‘요보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이 대부분이었다. 1953년에는 ‘근로 기준법’(1953.5)을 제정하여 사회부 노동국에서 여성과 소년 노동자를 보호하는 업무를 전담하기도 했다. 1955년 2월 사회부와 보건부가 통합되어 ‘보건사회부’가 되면서 기존의 여성 대상 정책을 전담하게 되었지만, 그 내용적인 부분은 변화되지 않았다.
1960년 갑작스런 정권의 변화와 사회 내외부적 혼란까지 가중되며, 여성정책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1963년에는 보건사회부 ‘부녀국’이 ‘부녀아동국’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고, 보건사회부 보건국 산하에 ‘모자보건과’가 신설된다. 이 시기 국가의 주요 정책이었던 ‘경제 개발 정책’을 위한 노동력으로서의 여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산아제한 정책’과 ‘영유아 탁아시설 마련’에 정책이 집중되면서 요보호 여성에 대한 복지정책은 축소되었다. 초창기가 농업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 체제 속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었다면, 제1기는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여성 노동력이나 근대국가의 성별분업의 구분 의미로서의 전업주부와 같이 근대적인 젠더관계 속에서 여성을 규정지어,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는 이전에 비해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제5공화국(1980~1987)이 들어서면서 보건사회부 부녀아동국은 가정복지국(1981.11)으로 변경되고 부녀복지과, 아동복지과, 가정복지과를 두어 정책이 확대되는 듯 했지만, 편제만 변경되었을 뿐 관련 정책은 대부분 근대적 젠더관계 속 일반화 된 여성의 범위 바깥에 있는 일부를 위한 시혜성을 띈 정책이었으며 가족계획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여전히 여성정책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다만 1975년 UN ‘세계 여성의 해’, 제1차 세계여성대회와 1980년 제2차 여성대회, 1985년 제3차 여성대회 등의 세계적인 여성정책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국무총리 정책자문기관인 여성정책심의위원회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여성정책에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볼 수 있다.
1983년 이후 조직된 여성단체들의 활발한 진보적 여성운동은 1987년 제6공화국의 시작과 함께 여성정책에 영향을 주었고, 이 흐름은 문민정부(1993~1998년)까지 이어졌다. 정무장관(제2)실은 여성문제를 전담(1990.6)했으며, 기존의 보건사회부에는 부녀복지과가 신설되고(1991.7) 노동부의 근로기준국에는 근로여성위원회가 설치(1988.9)되는 등 중앙 행정기구 편제에도 변화가 있었다. 여성운동과 정부의 변화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과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을 이끌어냈다.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으로 여성정책 기본 5개년 계획이 추진되어 남녀평등의 촉진과 여성의 사회참여, 여성의 복지증진이라는 뚜렷한 정책 목표가 수립되었다. 또한 1994년 ‘성폭력특별법’, 1997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여성의 인권과 권익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었다.
이 시기의 세계적인 여성정책의 흐름은 여성의 사회 참여와 복지 증진이라는 WID(Women In Development) 관점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1995년 UN의 제4차 여성대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2기는 앞선 두 시기에 비해 비로소 여성정책이라 할 수 있는 정책들이 거론된 시기라 평가할 수 있다.
19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정책의 관점은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한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1998.2)되었고, 2001년에는 정부 부처인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여성정책의 기획과 남녀차별금지, 여성인력의 강화와 정보화 등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 흐름은 2002년 참여정부에도 이어져 2003년 ‘여성정책조정회의’, ‘여성정책책임관제’가 신설되고 2005년에는 여성부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 업무를 이관받아 여성가족부로 개편되었다.
정부의 역할 확대와 지속적인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며, ‘직장 내 성희롱’의 공론화와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2차 여성정책 기본계획’이 수립되었고, 2004년에는 ‘성매매 금지법’이 제정, 2006년에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하여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되었다. 2008년에는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 활동 촉진법’이 제정되고 정부 합동 평가지표에 성별영향평가 참여도가 반영되었다.
이 시기 세계적인 여성정책의 변화가 국내 여성정책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국가 경제 발전의 과정에 젠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GAD(Gender And Development) 관점이 자리 잡으면서 이 영향으로 국내 여성정책 또한 이에 초점을 맞추어 ‘성주류화’를 위한 추진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실용정부를 지향하며 행정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폐지론까지 나왔던 여성가족부는 여성부(2008.2)로 축소되었다가 여성가족부(2010.3)로 다시 확대되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를 그대로 유지하며 정책을 수행했다. 이 시기 여성정책의 근본적 목표인 ‘성평등(gender equality)’은 상실되고 가족과 청소년 등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여성정책의 대상이 ‘가족 내 여성’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었다. 또한 가족의 강조와 가족 기능의 강화에 관련된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여성’의 언급은 점차 희미해졌다.
이 시기에도 2007년 ‘3차 여성정책 기본계획’, 2012년 ‘4차 여성정책 기본계획’은 수립되었지만, 2014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되고 2015년에는 ‘제1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여성정책은 양성평등에 편입되었다. 성평등이 양성평등으로 그 용어를 달리하게 됨으로써 정책의 영역에서 여성정책의 정체성 약화와 남성과 여성 간의 기계적 평등 구조 형성을 야기하면서 여성정책이 생물학적인 성별 개념으로 퇴보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있는 문화 「문화비전 2030」’을 발표하고 ‘성평등 문화 실현’을 하나의 의제로 설정했다. 성평등 정책의 기본계획을 수립·이행을 총괄 관리할 ‘대통령 직속 성평등 위원회’를 설치하려는 편제 변화 시도는 각 부처에 양성평등 전담 부서를 두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기존 여성가족부와 각 정부 부처가 공조하는 형태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여성정책이 시행되었다. 2017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이 수립되고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점검단’을 운영(2018년 4월~2021년 3월)해 공공, 교육, 민간기업, 문화예술 등 분야별 신고센터를 열어(2018년 3월)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2018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 2021년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수립되었다.
이 시기는 실제로 여성,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면서 역대 정부들에 비해 여성정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양성평등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노동분야의 성평등(성별임금 격차 해소)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한국의 여성정책의 흐름을 초창기부터 5기까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여성정책의 시작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한 복지의 관점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정책이 국내외의 성평등 담론과 이슈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여 점차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 하면서 ‘노동자로서의 여성’에 대해 집중하고 사회 속 여성의 삶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등장한 젠더 거버넌스(gender governance)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2기 시기에 등장한 이 움직임은 여성정책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제기하면서 한국 여성 정책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로도 젠더 거버넌스는 꾸준한 활동과 투쟁으로 실질적 의제들을 생산해내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정책 역시 이와 같은 관점의 흐름을 따라 보호적 관점이나 예방적 차원이 아닌, 문화예술계 안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여성 예술가의 삶에 집중한 성평등 정책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투 이후 문화예술계 성평등은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업무 계획에 포함될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214).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2018.3.12.~6.19.)을 운영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별도의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대책 위원회(2018.3.19.~2019.6.)를 운영하였다. 또한 공연예술, 대중문화, 출판계, 영화산업 등 분야별 예술인 및 종사자 대상 성인지 인권환경 실태조사 실시, 2018년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 전문강사 양성 및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성평등 교육 사업 지원, 2020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방지대책’에 대한 권고사항 발표에 이어 2021년 9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문화예술분야의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적극적 개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정책은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현안에 집중되어 있으며 문제 해결적인 접근방식 중 하나가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성평등 교육이다. 이러한 정부의 일방향적인 정책(top-down)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유네스코(UNESCO)는 문화와 성평등이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인권에 기반한 발전을 위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8개의 권고조항을 발표했다. 첫째,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여성의 과소대표성, 둘째,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차별은 창작자 및 향유자의 문화권 침해, 셋째, 성평등한 문화정책은 성차별과 성적 편견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계 데이터 기반으로 실시, 넷째, 성평등, 문화권(인권으로서의 문화권), 문화다양성의 연계 속에서 문제해결 필요, 다섯째, 문화다양성 협약은 성평등 원칙을 인권과 문화권의 초석으로 설정 등이 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175-176). 인권의 영역에서 성평등 정책을 논의하는 방식은 이전부터 시행되고 있었지만, 이로 인해 ‘여성의 성평등’이라는 성평등 정책의 목적이 초점을 잃을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UNESCO의 ‘젠더 창의성(Gender Creativity)’ 논의(2005)에서 또 다른 답을 찾으려 한다. 젠더 창의성 논의에서는 문화분야의 성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➀정부, ➁미디어, ➂예술가·문화전문가 및 관객, ➃대학, ➄입법자, ➅사법부, ➆시민단체, ➇도시와 지방정부, ➈국제 및 지역 조직과 같은 9개의 영역에 제시했다(UNESCO, 2021: 10-11). 이제는 성평등을 위해서는 정부의 단일 노력이 아닌, 다양한 조직과 분야 또는 구성원 개개인의 동시다발적인 변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새롭게 봐야 할 부분은 ➇도시와 지방정부의 역할 부분인데, 지역 성평등 정책 및 조치를 제정하고, 모범 사례 공유, 여성 예술가를 지원하는 지역 프로그램 개발, 조직 간 대화의 촉진과 같이 기존 중앙정부의 정책에 기대어 수동적인 정책 시행을 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더 주체적이고 지역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점은 선행연구(임지혜, 2020: 427)의 문화예술계 폭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성인지 교육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성인지 교육정책과 병행하는 지역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범시민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그 필요성이 강조된다.
이제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문제 해결적 관점의 정책이 아닌 성평등 문화 환경을 조성하고 실현하는 관점에서의 정책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IV. 지역의 성평등 지원 정책 사례와 의의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의 성평등 정책은 국내외의 성평등·여성정책의 흐름에 따라 그 관점이 반영되며, 그에 따른 정책의 내용들도 변화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의 성평등 정책은 중앙에서 결정한 정책을 각 지방자체단체가 그대로 따라서 시행하는 ‘탑-다운’의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성평등 정책 철학과 실행 의지에 따라서 정책의 원활한 시행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각 지역별로 성평등 인식이나 성인지 감수성이 상이하여 중앙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현재의 정책 시행 형태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 위치 그리고 중층적인 정체성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성평등 교차성의 관점에서도 미흡하다 볼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정책 지원사업 중 탑-다운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를 반영하고,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그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례들을 선정한 기준은 첫째, 지역의 문화예술 또는 여성 관련 기관·단체가 자발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 둘째, 성평등, 여성 등과 관련된 주제를 기본으로 하여 같은 주제를 가지고 진행된 프로그램, 셋째, 2년 이상의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된 프로그램, 이렇게 세 가지이다. 2018년 ‘미투’ 이후 문화예술계에도 다양한 성평등·여성 관련 프로그램들이 기획되었으나 대부분 특강의 형태로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지속성’을 중점 기준으로 삼아 대표적인 사례를 선정해 소개하기로 한다.
전라북도 문화예술 성평등 네트워크(이하 전북 네트워크)는 2020년 개최된 ‘문화체육관광부 성평등문화확산 네트워크 전북포럼’을 계기로 전북권 5개 문화재단(고창문화관광재단, 완주문화재단, 익산문화관광재단,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전주문화재단)과 문화예술인 기관·단체 3개소(전북대학교부설 여성연구소, 전북 여성문화예술인연대, 지식공동체 지지배배)가 성평등 관련 현안을 공유하고,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2021년 첫 출범했다.
전북 네트워크는 출범 이후 전라북도 문화예술계 성평등 인식 확산과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 환경 조성을 위해 ‘전북 성평등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 학술포럼’, ‘성평등 원탁회의’, 성평등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22년에는 부안문화재단과 전주 거점형 양성평등센터가 새롭게 전북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북권 6개 문화재단과 문화예술인 기관·단체 4개소가 공동으로 성평등 관련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전북 네트워크의 관련 사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성평등 교육프로그램인 ‘성평등 문화예술 비평학교 다리미’이다. 전북 네트워크의 출범과 동시에 기획·시행된 이 프로그램은 여성주의 비평가의 양성을 목표로 특강, 여성주의 시각에서 문화예술 보기 실습, 글쓰기 실습 등의 내용으로 2021년부터 매년 연속 3회째 운영되고 있다.
전북 네트워크의 사례는 지역의 문화재단과 예술인 단체, 학계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성평등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업을 운영한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문화예술계 성평등에 대한 공감대가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관련 단체를 움직여 하나의 큰 연합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활동이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재단과 단체는 각각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재원, 공간제공, 기획 및 운영 인력, 교육 인력의 제공을 담당하고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비평의 대상이 되는 연극, 문학,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은 전북 네트워크의 구성 단체인 각 문화재단의 소장품이나 당해 재단에서 기획·운영하고 있는 각종 공연, 전시 등을 활용하여 비평 대상 작품의 섭외와 감상에 대한 지원까지도 하고 있다. 이처럼 비평 대상 작품을 지역 내 작품들로 구성해 지역의 문화예술을 성평등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꾸준히 발간되고 있는 성평등 문화예술 비평학교 문화예술 다리미 비평집 스팀(steam)의 발간은 국내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는 ‘성평등 관점 문화비평’ 활동을 끊임없이 진행하면서 점차 하나의 담론을 조성해 나갈 수 있는 환경조성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특정한 주제로 운영할 때 일단 그 주제를 가지고 프로그램이 꾸준하게 운영되려면 재원의 문제와 운영 주체의 의지가 중요한 점인데 전북 네트워크의 사례처럼 지역 내 여러 개의 단체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역성을 가지고 성평등 교육프로그램을 전개해 나가는 운영 형태적인 면이 다른 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영도 도시문화센터(이하 센터)는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한 제1차 법정 문화도시에 ‘사람-자연-역사가 문화로 이어지는 예술과 도시의 섬, 영도’라는 주제로 지정된 영도 지역의 문화도시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다. 센터는 ‘영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영도 도시아카이브, 영도 풀뿌리 문화예술교육포럼, 예술치유 프로그램(똑똑똑 예술가) 및 각종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공동체(보람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 공동체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지원하여 문화 활동이 사회 정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센터의 사업 중 ‘영도문화기획자의 집’은 2021년부터 운영된 프로그램으로 영도 문화도시와 함께 문화기획자로서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2021년 첫 번째 프로그램(2021년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은 첫 회차에서는 성평등·여성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았으나 같은 해 센터 주최로 진행된 ‘여성기획자 NEXT 스테이지 IN 영도’9) 행사를 진행하면서 이 행사의 참여자들이 성평등 문화기획 교육에 대한 의견을 내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듬해 ‘영도문화기획자의 집’ 과정에 성평등 문화기획자 과정이 정식으로 개설되었다.10) 2022년부터 연속 2회 째 운영 중인 ‘성평등 문화기획자 과정’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읽어내고, 성평등 관점을 기르며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워크숍, 기초-심화 멘토링, 실습을 진행한다.
센터의 사례는 지역의 여성 문화기획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특히 기존의 교육프로그램에 특화 과정으로 성평등 문화기획자 과정을 운영하면서도 공통 과정의 커리큘럼에도 ‘성평등 워크숍’을 포함시켜 영도문화기획자의 집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교육 대상에게 성인지 감수성과 성평등 관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문화기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평등 관점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과 인식개선 효과를 전체 프로그램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직접 기획한 다양한 성평등 문화 행사는 센터의 ‘성평등 실험과정’을 통해 실제 진행을 하여 교육 대상자가 기획한 문화 행사를 실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센터는 영도문화기획자의 집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성평등 문화 활동에 하나의 플랫폼 역할 또한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북여성재단(이하 재단)은 2014년 민선 6기 공약사업으로 선정되어 조례재정 등 설립 준비를 마쳐 2017년 출범한 충청북도 지역 여성·가족 분야 공공기관이다. 충북지역의 성별 격차와 성별 불균형 해소, 여성 일자리 환경 개선, 여성 취약계층의 생활개선,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사회 환경조성, 돌봄망 구축 등 정책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도민 수요 맞춤형 성평등 문화확산 프로그램 개발·운영하고 있다.
재단의 다양한 성평등 교육사업 중 ‘여성주의 문화기획자/양성가 과정’은 문화예술 성평등 관련 교육프로그램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2021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여성가족부, 충북여성재단 등에서 진행하는 성평등 주제의 영상 콘텐츠 공모전에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가 여성들의 영상콘텐츠 제작 역량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충북지역 여성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싶어도 영상기획에 대한 교육 기회가 없었다는 의견과 앞으로 문화 콘텐츠 기획 및 영상제작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관련 교육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이다.11)
재단의 프로그램은 앞의 두 사례와는 달리 선정 기준의 ‘연속성’에는 미치지 못하며 2021년과 2023년 진행된 프로그램명도 조금 다르다. 하지만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두 사업이 시간 차이가 있고, 명칭이 상이하지만 ‘지역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영상콘텐츠의 기획과 제작 실습을 한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을 가진 사업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의견과 비록 예산 문제로 2022년에는 운영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하는 재단의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사례에 포함시켰다.12) 프로그램은 충북지역 여성의 삶과 여성주의 시각에 대한 이론적 강의와 영상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 작성 및 촬영과 같은 실습, 그리고 실제 제작을 하고 마지막에 영상공유회를 통해 발표를 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단의 여성주의 문화기획자·활동가 교육 프로그램은 이론-실습-공유의 3단계로 기획되었는데, 이론 수업에 ‘충북지역 여성’ 관련 내용을 포함시킨 점이 프로그램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진행된 프로그램 초반 이론 수업에 ‘충북지역 여성의 삶’, ‘생활 문화사를 통해 본 충북 여성의 삶’과 같은 주제의 교육이 있었으며, 2023년 진행된 프로그램은 ‘여성문화활동가 양성과정-<충북 여성의 이야기> 영상제작자 양성과정’이라는 타이틀로 ‘지역 여성’과 ‘지역의 문화자원’을 성인지 관점을 담아 영상으로 제작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설정했다. 또한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와의 협력으로 진행되어 지역 기관과의 연계를 도모했다. 이처럼 강한 지역성, 특히 지역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여타 문화예술 성평등 지원 프로그램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영상을 발표하는 공유회를 통해 영상콘텐츠들이 확산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재단의 사례는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행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 정책의 내용은 대부분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후조치(신고, 피해자 지원 등)나 예방교육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관 주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평균적이고 일률적인 방식과 내용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성평등 지원 정책과 다름없으며,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지원 정책인 만큼 ‘문화예술계 안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의 입장에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여성 예술가의 삶에 집중하여 문화예술 분야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의 운영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장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현 시점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데 시사점을 갖는다. 첫째,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각 지역에서 그 지역 참여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주체적으로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책의 수혜자가 정책의 주체이자 기획자가 되어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바텀-업(bottom-up)의 방식은 그 지역의 성평등 교육 수요와 교육자, 교육 운영 기관 또는 단체 등 실질적인 주체들 간의 선순환 구조가 조성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관이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영도도시문화센터의 사례나 지역 기관들과 관련 단체, 연구자의 모임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라북도 문화예술 성평등 네트워크의 사례는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의 운영주체와 방식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사례이다. 둘째,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들이 지역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프로그램에 반영하여 문화예술의 창작으로 연결해 나간다는 점이다. 지역성이 살아있는 프로그램 기획의 단초를 참가자가 직접 제공하고, 이를 시행기관이 받아들여 실행하는 방식이야 말로 바텀-업 방식의 선순환 구조를 보다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교육의 내용 면에서 단순한 성평등 이론 교육이 아닌, 문화예술인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살린 창작물을 결과물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세 가지 사례 각각 ‘문화예술 기획’, ‘문화예술 비평’, ‘지역 여성을 주제로 한 영상물’이라는 확실한 교육의 결과물이 있으며, 이 결과물이자 창작물들은 공유회 등의 형식을 거쳐 다시 문화예술로써 지역사회에서 향유된다.
전술했듯이 이제는 성평등을 위해서 정부뿐 아니라, 다양한 조직과 분야 또는 구성원 개개인의 동시다발적인 변화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장에서 소개한 세 가지 사례와 같이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문화예술 창작이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지역 각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운영을 바탕으로 지속성을 가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변화된 정책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정책 지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의 젠더 거버넌스 작동과 그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V. 결론
페미니즘 리부트, 문화예술계 성폭력 관련 해시태그, 미투 운동 등은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이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논의를 촉진시키기에 충분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과 정책적 논의가 다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성평등 이슈가 정권 교체와 관련되어 관심의 정도가 달라지는 점 때문일 것이다. 본문에서 분석했듯이 대부분의 성평등 정책이 문화예술분야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중앙의 여성정책 변화에 기인하고, 여성정책 흐름은 국내외의 성평등 이슈와 담론은 물론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과도 연관이 있기에 정권의 성격에 따라 정책의 추진력이 달라지기도 하면서 성평등 정책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이슈와 정책은 정치적인 영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로도 인식되어 구조적 개선과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예술분야의 성인지, 성평등 인식 제고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문화예술분야 관계자 모두 공감하고 있다. 현행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중심으로 중앙, 수도권 중심으로 탑-다운 형식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주로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후조치(신고, 피해자 지원 등)나 예방교육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성평등 지원 정책의 범위와 규모가 제한적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성평등 실현을 위한 궁극적 목적에 맞는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되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으로의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을 위해서는 첫째, 문화예술분야의 성불평등의 구조적 접근을 통한 정책 수립, 둘째, 성평등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과 활동 지원, 셋째, 다양한 지역, 분야 및 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성평등 전략 마련 및 정책 사례 발굴, 넷째,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피드백 체계 구축 등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분야 성평등 지원 정책 중 탑-다운 형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를 반영하고 자체적으로 지원 프로그램 운영 사례를 분석하였다. 제시한 세 가지 사례들을 통해 성평등 지원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첫째, 지역의 정책 수혜자가 정책 주체이자 기획자가 되어 관련 기관, 단체 등 실질적인 주체들 간의 선순환 구조를 조성하여 성평등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지역의 성평등 이슈를 발굴하고 정책에 반영하여 이를 문화예술 창작활동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셋째, 지역의 성평등 교육은 일반적인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이나 성평등 이론 교육이 아닌, 지역 문화예술인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창작물을 생산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창작물은 다시 문화예술로서 지역사회에서 향유된다. 다시 말해, 사례들을 통해 각 지역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성평등 이슈를 발굴하여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었으며, 현행의 탑-다운 방식이 아닌 바텀-업의 방식으로 다양한 아이디어와 함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성평등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의 젠더 거버넌스 작동과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역의 성평등 지원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담보를 위해 예산, 인력, 자원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행 중앙에서 시행되는 정책과 지역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예술인을 위한 성평등 지원 정책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기존의 성평등 지원 정책 방식을 유지하되 바텀-업 방식의 성평등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미래에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예술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성평등을 위한 새로운 시각과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래의 성평등을 위한 연구와 노력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 다룬 정책 현황과 이슈는 연구 시점에 국한될 수 있으며, 지역 성평등 정책 사례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지역의 사례를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연구에서는 급변하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며 다양한 지역의 성평등 정책 사례를 발굴하고 비교 분석하여 문화예술분야의 성평등 정책 모델을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