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Cultural Policy
Korea Culture & Tourism Institute
Article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기조로서 팔길이 원칙의 담론적 정합성과 구조적 부정합성

김자영1
Jayoung Kim1
1교육대학원 일반사회교육전공 겸임교수, 안상철미술관 학예사
1Graduate School of Education, Hanyang University, Curator, Ahnsangchul Museum

논문 발전을 위해 건설적이고 유익한 조언을 해주신 김명수 교수님과 익명의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Corresponding Author :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Hanyang University, Curator, Ahnsangchul Museum E-mail: apriljy@naver.com

© Copyright 2024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Oct 01, 2024; Revised: Oct 11, 2024; Accepted: Nov 05, 2024

Published Online: Dec 31, 2024

국문초록

이 연구는 ‘민간자율 정부지원’을 표방하는 팔길이 원칙이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기조로 제도화된 것은 어떠한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가능하였으며,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에도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역사적 담론제도주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한 팔길이 원칙 담론은 정부개입 철회와 민간자율 신장을 강조하는 역사구조적 조건 및 신자유주의 시대정신과 부합되면서 조정적 담론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시행되었다. 이후 참여정부는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을 통해 팔길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이러한 팔길이 원칙의 도입과 제도화에 유리한 조건들의 조화로운 배합을 ‘담론적 정합성’이라 하였다. 그러나 팔길이 원칙은 정부와 문화예술위원회 간 상명하복 관계 속에서, 정권의 이념 지향에 따라 정책이 좌우되는 상황 안에서 그리고 문화예술계가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대정부 협상력을 갖지 못하는 제도적 맥락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용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팔길이 원칙의 작용을 저해하는 구제도의 경로의존적 유산을 ‘구조적 부정합성’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팔길이 원칙의 담론적 정합성과 구조적 부정합성의 모순은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특징이 되었다. 팔길이 원칙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신제도가 구제도를 ‘대체’하기보다는 ‘중첩’되는 구조적 모순이 정부 내에 자리 잡게 되면서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은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의 함의는 한국 사회에서 팔길이 원칙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담론적 정합성에 부합하는 구조적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from the perspective of historical-discursive institutionalism, how the arm’s length principle was institutionalized as a policy principle of cultural and artistic policy in Korea, and examines why it persists despite its limited implementation.

The discourse on the arm’s length principle led by the president during the People’s Government era was implemented as a policy through a process of coordinated discourse while conforming to the historical-structural conditions and the neoliberal ethos of the times, that favored reduced government intervention, empowered private sector initiative, and reflected the neoliberal ethos of the time. The subsequent Participatory Government institutionally guaranteed the arm’s length principle by establishing the Culture and Arts Committee. This harmonious combination of conditions favorable to the introduction and institutionalization of the arm’s length principle is “discursive consistency.” However, the practical efficacy of the arms-length principle was constrained by the top-down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Arts and Culture Committee. This was compounded by policy fluctuations subject to the regime’s ideological orientation, as well as by an arts and culture community divided along ideological lines and lacking sufficient negotiating power with the government. The path-dependent legacy of the old system, which hinders the operation of the arm’s length principle, is termed “structural inconsistency.”

This contradiction between the discursive consistency and the structural inconsistency of the arm’s length principle became a characteristic of Korean culture and arts support policies. In addition, rather than “replacing” the old framework,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arm’s length principle led to the “layering” of the new system atop the old, embedding structural contradictions within the governmental apparatus and resulting in adverse effects such as the emergence of the blacklist. The theoretical and policy implications of this study suggest that for the arm’s length principle to be properly established in Korean society, it must have a structural consistency that conforms to its discursive foundation.

Keywords: 팔길이 원칙; 문화예술위원회; 역사적 제도주의; 담론제도주의
Keywords: the arm’s length principle; the culture and arts committee; historical institutionalism; discursive institutionalism

I. 문제제기

이른바 ‘윤석열차’ 에피소드는 언뜻 보기와는 달리 의미심장한 정책적, 학술적 함의를 가진 사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고교생의 작품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하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곧바로 ‘행사 취지에 어긋난’ 작품을 선정해 포상하고 전시한 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하고 ‘후원명칭 사용금지 조치’를 내렸다.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인 만화영상진흥원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후원 승인 조건을 위반’하였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이러한 조처는 문화예술 단체들로부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했다’라는 비판을 야기하게 되었고, 같은 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문체부 장관은 “문체부가 문제 삼은 것은 해당 작품이 아니라 ‘순수한 미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아온 중고생 만화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만든 만화진흥원”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과연 정부가 문화예술 공모전의 순수 예술성과 정치적 오염도를 감별할 적절한 위치에 있는가라는 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팔길이 원칙을 강조해 온 정부가 앞장서 이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것’이라는 비판과 ‘사실상 처음으로 국가기구가 공개적으로 간섭 잣대를 공표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노형석, 2022).

정작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대통령은 불과 얼마 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감독과 배우, 영화 관계자들을 치하하는 만찬회에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 기조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며 팔길이 원칙을 천명했다1). 이 원칙은 정부가 문화예술 부문에 공공지원을 할 때 지원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지원 기관의 독립성과 지원 대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1990년대 말 국민의 정부가 영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공표한 이래 역대 정부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내세워 온 가장 핵심적인 문화 정책 기조이다(김규원ㆍ지금종ㆍ염신규ㆍ양혜원, 2018).

이 사건은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빌미로 문화예술 영역에 예술적, 정치적, 이념적 잣대를 가진 심판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팔길이 원칙’으로 표방했더라도 언제든 이른바 ‘손바닥 원칙’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팔길이 원칙이 문제가 된 것은 비단 윤석열 정부에서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 말 국민의 정부가 팔길이 원칙을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 거의 모든 정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공개적으로 천명해 왔으나 이를 명실상부하게 실천한 경우는 드물다(성연주, 2015). 오히려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고 실행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경우들이 있다. 박근혜 정부시기 민간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면서 특정인들을 극비리에 배제시킨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는 여러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정인숙, 2017).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총 342개 단체와 8,931명의 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어 사찰, 검열, 지원배제의 피해를 입었다(문체부, 2019).

그러나 이러한 격렬한 진통을 겪은 뒤 현재까지도 팔길이 원칙은 확고하게 제도화되지 않고 여전히 시험대에 오르고 있어 과연 팔길이 원칙은 우리에게 걸맞은 제도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러한 제도와 실천 그리고 형식과 내용 간 불일치는 역대 정부가 표방하고 시도해 온 ‘민간자율 국가지원’이라는 정책 기조가 실질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한 가운데 일어난 부조응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결과에서 비롯하므로 일종의 ‘정부실패’라 할 수 있다.

팔길이 원칙에 관한 선행 연구들은 국내외적으로 이미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먼저 팔길이 원칙의 유래가 된 영국 예술위원회의 설립 배경 및 특성에 관한 연구가 있다(Quinn, 1997). 영국의 예술위원회를 본떠 설립한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의 설립 배경, 구성 및 운영의 특성에 관한 연구들(이종열, 2004; 양혜원, 2006; Lee, 2012; 정창훈, 2013; 류정아, 2015)과 특히 문체부와의 관계에서 문화예술위원회의 자율성 퇴색 및 확보 방안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있다(성연주, 2015; 이민아, 2018; 김진각, 2019; 박민권ㆍ장웅조, 2020). 문화예술 정책의 변동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상과 특성을 다루는 연구들도 비교적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다(이병량, 2004; 박광무, 2009; 배관표ㆍ이민아, 2013; 정창호, 2013; 금성희ㆍ남재걸, 2017). 그리고 한국 정부가 팔길이 원칙을 위배한 결과로서 야기된 블랙리스트 문제에 관한 연구(정인숙, 2017)와 팔길이 원칙 자체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도 있다(김정수, 2018). 이러한 선행연구를 통해 문화예술정책 분야에서 팔길이 원칙의 존립 근거와 가능성 및 한계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정책적 함의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제도적 실행 기구로서 문화예술위원회의 설립 및 구성, 운영에 대한 역사적, 비교사회적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부분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정부주도를 국정기조로 삼아 왔던 한국 정부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문화예술정책에 ‘민간자율 정부지원’ 기조의 팔길이 원칙을 채택한 것인가? 누가, 언제, 왜 팔길이 원칙을 도입하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제도화되었는가? 한국 정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팔길이 원칙을 고수하면서 정부실패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문제를 제기하고 역사적 제도주의(historical institutionalism)와 담론제도주의(discursive institutionalism) 시각에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역사적 제도주의는 특정 사건이나 행위 유형이 제도로 형성되거나 도입되는 역사적 계기와 맥락에 주목하며, 특정 제도가 지속되거나 변화하는 이유, 나아가 변화 자체를 분석하는 관점이다. 담론제도주의는 역사적 제도주의 관점이 행위자가 실종된 구조결정론이라는 비판에 대응하여 행위자의 능동적인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역사적 계기와 맥락에 집중하는 역사 제도주의적 관점을 공유하면서 행위자의 역할에 주목하는 담론제도주의 시각을 통해 누가, 언제, 왜, 어떤 맥락에서 팔길이 원칙을 도입하였으며,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제도가 설립 취지에 맞게 실행되고 있지 않음에도 왜 지속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II. 역사적ㆍ담론제도주의

1. 역사적 제도주의

신제도주의의 한 갈래인 역사적 제도주의는 개인 및 집단의 선택과 이해를 제약하는 독립변수이자 개인 및 집단의 행위 결과로 생성되고 변화하는 종속변수인 제도의 형성 요인으로 역사와 제도적 맥락을 강조한다(Mahoney & Rueschemeyer, 2003).

역사적 제도주의의 핵심적인 분석 개념은 ‘결정적 국면’(critical juncture)과 ‘경로의존’(path dependancy)이다. 어떤 사건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종결되거나 아니면 제도화되는 것은 이 사건이 후속적인 조치들과 함께 경로의존적인 ‘자기강화 기제’를 구성하느냐에 달려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유형의 행위가 미래에도 지속되게 하는 ‘환류기제’가 작동하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사건이 ‘결정적 국면’이다(Pierson & Skocpol, 2002). ‘경로의존’은 어떤 한 시점에서 내린 선택이 자기강화적인 긍정적 환류를 통해 미래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경향을 의미한다(Pierson, 2000). 역사적 제도주의에서는 결정적 국면과 경로의존이 시계열적으로 진행되는 ‘제도적 맥락’을 중시한다. 역사적 과정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의 선후관계가 경로의존의 진행 및 결과에 결정적 차이를 가져오므로 사건의 순서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특정 사건이나 행위 유형은 결정적 국면을 거치면서 제도화되고, 일단 제도가 수립되면 자기강화 기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로의존적 관계 속에서 제도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면서 공고화된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제도일지라도 불확실한 환경의 도전에 의해, 또는 내부 구성요소의 변화에 따라 응전하며 제도적 변환을 한다. 마호니와 텔렌(Mahoney & Thelen, 2010)은 신제도의 도입과 구제도의 처리에 따른 제도변환의 유형과 이행 조건에 대한 모형을 대체(displacement), 전환(conversion), 중첩(layering), 표류(drift)로 설명하였다. 대체는 혁명, 쿠데타, 개혁과 같은 상황에서 구제도의 급격하고 전면적인 붕괴와 신제도의 교체가 이뤄지는 경우이다. 전환은 구제도가 공식적 변화 없이 잔재하는 상황에서 해석이나 적용 방식이 변화하여 정책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중첩은 새로운 제도가 구제도에 수정을 가하거나 첨가되어 기존 제도의 작동 방식에 변화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표류는 구제도가 공식적 변화 없이 남아 있지만 외재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정책결과가 야기되는 경우이다.

2. 담론제도주의

역사적 제도주의는 제도적 맥락이 행위자를 제약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느라 행위자가 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 점에서 구조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송지향ㆍ조화순, 2022). 구조적 요인으로 제도적 연속성을 강조하는 신제도주의도 내생적 요인으로 인한 변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Schmidt, 2010). 담론제도주의는 역사적 제도주의가 행위자가 실종된 구조결정론이며 변화에 무심하다는 비판에 대응하여 등장하였다.

담론제도주의는 신제도주의 변수들을 공유하면서 정책 아이디어, 담론과정, 제도가 상호작용하는 맥락을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도입되면 정책 행위자들은 자신의 정책 아이디어를 변경하는데, 변경된 정책 아이디어는 기존 제도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 행위자들은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와 상충되는 구제도의 재구성을 시도하게 되고, 그 결과 기존 제도는 변화된다(Fischer, 2007). 담론제도주의는 ‘정책 아이디어’라는 개념을 통해 제도의 변화 과정에서 행위자의 역할과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역사적 제도주의의 결정론적 한계를 보완하려고 한다.

어떤 정책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어떻게 재구성할지는 전적으로 행위자의 판단과 노력에 달려있다. 따라서 정책 형성 과정에서 행위자가 자신의 정책 아이디어와 행위를 어떻게 전개하며 정당화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 행위자는 자신이 제안한 정책 대안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담론’을 유포한다. 여기서 담론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주어지는 정책 아이디어와 개념의 특정 조합’으로 정의된다(Hajer, 1995; 장지호, 2009). 담론제도주의에서는 정책 행위자들이 담론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과 이익을 표출하고자 하며 담론의 구사를 통해 정책 형성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고 본다(장지호, 2009).

담론제도주의에 의하면 정책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형상화하고 ‘프레이밍’을 통해 확산하고자 한다. 프레임이란 ‘행위자의 인식 틀’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 엘리트들이 활용하는 상징이나 개념을 의미한다. 프레이밍이란 문제를 프레임에 따라 재단하는 것으로 정책 형성 과정에서 행위자의 의도에 맞게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적 시도이다(하연섭, 2006; 장지호, 2009). 담론제도주의에서 담론은 ‘프레임의 형성과 확산’이며, 정책 결정자나 이해 관계자들이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정책을 형성해 나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박보영, 2019).

프레임의 형성 및 확산이 일어나는 담론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그 사회의 고유한 ‘제도적 맥락’이다(하연섭, 2006; 박보영, 2019). 담론은 사회적 진공 상태가 아닌 현실 세계의 특정 제도 속에서 구체화되기 때문에 담론이 어떤 제도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Fischer & Forester, 1993; 장지호, 2009).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적 특성이 해당 사회 특유의 ‘담론구조’를 형성하고, 이렇게 형성된 담론구조는 행위자들이 담론을 구사할 때 지켜야 할 관행, 규칙, 절차 등을 강제한다. 예컨대 다원화된 의사결정체계와 활발한 담론 문화를 갖고 있는 서구와 권위주의적 유산이 남아 있는 한국은 정책담론의 구조적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사한 정책 구상이라도 각 사회의 역사구조적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정책으로 산출된다.

III. 한국의 팔길이 원칙: 역사적 담론제도주의 분석

한국은 역사적으로 발전국가가 주도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국가주도 민간추수’라는 국정 전반의 기조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이 견고했다. 이 장에서는 역사적ㆍ담론제도주의 시각을 통해 팔길이 원칙이라는 ‘탈맥락적’인 정책 아이디어가 어떠한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누구에 의해 도입되었고, 어떠한 담론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제도화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나아가 팔길이 원칙이 제도화되었음에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면서 존속하는 이유에 대해 논의한다.

1. 팔길이 원칙의 담론적 정합성(Discursive Consistency)
1) 조정적 담론으로서 팔길이 원칙

정책의 형성과 전개에서 이뤄지는 담론 과정을 조정적 단계와 소통적 단계로 나눈 슈미츠(Schmidt, 2010)에 따르면, 조정적 단계에서는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주요 행위자들이 논쟁을 통해 정책의 기본 내용을 마련하는 ‘조정적 담론’이 이루어지고 소통적 단계에서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정책의 필요성과 적합성을 설득하는 능동적인 ‘소통적 담론’이 이루어진다.

한국 문화예술 분야의 팔길이 원칙은 정책 행위자로서 대통령이 조정적 담론을 처음부터 주도했다. 공식적으로 문화예술정책 분야에서 팔길이 원칙을 처음으로 천명한 사람은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중 치러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이다. 그는 당선인 신분으로 참여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21세기는 경제와 문화의 세기이며 문화가 국력이다”라고 말하며, “문화예술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간섭은 배제하여’ 문화 선진국을 향한 토양을 만들고, 문화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2015). 팔길이 원칙에 대한 그의 정책 아이디어는 당선자의 정책 비전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주재한 문화관광부 장관 업무보고회의(1998.4.17)에서 “문화예술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문화예술의 자율적 진흥이 현 정부 문화예술 정책의 기조임을 재확인시켰다. 1년 뒤 열린 문화관광부 국정개혁 보고회의(1999.3.24)에서도 대통령은 ‘지원을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 하에 문화예술 지원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지시하였다.

새로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문화산업을 자리매김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정책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정적 담론도 주도하였다. 1999년 3월 문화관광부 업무보고회의에서 그는 엘빈 토플러의 말을 빌어 “20세기는 공업과 노동력이 국력이었으나 21세기는 지식과 문화가 시장을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new economy) 시대가 도래했다”고 밝히며, “문화는 한국인에 가장 적합하므로 21세기는 한국의 세기가 될 것이고, 문화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고위공직자들에게 당부했다(박찬수, 2004).

팔길이 원칙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 정책 및 문화산업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정책 담당자들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고위공직자 대상 대통령 강연회에 참석한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은 대통령이 여러 기회에 문화산업이 21세기 기간산업이므로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일부에서는 문화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는 말로 회의적인 시각을 표하기도 했다(남상욱, 2024).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은 새로운 문화정책 기조 구현을 위해서 우선 정부 내 조정적 담론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책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팔길이 원칙에 대한 ‘담론구사’를 실천하였다. 당시 문화관광부의 한 고위공직자는 “그전까지 문화는 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나 관심 사항이 아니었으나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비로소 정책의 주변부를 벗어났다.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화산업을 강조하고 많은 지원을 한 결과이다”라고 회고했다.2) 한편 대통령은 “영화 쥬라기공원 한 편의 흥행수입인 8억 5천만 달러는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같다”는 ‘문화산업 프레이밍’으로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소통담론도 주도하였다.

팔길이 원칙에 바탕을 둔 김대중 정부의 정책 담론은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탈규제 및 규제완화’와 ‘지원강화’ 정책으로 실현되었다. 가장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던 것은 공연법을 개정하여 영화 사전 검열을 담당하던 공연윤리위원회를 폐지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대체한 것이다. 어느 영화제작자는 그 정책 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3)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검열제도가 사라졌으며,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됐다. 영화진흥기구(영화진흥위원회)가 출범되었고 영화를 지원하는 예산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재능 있는 영화인들과 중소 제작자, 배급사가 러시를 이루면서 새로운 한국 영화 붐이 일었다.” 또한 영화를 제외한 일반 공연의 사전신고제 폐지, 공연의 정지 및 중지 명령권 폐지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개방과 같은 정책 행위자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로부터도 논란을 야기한 조치들이 내려졌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집권 1년 만에 143건의 규제를 폐지했고, 비디오 사전 심의제를 등급 심사제로 전환하는 등 61건의 규제를 완화했으며, 71건에 대해서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였다(박양우, 1999).

다른 한편으로 이제까지 통제와 관리 중심의 문화정책이 진흥과 지원 중심으로 전환하는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1998년에는 ‘문화산업진흥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새로운 국부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의 기간산업화’를 주요 정책과제로 선정하였으며 이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1999)’도 제정하였다.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통해 문화산업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었고, 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창업지원, 기반시설 확충, 산업단지 조성, 문화진흥기금 조성, 각종 세제 및 금융지원을 위한 제도적 근거들이 마련되었다. 문화 관련 예산도 증가하여 1999년에는 전년 대비 37%가, 2000년에는 45%가 인상되어 국가 전체 예산의 1%를 넘기게 되었다.

2) 팔길이 원칙 도입의 역사적 맥락

역사적으로 ‘정부주도 민간추수’가 실질적 국정기조였던 한국에서 어떻게 ‘민간자율 정부지원’이라는 ‘탈맥락적인’ 팔길이 원칙이 도입될 수 있었는가? 1990년대 말 한국에서는 국가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대내적, 대외적 압력이 지속적으로 가중되고 있었다. 경제성장 시대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무소불위적이었던 발전국가의 주도성을 약화시키고, 타율에 젖어있던 민간 부문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의 전환이었다.

대내적으로 1980-90년대 한국은 60년대 이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사회의 각 부문에서 극심한 성장통을 겪으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전환기에 처해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경공업 수출주도 산업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화학공업화로 산업구조를 심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한 정부개입은 민간 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를 야기하였다. 이는 심각한 경제위기와 정치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져 제4공화국(1972-1981)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과 개입주의적 발전국가의 해체를 가져왔고, 뒤이은 제5공화국(1981-1987) 정권은 경제 자유화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시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정부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면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제한하고 민간의 자발성을 권장하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1990년대 세계화 압력이 더욱 거세지자 김영삼 문민정부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는 전략하에 ‘신경제5개년계획’(1993)을 수립하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1994), WTO체제 출범(1995), OECD 가입(1996)과 같은 일련의 ‘세계화’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했으며, 선진국 수준으로 금융 및 자본 시장을 개방하였다(김창수, 2009). 그러나 문민정부의 세계화 조치는 철저한 대비도 없이 ‘성급한’ 규제철폐를 불러왔고 기업들의 방만한 해외차입 및 무모한 해외투자로 이어졌다. 취약해진 한국 경제는 해외에서 비롯된 경제적 불안요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예기치 않은 외환위기에 휘말리게 되었고, 마침내 IMF 관리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김명수, 2004).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불리던 IMF는 한국 정부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부문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는데, 그 핵심 내용이 정부개입 최소화와 민간자율 최대화였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국민의 정부는 전임 문민정부로부터 총체적인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물려받았다. 국민의 정부는 ‘정부의 최소 개입’과 ‘시장의 최대 자율’을 신조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정부주도’로 수행해야 하는 모순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은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새로운 국가 기간산업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는 자신을 ‘문화대통령’으로 프레이밍하면서 ‘21세기 문화국가의 실현’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문화예술의 창달과 문화산업 진흥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정책 행위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신념은 단지 선거공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오래전부터 지녀온 나름의 소신이었다. 그는 1966년 6대 국회의원으로서 영화 검열 조항과 영화제작사 설립 요건을 강화하려는 박정희 정부의 영화법 개정에 반대하는 본회의 연설에서 이미 팔길이 원칙을 자신의 언어로 설득하고 있다.

“(영화법 개정안에는) 영화 발전에 도움이 되는 조항이 거의 없습니다. 등록해라, 심사받아라, 처벌한다, 중지해라 이런 조항뿐 영화법은 영화 발전의 방해법입니다.…정부가 정말 영화를 육성할 생각이 있으면 쓸데없이 간섭할 게 아니라 ‘영화 금고’ 같은 것을 설치해 입장세 중에서 일부를 적립해서 좋은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제작비 대부 또는 저리융자해 주고, 그래야 훌륭한 대형 제작이 되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제6대 국회 본회의 속기록, 1966.7.14)

국민의 정부에서 대통령이 주도한, 팔길이 원칙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 지원과 문화산업 발전 담론은 정부 개입의 철회와 민간 자율의 신장을 강조하는 당시의 구조적 조건 및 신자유주의 시대정신과 부합하면서 큰 저항 없이 정책 아이디어로 수용되었고, 조정적 담론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정책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

팔길이 원칙과 문화산업의 국가 기간산업화는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정부는 팔길이 원칙을 통해 ‘민간 부문과 정부 간 갈등의 민주적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적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프레임을 동원하여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하였다(문화관광부, 2001). 당시 팔길이 원칙이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및 문화콘텐츠진흥원 등 정책지원기구 사이에서 실제로 적용되었다고 보고되었으나(정종은, 2013) 아직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결국 이 시기 팔길이 원칙의 제도화는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3) 팔길이 원칙의 제도화: 문화예술위원회 설립

국민의 정부와 이념적 맥을 같이하는 노무현 참여정부는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2004)하여 이제까지 문화예술진흥 기금을 운영해오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문예진흥원)을 폐지하고 팔길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기구로서 문화예술위원회를 출범(2005)시켰다. 문화예술위원회는 1946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문화예술 지원 기구인 영국의 예술위원회(ACGB: Arts Council of Great Britain)를 본떠 설립되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정부 소속이 아닌 독립법인으로, 문예진흥원처럼 원장 중심의 독임제(獨任制)가 아니라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여 문화예술지원 기관의 운영에 관한 주요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합의제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정인숙, 2017; 김정수, 2018).

문예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제도적 변환을 둘러싼 담론을 주도한 것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을 비롯하여 민중 문화예술가들로 구성된 ‘문화연대’, 비평가 그룹인 ‘21세기 문화광장’ 등 진보적 문화예술인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80년대 후반부터 개혁 담론을 주도하며 토론회, 포럼, 공청회 등을 통해 정책 평가, 개혁 추진, 대통령 선거공약 제안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금성희ㆍ남재걸, 2017). 이들 진보세력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정책을 정부가 수용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박광무, 2009).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이종열, 2004).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문화예술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대상과 방법도 현실적으로 변경해야 하며 조직개편도 필요하다. 창작자 중심 지원에서 국민의 문화복지 증대를 위한 지원으로, 전통적 장르 중심 지원에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독립예술과 소수문화에 대한 지원으로, 문화부에 의존적 기금 운용 구조에서 자율적 기금 운용 구조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진보적 문화예술단체들은 문예진흥원의 관료제적 시스템과 단순한 기금의 관리 및 분배 기구의 역할만으로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책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문화예술 지원구조 개혁에 관한 요구의 핵심은 지원기관의 ‘자율성’ 확보와 예술인들의 정책 참여로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금성희ㆍ남재걸, 2017).

문예진흥원을 위원회로 전환하자는 진보 진영의 주장에 대해 초기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를 비롯한 보수 세력이 반대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보수, 진보 진영을 망라한 40개 문화예술단체들이 합의를 통해 국회에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압력을 가했고, 마침내 문화예술인들이 기금의 지원과 분배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 합의제 기구로서 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문체부 산하의 지원정책 집행 기구로 반관반민의 비영리 특수법인이자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으로 ‘정부차원의 민간 자율기구’라는 독특한 위상을 가졌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3).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현장 예술인들이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문화예술진흥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민간의 자율적 의사결정 체제가 갖춰지게 된 것이다.

민간주도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문화예술위원회의 설립과 위원들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법적 규정도 마련되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헌법에서 보장한 학문과 예술의 자유, 예술가의 권리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법정기구로 ‘문화예술위원회’를 둔다(제20조)고 규정하고 있다. 위원들은 문화예술에 관해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서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전통예술 등 문화예술 각 분야와 지역 인사가 포함된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장관이 임명한다(제23조). 그리고 ‘위원회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으며 그의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않는다’(제29조)라고 규정함으로써 위원의 직무상 독립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처럼 팔길이 원칙이 도입되어 실행되는, 집행기구로서 문화예술위원회가 설립되는 형식적 제도화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호의적인 담론을 주도한 여러 정책 행위자들과 역사적 계기의 조화로운 조합을 ‘담론적 정합성’(discursive consistency)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설립된 한국의 문화예술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비롯하여 서론에서 적시한 현실 사례에서 보듯이, 팔길이 원칙을 구현하도록 명문화된 법적 규정에 걸맞게 정부로부터 독자적인 조직으로서 문화예술계의 자율적인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왔다고 보기 힘들다. 다음 절에서는 그 이유를 분석한다.

2. 팔길이 원칙과 구조적 부정합성(Structural Inconsistency)

참여정부는 팔길이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원장 중심 독임제 체제의 문예진흥원을 폐지하고 민간 위원들 간의 합의제인 문화예술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이렇게 제도적 전환을 거쳐 새로이 등장한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다음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위원회가 벤치마킹한 영국 예술위원회는 어떠한 전제 조건아래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비추어 한국의 문화예술위원회는 이러한 조건들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고 있는지 살펴본다.

1) 영국의 팔길이 원칙과 협치의 조건

지금은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보편적 원칙으로 자리 잡은 팔길이 원칙은 1946년 문화예술지원 기구로서 설립된 영국의 예술위원회가 문화부(DCMS)와 맺은 ‘불간섭주의 및 지원금 제공 합의’에서 비롯되었다(Chartrand & McCaughey, 1989). 이 원칙은 정부가 국가 재정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한 영향력을 방지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와 예술기관 간의 신뢰 확보와 독립성 보장을 위한 것이다. 정부가 재정지원은 하지만 지원금이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되느냐의 쓰임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고 민간 예술인으로 구성한 위원회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정치적 합의를 하였다(원승환, 2004). 정부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의 ‘책임’과 불간섭의 ‘의무’를 동시에 지고 있는 셈이다.

팔길이 원칙을 실행하는 제도로서 영국의 예술위원회는 한편으로는 영국 정부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예술에 대해 자유방임적 태도를 취하리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민간 예술계의 합작품이다(Lee, 2012). 영국 자유주의 정치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이러한 신념은 정부가 예술위원회 같은 중개자를 통해 예술 분야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예술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위험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모두가 수긍하게 만들었다. 사실 영국 정부는 다른 정책 분야에서도 예술위원회와 같은 ‘비정부 공적기구’(NDPB: non-departmental public bodies)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문화부 예산의 95%를 넘는 부분이 예술위원회를 포함한 47개 비정부 공적기구에 배당되고 있다(Fisher & Figueria, 2011). 이렇게 보면 예술위원회는 영국 정부가 사회를 지배하는 독특한 방식이자 동시에 영국 사회가 전문적 지식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인 것이다(Rueschemeyer, 1983).

예술위원회는 정책을 형성하고 지원 결정을 조정하는데서 비공식적 메커니즘을 활용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술위원회의 결정은 대개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위원회 위원들과 정부 관료, 예술계 전문가들의 비공식 네트워크에서 수렴되는 합의에 따랐다(Hutchison, 1982). 위원회의 위원들은 특정 예술 장르나 전문영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예술계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기대되었다. 따라서 예술위원회가 누리는 자율성의 원천은 정부와 민간 부문의 구성원들이 공통의 목적과 이해로 결속되어 있다는 사회적 신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정치가 보수당과 노동당 정치세력 간의 ‘합의 정치’라고 이야기되던 예술위원회 설립 초기부터 30여년 동안 예술위원회 운영도 합의에 따랐기 때문에 예술정책에서 당파성이 개입될 여지가 상당히 좁았다(Kavanagh & Morris, 1994).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정부의 간섭과 정부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책 선택의 방향도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다(Quinn, 1997).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로서 예술위원회는 여전히 남아있고, 정부의 제한적인 역할, 민간 집단의 불간섭, 정부 예술기금의 확보와 집행에서 예술위원회의 주도적인 역할, 정치권과 예술계 간의 팔길이 관계에 대한 확고한 합의 등 근본적인 요소들은 존속하고 있다(Lee, 2012).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정치이념적 진영 간 합의와 조정을 존중하는 의회주의 전통과 정부의 권력 행사 방식에 대한 민간의 신뢰, 민간 예술계 구성원들 간의 문화예술에 대한 근본적 가치 공유는 영국의 예술위원회가 설치, 운영되어 온 조건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한국에서 유사한 형식의 제도로 거듭 태어난 문화예술위원회는 과연 어떤 제도적 맥락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2)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의 위계적 관계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가 2017년 각각 발표한 대국민 사과 성명서에는 박근혜 정부시기 문화예술 지원제도의 정책 목적인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과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발생했던 ‘블랙리스트 사태’의 전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문체부는 2017년 1월 23일 “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할 우리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으로 인해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하여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얼마 후 문화예술위원회 역시 다음과 같이 통렬한 자기반성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예술위원회의 출범은 예술지원정책 수립에 있어 자율성과 독립성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위원회는 이러한 사명을 망각하였고 부당한 지시를 양심에 따라 거부하지 못하였으며 반헌법적 국가범죄의 공범자가 되었습니다.…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사업 심의과정에 개입하여 블랙리스트 예술인과 단체들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였습니다. 당시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진행과정에서 문체부의 요구에 따라 사업별 지원신청 접수내역, 심의위원 명단 등을 보고하였으며, 이후 문체부로부터 절대 지원해서는 안되는 ‘지원배제명단’을 유선전화 또는 대면 등의 방법으로 통보 받았습니다. 당시 문체부는 지원배제 지시에 대해 거부하거나 불이행 시 해당 사업을 중단하거나 폐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었고, 이에 당당히 맞서야 함에도 우리는 정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지원배제를 이행하였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반성문과 사과문은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과 부당한 개입에 대해 독립기구로서 저항하지 못한 자괴감과 이러한 배제적인 블랙리스트의 실행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문체부의 관리들과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들이 대등한 수평적 관계가 아닌 정부는 지시하고 민간은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구조에 있었음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3) 문화예술계의 이념적 분열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문체부와의 수평적 협력관계에 달려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위원회는 법적으로 보장된 지위에 맞는 대정부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추지 못하고 정부의 부당한 간섭에 취약했다. 이는 문화예술계가 정치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면서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것에 서로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진보적 문화예술단체인 민예총이 보수적 예술단체인 예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단법인화되어 제도권 내로 진입하게 된 것은 1993년 문민정부 시기였다. 당시 문민정부는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와 달리 진보적 민간예술단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시켰다(금성희ㆍ남재걸, 2017). 이 시기부터 예총과 민예총이라는 민간 예술단체 간 대립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이들은 정부의 문화예술지원 방식을 놓고 상반된 견해를 표명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였다(임은아, 2009). 문예진흥기금 지원방식에서 예총은 예술의 수월성을 기반으로 한 기존의 수혜자 중심 지원을 지지하였고, 민예총은 민족예술, 문화예술의 대중화, 대안문화 등의 담론으로 대립하면서 문화예술 지원 기구인 문예진흥원의 개편까지 요구했다(류정아, 2015). 문민정부 시기에 시작된 진보와 보수 문화예술 단체들 사이의 이념적 대립과 문화예술지원 기준을 둘러싼 담론적 갈등 구도는 참여정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민간 문화예술계가 이념적으로 분화된 가운데 진보 성향 정치세력의 연이은 집권에 힘입은 진보적 문화예술 단체들이 보수적 문화예술 단체들의 합의를 끌어내며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전체 이익을 지향하는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에 합의하였던 진보와 보수 문화예술 단체들도 추후 이념적 입장 차이에 따라 재분열되었다. 이러한 균열은 문화예술계의 대정부 협상력과 자율성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 사회 갈등의 장(場)으로서 문화예술위원회

관료제적 문예진흥원 체제에서 문화예술위원회 체제로 제도 변환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과 문화예술계의 자율성 확보이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위원회의 위원 구성에서 진영 논리와 정파성 논란이 일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구성된 1기 위원들은 주로 40대 민예총 회원으로 문화행정가가 대부분이었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기에 구성된 2기는 순수예술 전공의 예총 회원으로 고령의 보수적 예술가 중심이었으며, 3기는 정부와 긴밀히 연결된 정부 관련 인사였고, 4기는 기업가, 언론인 등 보수 성향의 비예술계 인사로 구성되었다(성연주, 2015). 이처럼 이념적 성향이 편향된 위원회는 예술계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폭넓게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치우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상대 진영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위원 구성 방식의 비일관성은 ‘널뛰기식 기금지원’으로 이어져 정권 교체 시기마다 정치적 성향을 띈 민간 예술단체들에 대한 지원액이 등락을 거듭하였다. 지원예산 배분도 위원회의 자율적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각 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되었는데 보수적 성격의 정부는 선택과 집중, 간접 지원방식을 선호한 반면 진보적 성격의 정부는 장르별, 대상별 균등 배분방식을 선호하였다(이민아, 2018).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지원 예산 배분에서 편파성과 자율성의 침해가 극단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사례이다. 사실 ‘블랙리스트’는 물론 특정인들을 우대했다는 ‘화이트리스트’도 이미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비롯되었다(김완, 2017). 더욱이 정권 교체 시기에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하여 아직 임기가 남아있는 문화예술 정책집행기구의 기관장들을 강제로 사임시키는 전임 참여정부의 ‘흔적 지우기’는 사회에 이념적 대결을 조장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원도연, 2014). 뿐만 아니라 이들과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화이트리스트 의혹이 있었다. 정인숙(2017)은 한국 문화예술 지원 정책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은 정치적 권력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예술 지원 정책을 동원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문화예술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은 문화예술진흥법의 명문 규정일 뿐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대신 문화예술위원회는 정권의 정치적 이념과 문화예술계의 이념적 갈등이 뒤엉켜 각축하는 사회 갈등의 장(場)이 되었다.

5) 팔길이 원칙의 구조적 부정합성과 담론적 정합성의 중첩

영국 예술위원회가 정부로부터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민간 문화예술계의 자율적 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명문화된 법조문의 효력이 아니라 정부의 권력 행사 방식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신뢰, 민간 예술계 구성원들 간의 정치이념을 초월한 문화예술에 대한 궁극적 가치의 공유, 보수와 진보의 정치이념적 진영 간 합의와 조정을 존중하는 의회주의 전통과 같은 제도적 맥락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예술위원회와는 달리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의 관계는 수평적이고 협력적이기보다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상명하복 관계였으며,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 간 합의와 조정을 모르는 불화 속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균열 앞에 민간 예술단체들은 예술의 궁극적 가치에 합의하며 공통의 이해를 위해 단합하기보다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분열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이러한 제도적 맥락은, ‘담론적 정합성’으로 제도화된 팔길이 원칙이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저해하고 있는데, 이를 ‘구조적 부정합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팔길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구제도인 문예진흥원을 폐지하면서 신제도인 문화예술위원회를 설립하는 제도적 전환을 이행하였다. 그러나 문예진흥원이 지녔던 ‘정부주도 민간추수’의 구제도적 관행이 여전히 경로의존적 유산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신제도로서 문화예술위원회의 팔길이 원칙이 형식적으로 덧붙여지는 ‘중첩’이 일어났다. 그 결과 ‘민간자율 정부지원’을 표방하는 팔길이 원칙은 문화예술위원회와 문체부 간의 수직적 상명하복 관계가, 정권의 이념적 향방에 따라 정책이 좌우되는 상황이, 민간 문화예술계 역시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대정부 협상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맥락이 ‘구조적 부정합성’이 되어 팔길이 원칙의 실질적 작용을 심각한 정도로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적 정합성과 구조적 부정합성의 모순은 한국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특색이며,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의 활동이 담론적 정합성과 구조적 정합성이 비교적 부합하는 제도적 맥락에 있는 영국의 예술위원회 활동과 결이 다른 이유이다.

신제도가 구제도를 ‘대체’하기보다는 구제도에 중첩된 구조적 모순이 정부 구조 내에 자리 잡게 되면서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시행 과정에서 대통령은 ‘팔길이라 쓰고’ 관료들은 ‘손바닥이라고 읽는’ 불일치 상황이 야기되었으며, 이러한 구조적 긴장이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같은 극단적인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IV. 결론

역사적으로 ‘정부주도 민간추수’가 국정의 전반적인 기조로 자리 잡은 한국사회에서 ‘민간자율 정부지원’을 표방하는 팔길이 원칙이 문화예술 부문의 정책기조로 제도화된 것은 어떤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나아가 제도화된 팔길이 원칙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연구는 역사적담론제도주의 시각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답을 찾아보았다.5)

국민의 정부 시기 대통령이 주도한 팔길이 원칙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 지원과 문화산업 발전 담론은 정부개입의 철회와 민간자율의 신장을 강조하는 당시의 역사구조적 조건 및 신자유주의적 시대정신과 부합하면서 큰 저항 없이 정책 아이디어로 수용되었고, 조정적 담론 과정과 소통적 담론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정책으로 시행되었다. 차기 참여정부는 문화예술위원회를 수립하면서 문화예술정책의 기조로서 팔길이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였다. 이렇게 팔길이 원칙의 도입과 제도화에 유리한 조건들의 조화로운 배합을 ‘담론적 정합성’이라 하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신제도였던 팔길이 원칙은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용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들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되었으며 경로의존적 구제도의 유산에 의해 활약의 정도가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민간자율 정부지원’을 표방하는 팔길이 원칙이 문화예술위원회와 문체부 간 수직적 상명하복 관계 속에서, 정권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정책이 좌우되는 상황 속에서, 이념적으로 분열된 문화예술계가 대정부 협상력을 갖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맥락 속에서 제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팔길이 원칙의 작용을 심각히 저해하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맥락을 ‘구조적 부정합성’이라 하였다.

팔길이 원칙의 담론적 정합성과 구조적 부정합성의 모순은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특색이 되었다. 그리고 팔길이 원칙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신제도가 구제도를 ‘대체’하기보다는 신제도가 구제도에 ‘중첩’되는 구조적 모순이 정부 구조 내에 자리 잡게 되면서, 문화예술정책의 시행에서 ‘팔길이라 쓰고 손바닥이라고 읽는’ 불일치 상황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긴장은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등 극단적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특징이자 문제점은 제도로서 팔길이 원칙의 담론적 정합성과 구조적 부정합성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만큼 문제 해결의 방향은 팔길이 원칙의 ‘구조적 정합성’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정책적 제안이 제기되었으며 이 중 일부는 시행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문체부는 2019년 문화예술위원회를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에서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변경하였다(배관표, 2019). 이전까지 준정부기관이었던 문화예술위원회는 문체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의 통제 아래 경영공시를 하고 경영실적 평가를 받아왔다. 이제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문화예술위원회는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요인으로 비판 받아온 정부 부처들의 정량적 평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던 위원장도 위원들의 호선에 의한 선출이 가능해졌다.

또한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구성된 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 TF’는 정부개입에 쉽게 노출되는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문화예술위원회를 예술지원 기관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담당하는 문체부 부서와 통합하여 국무총리 소속 ‘국가문화예술위원회’로 격상시키자는 안을 권고했다(배관표ㆍ성연주, 2019). 이는 문화예술위원회가 팔길이 원칙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권능화(empowerment) 제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화예술위원회를 관료기구 안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오히려 위원회의 독립성을 제한하고 민간 부문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모순적 제안으로 보인다.

한편 문화예술위원회 고유의 전문성을 더욱 심화시켜 독자성과 자율성을 확보하자는 제안도 있다(박민권ㆍ장웅조, 2020). 문화예술 부문의 전문성을 높이고 차별화해 정부나 정치권 그리고 민간 부문으로부터의 부당한 개입을 방지하면서 블랙리스트 같은 부작용의 가능성을 없애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자는 것이 팔길이 원칙의 시발점인데 이 제안은 자칫 문화예술위원회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위험이 뒤따른다. 팔길이 원칙이 보장하려는 자율성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6)

기왕에 제기되어 있는 제안들은 모두 문화예술위원회의 대정부 수평적 관계 수립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기타 공공기관으로의 지정변경, 국가문화예술위원회로 격상, 전문성 제고 등의 제안들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을 일정 정도 강화해 민간부문 문화예술 활동의 자율성을 신장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도로서 팔길이 원칙의 실질적 작용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팔길이 원칙의 전제 조건인 구조적 정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평적 관계 수립뿐 아니라 정치권의 조정과 합의를 존중하는 전통 수립과 문화예술계 구성원들 간의 이념적 다양성 존중(tolerance)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각 부문에서 형식적 민주화가 실질적 민주화로 공고해지면서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장기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중단기적으로는 정치권과 정부, 민간 부문이 지니고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단절과 전환에 대한 담론의 계발과 실천이 필요하다. 즉 문화예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간주하는 현재의 인식에서 벗어나 목적 그 자체로 간주하는 관점의 전환에 대한 담론과, 정부가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재원을 민간 부문에 분배하는 시혜적, 하향적(top-down)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정부는 문화예술 기반 조성에 집중하고 민간 부문은 기업 메세나 등을 통해 자구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며 정부 의존을 줄여나가는 상향적(bottom-up) 지원방식으로의 전환에 대한 담론을 구성하고 정책 형성을 통해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Notes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문화예술 관련 7가지 공약을 발표했다(헤럴드경제, 2022.2.18). 정권이 시작된 이후 팔길이 원칙은 여러 차례 문화예술 정책기조로 언급되었다. 2022년 7월 21일 문체부가 추진할 5대 핵심과제에 대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문체부 박보균 장관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문화예술의 독창성을 구현할 수 있는 창작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보고하였다. 같은 해 9월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문화 예술계 원로 인사들과 가진 비공개 오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거듭 천명하였다.

김대중 정부 때 문화산업국장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진룡 씨의 회고.

박찬수(2024)에서 재인용, 영화 ‘괴물’ 제작자 최용배 씨의 말.

퀸(Quinn, 1997)에 의하면, 1946년에 영국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이 제정된 이래 정부와 위원회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보다는 정권에 따라 밀착(intimacy)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정부가 예술위원회 위원들을 임명하고 위원회의 재원을 정부기금으로 충당하며, 의회에서 예산을 결정하고, 회계감사를 받고, 위원회의 직원을 승인하는 구조에서 정부의 불간섭주의가 완전하게 실현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특히 1979년 대처리즘(Thatcherism)이 등장하면서 예술위원회가 정부의 이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보조금 분배에서 정부의 간섭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이 논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문화예술정책과 제도의 역사적 맥락으로서 한국 근현대사 변천 과정에서 예술가와 국가의 관계, 예술 창작의 의의와 위상 등을 포함시켜야 했으나 지면상 제약으로 논의하지 못했다. 이에 관한 탁월한 논문들(금성희ㆍ남재걸, 2017; 김규원ㆍ지금종ㆍ염신규ㆍ양혜원, 2018)을 소개한다.

팔길이 원칙이 보장하려는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완전한 자율성’(absolute autonomy)이 아니라 ‘사회에 배태된 상대적 자율성’(embedded autonomy)을 의미한다.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계가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예술위원회가 누리고 있는 자율성도 정치계, 문화예술계, 정부 관료들 간의 밀접한 사회 연결망에 ‘배태된 자율성’이다(Le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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