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25년 2월 기준, 대한민국 국가무형유산은 161종목이 지정되어 있다. 보유자 168명, 명예보유자 52명, 전승교육사 235명이 인정되어 있으나, 22개 공동체 종목을 제외한 종목 가운데 상당수는 보유자가 단 1명이거나, 보유자 없이 보유단체만으로 전승을 유지하고 있다.1)
이 숫자들은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 기반이 소수의 담지자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보유자의 수 자체가 곧 전승의 위기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보유자 수는 전승의 실질적 활성도나 전수의 질적 깊이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그 감소는 전승 위기를 의심하게 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보유자의 수와 인정 연도는 말해 주지만, 그들의 몸에 새겨진 소리와 몸짓과 호흡이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혹은 전해지지 못하고 있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국가무형유산 제도는 ‘종목’을 보존하고 ‘기·예능’을 기록하며 ‘전수교육’을 제도화한다. 그러나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에서 진정으로 핵심적인 것, 곧 스승의 곁에서 수년간 몸으로 체득하는 감각, 마을 마당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판의 경험, 유랑의 길 위에서 형성되던 공동체적 리듬은 제도의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예술의 형식이 아니라, 그 예술이 경험되는 방식이다.
본 연구는 이 현상을 ‘경험의 멸종(extinction of experience)’ 개념을 통해 이론화하고자 한다. ‘경험의 멸종’은 미국의 생태학자 파일2)이 도시화로 인한 자연 경험의 소멸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으로, 이후 소가·개스턴3)이 학술적 프레임워크로 정식화하였고 로젠4)이 디지털 기술 사회로 확장하였다. 그러나 이 개념을 무형유산, 특히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 맥락에 이론적으로 적용·확장한 연구는, 국제 학술 데이터베이스(Google Scholar, Wiley, ScienceDirect)와 국내 데이터베이스(RISS, KCI, DBpia)에서 “extinction of experience”, “intangible heritag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경험의 멸종” 등의 키워드 조합으로 검색한 결과 확인되지 않는다.5) 본 연구는 이 공백 지점에서 출발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경험의 멸종’ 개념이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 양상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이론적 도구인지를 탐색한다. 둘째, 이 개념을 무형유산 영역에 적용할 때 요구되는 이론적 재구성, 곧 개념의 재정의와 분석틀의 제안을 수행한다. 이러한 목적은 다음의 두 연구문제로 정식화된다.
연구문제 1: ‘경험의 멸종’ 개념은 무형유산, 특히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 단절을 설명하는 새로운 분석 개념이 될 수 있는가.
연구문제 2: 생태학에서 정식화된 기존의 ‘경험의 멸종’ 모델은 무형유산 연구에 적용되기 위해 어떻게 수정·확장되어야 하는가이다.
다만 본 연구의 논의는 판소리·탈춤·풍물·남사당놀이류와 같이 개별 예능의 보유자 및 보유단체를 중심으로 도제적·공동체적 방식으로 전승되어 온 민간 전승 기반의 종목을 중심 사례로 전개된다. 궁중음악과 풍류음악, 그리고 각종 기능종목은 전승 조직의 규모와 성격, 제도적 조건이 이들과 달라 세 차원의 단절이 발현되는 양상 역시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본 연구의 분석틀이 이들 영역에 적용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적용의 양상과 유효성이 별도의 경험적 검토를 요한다는 의미이며, 본고는 우선 민간 예능 종목을 중심으로 분석틀의 이론적 정합성을 논증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경험의 멸종’ 개념의 계보를 파일, 소가·개스턴, 로젠의 세 단계로 추적하고, 이 개념이 무형유산 영역으로 이전될 때 드러나는 세 가지 특수성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그 이전의 이론적 토대로서 스미스의 권위적 유산 담론(AHD), 하프스타인의 유산화 비판,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및 체화된 자본 이론을 검토하고, 한국의 국가유산 법제 전환을 둘러싼 국내 논의를 살펴본다. 4장에서는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의 멸종’을 재정의하고, 감각적 단절·환경적 단절·제도적 단절이라는 세 차원의 분석틀을 제안한 후,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을 분석틀의 적용 사례로 검토한다. 5장에서는 이론적 기여와 한계, 후속 연구 방향을 논의한다.
본 연구는 사례 데이터에 기반한 경험적 연구가 아닌, 기존 개념의 학제간 이전과 분석틀의 이론적 제안을 목적으로 하는 탐색적 논문이다. 연구방법의 성격을 명확히 하면, 본 연구는 문헌연구에 기반한 이론적 탐색 연구이며,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개념이 형성·확장되어 온 궤적을 추적하는 개념사적 검토(2장)와, 서로 다른 이론적 자원을 대질시켜 새로운 분석틀을 구성하는 비교이론적 통합(3·4장)을 결합한 접근이다. 분석 자료는 ‘경험의 멸종’ 계보의 원전과 비판적 유산학·실천이론의 주요 문헌, 그리고 한국의 관련 법령과 국가유산청 공식 통계로 한정된다. 이는 소가·개스턴6)이 사례 데이터 없이 기존 문헌의 종합만으로 프레임워크를 구축한 방법론과 동일한 접근이며, 이후 보유자 및 전수자의 생애사 조사를 통한 분석틀의 적용과 검증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II. ‘경험의 멸종’ 개념의 계보와 확장
‘경험의 멸종(extinction of experience)’ 개념은 미국의 나비학자이자 생태수필가인 로버트 마이클 파일(Robert Michael Pyle)이 1993년 저서 The Thunder Tree: Lessons from an Urban Wildland에서 본격적으로 제시하였다. 파일은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의 도시 습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을 회고하며, 도시화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아이들이 자연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관찰로부터 이 개념을 도출하였다. 파일은 굴뚝새 한 마리도 알지 못한 채 자란 아이에게 콘도르의 멸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묻는다.7) 파일이 포착한 핵심은, 생물종의 멸종이라는 생태학적 위기와 나란히, 그리고 그것에 선행하여 ‘경험’의 멸종이라는 또 다른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연 속에서 나비를 관찰하고 개울에 손을 담그고 흙 위를 걷던 일상적 경험이 사라지면, 자연에 대한 감정적 유대와 관심도 함께 사라진다. 관심이 사라진 자연은 보호의 대상에서 빠지고, 보호받지 못한 자연은 다시 경험의 가능성을 축소한다. 파일은 이 악순환을 “경험의 멸종 순환(the cycle of the extinction of experience)”이라 불렀다.
다만 파일의 논의는 에세이적 성격이 강했다. The Thunder Tree는 자연 글쓰기(nature writing) 전통에 속하는 책이며, ‘경험의 멸종’은 엄밀한 분석틀이라기보다 하나의 은유적 명명에 가까웠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이 개념은 이후 20여 년간 생태학과 환경교육 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인용되었으나, 독립적인 연구 프레임워크로 발전하지는 못한 채 잠복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파일의 개념이 학술적 프레임워크로 정식화된 것은 소가 마사시(Soga Masashi)와 케빈 개스턴(Kevin J. Gaston)의 2016년 논문 “Extinction of experience: The loss of human–nature interactions”(Frontiers in Ecology and the Environment, 14(2))을 통해서였다.8) 이 논문은 파일이 에세이적으로 제기한 문제를 원인-메커니즘-결과의 구조로 재편하고,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s)를 포함한 통합 모델을 도식화하였다는 점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소가·개스턴은 ‘경험의 멸종’의 원인을 두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기회의 상실(loss of opportunity)로, 도시화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자연을 직접 경험할 물리적 기회 자체가 감소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향성의 상실(loss of orientation)로, 자연에 대한 감정적 유대감과 관심과 동기가 약화되는 것이다. 이 두 원인은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강화적이다. 경험 기회가 줄어들면 자연에 대한 지향성이 약해지고, 지향성이 약해지면 다시 경험 기회가 줄어드는 순환이 형성된다.
이러한 원인이 자연과의 상호작용 감소로 이어지면, 건강 및 웰빙의 감소, 자연에 대한 감정의 변화, 환경에 대한 태도의 변화, 친환경 행동의 감소 등 여러 차원의 결과가 발생한다. 핵심적인 것은 이 결과들이 다시 원인을 강화하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소가·개스턴은 이를 밀러9)의 “변화하는 기준선 증후군(shifting baselines syndrome)”과 연결하였다. 각 세대는 자기 세대의 경험을 기준으로 환경 상태를 판단하기 때문에, 경험의 질적 하락은 세대를 거치며 누적되면서도 자각되지 않는다.
이 논문의 학술사적 의의는 에세이적 통찰을 구조화된 이론 모델로 전환하고, 사례 데이터 없이 기존 문헌의 체계적 종합만으로 프레임워크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에 있다. 콜레오니 등10)은 523명을 대상으로 한 구조방정식 모델링을 통해 이 프레임워크를 경험적으로 검증하였으며, 린11)은 도시 녹지 이용 연구에 적용하는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산이 이루어졌다.
다만 이 프레임워크에는 주목할 만한 한계가 있다. ‘경험’은 주로 자연과의 물리적 접촉으로 이해되며, 근거가 되는 연구들 역시 대부분 양적 연구에 기반한다. 이는 ‘경험’의 질적이고 체화된(embodied) 차원, 즉 특정한 지식이나 감각이 몸을 통해 습득되고 전승되는 차원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또한 제도와 정책이 경험의 상실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은 분석틀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한계는 본 연구가 이 개념을 무형유산 영역으로 확장하는 출발점이 된다.
‘경험의 멸종’ 개념의 세 번째 전환점은 크리스틴 로젠(Christine Rosen)의 2024년 저서 The Extinction of Experience: Being Human in a Disembodied World(W. W. Norton)이다.12) 생태학에서 출발한 이 개념이 기술철학과 문화비평의 영역으로 도약한 것이다. 2025년 한국어 번역본(⌜경험의 멸종: 탈신체화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 어크로스)이 출간되면서 이 개념은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로젠이 말하는 ‘경험의 멸종’은 파일이나 소가·개스턴의 것과 다른 지형 위에 놓인다. 파일에게 경험을 멸종시키는 것이 도시화와 서식지 파괴였다면, 로젠에게 그것은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과 스크린이다. 로젠은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분석하며, 직접적이고 체화된 경험이 기술적으로 매개된 대안에 의해 체계적으로 밀려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로젠의 기여는 ‘경험의 멸종’이 생태학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는, 더 넓은 범위의 인간 경험에 적용 가능한 개념임을 입증한 데 있다. 다만 학술 저서가 아닌 대중서라는 점에서 분석틀이 도식화되거나 검증 가능한 형태로 제시되지 않으며, 사회적 제도와 정책이 경험의 질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소홀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로젠의 논의를 파일 및 소가·개스턴의 생태학적 분석과 하나의 계보로 묶는 것은, 세 단계가 동일한 대상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다. 파일에게 경험을 잠식하는 것이 물리적 서식지의 파괴였다면 로젠에게 그것은 기술적 매개이며, 이 점에서 생태학에서 기술사회로의 이행은 매끄러운 연속이라기보다 개념적 은유의 확장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 논의가 하나의 계보를 이룰 수 있는 근거는 대상의 동일성이 아니라 메커니즘의 구조적 유사성에 있다. 셋 모두에서 경험의 소멸은 직접적 경험의 감소가 대상에 대한 관심과 지향성의 약화를 낳고, 약화된 지향성이 다시 경험의 기회를 축소하는 자기강화적 순환을 통해 진행된다. 파일이 ‘경험의 멸종 순환’이라 명명한 이 관심-경험의 되먹임 구조야말로 세 단계를 관통하는 공통의 이론적 핵이며, 본 연구가 그 확장선상에서 무형유산 영역을 다루는 근거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경험의 멸종’ 개념의 계보는 다음 <표 1>과 같이 정리된다.
이 계보는 ‘경험의 멸종’ 개념이 적용 영역의 확장을 통해 이론적 깊이를 더해 온 궤적을 보여준다. 생태학에서 기술사회로의 이동이 가능했다면, 무형유산 영역으로의 이동 역시 개념적으로 정당하다. 그러나 이 이동이 단순한 용어 차용 이상의 학술적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기존 논의가 포착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이 드러나야 한다.
| 단계 | 연구자 | 시기 | 영역 | 성격 |
|---|---|---|---|---|
| 1 | Pyle | 1993 | 생태학/보존생물학 | 에세이적 개념 제안 |
| 2 | Soga & Gaston | 2016 | 생태학/환경심리학 | 학술적 프레임워크 정식화 |
| 3 | Rosen | 2024 | 기술철학/문화비평 | 기술사회로 개념 확장 |
| 4 | 본 연구 | 2026 | 무형유산/전통예술 | 분석틀 제안 및 재정의 |
본 연구는 무형유산, 특히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 단절 현상이 ‘경험의 멸종’의 적용에 있어 기존 영역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세 가지 특수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첫째, 전승의 체화성(embodiment of transmission)이다. 파일과 소가·개스턴이 말하는 자연 경험은 주로 접촉과 관찰의 차원에 머문다. 그러나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은 부르디외13)가 말하는 아비투스(habitus)의 차원, 곧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새겨지고 몸을 통해 전해지는 체화된 실천의 차원에 놓인다. 판소리 명창의 발성법, 탈춤의 걸음새, 풍물의 쇳소리 감각은 매뉴얼로 전달될 수 없는 체화된 지식이다. 이러한 경험의 멸종은 단순한 접촉 기회의 상실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체현하는 능력 자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둘째, 전승의 관계성(relationality of transmission)이다. 소가·개스턴의 프레임워크에서 ‘인간-자연 상호작용’의 한쪽은 비인간적 자연이다. 그러나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전승은 본질적으로 ‘인간-인간 상호작용’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제적 관계,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집합적 실천, 관객과 연행자 사이의 즉흥적 교감이 전승의 매체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경험의 멸종’은 생태적 서식지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의 해체와 직결된다.
셋째, 제도의 역설적 개입(paradoxical intervention of institutions)이다. 파일과 소가·개스턴의 논의에서 경험의 멸종은 주로 외부적 변화에 의해 촉발된다. 로젠의 논의에서는 기술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형유산의 경우,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제도적 개입 자체가 경험의 질을 변화시키는 독특한 역설이 존재한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협약(2003)과 한국의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정 제도는 살아있는 실천(living practice)을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범주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생적 변화와 적응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이는 스미스14)가 ‘권위적 유산 담론(Authorized Heritage Discourse, AHD)’이라 명명한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소가·개스턴의 프레임워크에는 포함되지 않은 ‘제도적 원인’이라는 제3의 차원을 요청한다.
이 세 가지 특수성, 곧 체화성과 관계성과 제도의 역설은 ‘경험의 멸종’ 개념이 무형유산 영역에 적용될 때 단순 차용이 아닌 이론적 확장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Ⅲ. 무형유산 제도화의 이론적 지형
이 장에서는 앞 장에서 제시한 세 가지 특수성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무형유산 제도화를 둘러싼 세 가지 이론적 축과 한국의 국가유산 법제 전환 논의를 검토한다. 스미스, 하프스타인, 부르디외를 검토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세 이론이 각각 제도(권력)·맥락(유산화 과정)·신체(체화된 지식)라는 상이한 층위에서 전승의 문제를 포착하기 때문이며, 이 선별의 근거는 본 장 5절에서 상술한다.
한국의 국가무형유산 제도가 전승 기반의 유지에 기여해 온 실질적 성과는 부정하기 어렵다. 국가는 보유자 인정에 따른 전승지원금을 통해 예인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단절의 위기에 놓였던 기예의 담지자를 존속시켜 왔으며, 전수교육관 등의 물리적 인프라를 제공하여 전승의 공간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기·예능의 체계적 기록화는 소멸 위기에 처한 종목의 최소한의 자료적 보존을 가능케 하였고, 국가적 지정이라는 상징적 행위는 전통 공연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를 제고하며 그 가치에 대한 공적 관심을 환기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개입이 없었다면 이미 소멸하였을 종목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제도의 보존적 순기능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순기능이 곧 제도가 전승의 질 자체를 온전히 담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호’라는 제도의 목적이 전승의 방식을 어떻게 재편하는가를 비판적으로 되묻기 위해, 본 연구는 스미스의 권위적 유산 담론에 주목한다.
로렌아자 스미스(Laurajane Smith)는 2006년 저서 Uses of Heritage에서 ‘권위적 유산 담론(Authorized Heritage Discourse, AHD)’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비판적 유산학(critical heritage studies)의 이론적 토대를 놓았다.15) AHD란 유산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지배적인 담론 체계이다. 이 담론 안에서 유산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것, 전문가가 식별하고 관리해야 할 것, 다음 세대에 변함없이 전달해야 할 것으로 규정된다.
스미스는 정확히 말하자면 ‘유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16) 스미스의 핵심 주장은 유산이 사물(thing)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라는 것이다. 유산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담론적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 무엇이 유산으로 인정되고 무엇이 배제되는지, 누가 유산의 의미를 해석할 권한을 갖는지는 모두 담론적 투쟁의 결과이다. AHD는 이 투쟁에서 특정한 목소리, 곧 전문가와 관료와 국가에 권위를 부여하고, 유산의 실제 담지자(bearer)인 공동체 구성원의 목소리를 주변화한다.
이 분석은 한국의 무형유산 제도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한 한국의 무형문화재 지정 제도는 ‘보유자(인간문화재)’ 인정, ‘전수교육’ 체계, ‘전형(典型)’ 유지라는 세 축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제도는 전통 공연예술을 ‘살아있는 실천’에서 ‘보존해야 할 전형’으로 범주 전환(re-categorization)하는 담론적 장치로 기능한다. ‘전형’ 유지 원칙은 자생적 변화와 적응을 억제하고, ‘보유자’라는 단일한 권위 구조는 공동체적 전승의 다층성을 축소한다. 본 연구는 경험의 멸종이 외부 환경의 변화가 아닌 보호를 위한 제도 자체에 의해 촉진되는 이 역설을 ‘제도적 단절’이라 명명한다.
발데마르 하프스타인(Valdimar Tr. Hafstein)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협약(2003)의 형성 과정과 그 효과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유산화(heritagization) 개념을 발전시켰다.17) 유산화란 특정한 문화적 실천이 ‘유산’이라는 범주로 편입되는 과정을 가리키며, 하프스타인은 이 과정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프스타인의 분석에서 유네스코 협약은 보호의 도구인 동시에 변환의 장치이다. 특정한 공동체의 살아있는 실천이 ‘유산’으로 등재되는 순간, 그것은 국제적 관리 체계의 대상이 되고, 목록화(listing)와 문서화(documentation)의 논리에 포섭되며, 대표성과 가시성의 기준에 의해 재편된다. 하프스타인은 이를 “목록의 정치학(the politics of listing)”이라 부르며,18) 목록에 등재되는 행위 자체가 문화적 실천의 성격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논의는 한국의 맥락에서 구체적인 함의를 갖는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공연예술은 ‘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그 연행 맥락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마을 축제에서의 즉흥적 연행은 무대 위의 정형화된 시연으로, 공동체적 참여는 관객석에서의 관람으로, 생활 속의 실천은 전시적 재현(re-enactment)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예술 형식 자체가 아니라 그 예술이 경험되는 방식이다.
이것은 파일이 말한 생태학적 의미에서의 ‘서식지 파괴’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파일에게 자연 경험의 멸종은 아이들이 뛰놀던 습지가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시작되었다.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의 멸종’은 연행이 살아있던 마당이 무대로, 동네 굿판이 공연장 시연으로 변하면서 시작된다. 본 연구는 이를 ‘환경적 단절’이라 명명한다. 유랑의 길과 마을굿의 마당과 장터의 판이 해체되면서, 전승 경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마당극이 1970~80년대에 탈춤과 풍물 같은 전통연극 유산을 현대 무대에 새롭게 적용해 온 사례에 대한 논의19), 그리고 전통춤이 상호문화적·동시대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며 무형문화재 지정 범위와 긴장을 빚어 왔는지에 대한 분석20) 또한, 전승의 환경이 변화할 때 예술 형식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과 자본 이론은 ‘경험의 멸종’을 무형유산에 적용할 때 가장 핵심적인 이론적 자원이 된다. 부르디외는 Γ구별짓기┘에서 아비투스를 지속적이면서 전이 가능한 성향 체계로 정의하였다.21) 아비투스는 의식적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새겨지는 것이며, 개인의 인식과 판단과 행위를 구조화하면서도 의식적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는 실천적 감각이다.
부르디외는 문화적 자본을 체화된(embodied), 객체화된(objectified),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형태로 구분하였다.22) 체화된 문화적 자본은 신체에 내재화된 성향과 기술과 감수성으로, 그것의 축적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대리인에 의한 전달이 불가능하다. 체화된 자본은 그것을 획득한 개인의 전유 능력을 넘어 축적될 수 없으며, 담지자와 함께 쇠퇴하고 소멸한다.
부르디외가 체화된 문화자본을 논한 본래의 맥락이 학력자본이나 계급적 취향의 형성이었던 데 반해, 본 연구의 대상은 판소리 발성이나 탈춤의 몸짓과 같은 예능적 기예라는 점에서 양자의 결합은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계급적 취향이든 명창의 성음이든, 체화된 자본은 오랜 시간의 신체적 반복을 통해서만 내재화되고, 획득한 개인의 몸에 묶여 대리인을 통해 전달될 수 없으며, 담지자와 함께 소멸한다는 핵심 속성을 동일하게 공유한다. 부르디외의 이론틀이 무형유산 기예에 적용될 수 있는 근거는 대상의 외형적 유사성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성·신체성·비양도성이라는 구조적 속성의 공유에 있다.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이란 부르디외적 의미에서 체화된 문화적 자본의 세대 간 이전이다. 판소리에서 스승의 소리를 제자가 ‘얻는’ 과정, 탈춤에서 탈을 쓴 몸짓이 도제적 반복을 통해 체득되는 과정, 풍물에서 장단이 몸에 배는 과정은 모두 체화된 자본의 축적이다. 이 자본은 매뉴얼이나 영상으로 객체화될 수 있으나, 객체화된 형태가 체화된 형태를 대체할 수는 없다. 악보를 읽는 것과 소리를 몸으로 내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앎이다.
여기서 ‘경험의 멸종’은 부르디외의 언어로 더 정밀하게 재정의된다. 그것은 체화된 문화적 자본이 세대 간에 이전되지 못하고 소멸하는 과정이다. 현행 제도가 주력하는 ‘기록 보존’과 ‘시연’은 부르디외적 의미에서 체화된 자본의 객체화에 해당하나, 시간성과 신체성과 비양도성이라는 체화된 자본의 핵심 특성은 이러한 객체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상실된다. 기록은 경험의 그림자이지 경험 자체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신체 내부의 지각과 운동을 무용 미학의 핵심으로 이론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바 있는데,23) 이는 체화된 지식이 외부적 기록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차원을 가진다는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 직접 맞닿는다. 본 연구는 체화된 자본의 전승 불가능성이 확대되는 현상을 ‘감각적 단절’이라 명명한다.
위에서 검토한 세 가지 이론적 축은 서구 학계의 논의에 기반한다. 이를 한국의 맥락에 접합하기 위해서는, 한국 무형유산 법제의 전개와 그에 대한 국내 논의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무형유산 보호는 세 차례의 제도적 전환을 거쳐 왔다. 첫 번째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원형(原形)’ 보존이라는 원칙 아래 무형문화재 지정 제도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는 2016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원형’이 ‘전형(典型)’으로 대체되었다. 세 번째는 2024년 5월 국가유산기본법(법률 제19409호)의 시행으로, ‘문화재’라는 명칭이 62년 만에 ‘국가유산’으로 전환되었다.
세 번째 전환을 둘러싸고 국내 학계에서는 다층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강원24)은 국가유산기본법의 제정 배경과 향후 과제를 분석하면서 관련 법률의 지정·등록 절차 정비와 세계유산 보호 절차의 명확화가 시급함을 지적하였다. 전종한25)은 이 법의 시행 맥락을 문화재 관점의 변화, 유네스코 분류체계와의 정합, 국가의 유산 보호 책임 강화로 분석하고, 이 법을 “원형 보존 원칙을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평가하였다. 반면 석광현26)은 유네스코 체계와의 정합성을 검토하면서 “‘문화재’ 용어를 완전히 버릴 이유가 없다”는 회의적 입장을 제시하였다. 또한 김지현27)은 국가유산기본법 시행 이전에 이미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과 한국 무형문화재법을 비교 분석하여, 무형유산의 범위 확대와 전형 중심 보호 원칙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국내 논의에서 주목할 점은 법제 전환에 대한 평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이다. ‘원형’에서 ‘전형’으로, ‘문화재’에서 ‘유산’으로의 전환이 실질적 변화를 수반하는지, 아니면 명칭의 교체에 그치는지에 대한 판단이 연구자마다 다르다. 이 불일치는 본 연구의 분석틀에 비추어 볼 때 의미심장하다. 법제 전환이 전승 현장에서의 ‘경험’의 질을 실제로 변화시키는지, 아니면 제도적 담론의 수준에서만 작동하는지라는 물음이, 곧 ‘경험의 멸종’이라는 개념이 무형유산 정책 분석에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국내 선행연구가 법제의 형식적·법리적 측면에 집중해 온 반면, 본 연구는 이 법제 변화가 보유자와 전수자의 체화된 실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또 다른 층위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이상에서 검토한 이론적 자원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으나, '경험의 멸종'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볼 때 하나의 구조적 연관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대응이 자의적 배치가 아니라 필연적 구조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각 이론이 무엇을 설명하는가보다 무엇을 설명하지 못하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스미스의 AHD는 누가 유산을 규정하고 그 권위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설명하지만 그 규정 아래에서 몸에 새겨진 기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멸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하프스타인의 유산화론은 등재와 목록화가 실천의 맥락을 재편하는 과정은 설명하지만 그 재편의 결과로 개인의 신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며, 부르디외의 체화된 자본론은 체화된 지식이 담지자와 함께 소멸하는 메커니즘은 설명하지만 그 소멸이 왜 특정한 제도적 조건 아래에서 가속화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세 이론은 각각 권력·맥락·신체라는 서로 다른 층위를 포착하되 나머지 두 층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적·환경적·감각적 단절이라는 세 차원은 연구자가 임의로 설정한 세 항목이 아니라, 세 이론이 서로의 설명 공백을 메우며 맞물릴 때 비로소 완결되는 상호보완적 구조의 산물이다. 차원이 이보다 적으면 어느 한 층위의 소멸 메커니즘이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다는 점에서, 권력·맥락·신체의 세 층위는 전승 현상을 포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성이 된다.
스미스가 ‘누가 유산을 정의하는가’를 묻는다면, 하프스타인은 ‘유산화가 무엇을 변화시키는가’를 묻고, 부르디외는 ‘전승에서 진정으로 전달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 세 질문은 본 연구의 분석틀에서 아래 <표 2>와 같이 각각 제도적 단절, 환경적 단절, 감각적 단절의 차원에 대응한다.
| 이론 | 핵심 문제 | '경험의 멸종'과의 접점 | 본 연구의 분석 차원 |
|---|---|---|---|
| Smith (AHD) | 유산의 의미를 규정하는 권력 | 제도가 경험의 질을 변환 | 제도적 단절 |
| Hafstein (유산화) | 등재·목록화가 실천을 변환 | 전승의 맥락이 재구성 | 환경적 단절 |
| Bourdieu (habitus) | 체화된 지식의 비양도성 | 체화된 자본의 이전 실패 | 감각적 단절 |
중요한 것은, 이 세 차원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강화한다는 점이다. 제도적 단절은 환경적 단절을 촉진하고, 환경적 단절은 감각적 단절을 가속화하며, 감각적 단절은 사회적 관심과 지향성의 상실을 통해 다시 제도적 단절을 심화시킨다. 이 순환 구조가 곧 전통 공연예술 영역에서의 ‘경험의 멸종’ 메커니즘이며, 다음 장에서 정식화할 분석틀의 핵심이다.
Ⅳ. 분석틀 제안: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의 멸종’
2장과 3장의 논의를 종합하여, 본 연구는 전통 공연예술 맥락에서의 ‘경험의 멸종’을 다음과 같이 재정의한다.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의 멸종’이란, 체화된 기예의 전승이 이루어지던 관계적·환경적·제도적 조건이 해체됨으로써,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체현하며 전달하는 능력 자체가 세대 간에 이전되지 못하고 비가역적으로 소멸하는 과정이다.
이 정의는 기존 논의와 세 가지 지점에서 구별된다. 첫째, ‘경험’의 범위를 접촉이나 관찰이 아닌 체화된 실천으로 한정한다. 둘째, 멸종의 원인을 외부 환경뿐 아니라 제도적 개입까지 포함한다. 셋째, 멸종의 대상을 개인의 경험이 아닌 세대 간 전승이라는 집합적 과정으로 설정한다.
이 재정의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개념적 구분이 추가로 요구된다. 첫째, ‘경험’을 둘러싼 세 층위, 곧 전승자가 몸으로 익힌 기예와 감각이라는 경험 자체, 스승·동료·관객과의 관계 및 연행의 장이라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그리고 그 조건을 관리하고 변화시키는 제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은 첫 번째 층위 그 자체라기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층위가 첫 번째 층위의 세대 간 이전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가, 곧 ‘경험이 전승되는 조건’이다. 감각적 단절이 경험 자체의 소멸 국면을, 환경적 단절이 경험의 조건의 해체를, 제도적 단절이 그 조건을 재편하는 제도의 작용을 각각 가리킨다는 점에서, 세 차원은 이 세 층위에 각각 대응한다.
둘째, 전승 방식의 ‘변화’와 경험의 ‘멸종’을 구별하는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연행 장소가 마당에서 공연장으로 옮겨가고 구전 중심의 학습에 영상 자료가 더해지는 현상은 그 자체로는 경험의 재구성일 수 있으며, 모든 변화가 곧 멸종은 아니다. 본 연구는 양자를 가르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대체 가능성으로, 새로운 전승 방식이 기존 경험의 핵심 기능, 곧 체화된 감각의 세대 간 재생산을 수행할 수 있는가이다. 둘째는 가역성으로, 해체된 전승 조건이 필요할 때 재구성될 수 있는가이다. 셋째는 이전의 지속 여부로, 경험의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체현하는 능력이 다음 세대로 이전되고 있는가이다. 이 세 물음에 모두 부정적으로 답하게 될 때, 그 과정은 ‘변화’가 아니라 ‘멸종’으로 판별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영상 자료의 활용이나 무대화 자체는 경험의 질적 재구성에 해당할 수 있으나, 도제적 관계 속에서만 이전되는 성음이나 발디딤의 감각처럼 대체 불가능하고 비가역적이며 이전이 중단된 차원이 존재할 때 비로소 ‘경험의 멸종’을 말할 수 있다.
본 연구가 제안하는 분석틀은 세 가지 차원의 단절로 구성된다. 각 차원은 2장에서 검토한 소가·개스턴의 원인 구조를 전통 공연예술 맥락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며, 3장에서 검토한 이론적 자원과 각각 대응한다.
감각적 단절이란 체화된 기예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 이론적 기반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와 체화된 문화적 자본이다. 체화된 자본은 시간적 투자를 요구하고, 대리인에 의한 전달이 불가능하며, 그것을 획득한 사람의 몸에 묶여 있다. 따라서 전승자가 사라지면 그 자본은 함께 소멸한다.
전통 공연예술에서 감각적 단절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난다. 도제식 학습(입전·구전)의 소멸로, 스승의 몸짓을 곁에서 수년간 모방하며 체득하던 전수 방식이 학원식 교육과정으로 대체되고 있다. 위계적 전수 체계의 형식화로, 보유자-전수교육조교-이수자로 이어지는 공식 체계가 체화된 전수의 깊이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감각적 기억의 단절이다. 판소리의 성음(聲音), 탈춤의 발디딤, 풍물의 쇳소리 감각 등 언어화·기록화가 불가능한 체화된 지식이 전승되지 못한 채 소실된다.
이러한 양상의 현황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25년 2월 기준 국가무형유산 161종목에 인정된 보유자는 168명에 불과하며, 22개 공동체 종목을 제외한 종목 가운데 상당수가 보유자 1명 이하이거나 보유자 없이 보유단체(71단체)만으로 전승을 유지하는 종목도 적지 않다.28) 이는 체화된 자본의 담지자가 물리적으로 소멸하고 있으며, 그 이전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때에도 보유자 수의 감소가 곧 전승의 실질적 단절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가령 보유자가 장기간 인정되지 않은 종묘제례악의 경우에도 보존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이수자와 전수자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보유자 인정 여부라는 제도적 지표와 체화된 자본이 실제로 이전되는 전승의 활성도가 구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연구가 ‘감각적 단절’로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보유자 수의 감소 그 자체가 아니라 몸에서 몸으로 이어지던 전승의 질적 조건이 약화되는 국면이며, 앞의 통계는 그러한 국면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적 배경으로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아울러 종묘제례악과 같은 의례음악 종목은 본 연구가 중심 사례로 삼는 민간 예능 종목과 전승 환경이 상이하므로, 이러한 종목에서 세 차원의 단절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활성화된 교육과 활동이 체화된 경험의 질적 전승까지 담보하는지는 후속 연구의 경험적 검토 과제로 남긴다.
환경적 단절이란 전승이 일어나던 물리적·사회적·문화적 맥락 자체의 소멸을 가리킨다. 여기서 ‘환경’은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관계와 시간적 리듬을 포함한 전승의 맥락 전체를 뜻하며, 그 점에서 이 차원은 ‘전승 맥락의 단절’로 바꿔 부를 수도 있다. 본 연구는 소가·개스턴의 원 프레임워크에서 서식지 파괴라는 환경적 원인과의 개념적 대응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적 단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되, 그 내포를 전승의 서식지, 곧 관계적·시간적 맥락으로 확장하여 정의한다. 그 이론적 기반은 파일의 원래 개념과 하프스타인의 유산화 비판이다. 자연에서의 ‘경험의 멸종’이 서식지 파괴에서 시작되듯,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의 멸종’은 전승의 서식지, 곧 연행이 살아있던 공간과 관계의 해체에서 시작된다.
전통 공연예술에서 환경적 단절은 네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유랑의 종식으로, 남사당패와 걸립패 등 유랑 예인 집단의 이동이 중단되면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던 공연의 회로가 소멸하였다. 둘째는 마을굿의 소멸로, 농경 주기와 결합되어 공동체적으로 반복되던 의례적 연행의 맥락이 해체되었다. 셋째는 장터·마당 문화의 해체로, 관객과 연행자가 같은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교감하던 ‘판’의 구조가 프로시니엄 무대의 관객-연행자 분리 구조로 전환되었다. 넷째는 공동체적 리듬의 상실로, 계절과 농사와 관혼상제에 맞물려 자연스럽게 발생하던 연행의 시간적 구조가 공연 일정표에 의해 관리되는 구조로 변환되었다.
다만 이상의 서술이 과거의 전승 환경을 이상화하거나 현재의 제도와 기술을 일방적으로 단절의 원인으로만 규정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유랑과 마을굿과 장터의 판에는 풍부한 감각적 경험이 응축되어 있었으나, 동시에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강한 위계, 장기적인 경제적 종속, 특정 집단에 국한된 참여의 제한과 같은 문제 또한 내재해 있었다. 반대로 전수교육관을 통한 학습 기반의 안정화, 영상 기록에 의한 보조 학습, 접근성의 확대와 전승 참여자의 저변 확대, 종목 간 창작·협업 기회의 증가와 같은 오늘날의 제도적·기술적 조건은 그 나름의 순기능을 담당해 왔다. 따라서 본 연구가 ‘환경적 단절’로 포착하려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행 전반에 대한 가치 평가가 아니다. 그것은 전승 환경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가와 별개로, 무엇이 사라졌으며 그 가운데 무엇이 다른 방식으로 대체될 수 없는가를 구별해 내는 작업이다. 같은 공간에서 관객과 연행자가 즉흥적으로 교감하며 형성하던 판의 감각은 매개된 기록이나 정형화된 교육과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경험의 차원에 속하며, 환경적 단절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이 대체 불가능한 차원의 축소이다.
전통 공연예술 종목 가운데 상당수는 보유자의 고령화와 후계 단절로 인해 자연적 소멸의 위험에 실제로 노출되어 있었으며, 국가 지정과 전승지원 체계는 이러한 종목의 명맥을 물리적으로 존속시키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해 왔다. 제도가 없었다면 담지자의 사망과 함께 종목 자체가 소멸하였을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보존 제도의 순기능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보호’의 논리가 살아있는 실천을 고정된 보존 대상으로 전환하는 국면에서 발생하는 역설이다. 제도적 단절이란 이처럼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제도적 개입이 살아있는 실천을 고정된 보존 대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 이론적 기반은 스미스의 AHD이다. 이것은 소가·개스턴의 프레임워크에는 포함되지 않은, 본 연구가 추가하는 제3의 원인 차원이다.
전통 공연예술에서 제도적 단절은 네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전형(典型)’ 유지 원칙의 역설이다. 지정 당시의 형태를 기준으로 삼는 보존 패러다임이 예술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혁신을 억제한다. 2016년 ‘전형’ 개념 도입 이후에도 실질적 변화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29) 이러한 문제의식은 전통 공연예술 내부에서도 제기된 바 있는데, 가령 시나위를 즉흥과 창작 중심의 음악 개념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30)는 제도가 부과하는 ‘전형’의 고정성과 살아있는 음악 실천의 변화 가능성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준다. 둘째, 보유자 중심 체계의 구조적 한계로, 단일 보유자에게 전승의 권위가 집중됨으로써 공동체적 전승의 다양한 갈래가 ‘정통’과 ‘비정통’으로 위계화된다. 셋째, ‘살아있는 실천’에서 ‘보존 대상’으로의 범주 전환이다. 넷째, 전시적 재현의 확대로, 공동체 내부의 연행이 외부 관객을 위한 시연·발표로 전환되면서 연행의 목적과 맥락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소가·개스턴31)의 프레임워크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여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피드백 루프의 발견이었다. 본 연구의 세 차원 분석틀 역시 세 가지 단절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강화하는 순환 구조를 형성함을 주장한다.
이 순환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제도적 단절(AHD의 작동, 전형의 고정)과 환경적 단절(전승 맥락의 해체), 감각적 단절(체화된 자본의 이전 실패)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전승 경험의 총체적 감소를 초래한다. 이 감소는 다시 공동체 정체성의 위기, 사회적 관심과 지향성의 상실, 정책 지원의 관성화를 낳고, 이 결과들이 다시 세 가지 단절을 강화한다.
이 구조를 도식화하면 [그림 1]과 같다. 이 순환의 핵심 경로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제도적 단절이 환경적 단절을 촉진하는 경로이다. 문화재 지정의 ‘전형’ 유지 원칙은 연행의 장소와 방식을 공식화하고, 마을 마당에서의 자연발생적 연행은 지정된 전수교육관에서의 교육으로 대체된다. 제도가 전승의 ‘서식지’를 변환하는 것이다. 둘째, 환경적 단절이 감각적 단절을 가속화하는 경로이다. 전승의 맥락이 변하면 체화된 지식의 전달 방식도 변한다. 스승의 곁에서 생활하며 체득하던 것이 주 2회 수업으로, 공동체의 리듬 속에서 몸에 배던 것이 교육과정의 스케줄 속에서 학습되는 것으로 바뀐다. 셋째, 감각적 단절이 지향성 상실을 거쳐 제도적 단절을 심화시키는 경로이다. 체화된 경험이 줄어들면 전통 공연예술에 대한 감정적 유대와 관심이 약화되고, 젊은 세대가 전통 공연예술을 ‘박물관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 전승 참여자는 더 줄어들며, 정책은 ‘보존’의 논리를 더 강화하게 된다.
이 악순환에는 소가·개스턴이 인용한 ‘변화하는 기준선 증후군’도 작동한다. 각 세대의 전승자는 자기 세대의 전승 환경을 ‘정상’으로 인식한다. 전수교육관에서 배운 세대는 마을 마당에서의 전승을 알지 못하고, 영상 자료로 학습한 세대는 도제식 전수의 깊이를 경험하지 못한다. 기준선 자체가 세대를 거치며 하락하기 때문에, 경험의 질적 변화는 당사자들에게 자각되지 않는다.
본 연구의 분석틀이 소가·개스턴32)의 프레임워크와 갖는 차이는 <표 3>과 같다.
| 구분 | Soga & Gaston(2016) | 본 연구(2026) |
|---|---|---|
| 경험의 정의 | 자연과의 물리적 접촉 | 체화된 기예의 전승적 실천 |
| 상호작용 유형 | 인간-자연 | 인간-인간 |
| 원인 구조 | 2차원 (기회·지향성 상실) | 3차원(감각·환경·제도 단절) |
| 제도의 역할 | 분석 외부 | 핵심 원인 차원 |
| 이론적 대화 | 생태학, 환경심리학 | Bourdieu, Smith, Hafstein |
| 피드백 루프 | 감정·태도→기회 | 제도→환경→감각→지향성→제도 |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제도적 단절이라는 제3의 원인 차원의 추가이다. 소가·개스턴의 프레임워크에서 경험의 멸종은 환경 변화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제도는 해결책의 영역에 놓인다. 그러나 무형유산의 경우 제도는 해결책인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보호 제도가 역설적으로 경험의 질을 변화시키는 이 구조적 특수성이, 본 연구의 분석틀이 기존 프레임워크에 대해 갖는 이론적 기여이다.
본 연구의 분석틀이 실제 정책 현상을 어떻게 조명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른 ‘문화재→유산’ 명칭 전환을 간략히 검토한다. 이는 분석틀의 적용 가능성을 시사하기 위한 예비적 논의이며, 본격적 사례 분석은 후속 연구의 과제이다.
이 전환을 본 연구의 세 차원 분석틀로 바라보면 양면적 해석이 드러난다. 한편으로 명칭 변경은 또 다른 제도적 단절일 수 있다. 62년간 ‘문화재’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제도적 맥락, 곧 보유자들의 자기 정체성과 전수 교육의 언어와 행정 체계의 관행은 하나의 제도적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 명칭이 행정적 결정에 의해 일괄 변경되는 것은 제도적 단절의 또 다른 사례일 수 있으며, 전종한33)이 지적하듯 법 시행 과정에서 현장의 준비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문화재(文化財)’의 ‘재(財)’는 ‘재화(財貨)’의 ‘재’로, 살아있는 실천을 ‘물건’의 범주에 놓는 언어적 프레이밍이며, 이는 스미스가 말하는 AHD의 전형적 작동 방식이다. 석광현34)이 “‘문화재’ 용어를 완전히 버릴 이유가 없다”고 지적할 때, 그것은 법적 안정성과 국제적 정합성의 논리에서이다. 그러나 ‘경험의 멸종’ 프레임워크의 관점에서 보면, ‘재(財)’라는 명칭 아래 62년간 전통 공연예술이 ‘보존할 물건’으로 취급되어 온 것 자체가 체화된 경험의 질을 구조적으로 변화시켜 온 원인일 수 있으며, 이 관점에서 ‘유산’으로의 전환은 경험의 멸종을 늦추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 양면적 해석은 제도적 단절이라는 차원이 무형유산 분석에서 갖는 복합성을 잘 보여주며, 본 연구의 분석틀이 정책 변화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분석적 질문을 구조화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Ⅴ. 결론 및 후속 연구 방향
본 연구는 생태학에서 출발한 ‘경험의 멸종’ 개념을 무형유산 연구, 특히 전통 공연예술의 전승 단절 분석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파일, 소가·개스턴, 로젠의 세 단계 계보를 추적하고, 스미스의 AHD, 하프스타인의 유산화 비판,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및 체화된 자본 이론을 토대로, 전통 공연예술에서의 ‘경험의 멸종’을 재정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감각적 단절, 환경적 단절, 제도적 단절이라는 세 차원의 분석틀과 피드백 루프 구조를 제안하고,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을 예비적 적용 사례로 검토하였다.
본 연구의 이론적 기여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경험의 멸종’ 개념의 적용 영역을 생태학과 기술사회 비평에서 무형유산 연구로 확장하였다. 둘째, 기존 프레임워크에 ‘제도적 단절’이라는 제3의 원인 차원을 추가하였다. 보호 제도가 역설적으로 경험의 멸종을 촉진한다는 발견은 무형유산 고유의 구조적 특수성이다. 셋째, ‘경험’의 개념을 물리적 접촉에서 체화된 실천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부르디외의 실천 이론과 ‘경험의 멸종’ 프레임워크를 접합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틀은 무형유산 정책의 방향에 관한 시사점 또한 제공한다. 감각적 단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록·시연 중심의 지원을 넘어, 도제적 접촉의 절대량을 보장하는 심화 전수 지원과 일상 속에서 기예가 실천되도록 하는 생활전승 정책이 요구된다. 환경적 단절에 대해서는 전승이 일어나는 맥락 자체를 복원하는 전승환경 정책, 곧 마을·마당형 연행 공간의 재구성과 지역 축제·의례와의 재결합이 시사된다. 제도적 단절에 대해서는 보유자 개인 중심의 인정 체계를 공동체 중심의 지원 체계로 다변화하고, ‘전형’ 유지 원칙을 전승 공동체의 자생적 변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유연화하는 과제가 도출된다. 이러한 방향들은 본 분석틀이 정책 설계의 진단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론적 탐색 논문이며, 분석틀 자체의 경험적 검증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후속 작업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고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안고 있으며, 이 한계들 각각은 곧 이어질 후속 연구의 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첫째, 경험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가 제안한 분석틀과 피드백 루프 구조는 문헌 검토에 기반한 이론적 구성이며, 실제 전승 현장에서 이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경험적 확인은 본고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점은 후속 사례 연구를 통해 단계적으로 검증해 나가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는 유랑형 전승의 대표 사례인 남사당놀이와 정착형 공동체 전승의 사례인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의 전승 양상을 본 분석틀로 비교 분석하는 별고를 준비하고 있다. 보유자 및 전수자의 생애사 자료를 통해 감각적·환경적·제도적 단절이 실제로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지를 질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보유자·이수자·전수자에 대한 반구조화 생애사 인터뷰를 통해 세 차원의 단절이 전승 과정에서 실제로 경험되는 양상을 추출하고, 전수교육 현장에 대한 참여관찰로 감각적 전수의 조건을 기록하며, 종목별 사례분석을 통해 분석틀의 각 차원과 피드백 루프의 작동 여부를 대조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 차원의 단절은 각각 관찰 가능한 지표, 곧 도제적 접촉 시간의 변화, 연행 맥락의 유형, 인정·지원 제도의 개입 방식 등으로 조작화될 수 있다.
둘째, 전통 공연예술 내부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다. 서론에서 밝혔듯 본 연구의 논의는 민간 전승자 중심의 예능 종목을 중심 사례로 전개되었으며, 궁중음악·풍류음악·기능종목 등 전승 환경과 제도적 조건이 상이한 영역에서 분석틀이 어떠한 양상으로 적용되는지는 별도의 경험적 검토가 요구된다. 궁중 음악, 민속극, 의례적 연행, 놀이 문화 등 하위 범주에 따라 전승의 양상과 단절의 메커니즘은 상이할 수 있으며, 본 연구의 분석틀이 이러한 다양성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무형유산 제도, 유네스코 대표목록 등재 체계를 비교하는 국제 비교 연구 또한 별고를 통해 다루기로 한다.
셋째, ‘경험의 멸종’에 대한 대응 방향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 제도적 단절이 핵심 원인이라면 그에 대한 정책적·실천적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리고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이 전승 현장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을 추적하는 작업은 후속 연구의 핵심 과제로 남겨둔다. 이상의 후속 연구들은 본고가 제안한 이론적 분석틀이 단발적 제안에 그치지 않고, 일련의 경험적 검증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련되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