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Cultural Policy
Korea Culture & Tourism Institute
Article

전문 지휘자의 등장 이후 오케스트라 지휘의 발달

박은승1
Eun Seung Park1
1박은승_부산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강사
1Lecture Department of Music Education, Busan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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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Oct 10, 2021; Revised: Nov 24, 2021; Accepted: Dec 02, 2021

Published Online: Dec 31, 2021

국문초록

본 논문은 19세기 전문 지휘자의 등장에 따른 오케스트라 지휘의 발달 과정과 20세기 지휘의 발달사를 통해 앞으로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에 대한 시사점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헌 연구를 통해 19세기 전문 지휘자가 등장하기까지의 배경과 전문 지휘자의 등장에 따라 발달해 온 오케스트라 지휘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였다. 20세기의 지휘 양상을 분석함에 있어서는 아르농쿠르가 제시한 두 가지 관점인 옛음악을 현대적 시각으로 연주하는 것과 그 시대의 시각에서 작품에 충실한 해석을 하는 유형을 기준으로 나누어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분류하고, 지휘자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지휘자를 기준을 가지고 나누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시도를 통해 20세기에 이루어진 지휘자의 활발한 활동 양상과 21세기 들어서며 달라진 모습에 대해 정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0세기에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지휘자들과 함께 성장하며 여러 시도를 해왔고, 21세기에 접어든 현재는 스타 지휘자에 열광하는 시기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카라얀, 번스타인, 솔티의 사망 이후에 이들만큼 지휘자로서의 큰 영향력을 가진 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케스트라 역시 교육기관·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며, 이제 일정 비율에서는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고 있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20세기 후반 음악의 사회적 모델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와 같이 오케스트라는 사회적으로 교육기관으로서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관람하던 청중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는 발달 과정에서 늘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음악 역사 속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는 앙상블 일원인 건반 주자가 이끌어가기 시작해서 현악기 주자로, 작곡가에게로 바톤이 넘어가며,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21세기에는 단순히 청중의 입장에 있던 대중들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보다 더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을 통해 시민 주도의 다양한 형태의 오케스트라 운영과 다양한 지휘의 모습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21세기에는 지휘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지 기대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reveal the future implications for orchestral performances through the development of orchestral conducting following the appearance of professional conductors in the 19th century and its development in the 20th century.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orchestral conducting prior to the emergence of professional conductors and their appearance in the 19th century was studied. In analyzing the conducting aspects of the 20th century, we examined the features of conductors who were classified according to two perspectives presented by Harnoncourt: playing old music from a modern perspective and a faithful interpretation of the work from its respective era. Entering the 21st century, the period of enthusiasm for star conductors seems to have passed, although in the previous century, attempts were made to develop the orchestra by various conductors. Following the deaths of Karajan, Bernstein, and Solti, contemporary conductors have lacked influence compared to them. In addition, the orchestra plays a role as an educational and a public institution; and now, partly, the function of the orchestra is changing and being incorporated into our lives. Due to various factors, such as the expansion of culture and arts education in schools, arts instruction and the development of various media, orchestra performance is expanding to enable many people, who were simply in the audience of an orchestra performance, to directly perform and participate.

Orchestras and conducting were constantly at a crossroads in their development. In the history of music, the responsibility of orchestra conductor has changed according to the times, beginning with the keyboard player, who is a member of the ensemble, to the string player and composer. In the 21st century, the public’s participation in the orchestra, which was simply as the audience, is becoming broader. It is anticipated that various forms of citizen-led orchestral performances and conducting will spread throughout more active culture and arts policies. In the 21st century, conducting is expected to evolve into another form.

Keywords: 전문 지휘자; 지휘의 발달; 오케스트라의 역사; 오케스트라 지휘
Keywords: professional conductor; development of conducting; history of orchestra; orchestra conducting

Ⅰ. 서론

음악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문명사회에서부터 노동을 하거나 여가를 즐기거나 종교의식을 행할 때 음악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이렇게 함께 음악을 연주하거나 즐기는 과정에서 이를 이끌어 나가는 이가 필연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오케스트라 역시 초기 형성에서부터 발달해가는 과정에서 지휘자의 존재가 요구됐음은 분명하다(박은승, 2017).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음악의 역사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형성된 과정과 지휘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고, 19세기에 전문 지휘자가 등장하기까지의 배경과 전문 지휘자의 등장에 따라 발달해 온 20세기 오케스트라 지휘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였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오래된 족보의 형태와 비슷하다. 17세기와 18세기 전반의 약 150년 동안에 걸쳐 1750년경에 비로소 오늘날의 구성형태를 갖춘 오케스트라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Paul Bekker, 2010). 오케스트라의 형태가 갖춰진 바로크 시대에는 기악 합주가 활발하게 연주되며, 점차 지휘가 중요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주로 건반 주자가 음악을 이끌어가는 지휘자의 역할을 하였다. 18세기 후반 고전 시대에는 콘티누오 악기들이 사라지며, 건반 주자들이 맡았던 지휘자의 역할이 수석 바이올린 주자에게 넘어갔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 시대부터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시대까지 지휘자의 전문적인 지휘는 확립되지 않았다. 19세기로 들어오면서 관현악법의 발전, 템포의 변화, 음색의 민감한 조화 등 음악의 다양화로 인하여 그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말없는 암묵적인 이해위에 음악을 만들어 가던 종래의 연주 방식이 단원들의 음악적인 사상을 통일하고 지시를 내리는 리더, 곧 곡의 해석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새로이 도입된 가느다란 지휘봉(baton)을 손에 든 전문적인 지휘자가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한동혁, 2011)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1850년대 전문적인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는 자신의 역량을 펼치게 되었다. 이와 맞물려 사회·경제적 발달로 늘어난 중산층과 도시 거주자들을 위한 다양한 연주회의 확산은 오케스트라의 발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사는 당시의 시대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함께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20세기에 등장한 녹음과 기술의 발전은 클래식 음악 세계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고, 다양한 음악이 대중들에게 더 손쉽고 빠르게 전달이 가능하였다. 세계 각지에서 오케스트라단이 형성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지휘자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지휘자들은 각자의 개성과 음악적 해석을 가지고 전 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오케스트라의 연주 레퍼토리는 점차 표준화되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현대 음악은 청중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옛음악들이 음악회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렇기에 본 연구에서는 옛음악에 대해 아르농쿠르가 제시한 두 가지 관점인 옛음악을 현대적 시각으로 연주하는 것과 그 시대의 시각에서 작품에 충실한 해석을 하는 유형으로 나누어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분류하고, 지휘자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20세기에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지휘자들과 함께 성장하며 여러 시도를 해왔고, 대중적인 인기를 기반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펼친 지휘자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는 20세기에 비해 영향력을 과시하던 지휘자의 수는 줄어드는 다소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오케스트라가 교육기관·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며, 이제 일정 비율에서는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관람하던 청중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시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과 지원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Ⅱ. 19세기 후반 전문 지휘자의 등장

1. 전문 지휘자의 등장 배경

지휘의 근대적 방식은 17세기 탁투스(tactus) 개념과 함께 발전되어 나왔다. 이때의 지휘란 손을 내리고(depressio), 올리는(elevatio) 단순한 것이었다(홍정수·조선우, 2009). 바로크 시대 초기에는 통주저음 악기인 건반 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하였는데, 기악 음악의 발전과 함께 18세기 초기·중기의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수석 바이올린 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당시의 음악들은 작은 규모의 합주를 위한 곡들과 단순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루어진 곡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의 지휘자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낭만음악 시대로 분류되는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오케스트라 규모가 커지면서 작곡자들이 거의 모든 지휘를 맡았고, 19세기 중반까지도 지휘는 작곡자들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나 엑토르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1803-1869),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등의 지휘자 겸 작곡가들은 연주를 엄격히 통제했을 뿐 아니라, 작품에 독특한 해석의 관점을 세움으로써 개성과 감수성을 중시했던 19세기 음악의 전형적 특징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지휘자는 커다란 영향력으로 인해 당시 인기 없던 작곡가와 그 작품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멘델스존은 당시 잊혀졌던 J. S. 바흐의 음악을 부활시켰다. 지휘자는 이처럼 작곡가·연주자·청중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맡음으로써 다른 음악가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음악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전문적인 지휘자에 대한 필요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베토벤의 작품을 비롯하여 이 시기의 오케스트라1) 악보는 작곡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해석해내는 능력을 갖춘 전문적인 지휘자2)가 필요하게 되었다.

라이하르트(Johann Friedrich Reichardt, 1752-1814)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로 1775-91년 베를린에서 프레데릭 대제의 궁정 음악장을 지냈으나, 프랑스 혁명에 동정하여 해직되었다. 그의 작곡은 독일 최초의 가요극 《사랑과 진실 Liebe und Treue(1800)》및 창가극을 포함하여 7백 곡이나 된다. 지휘자로서 그는 지휘봉을 사용하여 지휘한 초기 지휘자 중 한 명(Harold Schonberg, 1967; 박문정, 2005)이다.

프랑스의 지휘자 하베넥(François-Antoine Habeneck, 1781-1849)은 베토벤 음악의 뛰어난 해석자로서의 명성을 떨치며 프랑스 음악계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강도 높은 리허설을 주장하고 지휘대(포디움) 위에서 제왕같이 군림하였으며 합창단 한가운데 서서 오케스트라를 등지고 청중을 바라보면서 지휘를 하였다. 뛰어난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던 하베넥은 바이올린 활로 지휘하는 옛 방식을 고수하였다(박문정, 2005).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19세기 전반의 탁월한 지휘자로, 그의 저서 ╔Le chef d’orchestre, théorie de son art(오케스트라 지휘자, 이론과 실제). 1856╝ 통해 진정한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능력과 자질에 대해 서술하였다.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지휘자로서도 역량을 발휘하며 베를리오즈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인정받게 된다.

바그너 역시 작곡가이면서 지휘자로 영향력을 떨쳤는데, 그의 저서 ╔Über das Dirigieren(지휘법에 관한 논서), 1869╝에서 음악에 대한 본인의 낭만적 시각을 설명하고 있다. 지휘법은 베를리오즈, 바그너와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박문정, 2005). 베를리오즈는 지휘의 기본 테크닉을 확고하게 해 주었고, 바그너는 지휘자로서의 음악적 해석과 섬세함 등을 전수해 주었다. 조프(Hermann Zopff, 1826-1883) 또한 바그너를 따라 디테일이나 드릴보다 영적 통제를 강조하면서 지휘의 깊이를 해석에 두었다. 이들이 남긴 다양한 원칙들이 뷜로(Hans von Bulow, 1830-1894)와 리히터(Hans Richter, 1843-1916)에게 전해졌으며, 그 뒤를 이어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Harold Schonberg, 1967; 박문정, 2005).

2. 최초의 전문 지휘자

전문적인 직업 지휘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Wolfgang Schreiber, 2009). 지휘자의 권한이 점차 커지면서 지휘가 하나의 전문 분야가 되자 청중과 비평가들은 지휘자의 음악적 재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며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산층의 음악 애호가들이 증가하면서 지휘자는 연주자 못지않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문 지휘자의 등장으로 작곡가가 지휘를 맡던 관행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한스 폰 뷜로(Hans von Bulow, 1830-1894)와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가 있다. 독일의 지휘자인 뷜로에 이르러 지휘자가 작곡자와 분리된 영역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런던, 파리, 빈과 같은 대도시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회에서 지휘자는 연주의 중심인물로 간주되어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여러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는 음악적 역량과 다양한 지휘 스타일들이 뿜어내는 효과로 지휘자들은 과거 오페라 가수들이 누렸던 인기를 끌게 되며, 스타 지휘자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뷜로는 1865년 뮌헨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3년 뒤에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무대 위에 올렸다. 그는 1878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를 맡아 오케스트라를 최정상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렸다(Wolfgang Schreiber, 2009). 1880년부터 1885년까지는 마이닝겐(Meiningen)의 법원 오케스트라를 맡아 지휘하며 최초로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 비르투오소’라 할 만한 업적들을 남겼다. [그림 1]은 1882년 마이닝겐 법원 오케스트라로 당시의 연주 장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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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마이닝겐 법원 오케스트라(18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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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는 뷜로가 연주했던 당시의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바흐, 베토벤, 브람스, 요아킴 라프, 쇼팽, 슈베르트, 슈베르트-리스트 및 리스트의 작품을 연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에서 뷜로에 이르러 연주회는 하나의 질서와 통일성을 갖춘 프로그램으로 기획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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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뷜로의 연주회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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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가 하나의 전문 분야가 되면서 청중과 비평가들의 관심은 차츰 지휘 테크닉-매너리즘, 스타일,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쏠리게 되었다. 19세기 말이 되어가면서 런던, 파리, 비엔나 등 큰 도시에서는 음악 전문가와 애호가들이 증가하게 되면서 지휘자는 기교파 연주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지휘자는 악곡 해석의 중심인물로 간주되어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고, 날카롭게 비판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스타일의 지휘자는 뷜로부터 시작되었다. 뷜로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19세기 말경 지도적인 지휘자였다. 그의 지휘는 템포 루바토가 상당히 많았는데, 당시는 낭만주의 즉 주정주의의 전성기로서 청중은 이 연주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만하임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탁월한 것으로서 “그의 지휘봉의 핸들링은 꾸밈이 없고 악보에 충살하면서도 영적 활기를 불러내었다”는 평을 들었다(J. Spizer and Neal Zalslaw, 2002; 박문정, 2005).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는 뷜로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를 이어받았는데,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문 영역으로 확장시킨 핵심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빈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며, 리스트, 브람스, 베르디 등 여러 유명한 작곡가와 함께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또, 바이로이트에서는 바그너의 지휘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 뒤로 라이프치히에서 카펠마이스터4)로 등극했고, 1889년부터 4년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다 부다페스트의 왕립 오페라 하우스로 자리를 옮겼고, 나중에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었다(Wolfgang Schreiber, 2009). 아르투르 니키쉬는 그의 시대와 이후의 많은 사람들에게 지휘자의 원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어수선한 머리 모양과 왜소한 체구를 지닌 인물이었지만, 손목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여러 위대한 오케스트라를 정복하였고, 제왕다운 침착성으로 전 세계의 무대를 발아래에 두었다. 연주회 고정 관객들은, 지휘자의 개성이 자신들이 듣는 음악의 음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보고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니키쉬의 연주로 인해, 해석은 더 이상 작곡가의 주석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해석은 그 자체로 창조적인 행위가 된 것이다(Norman Lebrecht, 2014).

[그림 3]은 1891년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의 모습이다. [그림 4]는 니키쉬가 1913년 리스트의 작품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으로 아주 짧은 무성 영화에 찍힌 장면이다. 사진 속 니키쉬의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는 위엄 있는 눈길과 지휘봉으로 전달하는 단호한 음악적 지시, 그리고 그의 몸짓에서 음악적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니키쉬로 말미암아 전문적인 지휘자의 영역이 확대되고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푸르트벵글러, 쿠세비츠키, 에리히 클라이버, 탈리흐, 앙세르메, 셰르헨 등 그의 뒤를 이은 수많은 지휘자들이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는 브루크너 교향곡에 깊은 확신을 가지고 연주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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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18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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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니키쉬(19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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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오스트리아의 이론가인 솅커(Heinrich Schenker, 1868-1935)가 예견한 바7)와 같이, 오랜 과거로부터 시작된 음악의 변화와 발전이 오케스트라의 전문적인 직업 지휘자의 시대가 되었고, 뷜로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지휘자들을 배출했다(한동혁, 2011: 21). 이제 지휘자는 단순히 박을 젓는 역할이 아니라, 악보를 통해 음악을 재해석하여 재창조하는 역할이 요구되었다. 악기의 개량과 발전, 관현악법의 발달 속에서 오케스트라 편성은 대규모화되었고, 지휘자는 이러한 상황들을 조절하며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창조자로서의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Ⅲ. 전문 지휘자의 등장에 따른 20세기 오케스트라 지휘의 발달

1. 20세기 전반의 음악적 배경

20세기 전반에 들어서서 바그너·말러·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계속해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을 작곡했다.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낭만주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파격적으로 큰 규모의 교향악단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예로 <제8번 교향곡>(일명 <천인> 1907-08)은 8명의 독창자, 2개의 합창단, 대편성 관현악단을 합쳐 모두, 1000명이 무대위에 서게 된다(김문자·노영해·박미경·이석원·허영한, 2001). 이렇게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이 활발하게 연주되며, 이 시기에는 오케스트라가 눈에 띄는 성장을 하게 된다. 전문적인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지휘자와 함께 실력을 쌓아나가며 점차 명성을 얻게 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이 시기에 이루어진 기술의 발달로 축음기를 통한 음악 재생이 가능하게 되었고,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사회 변화가 뒤따랐다. 음악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쇄 기술 이후 가장 큰 혁신이라 할 수 있는 녹음 기술의 발전으로 1902년 이탈리아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가 첫 녹음(Donald J.Grout·Claude V.Palisca·J. Peter Burkholder, 2007)을 하게 된다. 녹음 기술로 인해 사람들은 음악회를 가지 않고도 원하는 음악을 집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연주가, 청중, 작곡가, 지휘자 등 모두가 이전과는 다른 음악 문화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로 인해 새로운 음악으로의 길이 열렸다. 특히 1908년 쇤베르크는 특정한 키에 의존하지 않는 ‘무조음악’을 시작(John Stanley, 2008)하여 이제까지 300여 년간 서양 음악의 근본이 되었던 화성의 개념을 거부하였다. 전통적인 화성과 멜로디가 아닌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20세기 예술은 이제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의 추종자인 제자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른과 함께 이 세 사람은 ‘제2 빈악파’라고 불렸다. 이 시기에 등장한 신고전주의는 18세기의 음악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바탕으로 하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리듬을 가지고 있어 20세기 음악이라는 특징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1919-20)가 최초의 본격적인 신고전주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며(John Stanley, 2008), 파울 힌데미트와 후기의 바르톡, 프랑스 작곡가인 프랑시스 풀랑크, 자크 이베르와 같은 작곡가들도 신고전주의의 경향을 보인다.

작곡가들이 어쩌다가 지휘봉을 들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은 자신의 음악을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부류의 작곡가는 스트라빈스키, 라벨, 크레네크, 코플런드, 루토수아프스키, 헨체 등 상당히 많은 편이다. 힌데미트, 브리튼, 베베른은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렇게 작곡가들이 직접 포디엄에 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직업 지휘자가 음악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연주는 ‘명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고, 해석자 개인의 주관적인 의도는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의지와 그것을 기록한 악보를 집행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낭만주의 교향 음악이 카펠마이스터의 개성을 지나치게 부풀려 놓았다고 비판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2. 20세기 전반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독일 후기 낭만주의 음악과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은 오케스트라에서 화려하고 색채적인 음색을 추구하고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리듬을 사용하는 경향들을 보인다. 이전의 바로크·고전 시대의 음악과는 큰 차이가 있는 이러한 음악들을 연주하기 위해서 보다 더 전문적인 지휘자가 요구되었다. 지휘자에 따라 곡의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19세기 작곡자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악보에 세밀하게 적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으로 이제까지와 달리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즉흥 연주는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지휘자들을 엄격한 고전적 해석을 하는 그룹과, 낭만적 해석을 하는 지휘자를 <표 1>에 정리하고, 지휘자 유형에 따른 해석을 살펴보았다.

표 1. 고전적 해석·낭만적 해석을 하는 지휘자
지휘자 유형 지휘자
고전적 해석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펠릭스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1885-1973)
낭만적 해석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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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격한 고전적 해석을 하는 지휘자들

1900년도에 들어서면서 독일 음악계 나타난 또 한 명의 위대한 지휘자는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이다. 말러는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위대한 지휘자였다. 그는 완벽주의자로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도 똑같은 정확성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으로 살리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해석자로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제스처를 최대한으로 절제하였다(Harold Schonberg, 1967; 박문정, 2005). 말러는 9개의 교향곡과 많은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오페라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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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말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지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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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는 독일의 뛰어난 지휘자이자 작곡가이면서 1895년 ╔지휘론(Über das Dirigieren)╝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객관성을 강조하며 음악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지휘자들과 바그너의 낭만적 스타일을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지휘가 개인의 기교 과시가 아니라 원전 음악 자체에 대한 분석적 절제와 충성심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J. Spizer and Neal Zalslaw, 2002; 박문정, 2005). 바인가르트너는 아마도 20세기 초 30여 년간 활동했던 카펠마이스터 중에서 가장 세련된 자태를 뽐낸 포디엄의 비르투오소였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거울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연구하기도 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역시 독일의 작곡가로 마이닝겐에서 뷜로의 보조 지휘자를 하다 1885년 뷜로가 떠나면서 정식 지휘자가 되었다. 지휘자 슈트라우스는 수십 년간 마이닝겐, 베를린, 빈 등지에서 카펠마이스터로, 나중에는 음악 총감독으로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했다. 포디엄에 서 있는 늙은 슈트라우스를 담은 영상물이 있는데, 그는 간결하고 무표정하게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로 연주자의 해석이 아닌, 악보에 나타난 작곡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재현한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토스카니니는 완벽주의자로서 객관적 해석을 강조하였다. 그는 포디움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서서 몸은 움직이지 않고 오른손의 손목으로 지휘봉을 들고 절제된 테크닉으로 지휘하면서 바인가르트너의 이념을 따랐다(박문정, 2005). 토스카니니는 무엇보다도 곡의 주관적인 해석을 경계했다(Peter Uehling, 2009). 특히 그는 탁월한 지휘 기술과 악단을 통제하여 이끌어나가는 면에서 뛰어나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평가된다. 그는 연주자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그가 원하는 소리를 얻을 때까지 요구를 했고, 아무도 그의 위엄에 도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전, 낭만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페라까지 레퍼토리의 범위가 매우 넓은 지휘자였다.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jr, 1885-1973)는 한 살 아래의 푸르트벵글러처럼 성장 과정과 문화의 뿌리를 19세기에 두고 있다. 그는 1907년 말러를 만나게 되는데, 클렘페러의 재능을 알아차린 말러는 그를 프라하 국립극장의 지휘자로 추천하였다. 클렘페러는 1924년 베를린의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첫 음반을 녹음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이미 토스카니니와 비슷한 현대적인 연주 경향을 드러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을 반낭만주의적인 주도면밀한 음향으로, 영혼을 불태우는 음향으로 해석했다. 진보적인 음악가 클렘페러의 명성은 계속 퍼져 나갔다. 1920년대에 그는 ‘세계 음악 무대에서 최고의 실험가’로 불렸으며, 전형적으로 현란한 몸짓을 좋아하지 않는 지휘자 유형이다. 청중과 음악가를 사로잡는 것은 그의 엄격하고 예리한 단순함이다(Wolfgang Schreiber, 2009). 작곡하는 지휘자 클렘페러는 동료 지휘자들을 두 부류, 즉 작곡 활동까지 함께 하는 지휘자와 ‘ 그저 지휘봉만 휘두르는 지휘자’로 나누었다. 은근히 자질을 고려한 이 구분에는 아마도 초기의 현대적인 지휘자 비르투오소를 바라보는 그의 비판적인 시각이 녹아있는 것 같다. 그는 니키쉬를 ‘음악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지휘자’로 평가하는 편이 옳다고 주장했다. 두 부류의 차이를 지적한 표현이다(Wolfgang Schreiber, 2009).

2) 낭만적 해석을 하는 기교파 지휘자들

낭만적 해석을 하는 지휘자로는 앞에서 언급한 아르투르 니키쉬가 있다. 그는 기교파 지휘자로 명성을 날렸는데, 우아한 외모와 높은 집중력,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연주로 연주자들과 청중들 모두에게서 사랑받은 지휘자이다. 그는 1913년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녹음하여 음반으로 남겼는데, 이것은 교향곡 전체를 녹음한 최초의 음반으로 가치 있는 기록이다. 니키쉬로 말미암아 지휘자 비르투오소, ‘위대한 지휘자’는 국제 무대에서 음악 문화의 길잡이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는 ‘낭만적인 인간미’를 가진 지휘자로 언제나 칸타빌레를 음악의 본질로 생각했다. 지휘자 발터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분석적인 능력, 악보와 작품에 대한 통찰력이고, 둘째는 내면의 귀, 듣고 자각하는 능력이고,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설득력, 즉 음악가들에게 올바른 것을 전달하고 관철시키는 의지와 권위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으며, 다른 음악가들과 그 문제에 대해 교감을 나누었다. 그는 지휘자는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다른 이들과 결합하며 그들의 도움으로 예술을, 음악을 개인적으로 실현해 내는 사람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의 역할은 예술적인 부분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까지 포괄해 내야 한다. 만약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자라면 이 직업에 적합한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20세기 초의 두 축으로는 바그너-낭만주의를 계승한 푸르트벵글러와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들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는 자유롭고 표현력이 강하며 청중들을 파고드는 유연한 연주로 주목 받았다. 바통은 정확하지 않아도 구조, 프레이징, 밸런스, 은밀성 등은 효율적이었다. 작품상의 논리성에 주력하였다. 이들은 모두 고전, 낭만 레퍼토리에 열중하였으며, 현대 곡은 극히 선별하여 연주하였다(박문정, 2005). 낭만음악의 보급에 선구적이었으며, 열정적·낭만적 스타일로 유명했고, 특히 베토벤과 바그너의 작품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1915년 만하임 오페라단의 감독, 1920년 베를린 오페라단의 지휘자(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후임), 1922년 베를린 필의 지휘자(아르투르 니키슈의 후임)가 되었으며, 그 밖에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30), 바이로이트 음악축제(1931-32), 베를린 국립 오페라(1933) 등의 지휘자로 일했다. 그는 자유로우면서도 강력한 표현력을 가지고 청중들의 반응을 끌어내며 자신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3)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선택한 지휘자들

클래식 음악계에서 지휘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자리 중 하나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일 것이다. 1882년 창단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는 현재까지 6명밖에 되지 않는다. <표 2>에서 정리해 보았다.

표 2.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들9)
지휘자 연도
벤야민 빌제와 그의 후계자들 1882-1887
한스 폰 뷜로 1887-1892
아르투어 니키쉬 1895-192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22-1945
대리 지휘자-보르하르트, 첼리비다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45-195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55-1989
클라우디오 아바도 1989-2002
사이먼 래틀 경 2002-2018
키릴 페트렌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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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배경

20세기 중반에는 전자 악기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녹음기·신디사이저·증폭기·변조기·컴퓨터 등 예전에는 악기라고 여기지 않던 것들이 모두 악기로 사용되어 전자적인 변조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20세기 후반에도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1960-1970년대에 많은 작곡가들이 예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 나갔다. 20세기 음악은 신고전주의, 12음 기법, 음렬주의, 전자음악, 아방가르드, 우연성 음악, 미니멀 음악, 다원화 현상을 거치며,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을 열었다(John Stanley, 2008).

20세기에는 19세기에 발전했던 것 같은 오케스트라의 창작적인 자극은 시들해졌던 반면에, 오케스트라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교육기관으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했다. 예술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는 하나의 전문적인 지식에 관한 일이 되었다. 새로운 창작물들의 수량은 옛 시대의 작품들의 엄청난 양에 비해 상당히 적었으며, 또한 전체 관심은 전래된 작품들에 집중되었다. 이렇게 과거를 회고하는 관심이 큰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음악 작품들을 재현시키는 일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Paul Bekker, 2010). 청중들은 과거의 환상 속에 사로잡힐 수 있는 작품들을 선호하고 있다. 새로운 작곡들은 드물게 연주 프로그램에 올려지고, 또한 일반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Paul Bekker, 2010).

이러한 이유에서 다양한 현대 음악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청중은 현대 음악과 괴리된 옛 음악으로의 회귀하여 20세기 음악회장에서 주로 연주되는 음악 프로그램은 바로크·고전·낭만 시대의 음악들로 채워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는 긴 음악사에서 살펴볼 때 이전에는 없던 특이한 현상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청중은 그 시대의 음악을 즐기며, 그들 세대의 대략 30년 이전의 음악은 연주되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현대의 작곡가들은 청중에게 외면 당한 채 오히려 수 세기 전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어떻게 옛음악을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음악적 기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을 이러한 옛음악을 해석하는 지휘자의 관점에 따라 분류해 보고자 한다.

4. 20세기 후반의 지휘자들

지휘자는 그저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입히고 특징을 일깨우고 생명을 불어넣어 음향의 골격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쉽게 밝힐 수 없는 마에스트로 개인의 수수께끼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지휘봉을 잡는 사람에 따라 다른 연주로 다른 음향을 만들어낸다. 이는 예술가가 뿜어내는 화학 작용의 결과다(Wolfgang Schreiber, 2009). 방송과 음반 시장 등 새로운 음악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이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원하는 때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클래식 시장의 규모는 급속히 커졌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스타 연주자, 스타 지휘자들이 탄생하며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카라얀은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상업적인 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한 지휘자로 여겨진다.

어떻게 카펠마이스터가 스타 지휘자로 성장했는지를 한눈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음악 산업, 미디어, 기획사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다. 카라얀은 어떻게 음악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고, 윌포드10)는 전권을 가지고 상세하게 하나하나를 통제했다. 1980년대에 수많은 계약을 성사시키고 막대한 이익을 거둔 세계적인 음악 매니저, 윌포드의 권한은 이제 정점을 넘어 하향세로 접어들었다(Wolfgang Schreiber, 2009). 2020년 8월 윌포드의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CAMI)가 폐업을 한 것은 코로나 19로 인한 영향이 컸겠지만, 비단 그 이유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시기에 많은 오케스트라 연주단체가 생겼는데, 20세기 후반의 큰 특징은 지휘자들이 한 오케스트라 악단에서 오랜 기간 상임으로 함께 하며, 각자의 음악적 재해석을 통해 개성 있는 연주를 펼쳐 나간 것이다. <표 3>은 오랜 기간 함께한 악단과 오케스트라를 정리한 것으로 므라빈스키와 같은 경우는 무려 50년간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지내며 소련의 최고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다. 이처럼 20세기 후반에는 10년 이상 20년, 30년, 50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같은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개성 있는 음악적 표현들이 음반으로 많이 남아 있다.

표 3. 오랜 기간 함께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 베를린 필하모니 1922-1934,
1945-1954
유진 오르먼디(Eugene Ormandy, 1899-1985) 필라델피아 1936-1980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 NBC 심포니 1937-1954
예브게니 므라빈스키(Yevgeny Mravinsky, 1903-1988)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1938-1988
조지 셀(George Szell, 1897-1970) 클리블랜드 1946-1970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 베를린 필하모니 1955-1989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1885-1973) 필하모니아 1959-1973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뉴욕 필하모니 1957-1969
라파엘 쿠벨리크(Rafael Kubelik, 1914-1996)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1961-1979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 1912-1997) 시카고 1969-1991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 뮌헨 필하모닉 1979-1996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1914-2005) LA 필하모닉 1978-1984
귄터 반트(Günter Wand, 1912-2002) NDR 방송교향악단 1982-1991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 베를린 필하모니 1989-2002
사이먼 래틀 경(Simon Rattle, 1955-) 베를린 필하모니 200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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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는 많은 지휘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는데, 이 시기의 레파토리들은 현대 음악이 아닌, 바로크·고전·낭만 시대의 옛음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옛음악을 바라보는 지휘자의 시선에 따라 지휘자를 분류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옛음악을 그대로 현대에서 재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음악이 작곡된 그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원전 연주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첫 번째 관점은 이미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와 똑같은 연주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의 청중은 그 시대와 다르기 때문에 현대적 해석으로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관점에서는 다시 두 부류의 지휘자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토스카니니를 계승하는 고전적인 해석을 하는 지휘자와 푸르트벵글러의 뒤를 잇는 낭만적 해석을 하는 지휘자로 나누어 보았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지휘자를 단순하게 구분 짓기가 어려우나, 이러한 연구를 통해 20세기 지휘자를 조망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당시의 지휘계는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를 중심으로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토스카니니는 음악의 형식을 정확한 연주와 리듬으로 완성시키고, 형식에 맞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한편, 푸르트벵글러는 후기 낭만주의 감성에 사로잡혀 있었고, 음향에 대한 직관과 느낌으로 지휘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개별로 모두 다른 특성이 있는 지휘자를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 쉽지 않으나, 악보를 해석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보았다.

두 번째 관점에서 음악을 해석하는 지휘자들의 주장은 그 시대의 곡들은 당연히 그 시대의 악기와 연주기법에 따라 작곡되었기 때문에 원전악기와 원전연주기법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의 연주는 작곡가가 작곡하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 시대에 실제 연주되던 악기, 그 시대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던 스타일을 최대한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음악을 해석하는 지휘자의 관점을 기준으로 지휘자를 분류하여 <표 4>로 정리해 보았다.

표 4. 음악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른 지휘자 분류
관점 견해 지휘자
옛음악의 현대적 재현
  • - 음악은 그 시대와 밀접한 관련

  • - 현대적 연주

고전적 해석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1885-1973)
한스 스바로프스키(Hans Swarowsky, 1899-1975)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Leopold Stokowski 1882-1977)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08-1989)
로린 마젤(Loren Varencove Maazel, 1930-2014)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 )
낭만적 해석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Wilhelm Furtwängler, 1886-1954)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
레오나르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 1933-2014)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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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던 20세기 후반에 활발한 활동을 한 지휘자들을 출생년도 순으로 정리하여 지휘자들의 특징적인 점들을 통해 지휘의 발달 과정을 알아볼 수 있도록 아래에서 정리하였다.

1) 고전적 해석에 바탕한 옛음악의 현대적 재현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

아도르노는 <대가다운 대가>라는 토스카니니에 대한 소고에서 푸르트벵글러를 맞수로 예의 주시하며, 이탈리아 출신의 토스카니니는 “발전 과정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것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고 표현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현대의 카펠마이스터로서 그가 내세우는 모토는 악보에 대한 충실함, 집중력, 정확함이다(Wolfgang Schreiber, 2009). 토스카니니와 같이 정확한 악보의 표현을 중시하며,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한 고전적 해석을 중시한 지휘자들을 정리하면 <표 5>와 같다.

표 5. 고전적 해석에 바탕한 옛음악의 현대적 재현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
지휘자 특징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08-1989)
  • · 베를린 필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로 자리잡게 하면서, 본인도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가 됨

  • · 베를린 필과 함께한 연주는 무려 1,400회 이상인데, 그 중 녹음된 자료가 800종에 달하며, 기록된 영상물(비디오디스크, 비디오테이프, 영화, DVD 등) 또한 90여종이나 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함

  • · 급변하는 기술력의 성장으로 방송과 음반 시장이 확대되는 시기에 카라얀은 예술에 상업적 요소를 적적히 활용하여,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어냄

  • · 푸르트벵글러가 선율로 분위기를 이끈다면, 카라얀은 리듬. 바꿔 말해 카라얀의 지휘는 점점 정확해지고 갈수록 선이 뚜렷해지면서 그만큼 음악이 격동적인 생생함을 자랑함

  • · 1967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 창설

  • ·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 내는 뛰어난 오케스트라의 심리학자, 형식을 중요시하고 실용과 협력을 강조

로린 마젤 (Lorin Varencove Maazel, 1930-2014)
  • · 미국의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작곡가

  • · 대학에서 철학과 수학을 전공함.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그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

  • · 지휘 신동으로 이름을 알리며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고, 스타 지휘자로 분류됨(9세에 LA필하모닉 지휘, 11세에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 · 1982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감독 겸 수석 지휘자로 활동

  • · 1988년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주빈 메타 (Zubin Mehta, 1936- )
  • · 그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로 집에서는 늘 오케스트라 음악과 실내 음악이 틀어져 있었음

  • · 1958년 미국 리버풀에서 열린 지휘자 콩쿨에 참가하여 1등을 수상하며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

  • · 로열 리버풀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가 되었고, 곧 그는 자신의 능력을 대중에게 알림

  • · 1962년에서 1978년까지 로스앤젤레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다양한 레파토리를 선보임

  • · 1978년부터 12년간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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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낭만적 해석에 바탕한 옛음악의 현대적 재현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

푸르트벵글러는 웅장하고 비극적인 음악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다. 언젠가 아바도는 푸르트벵글러를 가장 존경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푸르트벵글러가 “음악 전체의 의미를 하나하나의 음과 프레이징 속에서까지 정확하게 짚어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Wolfgang Schreiber, 2009). 낭만적 해석을 바탕으로 격정적으로 음악을 표현해내는 지휘자들을 정리하면 <표 6>과 같다.

표 6. 낭만적 해석에 바탕한 옛음악의 현대적 재현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
지휘자 특징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 1933-2014)
  • · 이탈리아의 지휘자로 20세기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힘

  • ·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최고의 연주를 펼쳤으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단원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지휘자로 꼽힘

  • · 1989년에서 2002년까지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활동함

  • · 음악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며, 주도면밀한 자세와 민감하고 예민한 청감각으로 다양한 연주 무대를 깊은 감동으로 만듦

  • · 루체른 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자신의 오랜 염원을 실현함

  • · 1986년에는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책인 ╔음악이 울리는 집╝출판

레오나르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1918-1990)
  • · 미국의 작곡가로 하버드 대학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공부

  • · 1943년 뉴욕 필에서 로진스키 아래에서 부지휘자

  • · 1958년에 뉴욕 필의 상임 지휘자를 맡게 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인정받음

  • · 클래식 음악, 대중 음악,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으로 큰 인기를 얻음

  • · <청소년 콘서트>와 <옴니버스>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TV에서 진행하며 음악에 대한 해설자로서의 능력도 탁월함을 보여줌

  • · 1956년 브로드웨이에서 그가 만든 뮤지컬 <캔디드>가 초연

  • · 최고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음

  • ·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음악 교육적 영향력 발휘,「음악의 즐거움」출판

  • · 옛음악과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넘나들며 쉬지 않고 지휘대에서 오케스트라의 음악가와 청중과 비평가들에게 최면을 걸어 그의 매력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게 만듦(Wolfgang Schreiber, 2009, 236).

  • · 새것과 낡은 것, 미국과 유럽, 이론과 실제, 매체의 소음과 명상, 높은 예술성과 쇼, 이 모든 것을 접합함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1942- )
  • ·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평가

  • ·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에 태어남

  • · 다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일곱 살의 나이에 콘서트를 여는 음악적 천재성을 보임

  • · 1954년 푸르트벵글러는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열한 살짜리 바렌보임은 분명 천재다’라고 칭찬하는 편지를 써주었고, 이 편지는 앞으로 20년 동안 그의 미래를 열어 준 열쇠 역할을 함

  • · 피아니스트로서 전 세계에 명성을 쌓음

  • · 1975년 솔티의 후임으로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14년간 다양한 연주를 펼침

  • · 1981년부터 무려 20년간 바렌보임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지휘자로 탁월한 바그너 해석자로 인정받고 있음

사이먼 래틀 (Simon Rattle, 1955- )
  • · 1974년 존 플레이어 국제 지휘자 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영국의 남부 번머스에서 보조 지휘자로 활동 시작

  • · 1980년 25살의 나이로 버밍햄 시립 교향악단의 제1지휘자로 10년간 활동한 뒤 이곳의 수석 지휘자로 취임. 18년간 그의 엄격하고 철저한 훈련 덕분에 지방의 무명 교향악단은 그 실력을 인정받아 일류 오케스트라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고, 이 공로로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게 됨

  • ·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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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전 연주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

20세기와 21세기 연주회장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현대 작품이 아닌, 과거의 음악, 특히 19세기 음악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현대음악은 청중에게 외면 받고 있고, 그러한 이유로 옛음악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원전 연주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은 음악을 그 음악이 작곡된 그 시대의 눈으로 보고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날 편곡은 지난 세기에서처럼 옛음악이므로 당대화한다는 절대적 필요성에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편곡자의 개인적 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후기 낭만적 이상(理想)을 지녔던 푸르트뱅글러나 스토코프스키 같은 지휘자들은 모든 과거의 음악을 이러한 의미로 연주하였다. 그리하여 바흐의 오르간곡이 바그너적 오케스트라를 위한 관현악법으로 편곡되기도 했고, 수난곡은 거대한 편성의 초낭만적 방식으로 연주되었다(Nikolaus Harnoncour, 2006). 이러한 관점은 옛음악을 현대로 옮겨오는 것으로 이러한 견해를 가진 다양한 지휘자들들 앞에서 살펴보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이러한 견해에 상반된 관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번 장에서는 원전 연주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을 살펴보겠다.

20세기 초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옛음악의 ‘작품에 충실’한 연주가 더욱 요구되면서 중요한 연주가들도 이것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옛음악을 옛음악으로서 어울리게, 그리고 그것이 작곡된 당대의 의미로 연주하는 것이 시도되었다(Nikolaus Harnoncour, 2006). 정격 연주는 원전과 연주의 모든 조건을 상세히 탐구하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니콜라스 아르농쿠르에게 원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음악과 악보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이론적인 저작과 논문, 고악기와 그 연주법, 연주 장면을 묘사한 회화, 예술가와 앙상블의 목록, 연주회 감상기나 여행기, 이 모든 것이 원전에 속했다. 어쨌든 연주에 앞서 연구와 탐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Wolfgang Schreiber, 2009, 506). 작품에 충실한 이러한 해석과 연주를 추구하는 지휘자를 정리하면 <표 7>과 같다.

표 7. 원전 연주에 중점을 둔 지휘자들
지휘자 특징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Nikolaus Harnoncourt, 1929-2016)
  • · 오스트리아의 지휘자로 첼로와 비올라 연주자

  • · 옛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로 그 시대에 연주하던 방법으로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지휘자로 대표적인 원전연주 선구자

  • · 특히 바로크 음악연주에 많은 연구

    1953년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Concentus Musicus Wien)이라는 고음악을 고악기로 연주하는 최초의 전문 앙상블 연주 단체 설립

  • · 고음악을 연주할 때 연주법, 가창법, 음악 해석 등 모든 음악적 요소들을 그 시대 양식으로 재현하려고 노력

  • · 1982년 저서 ╔바로크 음악은 말한다╝출판

조르디 사발 (Jordi Savall, 1941- )
  • · 스페인의 비올(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지휘자

  • · 1974년 고음악 연주단체인 에스페리옹20(Hespèrion XX)을 창단

  • · 1987년 라 카펠라 레알 드 카탈루냐(La Capella Reial de Catalunya)라는 성악 연주 단체를 만들어 활동

  • · 비올라 다 감바와 함께 고음악을 발굴하고 대중적인 연주를 통해 원전 연주의 대중화에 앞장서서 활동

존 엘리엇 가디너 (John Eliot Gardiner, 1943- )
  • · 영국의 지휘자

  • · 1964년 케임브리지에서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조직

  • · 1977년에 원전 악기로 구성된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원전 연주 활동

  • · 바로크 오페라와 합창음악에 주력하다가 1990년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베토벤 이후의 음악으로도 레퍼토리를 확장

톤 쿠프만 (Ton Koopman, 1944- )
  • · 네덜란드의 오르간 및 하프시코드 연주자, 지휘자

  • · 학생일 때 연주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할 만큼 적극적

  • · 1979년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원전 연주 활동

  • · 1992년 암스테르담 바로크 합창단을 만들어서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활동

  • ·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고전음악을 주로 연주

  • · 지휘자로 연주단체를 이끌며, 때로는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연주를 이끔

필립 헤레베헤 (Philippe Herreweghe, 1947- )
  • ·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로 고음악을 대중화시키는데 노력

  • · 의과 대학과 겐트 음악원에 다니며 의학과 음악 공부를 동시에 함

  • · 1970년 원전연주 전문 앙상블팀인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Collegium Vocale Gent)’를 창단(법학이나 의학 전공자들이 중심이 된 이 앙상블팀은 고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 특히 바로크와 그 이전 시대 합창 음악을 주로 연주함. 아르농쿠르의 제안으로 바흐 칸타타 녹음에 참여)

  • · 르네상스 음악과 바로크 음악에 대한 해석이 탁월한 것으로 인정받음

  • ·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60여종의 다양한 음반을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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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21세기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처음부터 어떤 대규모 형태의 풍부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 첫 번째 형태는 르네상스 시대이며, 이어서 18세기 전반에 계속저음 시대, 그 다음은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고전시대, 계속해서 슈베르트,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드뷔시, 스트라빈스키가 있다. 이들 작품들의 역사는 실제로 변화하는 원칙들에 따라 나타나는 많은 악기들의 결합의 역사인데, 이는 발명가적인 음악가의 개성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형태 변화의 역사인 것이다. 특히 음악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를 연결하고, 점점 상승하는 수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집단적인 조직을 형성한다(Paul Bekker, 2010).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그 청중의 역사이다. 오케스트라의 본질이 인간적인 공동체를 바탕으로 세워졌고, 그 법칙들이 이러한 공동체의 각 움직임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케스트라는 가장 중요한 문화 현상들 중에 하나였으며, 현재도 마찬가지며, 미래에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Paul Bekker, 2010). 첼리비다케의 표현처럼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신비”다(Wolfgang Schreiber, 2009). 그의 말처럼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지휘자가 있다.

지휘 비르투오소들의 전형이 점점 내리막길을 갔던 것은 옛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의 유형들처럼, 즉 성악과 기악 비르투오소들이 사라져 갔던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이제 더 이상 지휘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의 전형과 지휘자의 전형은 점차적으로 변화해야만 했으며, 이는 음악 창작적인 생산력의 체계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Paul Bekker, 2010). 20세기 클래식의 대중화와 함께 스타 지휘자에 열광하는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20세기에 스타로 군림하며 비행기로 전 세계 연주회장을 누비며 빽빽한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음반을 내던 많은 지휘자들은 21세기로 접어들며 그 입지가 좁아졌다.

20세기, 21세기 현대 음악이 다양한 시도를 했듯이 오케스트라에서도 많은 지휘자들과 함께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다. 지휘자의 역할 역시 음악의 재해석자, 재창조자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거쳐 이제는 교육자의 역할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아예 지휘자가 없이 연주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그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뿐만 아니라 예술경영적인 관점에서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마케팅과 재원 조성 등의 영역까지 지휘자의 역할로 확대되고 있다.

Edward W. Said(에드워드 사이드, 1935-2003)11)는 “음악은 사회적이다”라는 견해에서 음악과 사회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명백하게 개개인의 연주와 수용, 생산을 전제로 한 예술임을 말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즉, 음악은 가장 내면적이고 사적인 것임과 동시에 공적 맥락에서 작동한다고 말했다(박은승, 2015). 음악을 수용하기만 했던 대중들이 음악에 참여하는 비중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오케스트라를 학교 교육에 도입하는 비중이 높아졌으며, 오케스트라가 사회 교육의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음악이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더 이상 18세기에 있었던 귀족적인 음악애호가들의 응석꾸러기가 아니고, 더 이상 교활한 기업가들의 손아귀에서 상업상의 투기대상이 아니며, 또한 음악가들은 19세기에서와 같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케스트라가 공공 관심의 유용한 대상으로서 인정받는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가 공공의 관심을 위해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Paul Bekker, 2010).

Ⅳ. 결론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오래된 족보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폴 베커의 말처럼 현재의 오케스트라의 체계가 확립되기까지는 많은 상호작용들이 있었고, 150여년간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오케스트라이다. 이 당시의 음악들은 작은 규모의 합주를 위한 곡들과 단순 명쾌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루어진 곡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의 지휘자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낭만 음악 시대가 열리면서 악기의 편성이 다양해졌고,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지고, 관현악법의 발달로 베토벤의 교향곡 작품과 같이 복잡한 작품들을 연주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지휘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스 폰 뷜로는 전문적인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펼치게 되었고, 니키쉬 역시 탁월한 지휘 역량으로 스타 지휘자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산업의 발달로 경제력이 생긴 중산층과 도시민들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게 되면서 다양한 연주회들이 생겼고, 이러한 현상은 오케스트라의 확대로 연결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클래식 음악 세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기술적 발전으로, 녹음과 방송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클래식은 대중에게 더 넓게 다가갈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오케스트라단이 형성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지휘자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지휘자들은 각자의 개성과 음악적 해석을 가지고 전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레퍼토리는 점차 표준화되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음악은 신고전주의, 12음 기법, 음렬주의, 전자음악, 아방가르드, 우연성 음악, 미니멀 음악, 다원화 현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음악들이 나오게 되며,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렀으나, 현대의 청중들에게는 오히려 외면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청중들은 이전의 시대와는 다르게 현대 음악이 아닌 옛 음악에 집중하며, 대다수의 연주회장에서 연주되는 음악들은 바로크·고전·낭만 시대의 음악들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20세기 후반 옛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와 작곡된 시대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지휘자의 두 가지 관점으로 지휘자들을 분류하여 특징을 살펴보았다.

지휘자들과 함께 오케스트라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고, 이제 스타 지휘자에 열광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오늘날 오케스트라는 교육기관·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기도 하며 이제 일정 비율에서는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다. 20세기 후반 오케스트라는 사회적으로 교육기관으로서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관람하던 청중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는 발달 과정에서 늘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음악 역사 속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는 앙상블 일원인 건반 주자가 이끌어가기 시작해서 현악기 주자로, 작곡가에게로 바톤이 넘어가며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21세기에는 단순히 청중의 입장에 있던 대중들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보다 더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을 통해 시민 주도의 다양한 형태의 오케스트라 운영과 다양한 지휘의 모습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21세기에는 지휘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지 기대된다 .

Notes

오케스트라란 넓은 의미에서 서구 음악과 비서구 음악을 가리지 않고 여러 형태의 합주를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전형적인 서구의 기악 합주를 의미한다(박은승, 2015).

전문지휘자란 용어는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작품을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해석하여 재창조해내는 것을 직업으로 여긴 지휘자를 의미한다. 이전에 음악을 연주하며 리드하는 형태의 지휘나 작곡가가 겸했던 지휘와 구분하여 전문적인 직업 지휘자를 의미한다.

http://wikivisually.com/lang-de/wiki/Hans_von_Below Mediciner Hofkapelle mit Hans von Bülow 1882

카펠마이스터(독일어: Kapellmeister)는 음악을 총괄하는 직책을 부르는 독일어 낱말이다. 맥락에 따라 악장(樂長) 또는 궁정 악장(宮廷樂長)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온라인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D%8E%A0%EB%A7%88%EC%9D%B4%EC%8A%A4%ED%84%B0)

미국의 사진작가인 Nathaniel Livermore Stebbins(1847-1922)의 1891년 작품.

https://www.youtube.com/watch?v=XuFReWTLMm0&feature=youtu.be

니키쉬가 1913년 리스트의 작품을 지휘하는 영상 캡쳐 장면.

그는 19세기 말경에 단순히 박을 젓는 time-beater, 카펠마이스터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지휘자가 필요하며, 청중들 역시 새로운 지휘자의 역할에 익숙하여 질 것이라 예견했다.

1905년 Strabourg에서 말러가 베토벤 제9번 교향곡을 지휘하는 장면.

https://mahlerfoundation.org/mahler/chronology/1898-1907-vienna/year-1905/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en/history/beginning/

(온라인 베를린필하모니 사이트 참고)

로널드 윌포드(Ronald A. Wilford 1927-2015)는 미국의 음악 매니저이다.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CAMI)에서 50년간 일했으며, 그의 고객으로는 지휘자 제임스 레빈, 세이지 오자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쿠르트 마주르, 콜린 데이비스 경, 리카르도 무티,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성악가 캐슬린 배틀, 마를린 혼 등이 있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이집트 카이로의 빅토리아대학교,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문예평론가이자 사상가로 이름을 높였다. 1978년 명저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이 책은 서구인들이 말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그들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예술 전반에 걸친 이해가 뛰어났으며 피아노 연주회를 열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천재로 알려져 있다. 2003년 9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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