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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유 중심에서 사회혁신형으로:전라북도 사례로 본 문화자치역량 격차와 문화공동체 육성 방향

장세길1, 육수현2
Segil Jang1, Suhyun Youk2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전북연구원
2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1Research Fellow, Jeonbuk Institute
2Assistant Professor, The Center for Social Sciences in SNU
Corresponding Author : Assistant Professor, The Center for Social Sciences in SNU E-mail: landsnow@snu.ac.kr

* 이 논문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20년 열린연구 공모연구사업’에 투고한 논문을 재구성하였다.

© Copyright 2019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Feb 18, 2021; Revised: Mar 02, 2021; Accepted: Mar 17, 2021

Published Online: Apr 30, 2021

국문초록

이 연구에서는 문화자치 시대에서 문화격차를 해소하려면 자율적 문화생태계가 필요하며, 열악한 지역의 문화진흥기반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의 핵심 동력으로 문화공동체가 중요함을 살펴보았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문화공동체의 육성 방향이 문화향유형에서 사회혁신형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연구에서 제안한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구성원의 문화적 욕구 충족뿐만 아니라, 문화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지역을 혁신(발전)하고자 지역문화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는 문화공동체를 말한다. 이 연구에서는 전라북도 완주군 사례를 통해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가 구성원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 활동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중요한 문화자치역량임을 확인하였다. 또,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기존 ‘문화의 공동체’인 문화향유형 공동체와 달리 ‘문화적 공동체’로서, 공동체를 지속하고 활성화하려면 비즈니스모델이 중요하다는 점도 사례분석에서 도출되었다.

Abstract

This study suggests the need to adopt an autonomous cultural ecosystem to reduce cultural disparities in the context of cultural autonomy, and that cultural community should be a key driver of sustainable cultural ecosystems in undeveloped regions. Specifically, this study argues that the direction of encouraging cultural community should be shifted from the Cultural enjoyment-type to the Social innovation-type. The Social innovation-type refers to a cultural community that might reach the cultur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values of local culture to solve local community issues or to develop the region through cultural activities. Based on a case study of Wanjoo-gun in Jeonlabuk-do, this study demonstrates that cultural communities belonging to the social innovation-type should possess a critical capability of cultural autonomy. This capability would allow them to improve some community- related issues and to encourage local innovation through cultural activities, while offering opportunities to enjoy cultural activities to community members. Besides the current “cultural community”-Cultural enjoyment-type, regarding the cultural community of the social innovation-type, it is important to attain a certain business model to sustain or promote the community.

Keywords: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 문화자치; 문화격차; 문화생태계; 문화적 비즈니스모델
Keywords: social innovation-type; cultural community; cultural autonomy; cultural disparity; cultural ecosystem; cultural business model

Ⅰ. 서론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에는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주요 목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국가균형발전 전략에서도 도농 간 문화격차 해소는 삶의 질과 관련한 핵심 목표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격차를 해소하려고 문화향유 취약계층으로 불리는 경제적, 지리적 취약계층이 문화 활동에 접근하기 편하도록 문화시설을 조성하고, 여러 문화행사를 기획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문화격차 해소정책에서 핵심적인 정책목표는 국민의 문화적 활동이 양적으로 얼마나 증가하였는지, 지역과 계층별로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다. 이른바 문화향유기회의 격차가 핵심적인 정책대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8월에 “우리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이라는 비전으로 6대 전략 33개 과제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많은 문화사업이 지역으로 이양되는 문화분권이 본격화되었고, ‘문화비전 2030’을 계기로 문화자치도 공식화되었다. 정부가 주도하던 문화중앙화와 달리, 지역이 스스로 지역문화를 진흥해야 하는 문화자치에서는 문화격차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문화격차 해소의 ‘정책대상’을 문화향유기회의 격차 중심에서 지역문화진흥 기반의 격차로 확장해야 한다. 문화중앙화에서는 정부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문화향유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문화자치에서는 지역이 스스로 지역민의 문화향유기회를 높이는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같은 규모 예산을 지역으로 이양해도 지역에서 이 예산을 활용하여 실천할 기반이 취약하면 문화분권으로 지역민의 문화향유기회가 더 줄어들 수 있다. 문화자치를 실현하려는 정부가 ‘국민의 문화향유기회의 격차’ 해소와 더불어 ‘지역의 문화진흥기반의 격차’ 해소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이다.

문화격차 해소의 ‘정책목표’와 관련해서도 확장된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문화향유기회의 균등을 중심에 둔 문화격차 해소정책은 국민 개개인의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하는데 목표를 뒀다. 최근 문화정책에서는 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기능을 강조한다. 개인의 예술적 취향을 충족하는데 집중하던 정책목표가 문화적 사회혁신과 지역발전 등 사회적 측면으로 확장하고 있다.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에 4대 전략 가운데 하나로 ‘문화의 가치로 지역의 혁신과 발전’이, 문화를 통한 지역사회문제 해결형 사업 등이 핵심과제로 포함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격차를 해소하는 ‘실천전략’과 관련해서도 지역적 고려가 필요하다. 문화자치 구성요소는 제도, 재정, 추진체계와 자치역량이다. 이 중에서 제도와 재정은 정부와 지자체 의지가 중요하지만, 추진체계와 자치역량은 지역의 민간역량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 민간이 힘을 가져야 민․관 협치 추진체계가 힘을 받고,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민간조직이 활성화되어야 자율적 지역문화 생태계가 구축된다. 정부․지자체와 주민을 매개하는 민간역량이 부족하면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는 수사학(rhetoric)에 불과하다.

이 연구는 문화자치 시대에 문화격차 해소정책 방향이 개인에서 사회로, 기회의 격차에서 기반의 격차로 확장되어야 하며, 특히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민간 중심의 문화자치역량이 중요함을 전제한다. 이 연구에서 주목하는 민간의 자치역량은 문화공동체이다. 문화공동체는 개인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지역민과 함께 지역의 혁신과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력(윤소영, 2009)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공동체와 관련한 정부 사업은 주민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는 이른바 문화향유형(예, 문화(예술)동호회, 문화예술단체 매개 생활문화공동체)에 집중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문화적 욕구(취향)를 충족하는 것을 넘어 문화로 사회를 혁신하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활동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 연구에서는 공동체 활동 대상을 개인에서 사회로, 목적을 향유에서 혁신으로 확장하는 이른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에 주목한다.

이 연구에서 살펴본 사례는 전라북도와 완주군이다. 두 지역 사례를 통해 정책 방향이 문화향유기회 격차에서 문화자치역량 격차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와 문화자치 동력으로서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활동과 성과를 살펴보고,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를 육성하는 정책 방향을 제언한다. 두 지역 사례가 우리나라 문화자치와 문화공동체 관련 정책과 현장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문화자치 시대에 문화격차를 해소하는 방향과 문화공동체를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하는데 참조가 되는 사례로 의미가 있다.

Ⅱ. 정책 동향과 개념 검토

1. 문화자치와 문화격차

‘문화 비전 2030, 사람이 있는 문화’에서 공식화된 문화자치는 자치와 분권의 실현을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2017: 24)는 문화 분야의 분권을 문화분권이라 부르며, “문화의 주요 기능과 행정적 권한을 지리적(혹은 지역적)으로 균형 있게 분배함으로써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자치와 분권은 정부 사업이 지역으로 이양되는 것을 넘어, 지역이 스스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지역에 맞는 정책을 기획․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분권의 궁극적 목표가 문화자치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기존 문화정책 추진체계가 중앙-지방이라는 수직적 이원화 구조였다면, 문화자치에서는 지역 스스로 문화정책을 구상․기획․집행하고, 정부는 지원하는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가 된다. 문화자치를 실현하려면 정부 중심의 문화정책 전달체계에서 벗어나 지역이 주도하는 자율적 문화생태계로 바뀌어야 한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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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문화자치로의 전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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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자율적 문화생태계는 문화자치 구성요소별로 기반이 마련되어야 구축될 수 있다. 문화자치의 구성요소는 제도, 재정, 추진체계와 자치역량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17: 49). 제도는 문화자치의 법적 환경, 자치입법 현황과 실효성, 재정은 문화영역 재정자 주도, 효율적 재정운영과 투명성 여부와 관련된다. 추진체계와 자치역량은 문화정책 관련 조직 확보, 문화인력․문화단체의 역량, 문화 네트워크 형성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자치와 분권이 추진되는 것처럼 문화자치 역시 균형적 지역문화진흥이 중요한 목표이다. 문화정책의 핵심 목표인 문화격차 해소가 문화자치에서도 핵심 전략인 셈이다.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는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2018∼2022)과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에서도 주요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신현택(2002: 32)은 문화격차를 “문화 활동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각 문화 주체마다 다르게 작용하는 문화접근도에 있어서 불평등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박용치(2003: 125)는 “정책에서 문화격차는 대체로 문화접근도 및 문화이용도의 차이를 뜻한다”라고 말한다. 문화격차 관련 연구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장세길․이중섭(2013: 133)은 문화격차를 “경제적, 지역적, 사회적, 신체적 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에서의 문화 활동에 대한 문화접근도와 문화이용도의 차이”로 설명한다.

하드웨어와 관련된 문화접근도는 생활근거지(집, 직장)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시설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문화시설 조성이 문화격차 해소정책으로 농어촌에서 여전히 힘을 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문화접근도가 외부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면 문화이용도는 문화향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문화향유 욕구는 계급구조의 기본인 경제자본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 전략이 우리나라 문화정책에서 주요 전략으로 추진된다.

자율적인 지역문화진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문화자치에서는 문화격차 해소에 대한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문화정책 전략이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로 전환한 것을 반영하여 능동적 참여, 다양성이 문화향유 격차의 주요 지표가 되어야 한다. 옴니보어(Omnivorous) 문화소비(Peterson, & Simkus, 1992)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국민문화 향유 수준을 단순 관람(대표지표: 1년 동안 문화예술행사를 직접 관람한 비율과 횟수)의 양적 측면으로만 평가해서는 현대 사회의 문화격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즉, 문화향유격차의 ‘질’에 주목해야 한다(장세길, 2016: 284).

문화자치 목표인 지역문화진흥에는 문화향유격차 해소만이 아니라, 문화적 혁신과 발전이 포함된다. 이러한 활동을 위한 문화생태계는 문화자치 구성요소(제도, 재정, 추진체계․자치역량)별 기반이 필요하다. 조례는 지자체․지방의회 노력에 달려 있지만, 재정은 농어촌지역의 재정 여건상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화재정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자, 지속 가능한 문화 활동 기반으로서 추진체계와 자치역량을 갖추려면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지역문화인력과 문화공동체가 지역문화진흥의 핵심 동력으로 강조된다. 특히 문화공동체는 주민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하고, 문화향유의 질을 높이는 매개체(윤소영, 2009)이면서, 지속 가능한 생활권 문화 활동의 구심체로서 주목받는다.

2. 문화공동체

공동체 개념을 정립한 힐러리(G. Hillery)는 집단과 다른 의미에서 전통적 공동체 특성을 물리적 공간(지리적 영역)과 사회적 상호작용(인간관계망과 조직, 사회체계와 제도)과 공동의 연대(상호작용 결과로 나타나는 심리․상징․문화적 현상)로 설명한다(조현성, 2009:29). 힐러리가 정립한 공동체 구성요소는 현대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전통 공동체는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place-based community)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장소 기반의 한계로 인하여 공동체 특성이 공간을 기반(space-based community)으로 나타난다. 둘째, 전통적 규범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전통 공동체와 달리 현대에서의 공동체는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수평적인 호혜 및 소통체계에서 상호작용함으로써 구성원 간 공동의 소속감과 가치가 형성된다. 셋째, 구성원끼리 서로 형성되는 연대감(우리 의식)인 공동체성과 관련하여 전통 공동체에서는 같은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면서 일치가 강조되지만, 현대 사회 공동체에서는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의 문화가 중요하다.

현대적 공동체 개념에 대해 윤소영(2009: 14)은 “구성원들이 어떠한 지역이나 공간(space)을 공유하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집단”으로, 조현성(2009: 33)은 “지역을 포함하고 동시에 넘어선 다양한 사회적 공간에서, 자발성과 자율성을 기본으로, 공공성과 공동선을 추구하되, 그것을 공동의 연대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집단”으로 설명한다. 이를 종합하면 현 사회에서의 공동체는 “물리적 장소와 사회적 공간(space)에서, 자발성과 자율성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공동의 가치(목적)를 실현하려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정책에서 문화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문화(여가)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이 특정한 문화(예술)를 체험하고, 여가를 즐기려면 향유 능력(지식, 태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문화향유 능력을 얻고자 조직 활동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레이(Gray, 2003)와 린다(Linda, 2005)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 활동을 시작한 사람은 몰입과정을 거쳐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으로 나아간다(윤소영, 2010: 23). 이는 문화향유 활동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화향유 수준을 높이는 전략으로 문화공동체가 중요해지면서 지역에서 문화공동체를 개념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김재경(2010)은 “지역의 역사, 지리적 특성, 주민의 정서 그리고 지역 공간이 형성되어 온 역사적 배경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담는 공동체”라는 문화창조공동체를 개념화하였다. 이철희(2010)는 “문화예술을 공통의 관심사로 하여 자발적으로 생긴 소규모의 동아리(소모임)나 아마추어 클럽”으로서 문화예술동아리와 “동아리들이 네트워크 되어 사회자본화 된 조직”으로서 문화예술공동체를 정의하였다.

이러한 연구에서 문화공동체는 문화향유가 공동체의 주목적으로 설명된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이 개인의 문화향유 증진뿐 아니라, 문화를 통한 지역혁신과 도시발전을 강조하는 흐름에 따라 문화공동체를 문화의 사회적 가치실현의 매개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뚜렷하다. 예술인단체나 아마추어 예술인단체와 문화공동체를 구분하는 한상우(2014: 4)는 문화공동체를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활동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공동체적 연대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로 설명한다. 육수현(2018: 115)은 문화공동체를 문화향유형과 문화사업형으로 구분하고, 문화사업형을 “문화향유를 통하여 공동체적 활동이 이어지고, 이러한 활동의 결과물로서 문화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활동, 또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활동”으로 정의한다.

이같이 문화공동체는 개인의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문화향유 활동의 매개체이자, 문화를 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구심체로 이해된다. 즉, 지역문화를 진흥하는 핵심 동력인 문화공동체는 동호회 성격의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와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로 구분된다. 이 연구에서 말하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구성원의 문화적 욕구(취향)를 충족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지역을 혁신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는 문화공동체”이다.

Ⅲ. 문화자치역량 격차와 문화공동체

국민문화향수실태조사(2015년, 2017년 2019년 발표기준) 결과에서 전라북도 데이터(가중치 제거)를1) 분석한 결과, 전라북도 내 동 지역과 읍면 지역 간+ 연간 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률2) 격차가 2015년 38.6%에서 2019년 9.6%로 대폭 줄어들었다. 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률이 문화향유격차의 대표 지표라는 점에서 전라북도 조사 결과만 보면 전라북도에서는 도농 간 문화향유격차가 크게 줄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별 직접 관람 횟수도 대중음악과 영화에서 일부 격차가 나타날 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전통예술 분야에서는 오히려 읍면지역의 관람 횟수가 동 지역보다 많았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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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국민문화향수실태조사 중 전라북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 자료: 문화체육관광부(2015, 2017, 2019),「국민문화향수실태조사」재구성. * 주: 시‧도별 인구비례에 따라 부여한 지역별 가중치를 제외한 전라북도 데이터를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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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률을 비롯하여 문화향유의 양적 지표 격차가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생활문화 활동 단계에서3) 관람 활동 관련 지표가 개선되었는데, 문화이용권 사업과 찾아가는 문화프로그램 사업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람하는 문화(콘텐츠,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4) 관람 활동 외 다른 문화 활동, 문화소비의 다양성(옴니보어),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위한 기반에 있어 도농 간 격차는 여전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조사하는 지역문화 현황 종합지수가 이를 잘 보여준다. 광역자치단체 내 기초자치단체 종합지수(2017년 기준 2019년 발표) 값의 표준편차를 비교했을 때 전라북도가 광역자치단체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였다. 표준편차가 크다는 것은 자치단체 간 격차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전주시(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1위)를 비롯한 도시(전주를 포함 6개)와 군지역(8개)의 문화 활동기반의 격차가 크다는 것이 주요 이유이다([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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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광역자치단체 내 기초자치단체 종합지수 값의 표준편차 비교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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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방향이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사업을 제공하면서 주민이 직접 창의적 활동에 참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문화 지원사업의 최근 경향은 개인보다 집단을 대상으로 삼고, 단순한 예술행사 관람보다 전문적이고 특성화된 향유사업을 프로젝트 방식으로 지원한다. 이러한 지원은 대체로 지역 내 문화단체를 매개로 이뤄지는데, 농어촌지역은 문화단체가 상대적으로 적어 실행사업 수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에서 수행된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2019년) 중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지원 사업과 토요문화학교 지역연계 프로그램은 전주시를 제외하고 시군에 문화예술교육단체가 없어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시군 간 지원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고, 도농(시군) 간 지원 비율을 고려하나, 군은 관련 단체가 없어 이마저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표 1>).

표 1. 전라북도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구축 사업 시군 지원 현황(2019년)
구 분 전주 군산 익산 정읍 남원 김제 완주 진안 무주 장수 임실 순창 고창 부안
93 29 10 17 3 4 3 8 4 2 2 2 3 6 0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28 5 3 5 - 2 1 2 2 2 - 1 1 4 -
토요문화학교 31 9 5 5 1 1 1 2 2 - 1 1 1 2 -
문화예술교육 인큐베이팅 6 - - 2 - - - 2 - - 1 - 1 - -
교육콘텐츠 연계지원 18 10 1 3 2 1 1 - - - - - - - -
신규 프로그램 개발지원 4 2 1 1 - - - - - - - - - - -
광역-기초재단 협력사업 3 1 - 1 - - - 1 - - - - - - -
교육콘텐츠 개발 시범사업 3 2 - - - - - 1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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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은 관람 활동에서 얻어진 문화향유 욕구가 참여 활동으로 전환되는 분수령이다. 장세길(2016: 299)은 “문화 분야 간 자유로운 이동, 문화적 폭넓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 경험”이며, “문화예술교육 경험요인은 소극적 문화향유보다 적극적 문화향유에서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라고 설명한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적다는 것은 지역주민이 문화향유 활동의 질적 도약을 의미하 는 직접 참여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가 거듭되면 관람 활동으로 대표되는 양적 격차는 줄어들지언정 문화향유의 질적 격차는 커지게 된다.

자치와 분권 원리에 따른 문화자치에서 지역문화를 진흥하는 생태계는 문화자치 구성요소별로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하다. 제도와 재정은 국가와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지만,5) 최근 강화되는 문화향유 활동이 지역에서 활성화되는 데는 민간역량이 중요하다. 열악한 문화재정 속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더욱 그러하다.

2019년 말을 기준으로 전라북도 내 시군별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현황을 보면, 전주시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열악하며, 시군 간 격차가 크다(전주시 30개, 13개 시군 18개). 문화단체․법인, 사회적 경제 조직은 주민 대상 문화향유 프로그램 실행과 문화를 활용하여 지역을 혁신하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핵심 동력이자 민관협력체계의 한 축이다. 농어촌지역에 이들 조직이 부족하다는 것은 지자체와 함께 지역문화진흥사업을 추진할 파트너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 구축이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생태계 구축이 어려우니 당연히 도농 간 문화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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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전라북도 시군별 문화 분야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현황 (2019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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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문화향유정책은 지역주민을 복지 대상자로서 서비스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예술 중심의 문화향유정책에 따라 예술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취약계층)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지역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자율적 문화생태계를 의미하는 문화자치에서는 지역주민이 정책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정책을 기획․실천하는 능동적 실행 자가 되어야 한다. 자발적이면서, 지역문화를 활용한 혁신적 문화사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기획자로서 역량을 갖추게 하는 정책과 지원사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개인이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한 양에 정책목표가 설정되어 있다면, 이제는 관람 활동에서 참여 활동으로 전환하는 질적 성과를 목표로 설정하고, 또 개인의 취향 욕구를 충족하는 것뿐 아니라, 문화향유를 통하여 지역이 발전(혁신)하는 성과에 정책목표가 설정되고 있다. 포용(모두가 누리는 문화)뿐 아니라, 혁신(사회를 혁신하는 문화)을 핵심 가치와 목표로 설정한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화 활동이 창출하는 가치에는 개인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문화적 가치) 외에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거나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문화는 공동체와 사회적 차원에서 시민성을 매개함으로써 참여적 시민(engaged citizen)을 형성하며, 사회적 접착제로서 공동체를 응집시키며, 장소성을 형성하는 한편, 복잡한 사회문제의 대안적 해결 기제로 작용한다(양혜원․김면․차민경․김현경․노수경, 2019). 이와 더불어 문화를 자원화하는 경제적 가치, 문화집단의 정체성 정립과 연대(정치적 가치)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문화격차 해소정책은 개인의 문화향유기회의 격차 해소와 더불어 문화의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는 기반과 관련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단발적으로 지역주민에게 제공하는 문화향유 서비스는 열악한 농어촌지역의 재정 여건에서 이어지기 어렵다. 게다가 지방재정이 포괄 보조로 지방으로 이양되면 문화사업은 재정확보에서 다른 정책 분야에 밀릴 수밖에 없다. 개인의 문화향유 증진을 위해서라도 단발성 서비스 제공보다 지속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에게 문화향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를 문화적으로 혁신하는, 문화자치 추진체계의 한 축을 담당할 문화공동체가 중요한 이유이다.

이처럼 문화공동체는 문화자치 구성요소인 추진체계와 자치역량의 핵심 주체이다. 지역문화진흥 기반이 열악한 농어촌지역에서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면서 지역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정부와 지자체는 능동적인 문화 활동을 목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정부‧지자체와 주민을 매개하면서 주민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문화 활동으로 지역사회를 혁신하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이른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에 주목해야 한다.

Ⅳ.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활동 사례

1. 완주군 문화공동체 지원사업과 ‘아리아리’

전라북도 완주군은 ‘공동체문화도시’를 목표로 하는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2019∼2023)을 추진하였다.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는 문화공동체를 육성하는 사업으로 <컬처메이커즈 스쿨>과 <메이드 인 00> 사업을 공모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컬처메이커즈 스쿨>은 문화공동체를 이끌 혁신 주체를 양성하는 사업이고, <메이드 인 00>은 지역사회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문화 활동으로 해결하려는 공동체를 발굴․지원하는 사업이다. 2019년에 <메이드 인 00> 공모사업으로 10개 단체가 선정되었고, 평균 4백만 원 내외가 지원되었다(<표 2>).

표 2. 완주군 문화공동체 지원 사업(공모, 메이드 인 공공) 선정 현황(2019년)
추진공동체 공동체 발견 지역 문제 문제해결 제안 문화사업
깔깔깔 인형극단 -공동체 확장을 위해 인재 발굴 및 육성이 필요. -인재육성과 공동체 활성화 위한 인형극 아카데미
완주드림 컬처랜드
  • -생활권 내 문화 활동 공간의 부재

  • -귀촌인과 원주민의 문화차이 갈등 해소 필요.

  • -사유지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문화프로그램의 시범 운영

  • -핼러윈 파티 및 과학 교실

  • -생활문화 수다방

다문화공동체 보물섬
  • -인식 개선 위한 다문화프로그램 발굴

  • -다문화 음식자원 활용하여 다문화 이해 공감 프로그램 발굴 필요.

  • -세계음식 한마당 잔치

  • -다문화 음식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공감 클래스

We’C
  • -전업예술인으로 살려는 청년이 중심인 공동체 부재

  • -문화예술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로 구성된 청년 문화공동체의 활동이 필요.

-주민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청년 예술 단체 성장 프로그램
책이음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 -멘토(작가) 만남을 통해 엄마들의 자아찾기 프로그램
작은곰자리 -로컬푸드를 이용한 디저트 상품이 없어 지역과 상생하고 있지 못함. 로컬푸드를 활용한 디저트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아이템이 필요. -로컬푸드를 활용, 디저트 개발 및 지역 청년작가들과 협업을 통한 문화예술작품 제작
만마관주민 자치공동체 -만마관은 호남제1관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으나, 많은 주민이 알지 못함. -만마관 토크콘서트 및 역사문화 탐방
아리아리
  •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필요함.

  • -사회적 편견 개선 위한 주민소통 프로그램 필요.

  • -정신장애인 사진교육과 전시

귀동골 지키미 -구이면 마을특화사업(떡공장)이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고, 적자 장기화하면서 주민갈등이 심화. -주민 갈등 해소를 위한 문화프로그램으로, 떡 프로그램 및 작은 마을축제
맹그러브
  • -지리적 한계, 고령화로 인한 공연감상 기회 적음.

  • -젊은 귀농, 귀촌인 유입이 늘어남에 따라 문화 향유 프로그램이 필요.

-문화예술교육 및 지역 유휴공간을 활용한 결과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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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문화공동체 지원사업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동체(또는 문화예술인․기획자)가 속한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젊은 귀촌인이 많은 농어촌에서 나타나는 육아 문제, 사회 활동을 원하는 다문화가족,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귀농 청년예술인의 생계, 로컬푸드의 브랜드 제고, 정신장애인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부정적 시선, 마을특화사업의 장기 적자, 산간벽지 노인의 부족한 문화향유기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으로 인형극 아카데미, 아이들을 위한 핼러윈 파티와 생활문화 수다방, 로컬푸드 문화화(化), 정신장애인 사진교육과 전시, 작은마을축제와 문화발표회 등을 추진하였다. 이같이 완주군의 문화공동체 지원사업은 주민의 부족한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여 문화향유율을 높이는 것보다 문화를 매개로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 사업을 통해 정신장애인 공동체로 발전한 ‘아리아리’ 역시 처음에는 정신장애인에게 문화향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나, 이 사업에 선정된 후 집단토론과 컨설팅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사업목적이 바뀌었다.6) 아리아리가 겪는 사회문제는 정신장애인 지원시설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아리아리가 선택한 활동은 사진교육과 전시이었다. 즉, 아리아리는 찍는 주체와 찍히는 대상이 있는 사진예술을 활용하여 정신장애인에게 사진예술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바꾸고자 시도하였다(<표 3>).

표 3. 문화공동체 아리아리의 문화 활동 사업 추진과정
날짜 내용
2018.12.01.     - 2018년 자기주도 문화사업 (메이드 인 00) 사업 선정
2019.01.02.     - 지역사회공동체 ‘아리아리’ 결성
2019.02.01.     - 아리아리 사진동아리 활동 및 교육 시작
2019.04.16~17     - 아리아리 사진동아리 전시회 개최 (상관면 주민자치센터 대회의실)
2019.04.23.     - 아리아리 공동체 비영리단체 등록
2019. 05     - 2019년 드림위드 우리마을 LEVEL UP 프로젝트 선정
2019. 07     - 완주문화도시추진단 지원사업 선정 “정신장애인 일상을 살다”
2019.11.27~29     - <장신장애인 일상을 살다> 전시회 개최 (완주복합문화공간 누에)
2020.02     - 2019년 드림위드 우리마을 LEVEL UP 프로젝트 선정: 사진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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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리아리의 사회혁신형 활동

아리아리가 진행한 사업은 정신장애인들이 사진예술을 접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자기 얼굴을 찍고, 옆에 친구와 공동체 동료를 찍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적인 사진교육과 다른 점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사진에서 느끼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사진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이 진행되고 사진을 찍는 활동이 이어지면서 일반적인 교육에서 보기 어려운 치유 효과가 보였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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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문화공동체 아리아리의 사진 교육 및 활동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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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찍힌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을 찍었던 그 과정이 이분(정신질환자)들에게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소외시키는 것과 상관없이 평소에는 이 안(시설)에서만, 아니면 집에서만 있었는데, 밖에 나가서 말 몇 마디 붙여보니까 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한 번 더 붙여보게 되고. 요즘에는 아무 데나 사진을 찍어서 조금 걱정이지만.”7)

“정신장애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편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낙인’이다. 자기를 편견 속에 쌓아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나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도 저것도 못 해’라면서 자기 스스로 낙인을 가지고 자기를 찍어누른다. 거기서 벗어나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데, 못 벗어나고 ‘나는 못 해’라는 말을 반복하니까 문제가 많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활동만 하더라도 ‘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네’, ‘어 내 작품이 전시회에 걸렸네’, ‘어 사람들이 내 것을 보네’라는 생각과 함께 ‘자기 낙인’에서 한번 나오고 두 번 나오게 된다. 그러다가 본인이 먼저 다가오게 된 것이다. 문화가 이러한 자기 낙인에서 벗어나도록 크게 도와준 것 같다.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낙인화하며, 스스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어 위축된 삶을 살기도 한다(현명선․김영희․강희선․남경아, 2012: 227). 아리아리 구성원들이 이 사업 한 번으로 자기 낙인(stigma)을 벗고 사회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주변 사람과 대화를 하고, 그림과 글을 더해 자신이 찍은 사진이 전시되는 일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들이 생긴 것만으로도 이 사업이 주는 시사점이 크다.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한 번 더 붙여보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던 사회적 관계 개선 행동으로 나아가고, 사회 활동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 활동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문화적 가치가 실현된다. 사진을 찍으면서 붙은 정신장애인들의 자신감은 사진교육과 전시회를 거치면서 더 커졌다. 교육과정에서 강사(사진작가)에게 “이 작가, 김 작가”로 불리고, 그래서 자기들끼리 서로 작가라고 호칭을 붙이며, 부르는 과정은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어떤 참여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전시작품을 판매하여 난생처음으로 저작권료를 받고 나서는 “나도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시작한 사진찍기 활동이 정신장애인에게 자기 낙인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문화적 치유 효과, 즉 문화 활동의 문화적 가치가 실현되는 효과가 엿보인 것이다.

아리아리를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로 보는 이유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활동이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점에 있다. 아리아리가 속해 있는 시설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있다. 이곳에서 활동한 지 오래되었지만, 정신장애인과 이 법인(시설)을 바라보는 주민의 부정적 시선이 없지 않았다. 아리아리는 정신장애인이 사진을 찍으면서 지역주민과 접촉을 늘리고, 이 계기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민의 시선이 개선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누구를 (사진) 찍으러 다닌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항상 자기 얼굴이나 옆에 있는 다른 정신질환자를 찍는 것만을 생각했다. … 사진을 찍으려면 처음에는 찍히는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것을 교육했다. 동의를 얻으려면 상대방에게 말을 걸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이런 사업을 하니 사진을 찍게 허락해 주세요’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고, 그렇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때 어색하니까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서로 웃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 어색하면서도 재미있는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자가 생각하는 것이 괴이하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들이) 찍은 사진만 봐도 꽃 좋아하고 들판 좋아하고 산 좋아하고, 생각하는 게 똑같다.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무슨 괴물이나 공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던” 공동체 대표(간호사)의 생각은 적중했다. 사진을 매개로 주민과 만남이 늘어나면서 시설을 바라보는 주민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단다. 사진을 찍고 찍히는 과정에서 정신장애인과 대화를 나누고, 전시회에 걸린 사진과 그림과 글을 보면서, ‘나는 악이 없습니다’라는 사진 옆에 붙어 있는 글을 보면서 이 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주민들은 생각을 달리 했다는 게 단체 기획자의 설명이다. 전시회 기간에 조현병 환자가 방화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8) 뉴스를 장식했음에도, 이 사업을 지켜본 주민들이 오히려 시설관계자와 정신장애인을 안심시키는 태도가 이를 뒷받침해줬다.

아리아리 활동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은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와 더불어 경제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장애인 취업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정신장애인은 여전히 취업에 어려움이 많다. 이른바 손발이 멀쩡함에도 정신장애인은 갑자기 어떤 이상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어 취업의 문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어쩌면 정신장애인이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장애인 스스로 경제적 활동을 하도록 자립기반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리아리는 사진 촬영이라는 문화 활동을 계기로 이러한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정신장애인이 찍은 사진으로 작품집을 만들고, 사진과 글을 활용하여 머그잔을 제작․판매하면서 수익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정신장애인 스스로 문화 활동을 통해 얻은 경제적 가치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적은 금액이며, 이 사업으로 경제적 자립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 활동에서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을 경험한 아리아리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는 구상을 시작하였다. 2019년 사진 활동에 이어, 2020년에는 천연염색을 배워 보조강사로 참여하고, 문화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재미있는 문화향유 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시작한 문화 활동이 공동체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끌어낸 것이다.

“이 사업처럼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기고,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수입을 얻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이 올해 사업계획에 담겼다. … 구체적으로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배워서 습득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천연염색을 선택했다. 천연염색을 배워서 자격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조강사라도 참여할 수 있고, 천연염색을 만들어서 판매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즉 문화를 통해서 문화를 향유하고 즐겁게 일을 하면서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어쩌면 새로운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발판을 만들어 보는 사업이다.”

지역 내 정신장애인이 연대하여 정치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리아리가 중장기적으로 구상하는 계획 중의 하나이다. 아리아리는 전라북도에서 정신장애인 공동체가 많이 만들어지길 희망하며, 이를 위한 기반이 되고자 한다. 정신장애인과 정신과 의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매드프라이드(Mad Pride) 축제(서울)처럼, 지역 내 정신장애인 공동체가 연대하여 축제를 개최하는 게 아리아리의 희망 사항이다. 지역에서 정신장애인의 목소리, 즉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다양성을 표현하려는 정치적 활동을 꿈꾸는 것이다.

아리아리 활동을 통해 어떤 참여자는 사진을 찍고 전시하는 과정에서 낙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효과를 보았고, 어떤 참여자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회적 관계에서의 자신감을 얻었다. 전시회 기간에 발생한 방화 살인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이 아리아리 공동체를 믿고 걱정해준 것에서 알 수 있듯, 주민과 정신장애인의 거리가 좁혀지는 사회적 가치도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는 활동을 구상하고, 공동체적 활동에서 얻어진 경험을 토대로 정신장애인 축제(매드프라이드)를 지역에서 개최해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활동을 희망하는 꿈도 꾸게 되었다. 이처럼 아리아리 사례는 즐거움을 주려던 문화 활동이 공동체적 활동을 통해 문화향유뿐 아니라, 사회적 배제 극복과 문화다양성 실현이라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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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문화공동체 아리아리의 문화 활동에 대한 단계별 가치실현 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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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리 활동이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경제적, 정치적 가치를 구상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완주군 사업이 문화향유형보다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에 집중했다는 것이 첫 번째 배경이다. 사업 초기부터 지역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문화적 사업을 함께 구상했던 것이 주효하였다. 또 창업과 협동조합 설립 등 공동체가 지역 내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업역량을 강조한 것도 영향이 컸다. 활동 성과를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후속 사업을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셋째, 교육을 맡은 예술가와 사회혁신형 공동체를 구상한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넷째, 기존 문화향유형 공동체(동호회)와 관련된 사업지원에서 보기 힘든 컬처메이커즈 스쿨,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교육과 창업 관련 지원체계(인큐베이팅-네트워킹-엑설러레이팅)가 적용되었다. 이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를 육성하는 방법이자,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가 개인의 예술적 취향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인 기존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와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Ⅴ.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육성 방향

이 연구에서 살펴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 활동을 매개로 지역주민이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거나 자신의 삶에서 겪는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공동체, 이른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정책(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문화공동체를 여전히 문화향유를 위한 공동체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다.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와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공동체가 가지는 가치와 목적, 공동체를 운영하는 기획인력(리더와 기획자, 매개자), 특화 콘텐츠(활동)가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지원은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에 맞춰져 있다. 즉, 문화공동체가 사회혁신형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데도 공적 지원이 문화향유형 활동에 한정되어 자칫 정책적 지원이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문화공동체를 육성하는 정책에서 공동체 목적에 따라 문화향유형과 사회혁신형으로 문화공동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그림 7]).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처음부터 사회혁신(지역사회 문제해결과 도시의 문화적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될 수 있으며, 또는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가 활동하면서 사회혁신형으로 전환하거나, 두 유형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성을 보일 수 있다. 아리아리 사례는 문화향유형에서 출발하여 사회혁신형으로 발전한 유형이다. 공동체 유형에 따라 지원 계획이 마련되어야 하고, 특히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로 육성하는 사업을 별도로 추진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의 주요 과제에 포함된 ‘문화예술 리빙랩’과 관련하여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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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문화공동체의 유형과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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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처음부터 개념이 정립되어 관련 기관에서 사회혁신을 위한 목적 지향적으로 육성된 것은 아니다. 문화공동체를 결성하고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혁신형 공동체로 발전하거나, 지역사회 문제를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공동체를 육성하였는데, 그 활동이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특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문화 활동의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가 이제 지역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가 형성되는 초기라는 점은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개념화와 더불어 목적 의식적으로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를 육성하는 사업이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많은 문화공동체가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여전히 공적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활동을 이어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적 지원을 받아 활동이 유지되는 기존 문화공동체와 달리 특화 콘텐츠를 개발하여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정책적 관심이 쏠려야 한다.

사회혁신형이라는 의미는 직접적인 콘텐츠 개발이나 부가가치 생산 등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구성원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하거나, 생태문제와 같은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행동하는 자체가 삶과 사회를 혁신하는 활동임을 말한다. 다만 공동체가 스스로 사회혁신형 역량을 갖추고 활동을 지속하려면 가시적 목표를 염두에 두는 게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사업화 지원과 같은 정책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연구에서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핵심 인력으로서 촉진 인력(혁신인력, 리더, 매개자, 기획자 등)의 양성부터 사회혁신형 활동 프로그램 개발과 지속적 활동을 위한 사업화, 다른 기관․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문화적 가치실현과 관련된 사업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촉진 인력으로 컬처메이커를 양성해야 한다.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촉진 인력으로서 컬처메이커는 아리아리의 대표이자 프로그램을 기획한 간호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컬처메이커가 기존 문화인력과 다른 점은 교육을 통해 기본역량을 습득한 후에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문화적 사업화로 발전할 수 있는 문화 주체로 나선다는 점이다. 기존에 문화프로그램을 매개하는 수준을 넘어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는, 즉 기존 문화인력과 산업 분야의 메이커가 결합한 것이 컬처메이커다. 컬처메이커가 주축이 된 공동체가 컬쳐메이커즈이다.

아리아리 공동체의 기획자인 간호사는 정신장애인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 스스로 지속 가능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공동체만의 경제적 문화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다만 이 공동체 기획자가 메이커가 되어 공동체만의 특화 콘텐츠를 개발하려면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하다.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촉진 인력인 컬처메이커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종합적인 양성․교육계획이 정부와 지자체에서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컬처메이커의 문화적 혁신 활동에 필요한 교육 방법으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프로세스를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지역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도출할 뿐 아니라, 사업화를 추진할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상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씽킹 교육은 공감 능력 향상, 문제정의, 문제해결 방안 도출, 실현 방법 제안 등의 과정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째, 문화적 리빙랩(Living Lab)이 활용되도록 관련 사업을 발굴하여 지원하여야 한다. 이른바 컬처메이커 소셜 디자인 프로젝트로, 아리아리 공동체의 간호사(촉진 인력)가 정신장애인의 낙인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려고 사진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디자인을 도출한 것처럼, 문화공동체 촉진 인력이 혁신형 사업을 디자인하도록 관련 지원사업이 정책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업지원 방식은 문화향유형 중심의 기존 사업과 차별화된다. 리빙랩은 지역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콘텐츠 생산에 중요한 과정이고, 특히 혁신적 비즈니스모델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컬처메이커가 주축이 된 리빙랩을 통하여 문화자치의 핵심 동력이 되는 문화공동체가 양성되고 활성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화공동체를 대상으로 문화적 리빙랩을 홍보하고, 리빙랩을 위한 입문 과정을 교육하며, 신청을 받아 문화공동체 스스로 지역사회 문제 해소와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을 이끄는 리빙랩 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리빙랩 과정에서 문화적 혁신을 끌어내려면 전문가의 컨설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아리아리 공동체가 처음에는 정신장애인의 문화향유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하여 사업에 참여했다가 전문가의 컨설팅과 집단토론을 거치면서 사회혁신형 문화프로그램으로 질적 발전을 이룬 것이 하나의 사례이다.

문화적 리빙랩 사업은 구체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소셜 디자인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행위 자체가 문화적 혁신의 과정이다.

셋째, 문화공동체가 사회적 기업 또는 영리적 법인으로 발전하도록 사업화를 지원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화공동체가 공익적 목적으로 비영리 활동만을 전제하는데, 이러한 인식 때문에 늘 문화공동체 관계자들은 자원봉사자로 이해되거나 최소 활동비용조차 지원받지 못해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아리아리 공동체가 천연염색을 새로운 공동체 콘텐츠로 기획하고, 또 다른 사례인 씨앗협동조합이9) 다양한 정부와 지자체 사업을 위탁받고 공동체 부엌 사업 등 자체 사업을 발굴하여 영리사업을 추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공동체가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즈니스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문화재정이 열악한 농어촌지역에서 공적 지원만으로 운영되는 문화공동체는 활성화될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산업 분야의 창업 지원체계를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화콘텐츠산업 영역에서는 스타트업(start-up)을 위한 인큐베이팅(incubating) 지원사업에서 기업협업 네트워킹(networking) 지원사업을 거쳐, 창업기업의 활성화를 위한 엑설러레이팅(accelerating) 지원사업이 진행된다. 이러한 지원체계를 문화공동체 육성에 적용하여 문화공동체의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기존 사업은 인력양성, 또는 인큐베이팅 사업에 머물러 있다.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와 관련해서는 문화적 엑설러레이팅 사업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문제를 도출하여 문화적 해결방안을 발견하고, 비즈니스모델을 발굴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회적 경제 기업의 운영 실무를 모르면 지속가능성을 지니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 힘들어하는 리더와 운영진 간 역할 분담과 재무․회계․경영 등 실질적 조직 운영 비결을 배우는 구체적인 컨설팅 지원도 요구된다. 즉, 조직 운영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과 맞춤형 컨설팅 등 비즈니스모델 도출 외에 조직을 운영하는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넷째, 문화공동체 간 협력사업, 이른바 협업(co-working) 프로젝트가 중요하다. 문화공동체가 독자적인 활동으로 지역에서 지역문화를 진흥시키기는 어렵다. 아리아리는 완주문화재단 문화특화지역사업단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활동 지역에 있는 관공서, 사회단체와 협력이 없었다면 전시회 등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 대부분은 개별 단체가 사업을 신청한다. 농어촌지역에서는 단체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일부 지역에만 사업이 적용되는 일이 많다. 생활거주지가 넓은 지역으로 분산된 농어촌지역에 고른 사업효과를 확대하려면 여러 공동체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고려하여 공동체 간 협업 사업이 가능한 공모방식을 개발하고, 관련 사업을 발굴하여야 한다.

Ⅵ. 결론

이 연구는 문화자치 시대에 문화격차 해소정책 방향이 개인에서 사회로, 기회의 격차에서 기반의 격차로 확장되어야 하고, 민간 중심의 문화자치역량을 강화하여 문화생태계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전제 아래, 문화공동체에 주목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문화공동체를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와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로 구분하고, 문화향유형과 사회혁신형이 중첩되는 문화공동체도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 연구에서 제안한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구성원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지역을 혁신(발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문화 활동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는 문화공동체를 말한다.

이 연구에서 살펴본 전라북도 사례는 문화격차 해소정책의 대상이 문화향유기회의 격차와 더불어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자치역량의 격차를 해소하는 게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전라북도 시군 중에서 문화단체를 비롯한 문화공동체 수와 활동이 적은 지역일수록 문화 활동의 질적 제고와 관련한 사업이 적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였다. 완주군 문화공동체 사례는 문화자치역량의 격차를 해소하는 핵심 동력으로 문화공동체가 중요하고,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문화공동체를 활성화하려면 공통의 가치와 목적, 촉진 인력(리더, 기획자), 공동의 가치를 표현하는 콘텐츠, 구성원의 상호작용과 활동 공간이 필요하다(윤소영, 2009), 외부 지원은 공동체 활동의 마중물로서 중요하다. 이 연구에서 살펴본 아리아리 사례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도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충족될 때 활성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신장애인의 문화적 치유와 사회 인식의 개선이라는 공통의 목적, 리더이자 혁신가로서 기획자(간호사), 사진 촬영과 전시 콘텐츠, 교육을 맡은 예술가와 기획자와 구성원과 주민 간 상호작용, 문화도시지원센터의 지원이 아리아리의 활동을 문화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완주군 사업에서는 문화공동체를 지원하던 기존 사업과 다른 과정이 있었다. 사업 초기부터 지역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문화적 혁신사업에 집중하였다. 또, 공동체가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도록 사업적 역량을 강조하였고, 창업과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였다. 활동 성과를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후속 사업에 집중한 것도 주효하였다. 문화공동체가 출발하는 시점부터 자생적으로 지역에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공동체를 지향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 살펴본 사례와 같이,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는 기존 ‘문화의 공동체’인 문화향유형 문화공동체와 달리, ‘문화적 공동체’로서 공동체를 지속하고 활성화하는 비즈니스모델이 중요하다. 이 연구에서는 분석 사례를 참조하여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를 육성하는 과정으로 디자인 씽킹 교육을 통한 컬처메이커 양성, 문화적 리빙랩 사업, 인큐베이팅에서 네트워킹과 엑설러레이팅으로 이어지는 종합 지원 등을 제안하였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문화향유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즈니스모델의 창출과 활성화 사업화에 관한 문화정책 부서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사회복지 영역인 아리아리 공동체가 문화사업을 만나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것처럼, 문화정책과 다른 정책 분야 간 사회혁신형 공동사업을 개발하여 확산하는 노력도 중요한 과제이다.

Notes

1) 가중치 제거한 전라북도 표본 수: 2015년 558개, 2017년 561개, 2019년 475개.

2) 1년 동안 1회 이상 문화예술행사를 직접 관람한 경험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국민문화향유 수준과 지역 간 문화향유격차를 평가하는 대표지표이다.

3) 생활문화 활동은 관람-교육-참여-공동체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4) 세계적 수준의 전문예술인 활동과 아마추어 예술동호인 활동은 미학적으로 차이가 있다.

5) 전체예산 대비 문화 분야 예술 비율에서 전주시는 2015년 3.21%에서 2019년에 4.99%로 늘었으며, 8개 군은 2015년 1.52%에서 2019년 1.75%로 늘어나는 것에 불과했다.

6) 완주군 지원을 받은 공동체 중에서 아리아리 사례를 선정한 이유는 이 공동체가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1개 공동체 사례가 모든 문화공동체를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아리아리 사례는 사회혁신형 문화공동체의 특성과 활동 성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7) 이 글에서 인용된 인터뷰 대상자는 아리아리 공동체 대표이면서 이 사업을 기획한 간호사(정신장애인시설 근무, 컬처메이커즈 스쿨 이수)이다.

8) 2019년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에서 조현병 환자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에게 흉기로 5명을 죽이고 17명에게 상처를 입힌 사건을 말한다.

9) 완주지역에서 활동하는 귀촌 청년이 주도하여 설립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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