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한국은 1950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이하 ‘유네스코’) 가입 이래 유네스코의 여러 국제협약에 가입하여 그 이행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1) 그 중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이하 ‘2003년 협약’)은 한국이 가입한 유네스코 협약 중, 그리고 문화유산 관련 협약 중 가장 먼저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무형문화재법’)이라는 관련 특별법이 제정된 협약이다.2) 이는 한국이 무형문화유산3) 분야에서 유네스코가 그 보호를 고민하던 초창기부터 국제적 논의에 적극 참여했던 국가라는 점도 있으나(Kim & Nam, 2016: 42),4) 일찍이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의 개정만으로는 협약의 충실한 국내적 이행이 어렵게 된 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5)
특히 「2003년 협약」은 근본적으로 무형문화유산을 유형성보다는 무형성에, 보편성보다는 다양성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심승구, 2016: 277) 오랫동안 유무형 문화재의 ‘원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삼았던 「문화재보호법」과 근본적인 간극이 발생했다. 아울러 중국이 2011년 「중화인민공화국 비물질문화유산법」을 제정하고, 한국과 밀접하게 관련된 조선족의 무형문화유산인 ‘아리랑’, ‘씨름’, ‘농악무’ 등을 국가 대표 목록에 등재하는 등 주변국의 움직임은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책에 경종을 울리게 된다(정상우, 2015: 48). 이에 2015년 「무형문화재법」을 별도로 입안하여 관련 국내 법제도를 정비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2003년 협약」 이행은 국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고,6) 실제로 2016년 3월부터 시행된 「무형문화재법」을 계기로 협약의 더욱 충실한 이행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존재한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법」 도입 이전에는 「2003년 협약」과 관련하여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법제도의 전반적 개선을 위한 연구가 상당히 활발했으나(김영국·오승규, 2015; 김용범, 2012; 정종섭·정상우 외, 2011), 「무형문화재법」의 본격적인 시행 이후에 그와 관련된 연구는 주로 특정 종목에 한정하여 이루어져 왔다(박상미, 2020; 최흥기, 2020; 강인숙, 2019; 송준, 2019; 이민주, 2019; 이은정, 2017; 최혜진, 2016). 비록 「무형문화재법」의 조항과 용어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임장혁, 2018)나 제도적 이행 개선안을 제시한 연구(김수갑, 2018; 최경화·민경선, 2017), 「2003년 협약」과 「무형문화재법」 의 관계와 후자의 개선점을 다룬 연구가 일부 있었으나(임돈희·로저 자넬리, 2019; 박정은, 2017), 「2003년 협약」이 국내 관련 법제도에 미친 영향과 그 구체적 내용,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본 연구는 「2003년 협약」이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법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 속에서 2015년 제정된 「무형문화재법」이 협약의 내용을 얼마나 잘 반영하였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무형문화재법」을 협약과 비교분석하는 과정에서는 협약에 따라 제정한 우리 법의 주요 조문을 평가할 뿐만 아니라, 협약의 정책적 가이드라인인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Operational Directiv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Heritage, 이하 ‘운영지침’)에 대한 검토도 포함된다. 아울러 그 분석의 결과를 통해 향후 「무형문화재법」이 나아가야 할 법제도적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2003년 협약」의 개요
국제사회의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특히 유네스코는 1971년 저작권 보호를 통한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국제규범의 초안을 만들었으나(Aikawa, 2004: 138), 민속을 저작권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데에는 여러 한계가 많았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와의 표준규범 제정 역시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받았으나(Ficsor, 1997: 3-4), 유네스코는 포기하지 않고 저작권 측면을 제외한 무형문화유산의 국제적 보호에 대해 계속 논의하였고, 1989년 「전통문화 및 민속 보호에 관한 권고」(이하 ‘1989년 권고’)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7) 민속을 포함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첫 국제 규범인 「1989년 권고」는 전통문화 및 민속의 형태를 ‘언어, 문학, 음악, 춤, 놀이, 신화, 의식, 관습, 수공예, 건축 및 여타의 예술’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이후 「2003년 협약」 채택의 법적 논의에 있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1996년 무형유산 보호의 취약성을 지적한 ╛우리의 창조적 다양성(our creative diversity)╜ 보고서와 모로코에서의 제마 엘 프나(Jemaa El Fna)의 사례연구를 바탕으로(Schmitt, 2008), 1998년부터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정 사업(이하 ‘1998년 걸작 사업’)’이 시행되었다.8) 각국의 무형문화유산을 선정하는 제도는 많은 유네스코 회원국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1999년 워싱턴 국제회의에서 「1989년 권고」에 대한 평가를 통해 새로운 규범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졌다(Bouchenaki, 2007). 이에 유네스코는 2002년 「국가 인간문화재 제도 수립에 관한 유네스코의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며, 몇 차례 정부 간 전문가 회의를 통해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새로운 국제협약의 초안을 발전시켰다. WIPO와의 업무 중복성이나 무형의 유산을 목록화하는 제도에 대한 회원국 간 이견이 회의를 통해 조율되면서 2003년 10월 제3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2003년 협약」의 초안은 수정 없이 채택되었다.9) 이는 「2003년 협약」에 회원국이 전례 없이 높은 속도로 가입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10)
「2003년 협약」은 제정 시부터 기존에 유네스코가 성공적으로 시행해오던 「1972년 협약」의 목록제도나 정부간위원회 구성, 자문기구 설치 등을 상당히 모방했다는 평가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의 특징과 성격에 맞게 공동체, 개인, 집단의 참여를 강조하고, 긴급보호와 원조를 강화하는 한편, 자문기구의 역할 확대 등 「1972년 협약」의 운영과정에서 지적된 여러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고자 노력하였다.
「2003년 협약」은 총 40개 조항, 9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일반조항인 Part I(제1-3조)은 협약의 목적과 용어를 정의하고 있으며, Part II(제4-10조)는 협약의 주요 조직을, Part III(제11-15조)는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치를, Part IV(제16-19조)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조치를 언급하고 있다. 국제협력에 대한 내용은 Part V(제19-24조)에, 협약의 국제기금 출연과 운영은 Part VI(제25-28조)에 규정하였다. 협약의 보고체계는 Part VII(제29-30조)에, 1997년 걸작 사업에 대한 전환 조치는 Part VIII(제31조)에 포함시켰으며, 최종조항인 Part IX가 협약을 마무리 하고 있다.
협약의 대상이 되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정의는 제2조에 기술되어 있다.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을 “공동체 및 집단과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보는 관습·표상·표현·지식·기능 및 이와 관련한 도구·물품·공예품 및 문화적 공간”으로 정의하는 한편, “국제인권조약 및 문서와 합치되고, 공동체, 집단 및 개인 간의 상호존중 및 지속가능발전의 필요성에 합치되는” 것으로 한정함으로써, 남녀차별이나 신체 훼손 같은 국제인권규범에 반하는 전통들은 협약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11) 이러한 유산은 “세대 간 전승되어 공동체 및 집단이 환경에 대응하고, 자연과 역사와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그들의 정체성과 계속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의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한다. 무형문화유산의 범위에 대해서는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체로서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 예술, 사회적 관습·의식 및 제전, 자연 및 우주에 관한 지식 및 관습, 전통 공예 기술” 등으로 제한한다.12)
국가적 차원에서 「2003년 협약」은 각 당사국으로 하여금 무형문화유산에 관한 목록(inventory)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제12조 제1항). 국가 목록은 유산의 보호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효율적인 장치로 작동하므로, 각 당사국 정부는 가장 먼저 관련 공동체와 집단, 비정부기구(NGO)들의 참여 하에 자국의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을 확인해야 한다(제11조 제2항). 확인된 유산에 대해서는 적절한 법적, 기술적, 행정적, 재정적 조치를 통해 보호를 보장해야 하는데(제13조), 관련 정책 수립, 보호 조치 이행을 위한 기구 설치, 연구 및 훈련 촉진 등이 포함된다. 미래세대로의 무형문화유산 전승을 위한 가장 핵심적 수단으로서 다양한 교육적 조치에 대한 당사국의 노력 역시 장려된다(제14조). 마지막으로 협약은 이러한 국가적 조치에 무엇보다 유산에 관련된 전승자들(개인, 집단, 공동체 등)이 적극 참여하도록 하고 있는데(제15조),13) 무형문화유산의 특징상 그 가치가 관련 공동체에 의해 정의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참여가 핵심적 사안으로서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협약 당사국들은 협약 총회(General Assembly)와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간위원회(Intergovernmental Committee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이하 ‘정부간위원회’)를 통해 공동의 국제적 의무를 수행한다. 특히 제16-18조를 통해 협약은 대표목록과 긴급보호목록, 모범사례목록 등 3개의 목록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등재 유산의 상대적 우수성을 함의하고 있는 「1972년 협약」의 세계유산(일반 목록과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 모두 포함)이나 1998년 걸작 사업에 의해 선정된 유산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고안된 장치이다.14)
먼저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의 등재조건을 보더라도, 「1972년 협약」에서 언급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와 유사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15) 오히려 협약의 「운영지침」에서 제시되는 5개의 조건 중 기준 2(R.2)를 보면 무형문화유산 자체에 대한 인식 제고와 인류의 창조성에 대한 기여가 더 강조되고 있다. 이는 각각의 문화적 전통이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탁월한 가치가 문화적 다양성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긴급보호목록(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Need of Urgent Safeguarding)은 위험에 처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국제원조의 근거 중 하나로서 작용하기도 한다.16) 마지막으로 모범사례목록(Register for Good Safeguarding Practices)은 「1972년 협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목록으로서, 당사국 간 국제적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17) 모범적인 국가적 정책, 사업, 프로젝트 등을 목록화함으로써 당사국들이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관련 정책과 사업을 자국의 현황에 맞게 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18) 현재까지 대표 목록에는 128개국 492건의 유산 종목이, 긴급보호목록에는 35개국 67건의 유산 종목, 그리고 모범사례목록에는 22개국 25건의 사례가 등재되었다.19)
아울러 당사국들은 협약 제29조에 따라 매 6년마다 협약 이행을 위한 법적, 제도적 조치들에 대한 정기보고를 정부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20) 정기보고는 당사국들의 국내적 협약 이행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는 한편, 종합적인 이행 경향에 대한 분석을 가능하도록 한다. 따라서 한국의 협약 이행이 다른 당사국과 비교하였을 때 어느 정도의 수준이며, 또 보완할 부분에 대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기보고 자료는 중요한 참고가 된다.
마지막으로 협약의 운영과 관련하여, 제7조(마)항에 따라 정부간위원회는 「운영지침」을 준비하고, 협약 당사국 총회의 승인을 받는다. 「운영지침」은 2006년 협약의 발효 이후 초안이 만들어져 2008년 처음 채택되었다. 협약 당사국들은 협약의 구체적 이행을 돕는 「운영지침」이 협약 이행과정에서 발견되는 여러 도전 과제들과 이행경험을 반영하여 정기적으로 수정될 필요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정부간위원회와 총회를 통해 현재까지 6차례 개정 작업을 거쳤으며(2010, 2012, 2014, 2016, 2018, 2020년), 앞으로도 이러한 개정 작업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21) 특히 등재절차나 자문기구의 운영, NGO 승인, 원주민 참여와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 등이 주요 개정사항으로 반영되어 왔으며, 당사국은 이러한 개정 결과를 협약 이행에 적극 반영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다음 절에서 논의될 한국의 「2003년 협약」의 국내 법적 이행에 있어 협약의 주요 조문뿐만 아니라, 「운영지침」의 주요 개정내용과 방향 역시 협약과 국내법을 비교분석하는 유효한 기준이 된다.
Ⅲ.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보호와 「2003년 협약」의 가입
한국의 「2003년 협약」 가입은 협약 채택 후 약 1년 4개월 후인 2005년 2월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전부터 한국은 1998년 걸작 사업에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등을 등재하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사업에 참여했고,22) 2001년~2005년에는 ‘아리랑상(Arirang Prize for Intangible Heritage)’을 제정하여 6개 무형문화유산 종목에 대한 시상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2005년 협약에 가입한 이후에는 한국은 국제적 차원에서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간위원회 위원국을 세 번째 수임하고 있으며,23) 2016~2017년에는 의장국을 맡아 2017년 12월 제12차 정부간위원회를 제주도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협약의 거버넌스 참여 외에도, 유네스코에 여러 회의 개최와 역량강화를 위한 신탁기금(fund-in-trust)을 공여하며, 협약의 국제적 이행에 활발히 기여하고 있다.24) 협약의 국제적 목록에도 한국은 중국(34건), 일본(22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유산 종목(21건)을 대표목록에 등재해왔다.25) 등재신청서 우선순위 부여 및 국가 당 최소 매 2년 1개 검토 등의 원칙이 계속된다면 당분간 협약의 목록에서 한국의 높은 가시성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26)
국내적 차원의 협약 이행을 살펴보는 데 있어, 한국이 협약과 별개로 일찍이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조치를 취해왔다는 점은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협약의 발효 이후 한국이 그 영향을 받아 관련 국내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주요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을 오랫동안 사라져가는 유무형 문화재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왔다(강인숙, 2016: 33). 1960년대 초 무형문화재 전국 실태조사가 실시되어 최초로 무형문화재가 지정되었으며, 1970년 법률 개정을 통해 중요문화재에 대한 보유자를 인정하도록 하여 후계 양성과 전승 활동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가능하게 하였다.27)
1982년 「문화재보호법」의 전면적 개정을 통해 현재의 「문화재보호법」과 유사한 골격이 갖추어졌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제도와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 이때 마련되었다.28) 단체 종목의 경우, 보유단체를 인정하는 제도를 실시하게 됨으로써,29) 지원 대상이 보유자, 보유자 후보, 조교, 악사, 일반이수자, 전수장학생, 일반전수생 등으로 확대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는 보유자(단체)의 책임과 권한이 강화되어 자율적 심사에 따라 이수증을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다.30) 그러나 심사기준 및 평가기준의 부재로 보유자(단체)에 의한 권한 남용의 위험성이 계속 제기되었으며, 보유자를 소수로 한정함으로써 보유자로 인정받지 못한 전승자들의 전승 활동이 제한되는 문제도 대두되었다(강정원, 2002: 148-159). 그러나 보유자의 고령화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종목 및 보유자 인정 확대를 실시하는 주된 계기가 되어, 이때부터는 전승 단절의 우려가 있는 종목을 우선 지정하되, 민족 고유의 전통성을 근간으로 재현한 신규종목도 추가 지정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보유자 복수 인정 또한 적극 시행되었다(송인헌, 2020: 35-36). 아울러 2001년 법 개정에 따라 명예보유자 제도가 도입되어,31) 기존 보유자와 신규 보유자의 세대교체가 원활해졌다.
유네스코의 「2003년 협약」 채택과 2005년 한국의 협약 가입은 무형문화재에 대한 정의뿐만 아니라, 보호 및 전승 형태와 체계, 지정과 관리 등 전반적인 법제도 검토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먼저 「2003년 협약」과 우리 「문화재보호법」 간 무형문화유산의 범주에 대한 차이는 2010년 「문화재보호법」의 전면개정에서 반영되었는데, 기존의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에 놀이와 의식이 추가되었다.32) 1999년 일부 개정 시 학술적 가치가 추가되었으나, 무형문화유산의 범주에 새로운 장르가 추가된 것은 「문화재보호법」 제정 후 약 50년만의 변화였다. 아울러 「2003년 협약」의 대표 목록 제도의 성격을 반영하여, 한국의 대표적인 무형유산이 보호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특정 보유자(단체)가 없거나 인정이 어려운 유산의 경우에는 보유자를 인정하지 않아도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였다.33) 이는 앞서 언급된 전승 단절의 위기에 놓인 무형유산 종목 지정에 대한 기존의 관심이 협약의 등재제도에 영향을 받아 국가의 대표적 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됨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주체에 의해 다른 형태로 전승되어 온 아리랑이 처음으로 보유자(또는 단체)가 없는 종목으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법 개정과 제도적 확충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문화재보호법」이 유형문화재 중심으로 제정되어 ‘원형(原型)’ 유지를 원칙으로 한 점이나,34) 협약이 정의하는 유산의 범주와 동일할 수 있도록 국내적으로도 그 범위를 더욱 확장하여 관련 제도를 보완하는 점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이 2011년 「중화인민공화국 비물질문화유산법」을 제정하여 조선족의 ‘아리랑’, ‘씨름’, ‘농악무’, ‘그네뛰기 및 널뛰기’, ‘전통혼례’ 등 16개 유산 종목을 국가 대표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한국의 대표적 무형문화유산 종목들이 법제도적 한계로 적절히 지정·보호되지 못하는 상황에 경종을 울리게 되었다(정종섭·정상우 외, 2011: i). 따라서 그간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온 무형문화유산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전승 인력의 확대, 활용 부문에서의 지원 강화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위와 같은 대외적 상황 변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독립 입법이 추진되었으며,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되어 2016년 3월부터 시행되었다.
Ⅳ. 「무형문화재법」을 통한 한국의 「2003년 협약」 이행
「2003년 협약」을 비준한 여러 당사국들은 협약의 주요 내용을 국내법과 제도에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을 개정하거나, 또는 관련 정책과 제도를 도입한다. 2016년까지 제출된 협약 당사국의 정기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신규 법 제정과 기존 법 개정을 통해 협약을 국내 법적으로 이행하는 당사국은 전체 60%에 이른다(Kim & Nam, 2016: 47-48). 한국의 경우, 앞서 언급된 것처럼 기존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협약의 주요 내용을 이행해오다, 2015년 「무형문화재법」 제정을 통해 협약 이행을 위한 별도 법안이 마련되었다. 이는 한국이 유네스코 내 무형문화유산 관련 제도와 법의 발전에 기여한 국가로서, 협약 채택 후 국내법이 다시 협약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법이 제정된 독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약 반 세기 만에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제정된 「무형문화재법」의 주요 특징을 「2003년 협약」과의 비교를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3년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공동체 및 집단과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보는 관습·표상·표현·지식·기능 및 이와 관련한 도구·물품·공예품 및 문화적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그 범주로서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체로서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 예술, 사회적 관습·의식 및 제전, 자연 및 우주에 관한 지식 및 관습, 전통 공예 기술 등’으로 제한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법」에서는 1999년과 2010년 개정을 통해 ‘연극, 음악, 무용, 놀이, 의식,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무형문화재의 정의를 확대하였으나, 유네스코 협약에서 언급되는 구전 전통이나 전통 지식과 관습 등은 포함되지 못하였다(<표 1 참조>).
자료: 최영화·민경선(2017: 33)의 재구성.
실제로 2015년 기준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총 132종목 중 예능이 78종목(59%), 기능이 54종목(41%)으로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은 그 다양성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보호대상이 되는 무형문화유산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하여 「2003년 협약」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포괄적인 분류가 시도된 것이다. 이에 「무형문화재법」 제정을 계기로 「문화재보호법」상 무형문화재의 정의가 새롭게 Δ전통적 공연·예술, Δ공예, 미술 등에 관한 전통기술, Δ한의약, 농경·어로 등에 관한 전통지식, Δ구전전통 및 표현, Δ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Δ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Δ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 등의 일곱 가지로 확대되었다(제2조 제1항 제2호).35)
물론 국내법상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와 범주가 유네스코 「2003년 협약」의 그것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협약보다 작은 범주의 유산 형태를 무형문화유산으로 한정하는 것은 국내의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이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되고, 따라서 법과 제도의 적절한 보호 없이 유산이 사라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한다. 아울러 유사한 유산의 유네스코 목록 등재가 다른 나라에 의해 먼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형문화재법」의 제정과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구전전통 및 표현’, ‘한의약, 농경·어로 등에 관한 전통지식’이 새롭게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 전통사회가 현대 산업화시대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된 생업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산으로서 인정받지 못해 법적 보호의 울타리 밖에 있었다는 점에서 무형문화유산 개념 수정의 의의가 있다(김재호, 2016: 124). 아울러 기존에 ‘의식’으로 포괄되던 범주를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 등으로 구체화한 점도 여러 변화 중 하나이다.
무형문화유산의 범주 확대와 더불어 「무형문화재법」 제정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무형문화유산의 보호 원칙이 ‘원형(原型)’의 유지에서 ‘전형(典型)’의 유지로 바뀐 점이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의 기본원칙을 ‘원형유지’로 하고 있다(제3조). 따라서 무형문화유산 역시 「무형문화재법」 제정 전에는 지정 보유자를 원형으로 보는 보유자 중심적 전승과 보존이 이어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의 성격상 지속적 전승의 과정에서 창의적 계승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원형 중심의 무형문화유산 보호는 유산의 박제화뿐만 아니라, 창의적 유산에 대한 적절한 법적보호를 방해하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하였다(김용범, 2009: 210)(<표 2 참조>).
자료: 저자.
유네스코 「2003년 협약」은 제2조 제1항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에서 ‘세대 간 전승’과 ‘끊임없는 재창조’를 통해 무형문화유산의 근본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그러한 재창조의 과정이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의성에 기여하므로, 긍정적으로 권장되어야 하는 것으로 서술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정상우, 2015: 55). 이러한 가운데, 「무형문화재법」은 기존의 원형 중심 보호원칙이 가진 문제점에 대응하고, 국제협약이 제시하는 전형의 원칙을 수용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무형문화재법」 제3조는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은 전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함을 확인하고, 제2조 제2항을 통해 ‘전형’을 “해당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특징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에서는 이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유지되고 구현되어야 하는 고유한 기법, 형식 및 지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는데, 따라서 ‘전형’이란 무형문화유산의 고유 가치와 특징으로서 오랜 시간 전승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형태가 정해져 있는 ‘원형’과 달리 변화를 전제로 한 ‘전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전체적 이론의 연구뿐만 아니라, 유산 종목별로 구체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2014년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보유자(단체) 없는 유산의 종목 지정을 가능하게 한 이래, 2015년 제정 「무형문화재법」은 해당 원칙을 다시금 확인하여 유네스코 「2003년 협약」의 대표목록(제16조)에 등재될 수 있는 국가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법적 보호조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다.36) 아울러 「무형문화재법」 제정을 계기로 「2003년 협약」의 긴급보호목록(제17조)에 대응하는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 목록이 새로이 도입되어,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연구와 전승 지원을 가능하게 하였다.37) 또한 협약 당사국이 6년마다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협약 이행과 목록 등재 유산에 대한 국가 보고서(「2003년 협약」 제29조 및 「운영지침」 제152항)를 참고하여, 기존 「문화재보호법」의 정기조사 조항(제44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조사 주기를 「무형문화재법」 에서는 매5년으로 명시하여 무형유산의 전승 실태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38)
「무형문화재법」 제정을 통해 그간 문제되어 왔던 국내 제도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는 유네스코 「2003년 협약」의 효율적 이행을 위한 국가적 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전수 관련 제도들이 개선되었는데, 가장 주요하게는 전수교육 이수증 심사와 발급 권한을 보유자(단체)에서 문화재청으로 환원하게 되었다. 과거 보유자(단체)의 이수증 심사와 발급은 이수자 간의 서열화, 이수증 부정발급 등으로 인해 무형문화유산의 전승에 문제가 된 적이 있어 법 제정을 계기로 문화재청에 의한 이수증 심사와 발급을 통해 국가무형문화유산의 전승자로서 이수자의 기량 및 위상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시대에 맞지 않는 도제식 전수 체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전승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전수교육대학을 선정하여 전수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전수생 확보에 기여하고자 하였다(<표 3 참조>). 이로써 전승자를 구하지 못해 전통공예 기술이 사장되는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에 대한 개선이 기대되었다. 또한 단순히 지정 종목의 전수교육에 초점을 두고 관련 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재료와 제작과정에서의 기술개발과 디자인·상품화의 지원, 전승자가 제작한 전승 공예품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전승 공예품 인증제’와 전승 공예품의 구입·대여·전시 등이 가능한 ‘전승 공예품 은행제’ 실시, 나아가 전승자의 창업·제작·유통 지원,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국내외 특허권 취득 방지를 통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다양하고 적극적인 무형문화유산 진흥 정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문화재청, 2015). 이러한 상업적 활동을 통한 전승자에 대한 재정 기여와 무형문화유산 보호와 전승에 대한 인식 제고는 「2003년 협약」의 「운영지침」에서도 강조된 것이기도 하다(제116항). 또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는 협약의 「운영지침」 제104항에 언급된 유산 공동체의 권리 보호 조치가 법안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 언급된 「무형문화재법」에 전수 관련 제도의 주요 변경 사항을 「문화재보호법」 과 비교하면 <표 3>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자료: 문화재청(2015)의 재구성.
Ⅴ. 「무형문화재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유네스코 「2003년 협약」은 국내적으로 「문화재보호법」을 거쳐 무형문화유산만을 위해 독립적으로 입법된 「무형문화재법」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행되어 왔다.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지 이제 5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법률이 가진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논하는 것은 다소 시기상조일 수도 있으나, 일부 학자들이 제시한 「무형문화재법」의 구체적인 이행 개선안과 더불어(김수갑, 2018; 최경화·민경선, 2017), 본 연구에서는 「2003년 협약」의 이행법안으로서 「무형문화재법」이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협약의 주요 조문과 정책문서(「운영지침」)의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개정에 참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003년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하나로 공동체를 꼽고 있으며, 협약의 제15조를 통해 당사국이 관련 공동체, 집단 및 개인의 참여를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그들이 유산의 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협약은 유산 공동체의 역할이 단순히 해당 유산의 창조와 유지, 전승뿐만 아니라, 보호와 관리에도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Blake, 2006: 76). 국가는 공동체를 지원하여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관계는 국가와 그 소속 공동체 간 형성되는 전통적인 상하관계와는 다소 다른 양상이며, 유형문화재의 국가주도 보존관리와도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면 무형문화유산의 성격상 그 공동체의 역할이 핵심적이며, 공동체 없는 유산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국가의 공동 법적, 기술적, 행정적, 재정적 조치들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법」은 이러한 공동체의 역할에 있어 그들의 참여적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의무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제5조 무형문화재 전승자의 책무에서 전승자들이 충실히 전승활동을 수행하여 무형문화재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전승자를 위한 국가의 여러 지원 사항을 고려해볼 때, 전승자들의 전승활동에 대한 의무가 그 대가로 이해될 수는 있다. 그러나 법조문 어디에도 공동체의 역할과 여러 유산의 지정, 보호, 전승, 활용의 과정에 대한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이 없는 가운데 「무형문화재법」이 유산의 전승자들을 무형문화유산 보호의 중요한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는 시각을 가지기는 어렵다.
아울러 「2003년 협약」의 제11조 제(나)항은 무형문화유산 목록 작성에 관련 공동체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39) 협약의 「운영지침」 역시 구체적으로 유산의 목록화 작업과 더불어 국내 유산의 유네스코 목록 등재 작업에서의 공동체와 전문가(기관)의 참여를 강조하고(제80항), NGO와도 협력하도록 하고 있다(제90항). 그러나 「무형문화재법」은 전문가 참여의 경우 제9조에 의한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설치와 제10조 제2항, 제4항, 제5항에 언급되는 국가(긴급)무형문화재 지정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선정에 관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갈음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경우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
당사국 의무 중 하나인 협약의 정기보고의 과정에도 「운영지침」에서는 관련 공동체와 NGO의 참여를 권고하고 있으나(제151항, 157항, 160항), 「무형문화재법」은 제22조에 따른 정기조사 과정에서 전승자나 관계 기관 또는 단체에 협조 요청을 하거나, 정기조사 업무를 전문기관 또는 단체에 위탁할 수 있는 정도로만 관련 공동체와 NGO의 역할을 서술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의 효과적 전승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중요하므로, 그들을 단순히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아닌 협력 파트너로서 인지하여 더욱 많은 참여적 권리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문성을 가진 NGO 및 전문가(단체)가 유산 목록화 작업 및 보호와 전승, 관리의 여러 단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여, 협약의 구체적 이행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한편, 국내 무형문화유산 보호의 절차적 민주화를 제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NGO, 전문가와 같은 비국가행위자들의 참여적 권리가 「운영지침」 개정을 통해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은(Kim, 2021: 201-210), 앞으로 「무형문화재법」의 발전에 있어 매우 주목해야 할 점이다.
「2003년 협약」의 구체적 이행을 돕는 「운영지침」이 2008년 처음 채택된 이래, 협약과 관련된 여러 논의와 변화를 반영하여 더욱 효과적인 협약의 이행을 돕고자 정기적으로 개정되어 왔다. 「운영지침」의 개정에 따라 국내법을 매번 개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이 협약의 주요 발전방향과 관련되는 사안의 경우에는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2016년 개정된 「운영지침」은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주요 내용에 따라 「2003년 협약」의 국내적 이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는데,40) 특히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 조치들이 지속가능하게 실시되어야 하며, 그러한 조치들이 국가 개발정책의 전체적 틀에서 계획되고 조정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임돈희·로저 자넬리, 2019:52-53). 「무형문화재법」의 경우,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무형문화유산의 진흥 관련 조문을 통해 전승자들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제39-제44조), 여전히 무형문화유산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운영지침」 제180항이 강조하는 것처럼 무형문화유산 교육을 통한 경제사회적 발전에의 기여와 같은 다분야적 접근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명문화될 수 있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지역사회에서의 무형문화유산 교육과 전승 활성화를 위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 문화예술교육사를 배치(2020년 개시)하고 전수교육관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홍보를 강화하여 무형문화재의 지역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있는데(송인헌, 2020: 54-55), 이러한 시도는 지역의 재생을 돕는 지속가능발전의 모델로서 충분히 주목할 수 있다. 물론 전수교육관의 다양한 사업과 여러 활동의 구체적 모델을 「무형문화재법」이 모두 담을 수는 없으나,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이 「2003년 협약」 이행의 중요 원칙으로 자리잡은 만큼, 역시 하나의 원칙적 선언으로서 「무형문화재법」 내 관련 문구의 반영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협약」이 운영하는 세 개의 국제목록 중 특히 대표목록의 경우, 등재되는 무형문화유산이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며, 해당 다양성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세계유산목록의 등재 시 언급되는 상대적인 ‘탁월한 가치’ 또는 ‘중요성’에 의해 선정되는 것이 아니다. 「무형문화재법」의 경우에도 무형문화유산 지정의 주요 기준으로 중요성에 대한 언급 대신 역사적, 학문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와 전통문화의 대표성, 세대 간 전승을 통한 전형 유지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문화재보호법」에서 ‘중요무형문화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는 점과 제12조 제1항에서 “무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무형문화재법」에 따른 유산 종목의 지정에 ‘중요성’에 대한 가치 판단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므로, 그에 대한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그 중요성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가운데 기존 「문화재보호법」에서 존재한 중요무형무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의 위계적 층위가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의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구분되고 있다. 물론 그 구분은 중앙과 지방의 관리 이원화와 자율성 보장으로 읽힐 수 있으나, 「무형문화재법」 내 국가무형문화재 관련 수혜적 조치를 보면 보호와 지원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수장학생의 선정과 장학금 지급이 국가무형문화재에만 해당하거나(제27조), 국가무형문화재의 공개와 관련 의무 부과와 함께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점(제28조), 국가무형문화재 관람료 징수(제29조),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의 전수교육학교 선정(제30조) 등의 조항들은 시·도지정문화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상하적 체계로서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시·도지정문화재에도 이러한 조항들이 해당할 수 있도록 하거나, 시·도 차원에서도 유사한 조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003년 협약」은 교육 및 인식제고, 역량 강화를 위한 일반대중과 청년 대상, 유산 관련 공동체 대상 관련 사업 추진과 더불어 무형문화유산 보호 관리 및 연구 관련 역량강화 활동, 비공식적 지식전달, 활동의 대중 홍보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무형문화재법」 역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조문을 적절히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과 홍보에 대해서는 제5장 전수교육 및 공개(제25-제30조)를 통해, 전승과 역량강화와 관련해서는 제7장 무형문화재의 진흥(제37-제46조)에 상세한 조치 사항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제48조의 보칙을 통해 조사 및 기록화 작업의 의무화와 디지털 자료로의 일반 공개에 대한 국가적 의무를 명시하였다.
더 많은 비교연구를 통해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겠으나, 앞서 언급된 「무형문화재법」의 여러 조문에 포함된 조치들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협약의 지침을 잘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의 범주가 확대되고, ‘원형’에서 ‘전형’으로 보존 원칙이 변화한 만큼, 새롭게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더욱 발굴하고 기록화하는 작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동안 무형문화유산으로 여겨지지 않아 연구가 미흡했던 생활관습이나 전통지식, 구전 전통 및 표현 분야에 대한 발굴과 기록, 전승을 위한 교육, 역량강화, 홍보 등의 활동이 종합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으며(최영화·민경선, 2017: 44), 이에 대한 추가적 강조는 향후 법 개정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Ⅵ. 결론
「2003년 협약」이 한국에 발효된 지 어느덧 15년을 맞이하였다. 협약의 채택 이전부터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유산 분야 담론의 발전에 활발히 참여해왔던 한국은 협약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이어, 2015년에는 「무형문화재법」 제정을 통해 협약의 주요 내용을 국내 법제도에 적극 반영하고자 하였다. 「무형문화재법」은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협약과 국내 법적 정의, 범주의 간극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문화재보호법」상 ‘원형’을 중심으로 한 무형문화유산 보호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전승되는 무형문화유산의 본질적 성격과 맞지 않았으므로, 협약에서도 강조된 ‘전형’의 원칙으로 변화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협약보다 제한적인 무형문화유산의 국내적 범주는, 한국이 유네스코 목록 등재에 있어 다른 국가들보다 한 발짝 늦은 대응을 초래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이 적절한 법적 보호망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무형문화유산의 여러 전승·전수 제도와 관련된 여러 현실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함께 협약에 더욱 부응하는 국내법과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협약이 강조하는 무형문화유산 보호와 전승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공동체가 여러 국가적 조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새로운 법안에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공동체와 더불어 NGO와 전문가와 같은 비국가행위자의 참여에 있어서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협약의 「운영지침」의 주요 개정 사항을 반영하는 노력도 필요한데, 특히 최근의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국가적 가이드라인은 향후 「무형문화재법」의 개정에서 관련 원칙의 지지와 확인을 명문화 해볼 수 있으리라 보인다. 이밖에, 협약의 정신과는 다르게 「무형문화재법」이 여전히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가치 평가와 위계적 접근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나, 새로운 무형문화유산 분야에 대한 발굴, 기록, 교육, 전승을 위한 역량강화 지원 역시 더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무형문화재법」의 제정으로 「2003년 협약」의 주요 원칙과 국내적 문제 개선의 시도가 이루어진 만큼, 향후 협약의 이행은 국내의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환경과 실정에 맞게 「무형문화재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협약 역시 「운영지침」을 통해 진화하고 있는 만큼, 「무형문화재법」 역시 새로운 도전 과제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국제협약의 국내적 이행에 있어 다양한 환경이 존재하는 만큼, 반드시 「2003년 협약」의 모든 내용이 「무형문화재법」에 반영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발전하는 협약과 국내법의 상호과정에서 한국만의 모델을 찾아나갈 수도 있을 것이며, 그 사례는 협약의 정신에 맞게 국제적으로 공유되어 협약의 발전에 다시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법제도 개선의 모색이야말로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에 대한 지속가능한 보호를 보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