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에 서서 핵실험 날짜를 예상해야 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남북사회문화교류를 여전히 꿈꾸고 시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현실의 삶의 문제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란 경제적 이익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소통될 수 있을 때,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존할 수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발표된 정북의 통일·대북정책 5가지의 중점 추진 과제 중의 하나로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이 제안되었다. 이는 30여년 동안 지속된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 중요성은 논쟁이 필요 없을 만큼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사의 맥락 안에서 ‘민족주의’라는 화두가 갖고 있는 폐쇄성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들을 주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민족동질성에 ‘개방과 소통’이라는 화두는 의미있는 지점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남과 북이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번 연구는 이러한 질문들로 시작되었다.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유효한 남북교류 중 하나가 무형문화유산(비물질문화유산) 교류라고 판단했다. 유네스코의 개념에 따르면, 삶 속에서 살아있는 전통으로서의 무형문화유산은 살아있기 위해서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화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그 시대와 그 지역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누구의 무형문화유산이 적통인가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 아닌 공존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민족동질성 회복의 유효한 유산이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였다.
그동안의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는 북한의 화유물보호법(1994)이나 문화유산법(2012)의 법제와 행정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남북한 비교연구가 주로 시도되었다.1) 이후 이를 통해 남북교류의 필요성을 언급하거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는 연구들이 뒤를 이었다.2) 최근에는 전영선의 ‘조선옷’ 연구와 같이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중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여 집중 분석하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3) 최근의 전영선의 연구에서도 드러나듯 그 동안의 연구자들의 논의는 2012년 북한의 문화유산보호법을 통해 비물질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시작하였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1994년 제정된 ‘문화유물보호법’이 2012년에 비로소 ‘문화유산보호법’으로 개정되면서 보호 대상에 ‘무형문화유산’을 드디어 포함시켰기 때문에 이 법에 토대를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분단 후 70년 동안 남한과 북한의 이 장르를 부르는 용어가 서로 다른 점에서 드러나듯 무형문화유산과 비물질문화유산은 서로 다른 정책적 역사를 지니며 발전해 왔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는 남한의 무형문화유산과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고,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남북사회문화교류의 가능성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Ⅱ. 남한 ‘무형문화재’ 개념과 제도의 변화
남한에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용어의 등장은 ‘무형문화재’라는 용어로부터 시작되었다. 남한의 ‘문화재’라는 용어는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의 가치가 큰 것을 구분하여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 예술적 가치, 학술적 가치가 핵심 개념이며, 그 용어에서도 ‘문화유산’이 아닌 ‘문화재’가 법적 용어로 공식화되었다.”4) 무형문화재가 법제화된 것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제도가 도입되었고, 1964년에는 무형문화재 종목을 지정하였다. 일본은 1950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무형문화재에 대한 규정이 언급되어 있는데, 남한에서의 ‘무형문화재’의 개념과 이를 보호하려는 체계는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1960년대 틀을 갖추기 시작한 무형문화재 제도가 2012년 문화재보호법으로 이어져 2015년 제정될 때까지 일본의 문화재보호법과 차별점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기준과 관련된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할 때부터 “문교부장관은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제2조 제2호의 무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다.”5)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보유자의 규정이 없다가, 1970년 “전항의 규정에 의하여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에는 당해 무형문화재의 보유자를 인정하여야 한다.”6)는 규정이 추가됨으로써 보유자 인정기준이 만들어졌다. 1970년 당시의 기준은 “예능 또는 기능을 원형대로 정확히 체득 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자”로 설정되었다.7) 그러나 일본에서는 보유자 인정 기준에 처음부터 일관되게 ‘원형’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대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능 혹은 공예기술을 ‘고도로 체득하고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8) 우리는 ‘무형문화재’를 ‘문화재보호법’ 안에서 논하고 있는 체계, ‘무형문화재’라는 용어의 선택, ‘전수자 인정 기준 제시’ 등 그 뼈대는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에서 갖고 왔으나, ‘원형보존원칙’, 국가주도의 전수교육체계 등은 일본과 다른 한국적 무형문화재 제도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중 무형문화유산 남북교류에서 정통성 논쟁을 야기시킬 수 있는 ‘원형보존의 원칙’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은 앞선 논한 바와 같이 1970년부터 무형문화재를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원형보존원칙’은 1997년 발표된 ‘문화유산헌장’에서 “문화재는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선언을 통해 다시 강조되었고,9) 1999년 된 ⌈문화재보호법⌋에서부터는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10)고 명확히 함으로써 무형문화재에서도 ‘인간문화재’ 제도 즉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기준에서도 문화재보호의 기본 원칙으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이는 전쟁을 거치고, 이후 빠른 산업화를 이루어내면서 빠른 속도로 전통이 훼손, 파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묵도한 환경 속에서 문화재를 보존해야 한다는 시급성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는 문화재보호법 제정 때부터 무형문화재를 지정하여 중요무형문화재를 보호하겠다는 정책 방향에서 중점보호주의를 체택하였던 것으로도 확인된다.11) 일본은 우리와 같은 중점보호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대신 ‘포괄적 보호’ 개념 속에서 무형문화재 제도를 시행해 왔다. 따라서 일본은 일본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부터 지정을 해서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전략을 취했던 반면, 우리의 경우는 소멸위기에 처한 무형문화재부터 지정하여 보호하는 정책적 방향을 선택했다. 이는 곧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급함으로 인식되어 ‘원형보존원칙’의 당위성을 만들었고, 이는 국가 주도의 전수교육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원형보존의 원칙은 인간 등 매개체를 통해서 전통이 전승되어 갈 때, 시대를 관통하는 절대불명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며, 따라서 결국 전통의 문제가 ‘정통(正統)’, ‘적통(嫡統)’ 의 문제로 귀결하게 한다. 특히 무형문화재를 매개로 한 남북교류의 문제에서 이 문제는 중요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무형문화재의 특성상, 세대를 이어서 현재까지 전달되는 과정은, 인간 등의 매개자를 통해 전수되면서 전승된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70년 이상 분리 생활했기 때문에 무형문화재가 같은 모습으로 현존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원형 보존’의 입장에서 보면 남과 북 중 한 쪽에 전승된 무형문화재가 ‘원형’이라면 다른 쪽은 ‘원형’이 아닐 수 밖에 없는 선택의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전통’에 대한 논의는 ‘정통’, ‘적통’에 대한 논의로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이다.
전통에 ‘원형’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의들은 많은 해외 연구자들의 ‘전통’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속해 왔다. ╔상상의 공동체╝를 쓴 베네딕트 앤더슨, ╔도전으로서의 예술사╝의 한스 야우스12), ╔만들어진 전통╝을 쓴 에릭 홉스봄 등의 논의에서 그 한맥을 짚어낼 수 있는데, 이들은 ‘전통’이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전통’이란 어떠한 목적이나 특정적인 조건에서 ‘의식’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강조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어떠한 특정한 전통의 전승될 때 ‘원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원형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원칙이다. 즉, 전통은 전승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변형되기도 하고, 재해석되기도 하며, 새로운 요소들이 창출되어 결합되기도 한다고 파악한다. 특히 이는 인식론적 위기를 맞아서 그동안 사용되어 왔던 가치체계로 이 위기의 사항을 해석해낼 수 없을 때, 이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의 수단으로 ‘전통’이 호출되어 동작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부터 ‘원형’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2003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32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이 채택되면서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정책적 환경이 마련되었다13). 이러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의 채택 과정이 ‘2001년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유네스코 세계선언’과 연동되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무형문화유산”이라 함은 공동체·집단과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보는 관습·표상·표현·지식·기능 및 이와 관련한 도구·물품·공예품 및 문화 공간을 말한다.”14)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의 무형문화재의 정의와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한국의 무형문화재에 대한 정의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재보호법 제정 당시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기타의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이라고 규정하였고,15)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 제정된 후인, 2004년 한 ╔문화재보호법╝ 뿐만 아니라 2012년 시행한 문화재보호법에서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16) 유네스코 협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네스코에서는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재’라는 단어 대신 ‘문화유산’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다고 판단된다. 이 또한 이 개념을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라 판단된다.
또한 유네스코 협약에서는 ‘정의’ 다음 항목을 통해 무형문화유산을 범주화하고 있어서 주목을 요한다. “(A)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B) 공연 예술, (C) 사회적 관습·의식 및 제전, (D)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E) 전통 공예 기술”17)이다. 이를 우리의 ‘무형문화재’ 개념과 비교해보면, 유네스코 협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언어와 구전전통’,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은 우리의 ‘무형문화재’ 개념에서는 포함시키지 않았던 범주이다. 유네스코는 “세대간 전승되는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및 집단이 환경에 대응하고, 자연 및 역사와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이들이 정체성 및 계속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을 증진한다.”18)고 그 의의를 정리하고 있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토대에서 ‘무형문화유산’ 정책이 동작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무형문화유산을 과정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한국의 ‘원형보존의 원칙’은 유네스코의 세계사적 관점을 토대로 한 ‘문화 다양성’과 과정을 중심에 둔 논의와는 상충되는 견해이다.
이러한 차이는 무형문화유산의 보호 방법에 대한 방식 차이로도 드러난다. 한국의 무형문화재 제도에서는 무형문화제를 보호할 때에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19) 그리고 전수교육제도를 국가 주도로 운영함으로써 이 원칙이 무형문화재를 보호하고, 이후 전승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지켜지도록 체계화하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의 생명력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무형문화유산의 다양한 면모의 활성화를 인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각 단계의 “감정·기록”을 통해 보안하며, 이를 토대로 시대를 관통하면서도 생명력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무형문화재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보호가 아니라, 무형문화재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생명력을 갖고 계속적으로 활용되도록 조취를 취하는 것이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무형문화유산’을 왜 보호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유네스코와 한국이 차이점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 차이가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개념이 ‘원형보존의 원칙’인 것이다.
2012년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강고히 지켜졌다. 이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과 제도 등이 유네스코보다 더 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는 자긍심과 그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전승제도를 통해 구축된 권력 블록의 역학 관계 등과도 긴밀히 결합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유네스코 협약과 우리의 무형문화재 보호 제도와의 이러한 차이점에 대하여 검토를 요구하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는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논점은, 유네스코라는 세계기구의 기준에 우리의 기준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보다는, 유세스코 협약이 지닌 문화다양성을 토대로 한 세계주의적 관점과 과정론적 전통 이해에 토대를 두고 무형문화재의 개념을 확대하고, 원형보존의 원칙에 대한 폐기, 수정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였다.20)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원형보존의 원칙’은 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라져버릴 위기해 처했던 무형문화재의 전승과 보존에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원형보존의 원칙’을 통해 무형문화재의 전통이 선험적으로 그 고정불변한 원형이 실재한다고 믿는 원칙은, 무형문화재가 사회와 인간의 삶과 결합하여 함께 변화하며 생명력을 갖고 살아있는 대신에, 무형문화재가 ‘박제화’되어 버리고, 이 박제화된 현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까지 해석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특히 예능 종목의 경우에는 문헌자료나 실연장면에 대한 고증 가능한 자료가 희소하여 원형이 불확실하다는 한계를 지닌 분야가 무형문화재 분야이다. 따라서 유형문화재와는 달리, 무형문화재에서는 무엇을 원형으로 설정할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타당성을 설득하는데 항상 매우 취약하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실재로 진도씻김굿(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택견(중요무형문화제 제76호),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진도다시래기(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살풀이춤(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등은 원형의 기준에 대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21) 공예기술분야의 경우에는, 예능 관련 분야보다는 문헌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용이한데, 이 경우에도 전통시대의 긴 시간동안 공예 기술분야의 기법 상의 변화와 발전 또는 쇠퇴의 역사 또한 문헌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의 변화와 함께 사회역사적 환경 속에서 전승되어온 무형문화재의 공예 기술 중 어느 것을 원형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는 무형문화재의 발전 가능성이 원형 훼손이라는 범주 안에서 충돌되어 논쟁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원형보존의 원칙은 이북5도무형문화재를 통일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북5도무형문화재 전수자들은 북한에는 무형문화재 전통이 사라졌으며, 이는 자신들을 통해 전수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무형문화재 전수자들을 국가가 보호하지 않으면 북한 지역에서 계승되고 있었던 무형문화재의 전통은 상실될 것이므로 그 긴급성을 인정해줄 것을 오랜 기간 주장해 왔다.
현재 북한에서는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용어로 무형문화재를 적극적으로 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원형보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 사항을 바라본다면, 이북5도무형문화재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국 국가기관이 인정한다면, 북한의 같은 종목의 무형문화재는 원형을 훼손한 즉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전통문화가 된다. 즉 어느 것이 정통인가의 논란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유산 보호의 핵심적 요소는 ‘생명력’의 보장이다. 앞에서도 논한 바와 같이 이는 문화다양성의 토대 위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유네스코의 협약 내용의 토대에서 보면, 이북5도무형문화재는, 우리나라의 분단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독특하고 보호해야 하는 문화를 지녔다는 점에서 보호해야 마땅할 문화재이다. 2003년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채택 후 우리나라는 2005년 이 협약에 가입을 하였지만 2012년 문화재보호법에서도 ‘원형보존의 원칙’은 전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우리나라는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어 2016년 3월부터 시행되었다. 여전히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용어 대신 ‘무형문화재’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보호’가 아닌 ‘보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유형문화재는 물질성 그대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보존’이나 ‘보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 이번 2015년 무형문화재 법률에서는 무형문화재가 사회 안에서 생명력을 갖고 계승되도록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보호’라는 단어가 아닌 ‘보전(保全)’ 즉 온전하게 보호하여 유지한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법률의 제목에도 ‘진흥’이라는 단어를 뽑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이 법률에서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정의도 기존에 유지해왔던 정의에서 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무형문화재법에서 ‘무형문화재’ 정의는“⌈문화재보호법⌋ 제2조제1항제2호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용어 대신 여전히 ‘무형문화재’로 용어를 개념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서술에서 ‘무형의 문화적 유산 중’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무형문화재’ 보다는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용어가 더 넓은 개념이라는 규정 후, 7개의 범주로 ‘무형문화재’로 정의한다는 설명이다. “가. 전통적 공연·예술, 나. 공예, 미술 등에 관한 전통기술, 다. 한의약, 농경·어로 등에 관한 전통지식, 라. 구전 전통 및 표현, 마. 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바.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사. 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 라는 범주는 2012년 문화재보호법에서 무형문화재의 정의와 비교해 보면, 범위가 확대되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의 범주와 많이 유사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유네스코 협약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까지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대신 우리는 개정된 범주에서 ‘한의약, 농경, 어로에 관한 지식’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띈다. 이 농경이나 어로, 한의약 분야는 이전 농경사회를 지탱한 핵심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호의 범위 밖에 있었다가 새로 범주화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2015년 제정된 ‘무형문화재법’의 가장 큰 특징은 무형문화재 보호 원칙을 작동했던 ‘원형보존의 원칙’이 ‘전형(典型) 유지’로 변경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2년 개정된 ‘문화재보호법’ 제3조 ‘문화재보호의 기본원칙’은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22)고 규정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무형문화재법’이 독립입법으로 제정되기 이전에는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보호의 기본원칙’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무형문화재도 ‘원형유지의 기본 원칙’이 작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면서 동 법 제3조(기본원칙)을 통해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은 전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던 ‘원형보존의 법칙’이 ‘전형유지의 원칙’으로 변경되었다. 단,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민족정체성 함양, 2. 전통문화의 계승 및 발전, 3. 무형문화재의 가치 구현과 향상”는 조항이 포함되어 전형의 유지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계승뿐만 아니라, 발전과 향상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바이다.23)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이란 “세대 간 전승되는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및 집단이 환경에 대응하고 자연 및 역사와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이들이 정체성 및 계속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한다”24) 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세대를 통해 전승되면서 끊임없지 재창조되는 속에서 정체성 및 계속성이 유지되는 것이 무형문화유산의 본질임을 강조하고 있다. ‘무형문화재법’에서 “전형(典型)”이란 해당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특징”25)이라고 정의하고 있다.26)
2015년 무형문화재법의 제정을 통한 보다 중요한 성과는 남과 북 어느 곳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형문화재가 ‘원형’인가에 관한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문화다양성의 공존이라는 관점과, 과정 중심적 입장에서 무형문화유산을 파악하고, 이 전통이 세대에서 세대로 지속적으로 전승되기 위해서 전형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창조적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진흥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남과 북의 무형문화유산이 그 전형이 서로 같더라도, 분단 이후 서로 다른 체제와 이데올로기, 이에 따른 미학적 견해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사람들을 통해 전승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승 발전되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같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어 지역성 특징을 잘 담아 전승되어 온 두 무형문화유산 모두 우리가 보호해야할 전통으로 인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남북 무형문화유산 교류를 위하여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정책의 변화와 특징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Ⅲ. 북한 비물질문화유산의 개념과 제도 변화
북한에서는 김정은시대인 2012년 ‘문화유산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처음으로 무형문화재 보호에 대하여 법적 제도를 만들었다. 이 법에서 북한은 무형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비물질문화유산’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현재 중국도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2년 ‘Section for Non-Physical Heritage’를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는 ‘Non-Physical Heritage’를 수입하여 번역한 ‘비물질유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27)
유네스코는 1992년 일본의 예를 참고하여 ‘non-physical heritage’용어를 대신하여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Section for non-physical heritage’의 명칭도 ‘Section for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로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2003년에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을 만들 때도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후 계속적으로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2004년 8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 가입하였고, 2005년 3월 국무원(國務院) 판공청(辦公廳)에서 ⌈우리나라 비물질문화유산 보호공작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한 의견⌋을 발표하였고, 2005년 12월에는 국무원에서 ⌈문화유산 보호를 더욱 강화할 데 대한 통지⌋를 발표하였다. 이 글에서 사용한 비물질문화유산의 정의를 다음과 같다.
“비물질문화유산은 비물질형태로 존재하면서 군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각종 전통문화 표현형식으로, 구비전통, 전통연행예술, 민속활동 및 의례, 명절을 포괄하며 자연계 및 우주와 관련된 민간 전통 지식과 실천, 전통 수공예 기능뿐만 아니라, 상술한 전통문화 표현형식과 관련된 문화공간도 포괄한다.”28)
위의 정의에서 ‘자연계 및 우주와 관련된 민간 전통 지식과 실천’ 등 비물질문화유산의 범주을 살펴보면, 유네스코 협약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29) 중국은 2011년 ⌈비물질문화유산법⌋을 제정한다. 이 법에서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의 범주를 공예 기술에서 ‘전통 미술’로 범주를 확대하고 있고, ‘서법’도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과는 다른 중국적 범주의 특성으로 주목을 요한다.30) 향후 중국이 선차적으로 이 부분을 국가목록화 한 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2015년 법 개정할 때 무형문화재 범주 안에 ‘미술과 관련된 전통기술’을 삽입시켜 이 부분을 보안해내고 있다.
북한은 중국처럼, 한국과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무형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비물질문화유산’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의 ‘무형문화재’와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를 유네스코 협약에 등장하는 ‘Intangible cultural heritage’과 같은 용어의 범주 안에서 다루고자 한다.
북한은 2012년 처음으로 ‘비물질문화유산을 포함한 ‘문화유산보호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서 문화유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우리 인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이 깃들어 있는 나라의 귀중한 재부로서 물질문화유산과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나눈다. 물질문화유산에는 (생략) 력사유적과 로동도구, 생할용구, 무기, 조형예술품, 고서적, 인류화석 같은 력사유물이 속한다. 비물질문화유산에는 력사적 및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큰 언어, 구전문학, 무대예술, 사회적 전통 및 관습, 각종 례식과 명절행사,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식, 경험, 전통적인 수공예술, 의학, 민족료리, 민속놀이 같은 것이 속한다.”31)
이러한 범주 규정은 2012년 남한의 문화재보호법에서 정의하던 무형문화재의 개념보다는 확장된 개념이나 2015년 무형문화재법과 비교하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유네스코 협약과 중국의 정의에서 언급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을 남북한 모두 범주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우리는 범주에서 ‘한의약, 농경, 어로에 관한 지식’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식, 경험’이라고 규정하여 매우 포괄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남한과 북한, 그리고 유네스코에 이르기까지 무형유산에 대한 범주 설정은 유사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시대인 2012년 제정되어 비물질문화유산을 언급하고 있는 ‘문화유산보호법’을 분석해 보면 그 특징은 ‘과학화’, ‘국제화’, ‘쳬계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법의 ‘제1장 문화유산보호법의 기본’ 제8조에 ‘문화유산보호관리의 과학화의 원칙’에서 “국가는 문화유산보호관리 부분의 과학연구사업을 강화하며, 앞선 과학기술의 성과를 적극 받아들이도록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51조에서도 문화유산보호부분의 과학연구 조건보장과 성과 도입에 관하여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제9조 ‘문화유산보호관리분야의 교류와 협조’에서는 “국가는 무화유산보호관리분야에서 다른 나라, 국제기구들과의 교류와 협조를 발전시킨다.”고 언급하고 있다.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을 등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등재 이후에도 관련 국가에는 여러 의무 조건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제3장 문화유산의 평가와 등록’에 평가 등록, 심의 평가방법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심의평가위원회’에 대한 규정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체계화에 관해서는 ‘제6장 문화유산보호사업에 대한 지도통제’에 관한 규정들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32)
‘과학화’, ‘국제화’ ‘쳬계화’를 보다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2015년 채택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유산보호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 10월 24일 김정은의 ╔민족유산보호사업은 우리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빛내이는 애국사업이다╝가 발표된다. 이 책에서 김정은은 민족문화유산이라는 개념 안에 물질유산과 비물질유산 개념을 포함하여 논하고 있는데, 이 민족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 원칙으로 ‘주체성의 원칙’, ‘역사주의 원칙’과 더불어 ‘과학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주체성의 원칙’, ‘력사주의 원칙’은 북한의 전통관에서 일관되게 강조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성의 원칙’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33) 이러한 원칙 하에서 ‘민족유산들과 역사적 교양 거점을 통한 교양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비물질유산과 관련하여서는 ‘민속공원’의 활성화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34)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체계화’와 관련하여, ‘역사유적과 유물들, 명승지와 천연기념불들, 비물질문화유산들을 자료 기지화하고, 그에 대한 정보교류를 활발히 벌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35) 이는 물질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비물질문화유산도 이를 아카이브화하여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교류’에 대한 언급은 향후 남북교류 과정에서 관련 사업 기획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해야 할 영역이라고 판단된다.
또한 조직의 ‘체계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특별히 ‘조선민족유산보존사’와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조선민족유산보존사’는 민족유산보호사업의 과학연구 중심으로의 역할과 자문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은 ‘민족유산보호사업을 책임지고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중앙지도기관’으로 규정하고, 이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을 중심으로 민조유산보호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도체계를 세울 것을 주문했다. 이 곳에서는 ‘물질유산’, ‘자연유산’뿐만 아니라 ‘비물질유산’에 대한 발굴 수집, 이에 대한 심의 등록, 평가사업을 관장하며, 중앙과 지방에서 진행하는 비물질유산보호사업을 통일적으로 관리 지도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또한 중앙과 지방에 조직되어 있는 비상설민족유산보호위원회의 기능과 역할도 이 곳에서 지도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물질문화유산과 관련한 가장 핵심적인 기관임을 확인할 수 있다. 36) 이러한 김정은의 지시는 2015년 채택된 ‘민족유산보호법’에 반영되었다. 이 ‘민족유산보호법’은 2012년의 ‘문화유산보호법’을 계승하면서 더 구체화해내고 있다. 김정은이 ‘민족유산보호사업의 기본원칙으로 언급한 내용은 ‘주체성의 원칙’, ‘력사주의 원칙’ ‘과학화의 원칙’은 제1장 ‘민족유산보호법의 기본’의 제4조 ‘민족유산보호사업의 기본원칙’으로 법제화되었다.37)
‘과학화’와 관련해서는 제56조를 통해 ‘민족유산부분의 과학연구조건을 보장하기 위해서 과학연구기지를 잘 꾸리고, 연구조건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57조를 통해서는 가장 핵심 기관인 ‘중앙민족유산보호지도기관’이 민족유산보호사업에서 과학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38)
‘과학화’와 ‘체계화’ 부분에 모두 관여 되는 아카이브화 작업과 관련해서도 ‘제 6장 민족유산보호사업에 대한 지도통제’, 제58조에 “종합적인 자료기지화”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민족유산에 대한 자료기지화를 실시할 것과 이를 토대로 정보 교류를 활발히 해야함을 명시하고 있다.39)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제 61조 ‘행정적 책임’과 관련하여, 2012년 ‘문화유산보호법’에서는 “문화유산을 승인없이 다른 나라로 내갔을 경우”가 언급되어 있었는데, 2015년 ‘민족유산보호법’에서는 “2. 비법적으로 민족유산 또는 그 자료를 다른 나라에 내갔거나 상적 행위에 리용하였을 경우’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자료의 반출’에 대해서도 비법적인 경우는 행정적 책임을 묻겠다는 조항이 2012년과 달리 신설되어 있다. ‘자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각별해지면서 행정적 처벌까지 생겼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의 과정에서 우리가 인지하고 있어야 할 사항이라고 판단된다.
조직의 ‘체계화’와 관련하여서는 ‘민족유산심의평가위원회’ 조직을 중앙민족유산보호지도기관에 두는데, 이전과 달리 이 조직을 ‘물질유산 심의평가위원회’와 ‘비물질유산 심의평가위원회’로 보다 세분화시켰다. 이들이 대상을 심의 평가할 때는 “해당 민족유산의 역사적 시기와 ‘보호 가치’와 ‘보호 전망’을 정확히 심의하고 평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주목을 끄는 것은 ‘보호 전망’에 대한 심의 평가라고 할 것이다. 이는 북한의 문화유산 보호 방침이 어떻게 전승하고 진흥할 것인가에 방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의 생명력 보장과 이를 위한 활용을 강조하고 있는 방향과도 같으나, 이는 오랜 기간 북한의 문화재 정책의 방향 안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방향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제 21조를 통해 “물질유산은 역사유적인 경우 국보유적과 보존유적으로, 력사유물인 경우 국보유물과 준국보유물, 일반유물”로 구분하고 있으며, “비물질유산의 경우는 국가비물질유산과 지방비물질유산”으로 구분하여 심의 평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의를 통해 보호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비물질문화유산은 내각의 승인을 받아 중앙민족유산보호지도국에 등록하게 된다.40)
‘국제화’와 관련해서는 ‘제3장 민족유산의 평가와 등록’, ‘제25조’에 ‘민족유산의 세계유산등록활동’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강조하고 있다. “중앙민족유산보호지도기관은 우수한 물질유산과 비물질유산, 자연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활동을 계획적으로 전망성 있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41) 이는 앞으로도 유네스코의 협약 및 관련 기준들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국제적 기준을 차용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특별히 ‘민족유산보호법’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보호를 넘어, 이를 어떻게 인민들의 삶과 연결시켜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정은시대 ‘우리국가제일주의’와 연결되어 강조되고 있는 ‘애국주의고양’에 ‘민족유산’이 효과적으로 연동될 수 있다는 판단과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이에 따라 민족유산에 대한 보호관리를 ‘전군중적 운동’으로 전개해나갈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인민들에게 ‘민족유산’을 어떻게 교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역사교양거점’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비물질문화유산과 관련하여서는 ‘민속공원’과 ‘민속거리’조성과 이에 대한 적극적 활용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무형유산관련 남북교류와 관련하여 주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남한에서는 무형문화재의 전수자 인정 기준의 원칙이 ‘원형보존의 원칙’에서 ‘전형 유지’로 변화하는 과정이 무형문화유산 전승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데 주요한 영향을 미쳐왔음을 앞서 살펴본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비물질문화유산과 관련한 전승의 원칙은 무엇일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도 물질유산에 대한 보호 기준은 일관되게 ‘원상대로 보존’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2015년 민족유산보호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다. ‘민족유산보호법’ 제42조에, “민족유산보호기관과 해당 기관, 기업소, 단체, 공민은 등록된 비물질유산을 대를 이어가며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원형과 전형에 대한 논의는 없으며,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계승하여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보호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함에 대한 강조는 유네스코 협약에서 무형문화유산의 생명력 보장과 활용에 대한 강조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의 전통을 대하는 일관된 방향이기도 하다. 42조의 ‘비물질유산의 보호’는 제4조의 ‘민족유산보호사업의 기본원칙’과 연동되어 있다. 제4조에서 ‘민족유산보호사업의 기본원칙’은 “주체성의 원칙과 력사주의 원칙, 과학성의 원칙은 민족유산을 보호하고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일관성 있게 견지하여야 할 기본원칙이다.”라고 규정되어 이다.42) 관련하여 강조되는 것이 비판적 계승의 원칙‘이다.
일찍이 김일성의 저작 ╔민족문화유산계승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민족문화유산은 계급적 입장에서 파악해야 하며, 이를 토대로 하여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것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함을 주장하였다.43) 이와 더불어 민족문화유산을 계승 발전할 때, 봉건유교사상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민족유산을 다 무시하는 경향으로 나아가는 허무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함께 지난날의 것을 덮어 놓고 다 그대로 살리려는 복고주의적 경향도 철저히 반대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44) 이를 통해 “민족문화유산 가운데서 진보적이고 인민적인 것과 낡고 반동적인 것을 정확히 갈라내여 낡고, 반동적인 것은 버려야 하며 진보적이고 인민적인 것은 오늘의 현실과 로동계급의 혁명적 요구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적 계승의 원칙의 토대 위에서 “주체성의 원칙과 력사주의 원칙’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45) 이러한 ‘비판적 계승’은 결국 문화유산을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계승할 유산과 계승하지 말아야 할 유산을 구분해야 하며, 선택된 유산은 사회주의 발전에 맞게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원형보존의 원칙’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원칙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원형’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었으며, 대신 유의미한 문화유산을 계승하여 현재적 관점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지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생명력을 보장하고자 하는 방향은 철저히 주체사상의 바탕 위에서 고민되었다. 이는 “주체성의 원칙과 력사주의 원칙’이라는 용어로 대변된다.
그렇다면 전통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계승의 관점에서 비물질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많은 연구자들은 북한에서 무형문화유산 즉 비물질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공식적 움직임을 ‘문화유산보호법’이 채택된 2012년부터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자는 2012년은 북한 사회 내에서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해이지만, ‘비물질(문화)유산’의 개별 종목들의 보호에 대한 인식은 김일성 시기부터 실행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2012년 정의에 따른 범주 모두에 대한 인식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1976년 발행된 김일성의 저작 ╔민족문화유산계승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도 문화유산에 대한 비판적 계승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비물질문화유산의 대표적인 장르인 ‘춤’ 전통인 탈춤이나 ‘사당춤’, 승무 등 민족무용유산을 보호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46) 이는 비단 무용문화유산에만 언급된 것은 아니며, 김치를 비롯한 민족 음식과 식습관 풍습과 관련한 전통유산, 조선옷에 대한 계승 발전에 대하여도 김일성시대에 이미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때에도 전통을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비판적 계승의 원칙 아래에서 선택될 수 있는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계승이 먼저 시도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형문화유산의 특성상 이 유산을 실행하는 연희자가 대부분은 지배계급이 아닌 민중들이었다는 점에서, 전통을 계급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계승하고자 하였던 북한의 정책 아래에서 선택되었다고 판단된다. 이후 1986년 7월 15일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를 통해 후일 ‘조선민족제일주의’(1989)로 체계화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정책당국의 관심도 더 고조되었다고 판단된다. 이에 따라 민속음식의 경우도 명절에 따른 민속음식의 발굴을 넘어 도별로 자기 지방의 전통 요리를 발굴할 것을 장려하는 등 보다 세밀한 부분까지 광범위한 방향에서 정책이 실행되기시작하였다.47)
김정은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비물질문화유산 교양거점으로서 ‘민속거리’에 대한 강조도 김정일시대 말기인 2000년 대 들어와서 실행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은 2002년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적 전통을 적극 살려나갈데 대하여⌋를 언급하면서 ‘조선민족제일주의 교양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의 하나로’ 민속전통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민속공원과 민속거리를 건설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치 좋은 사리원시에 민속거리를 만들었다. 이 곳에는 고조선시기의 고인돌무덤을 옮겨다 놓기도 하였으며, 경주에 있는 첨성대 등과 같이 물질문화유산의 모형도 만들어 놓았지만, 이와 더불어 무형문화유산과 관련된 윷놀이, 장기, 바둑놀이 등 민속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들을 배치하였고, 찰떡집, 지짐집 등 민속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도 있어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문화유식 장소로도 기능하도록 설계되었다.48) 평양민속공원은 2012년 9월 11일 준공되었다. 대성산 안학궁터 주변 부지에 건설되었는데, 역사와 민속풍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역사체험헝 테마파크로 건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종합교양구’, ‘역사유적전시구’, ‘현대구’, ‘민속촌구’, ‘민속놀이구’로 구성하였다. 각 시기 우리 민족이 창조한 문화유물들과 유적, 창조물들을 실물크기나 축소 모형으로 전시하였다.49) 그러나 ‘현대구’에선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관련 모형이 전시됨으로써, 이 공간이 ‘김일성민족’으로서의 교양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50) 이를 통해 김정은시대 강조하는 애국주의의 토대가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2013년 9월에 조선중앙TV를 거쳐 5회에 나누어 “자랑하자 우리의 평양민속공원”이 방영된 바 있으며, 평양민속공원이 준공된 후 3년간 117만명이 참관했다고 선전하는 등 해외 사절단이 평양에 오면 항상 자랑하던 곳 중의 하나였다.
2014년 10월 24일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의 담화에서, 민족유산 보호사업을 김정일의 ‘우리민족제일주의’를 계승한, ‘애국주의 사업’으로 정의하고, 이를 위해서 내각 문화성 산하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조직 강화를 지시하였다. 아직 민속거리를 조성하지 못한 도들에게 각 특성에 맞게 민속거리, 민속공원을 조성할 것도 지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3년 4월에 창설된 ‘비상설 민족문화유산보호위원회’ 인원 보충 등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는 조치가 2015년 3월에 단행되었다. 조선민족유산보존사 중심의 자료기지 구축 등이 2015년 3월 노동신문 등의 기사들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2015년 5월에는 관련 종사자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이들에게 줄 수 있도록 공훈칭호를 제정하기도 하였다.51) 그러나 2016년 2월 22일 ╔노동신문╝에 ⌈평양민속공원이 전하는 이야기⌋ 기사가 실린 이후로 평양민속공원 관련 기사나 방송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져서 주목을 요한다.52)
하지만 2020년 12월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 기슭에 함흥민속공원이 새로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민속공원’ 조성 사업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53) 함흥민속공원은 민속공원이 만들어지지 전부터 이 곳에 있었던 유적지 제월루와 천연기념물 동흥산 은행나무가 있던 장소성에 민속공원을 건립하여,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 대상으로 교육하기 위한 교양거점으로 새로 건설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단군릉과 광개토왕릉비, 측우기 등의 문화유산 관련 전시물들과 민속 놀이들을 할 수 있는 ‘민속놀이터’ 뿐만 아니라, ‘기념품 상점’까지 마련하였다. 2022년 2월 1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민속거리의 설풍경⌋에서도 사리원시 민속거리, 민속거리 종합식당에 많은 근로자들이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도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고 있듯이 최근까지 민속거리, 민속공원에 대한 교양사업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이처럼 김정은시대 들어와서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용어를 정리하면서 이 개념의 범주를 유네스코 협약의 범주로 까지 확대해 나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김정은은 각 도별로 지역적 특색있는 비물질문화유산을 결합시킨 도별 민속거리를 만들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국단고기요리경연’, ‘전국김치전시회’, ‘전국민족음식전시회’, ‘전국조선옷전시회’, ‘전국바둑애호가경기’,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대회’, ‘전국농업근로자 농악무경연’, ‘동지죽경연대회’ 등을 매년 개최하면서 ‘애국주의’를 적극적으로 교양해내고 있다.54)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전통을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판단하여 ‘비판적 계승’한다는 기본 원칙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김정일시대 ‘우리민족제일주의’의 본격적 실행을 통해 봉건지배계급의 문화예술에 대한 복권이 시도되는 등의 일련의 움직임의 연속성 속에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이 2019년 4월 11일 개정되면서 문화유산의 보호과 계승 발전에 관한 제 41조에서 “복고주의적 경향을 반대한다”는 문장을 삭제하는 데에 이르게 하였다.55) 이 문장은 1972년 사회주의헌법에서부터 일관되게 지속되어왔던 문장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는 보호하고 계승하여 발전시켜야 할 전통에 대한 범주가 보다 확대되고 있다는 것으로 남북문화교류와 관련해서도 교류의 범주가 확대된다는 의미와 연동되기 때문에 주요한 변화의 조짐이라고 판단된다. “복고주의적 경향을 반대한다”는 문장의 삭제는, 전통문화유산은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복고지배계급의 문화유산은 척결해야 하고, 민중들의 문화유산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폐기된 것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문화유산을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할 경우, 전통의 봉건지배계급의 문화예술에 대한 남북 교류는 성사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문인화도 궁중아악도 매우 세련되 전통 문화로 해석하게 되었고, 따라서 관련된 문화유산의 남북 교류로 교류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2020년 예고하고, 2021년 1월 5일부터 12일까지 열린 북한 8차 노동당대회에서 이루어진 ‘조선로동당 규약 개정’ 과 연동하여 분석해볼 수도 있다. 김정은은 8차노동당대회 총화 보고 당시 “조성된 형세와 변천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남문제를 고찰”하였다고 밝혀 당규약을 현실에 맞게 대폭 수정하였음을 공개한 바 있다. 이 내용의 핵심은, 북한이 이번 당 대회 규약 개정을 통해 대남 정책의 새로운 단계로 ‘민족공동 번영’ 단계를 설정하고, 사실상 민주기지론적 남조선혁명론을 규약에서 완전히 폐기하였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외적인 군사실험과 동시에 이러한 당규약, 사회주의헌법과 같은 내부적인 변화도 동시에 분석하는 것은,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통일 정책이 현실적이면서도 유용한 정책으로 수립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 판단된다.
Ⅳ. 결론
이상으로 남한의 무형문화유산과 북한의 비물질유산 용어의 유래와 보호제도의 정책적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남한은 무형문화재의 보호와 전승의 과정에서 ‘원형 보존의 원칙’이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살폈고, 이 원칙은 남한과 북한 뿐만 아니라, 이북5도민의 무형문화유산과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간에도 ‘정통성’논쟁의 문제가 발생하게 됨에 주목하였다. 2015년 무형문화재법의 제정을 통해 ‘원형 보존의 원칙’은 ‘전형 유지’로 규정이 변화하면서 남북 문화공동체 형성에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관련하여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용어의 유래와 법제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동안의 연구자들의 논의는 2012년 북한의 문화유산보호법을 통해 비물질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시작하였다는 입장이었으나, 본 연구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용어는 2012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하였으나, 김일성시대부터 무형문화유산을 ‘민속전통’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보호·진흥하고 있었고, 이후 비물질문화유산이라는 개념어로 변화하면서 유네스코 협약의 개념 범주로 확대해갔음을 밝혔다.
남한이 원형보존의 법칙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면, 북한은 남한과 다르게 ‘비판적 계승’의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었다. 이는 전통을 계급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척결해야 할 전통과 계승해야할 전통을 구분하여 보호·계승한다는 선택적 입장을 지닌다. 특히 비판적으로 계승된 유산은 사회주의 사회발전을 위해 발전시켜낼 것을 주문한다는 정책 방향이 남한과 다른 북한 정책의 핵심 요소임을 파악했다.
김정일시대 ‘우리민족제일주의’·김정은시대 ‘우리국가제일주의’와 비물질문화유산 정책이 결합되어 인민들을 교양시켜내는 핵심 정책으로 자리잡으면서 현재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내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우리민족제일주의’ 정책을 통해 전통을 계급주의적으로 이분화시켰던 기존의 비판적 계승의 관점이 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이 2019년 4월 11일 개정되면서 문화유산의 보호 계승 발전에 관한 제 41조 “복고주의적 경향을 반대한다”는 문장을 삭제하는 데에 이르게 하였다. 이 조항은 1972년 사회주의헌법에서부터 일관되게 지속되어왔던 것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겠다.
김정은시대 비물질문화유산 정책의 방향인 ‘과학화’, ‘국제화’, ‘체계화’를 분석하여,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보호를 넘어 이를 어떻게 인민들의 삶과 연결시켜낼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고민에 집중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는 김정은시대 ‘우리국가제일주의’와 연결되어 강조되고 있는 ‘애국주의 고양’에 ‘민족유산’이 효과적으로 연동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과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이에 따라 ‘민속공원’과 ‘민속거리’조성과 이에 대한 적극적 활용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체계화’와 관련하여서는 민족유산에 대한 자료 기지화를 실시할 것과 이를 토대로 정보 교류를 활발히 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이와 관련하여 2015년 ‘민족유산보호법’에서는 ‘자료의 반출’에 대해서도 비법적인 경우는 행정적 책임을 묻겠다는 조항이 신설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분석은 향우 무형문화유산 분야에서 남북교류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고 하겠다. 무형문화유산과 관련된 아카이브 구축이라는 토대 사업도 시급하며, 현재 북한에서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민속거리 사업을 흡수한 무형문화유산센터 사업 등을 통해 국내외 국민들과 지역주민들과 함께 남과 북의 무형문화유산을 체험함으로써 문화공동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남과 북의 서로가 서로에게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게 함으로써 전통 공유를 토대로 한 민족문화공동체를 시도할 수 있는 정책 등은 남북문화공동체 복원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토대가 될 것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