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행정의 분권화는 20세기 후반부터 국제사회에서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였으며(박혜자·오재일, 2003), 이에 문화행정 및 문화예술 지원체계의 분권화에 대한 논의도 함께 개진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의 정부(1998~2003) 출범 이후 ‘지방이양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앙행정 권한의 지방이양 촉진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과 2023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 현재의 지방자치단체 체계와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정책 토대를 갖추기에 이르렀다(임학순 외, 2018; 국가법령정보센터, n.d.). 한국 문화행정의 분권화 지형은 현재 17개의 광역문화재단과 123개의 기초문화재단 설립(2025. 7. 5 기준,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n.d.)으로 그 구조와 형태는 상당 부분 진전되었으나, 분권의 과정과 지역이 주도하는 문화예술 정책 운영체계 측면(김규원 등, 2024)에 있어서는 여전히 논의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 문화행정의 지역 분권화에 대한 논의는 지역 문화행정 체계 마련을 중심으로 한 지역문화진흥, 지역문화재단 설립과 운영에 대한 주제, 그리고 지방이양 과정에서 등장한 재정적 분권 관련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적 분권 중심의 추이 분석 외에도, 문화예술 분야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여 문화적 가치와 동기에 기반한 ‘문화적 분권’의 관점과 실제 추진 과정에서 필요 자원 확보와 행정체계에 관한 ‘정치적, 행정적 분권’의 관점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는 지역 분권화 시대 문화행정에서 중앙 지원기관의 역할 및 지역과의 협력관계를 조명하고자 하며, 특히 문화적 분권과 정치적, 행정적 분권의 측면을 중심으로 조사와 분석을 수행하고자 한다. 중앙집권적 행정체계를 특징으로 한 한국의 경우, 중앙-지방정부 간 관계가 중첩적(overlapping)이면서도 내포적(inclusive)인 유형으로 간주되기는 하나, 재정 부문에서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특성으로 하는 내포적인 관계를 보다 강하게 드러낸다(김승연·하석철, 2020; 임성일, 2013). 문화행정의 지역 분권화 논의에서도 이처럼 내포적인 중앙-지방정부 간 관계가 나타나는 가운데, 특히 정책사업에서 중앙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고착된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김규원 등, 2024; 박혜자·오재일, 2003). 정보람(2020: 75)은 이와 관련하여 “개별 국고보조방식의 문화서비스 공급체계가 고착화되면서 지역문제의 해결보다는 중앙에서 설계한 사업을 지자체에서 단순히 실행/전달하거나, 지자체의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한 예산확보 중심의 보조사업 유치 경쟁에 집중하는 한계가 발생”한다고 상황을 진단한 바 있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지역 중심의 분권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역이 주도적으로 문화예술정책과 지원체계를 수립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중앙의 역할과 중앙-지역 간 관계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에서 지역 중심 분권화로의 전환 과정은 여러 단계의 중앙-지역 정부 간 조율과 타협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혜자·오재일(2003)은 문화행정의 분권화 추세가 지역 문화행정의 발달과정과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즉, 지역 문화행정의 발달과정에 따라 중앙정부의 기능이 달라진다는 의미로서, 지역 문화행정 초기에는 지자체가 문화재 관리와 문화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두고, 중앙정부 지원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 주도형’ 중앙-지역 정부 관계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지역 활성화를 비롯한 문화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지자체의 주도적인 역할이 확대되면, 중앙정부의 기능은 “지역간·계층간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고, 형평성을 제고하는” 정도로 제한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6). 관련하여 김지선·김정수(2013)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협력형 사업 추진에 있어 중앙-지역 문화행정기관 간 관계를 분석하여, 연구 대상이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간 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권력의존모형 및 대리인모형에서 동반자모형으로 이동했음을 밝힌 바 있다. 즉, 지역협력형 사업의 과정에서 중앙-지역 문화지원기관 간 관계가 수직적 관계에서 협력적인 관계로 일부 변화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승연·하석철(2020)은 한국의 분권화 상황이 지방대표자 선출을 비롯한 정치적 측면에서는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행정과 재정 측면에서는 여전히 강한 중앙정부의 통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에 향후 분권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정부 간 관계가 협상과 교환이 가능한 협력적인 관계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집권형에서 지방분권형으로 단기간 내 전환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복잡한 정치·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일부 선진국에서는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을 절충한 행정체계를 채택하는 사례도 확인된다(박혜자·오재일, 2003). 이처럼 각 국가가 처한 지방이양과 지역 행정체계의 진전 정도, 그리고 분권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수용과 합의 정도에 따른 분권화 전략과 정책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환경적 배경에서 본 연구는 지역 분권화 시대 문화행정의 맥락에서 변화하는 중앙 단위 문화예술지원기관의 변화하는 역할을 탐색하고자, 주요국의 중앙-지역 문화예술지원기관 간 행정 체계와 협력 지원체계를 중심으로 사례 분석하였다. 사례연구 대상국은 중앙집권적 설계형(architect) 국가 중 지역에 위성형 기관 설치 모형을 채택한 프랑스와 후원자(patron) 모델이자 국가 행정 전반에서 분권(devolution)이 진행되고 있는 영국, 그리고 소위 시장 중심형으로 알려진 촉진자(facilitator) 문화행정 모형의 미국을 본 연구의 사례로 선정하여(Chartrand & McCaughey, 1989) 각국의 중앙-지역 협력 지원체계를 탐색하였다. 연구 방법은 문헌분석을 중심으로 한 다중사례연구(Creswell, 2012)를 채택하여, 다양한 모형에서 채택하고 이행하는 중앙-지역 협력 지원체계에 대하여 각국의 분권 현황과 카와시마(Kawashima, 1997)가 제시한 문화행정 분권에 대한 이론을 토대로 각 사례에 대한 분석을 이행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문화행정의 지역 주도 분권화 과정에서 다각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시사점을 도출하여 향후 정책 수립에 유용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지방분권(decentralization)의 일반적인 정의는 정부 또는 중앙 단위 기관에서 하나 이상의 다른 조직, 주로 하위 단위의 조직으로 자원과 권한의 재분배가 이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권화 과정에서는 다양한 자원과 권한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용어의 명시적 활용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권한이양(devolution)과 위임(delegation)을 꼽을 수 있다(DiMaggio, 1991: 220). 예를 들어, 영국(UK)의 맥락에서 분권화 과정은 ‘권한이양(devolution)’으로 명시되고 있으며, 이는 재정적 자원과 그것의 활용 권한 등을 포괄한 분권을 의미한다(Durrer et al., 2019). 반면, 위임(delegation)은 다소 부분적인 형태의 분권으로, 중앙에서 설계한 사업의 실행 등을 목적으로 재정 자원의 분배를 가리킨다(DiMaggio, 1991). 이 같은 분권화 관련 용어의 구분과 사용에 대하여 디마지오(DiMaggio, 1991)는 비록 각 용어가 어떤 명확한 기준 아래 구분되지는 않지만, 분권의 형태와 이양되는 권한의 범위를 파악하는 데는 구분된 용어의 활용이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개념의 측면에서 분권은 주로 정치적, 행정적, 재정적 분권으로 구분된다. 정치적 분권은 “정치적 권한의 이양으로서 주민대표의 선출제 도입(선거분권), 지방의회의 조례제정권 강화, 주민자치권 확대 등”이 이에 속한다. 행정적 분권은 행정 “서비스 수행과 책임에 관한 권한의 이양”을, 재정적 분권은 국세의 지방세 이양과 같은 재정 자원의 “조달과 지출에 관한 권한의 이양”을 가리킨다(하혜수, 2024: 224). 그러나 카와시마(1997)는 문화행정의 맥락을 고려하여 분권의 개념을 문화적, 재정적, 정치적 분권으로 재정립한 바 있다(<표 1> 참고). 이 과정에서 카와시마(1997)가 지적한 문제 중 오늘에도 난제로 남아있는 것은 분권화의 대상이 문화 활동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을 관리 및 운영하는 정치적 구조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이 분권의 대상이 되는지 항상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분권화 정도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는데, 분권화 평가 기준을 문화예술에 대한 인구 1인당 지원액으로 삼는 것의 적합성 여부이다. 이 같은 평가 기준에 대한 의구심은 실제 지원 금액과 창의적 경험 및 질(quality)이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액을 기준으로 분권의 정도를 가늠할 때 제공 및 향유되는 예술과 문화의 질까지 고려한 평가가 어렵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 분권의 형태 | 문화적 분권 | 재정적 분권 | 정치적 분권 |
|---|---|---|---|
| 정책 과정에서의 위치 | 정책 목표 = 결과 | 정책 방안 = 투입 | 정책 방안, 행정 = 투입 |
| 하위 개념 | |||
| 주 행위자 | 소비자/향유자 | 의사결정권자, 지원기관 | |
| 지역 격차 발생 부분 | 기회, 실제적인 결과 | 자원 분배 | 권력/권한(power) |
출처: Kawashima (1997). p. 344. 발췌 및 저자 번역.
상술한 문제를 고려하여 카와시마(Ibid.)가 제시한 문화행정 맥락에서의 분권화 개념은 다음과 같다. 문화적 분권은 정책 또는 분권의 결과로 나타나는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과 기회의 확대, 즉 인구의 다수를 대상으로 한 예술의 공평한 분배 지향을 목표로 한다. 단, 형평성을 통한 접근성 신장은 문화 인프라 확산뿐 아니라, 내용적 접근성 즉, 문화적 표현과 대표성의 다양성 또한 포함하고 있다(350-301). 재정적 분권은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재원의 분배로서, 소비자 또는 향유자에 대한 직접적인 고려보다 문화예술 활동의 생산자 또는 지원자(funders)를 방점에 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다시 말해, 재정 분산을 통한 문화예술 활동의 공급 확대 측면에 더욱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분권은 일반적인 분권 개념에서의 행정적, 정치적 분권 개념을 통합한 것으로 문화정책 수립과 이행을 위한 행정적, 정치적 권한 및 권력 이양을 가리킨다. 많은 경우에 정치적 분권은 중앙-광역-기초 단위 정부 간 관계와 관련이 있으나, 동일 단위에서의 수평적인 권한이양도 포함된다. 보다 급진적으로는 정부에서 비영리, 산업, 시장 등 민간 영역으로의 권한이양도 정치적 분권에 속한다. 분권을 “중앙과 지역 간 권한 배분의 과정이자 결과”라고 볼 때(하혜수, 2024: 223), 카와시마(1997)가 제시한 분권의 구분은 정치적, 재정적 권한 배분의 과정을 통해 문화적 분권화, 즉 문화 다양성과 접근성 신장의 결과를 가늠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문화행정의 분권화가 과연 문화예술 분야 및 공공의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과 효율성만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의 시각도 있다. 망셋(Mangset, 1995)은 1990년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분권화 조류가 강했던 상황 가운데, 노르웨이의 문화행정 맥락에서 분권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분권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논의하였다. 그중 현재 한국의 문화행정 환경과도 연관성이 높은 지점은 중앙정부의 개입이 감소하면서 높아진 문화정책이 지역 정책의 우선순위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다. 교육과 복지사업과는 달리 문화예술 사업의 경우, 비법정 사업(non-statutory services)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같은 위험에 대한 노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Ibid.). 한국 문화행정의 맥락에서도 분권화로 예산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권이 강화되는 경우, 국가가 법에 지출 의무를 명시한 교육과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예산으로 인해 발생한 지자체의 재정부담은 문화사업에 대한 재정을 후 순위로 밀어내는 요인 중 하나로 나타났다(정보람, 2020). 그 밖에도, 한승준(2021)은 문화예술 사업의 경제적 효율성 측정이 제한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자치단체장의 성향이나 지역의 우선 현안과 같은 외부적, 지역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문화예술 사업, 특히 기초예술 창작지원사업에 대한 예산확보에 상대적으로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자체별 재정 여건과 자치단체장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에 따라 [문화 관련 예산의] 격차가 최소 1%에서 최대 20%까지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Ibid.: 51).
현재 우리나라 문화행정 체계에서 중앙–지역 협력의 공식 창구로는 2007년 발족한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가 있다. 그 외 1999년부터 시행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광역지자체에 배분하는 방식의 재정 분권화 사업이 있다. 이는 지역문화진흥과 지역 간 문화예술 불균형 해소를 주요 정책목표로 설정한 사업이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이 사업의 예산 배분과 정책 조정을 맡아 수행하였다(박민권·장웅조, 2020). 이후, 문예위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기획자로서 지역협력형 사업과 같은 중앙-지방 간 협력형 지원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김지선·김정수, 2013).
2009년부터 시행된 지역협력형 사업은 문예위가 광역문화재단과 협력하여 예산 매칭을 진행하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고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는 방식의 지원사업이었다. 이는 기존 지역배분형 사업의 한계를 보완하고, 중앙과 지방이 공동으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a). 2010년대 이후 국가의 지역발전정책 기조가 균형발전에서 광역경제권 발전으로 전환되면서, 문화재정 운용에서도 지방 자율성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려는 흐름과 맞물려 진행될 수 있었다. 다만, 해당 지역협력형 사업이 지역 예술가 및 주민들의 문화예술 수요를 반영하되, 지역문화재단이 수립한 사업 기획안을 문예위가 심의하고, 지원 기준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됨에 따라 이를 문화행정의 분권화보다는 국가 차원의 균형발전 정책 수행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김지선·김정수, 2013).
현재 상술한 지역협력형 사업은 폐지되었고, 2025년을 기점으로 ‘지역예술도약지원’ 사업이 새롭게 추진되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바에 따르면, 이 신사업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발굴한 우수 예술가 및 단체를 지역문화재단에서 추천하고, 피추천인(단체)이 중앙 단위 지원사업 트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b). 이는 광역문화재단이 진행하는 1차 심의를 거친 예술가 및 단체가 2차로 문예위에서 진행하는 심의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지역에서 발굴한 우수 예술가 및 단체가 중앙 단위 사업 심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이에 문예위는 본 사업을 통해 중앙-지역 간 연계 강화와 지역의 기초예술 성장 및 활성화에 기여를 도모할 것을 밝혔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5). 그러나 이러한 지원 방식은 ‘지역협력형’ 사업이 보였던 지역균형발전 수행을 답습하고 있고, 지역의 창작자들을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함으로써 지역의 예술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는 측면이 드러나 여러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Ⅲ. 해외 사례 분석
프랑스 문화행정 체계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모델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지역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제도화하는 ‘지역화된 중앙집권’ 모델로 진화했다. 1959년 샤를 드골 정부에서 설립된 문화부(Ministère de la Culture)의 초대 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문화의 민주화(démocratisation culturelle)”라는 비전을 내세워 모든 시민이 예술과 문화유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했다(Urfalino, 1997). 이 정책 방향은 프랑스에서 문화행정을 중앙에서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반이 되었고, 1960~70년대 ‘문화의 민주화’ 단계에서 문화회관(Maisons de la culture)을 중심으로 지역의 고급문화 접근성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는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기획한 정책이 지역으로 전달되는 전형적인 중앙집권형 접근이기는 하나, 지방의 문화 접근성을 국가가 처음 체계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Urfalino, 1997, 2002).
자크 랑(Jack Lang) 장관 시기인 1980년대에는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démocratie culturelle)’로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졌다(Dubois, 2012). 문화민주주의는 다양한 사회집단과 지역이 각자의 문화적 표현을 발전시키고, 이를 공공정책의 대상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의미했다. 바로 이 시기에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 협력적 재정 모델로서 중앙-지방 공동 매칭 계약(contrat État-Région)이 도입되었고, 이는 문화정책의 기획과 실행 단계에서 지방의 목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 수용되는 계기가 되었다(Ibid.).
1990~2000년대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지방분권 법제화에 착수하여 1992년 지방분권법(loi relative à l’administration territoriale de la République, 1992)과 2003년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문화정책 권한의 일부를 레지옹(région)과 데파르트망(département)과 같은 지방정부로 이양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부는 직접 집행의 역할에서 벗어나 비전과 재정을 제공하는 정책 조정자의 역할로 점차 전환하게 되었다(Dubois et al., 2012).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전통적인 중앙집권적 국가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지역에 실질적 행정 권한과 자율성을 단계적으로 부여하는 지역화된 중앙집권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1977년 설립된 지역문화사업국(Directions régionales des affaires culturelles, 이하 DRAC)은 프랑스 문화행정에서 문화 분권을 위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DRAC은 문화유산 보존 및 관리, 예술 창작 지원, 문화예술 교육과 보급, 문화산업 육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유한 행정적 권한과 전문성을 행사하며, 준자치적 지위를 부여받았다(Delambre, 1997; Sénat, 2003). 현재 메트로폴리탄 프랑스의 13개 광역 레지옹과 5개 해외 레지옹에 DRAC이 설치되어 있으며(Ministère de la Culture, 2025), 각 DRAC은 해당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지역 문화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설립 초기 DRAC은 중앙정부의 문화 민주화 정책을 지역에 전달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으나, 이후 지역별 문화 수요와 현실을 반영하여 정책을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위상이 변화했다(IGAC, 2016). 특히 DRAC은 국가와 지역 정부의 예산을 공동으로 편성하여 문화 사업을 운영함으로써 자원의 일방적 배분에서 벗어나 중앙과 지역 간 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Sénat, 2003). 이러한 협력 구조는 중앙정부의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프랑스식 ‘지역화된 중앙집권’ 모델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DRAC의 내부 조직은 문화유산 관리, 건축 및 유적 보호, 공연예술, 시각예술, 미디어 등 각 분야의 전문 인력과 심의기구를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행정적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예컨대 노르망디 지역의 사례에서 DRAC은 1984년부터 문화유산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문서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의 문화유산과 관련한 자체적 정책 수립과 연구 기반을 확보하였다(Lemoine & Luis, 2001). 또 다른 사례로 오베르뉴-론알프 지역 DRAC의 경우, 예술지원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전담 담당자(conseillers pour les arts plastiques)를 두고 현대미술, 디자인, 공예, 디지털 아트 분야 창작자와 문화기관에 대한 자문 및 심의 업무를 수행한다(Ministère de la Culture, 2024). 이러한 세부 구조들은 DRAC이 전문 인력과 자체 심의기구를 통해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현장 중심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문화부가 예산과 정책 방향을 설정하면, DRAC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구조의 중추로서 이를 ‘지역화’된 방식으로 해석-조정-집행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로써 지역 문화환경에 뿌리를 두면서 문화부의 공통된 기조와 행정적 통제력을 동시에 유지하는 프랑스 문화 분권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문화민주주의 구현은 다양한 장르별 지역문화기관의 설립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983년부터 단계적으로 설립된 현대미술지역기금(FRAC)을 비롯해, 연극 분야의 국립극장센터(Centres Dramatiques Nationaux), 음악 분야의 국립지역음악창작센터(Centres Nationaux de Création Musicale), 안무 분야의 국립안무센터(Centres Chorégraphiques Nationaux) 등이 이에 속한다. 해당 지역문화기관은 모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약을 근거로 운영된다. 이 기관들은 중앙정부가 설정한 문화정책의 기조 아래,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수요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FRAC은 이 중에서도 중앙과 지역의 공동 재정 및 전문성의 제도화가 체계적으로 결합한 사례이다. 먼저, FRAC은 문화부(또는 DRAC)와 지역의 예산을 매칭하여 운영된다. 중앙-지방 공동 매칭 계약(CPER)을 통해 건물, 보관소, 전시장 등 인프라 투자를 수행하고, 연례 협약(convention annuelle)을 통해 운영비와 작품구입비를 공동 부담한다. 일례로 2007~2013 CPER 계약 기간 중 실행한 ‘FRAC 브르타뉴 신축 사업’의 경우, 전체 예산 2,300만 유로 중 중앙정부가 35%, 지방정부 35%, 지방자치단체 30%로 분담하였다(FRAC Bretagne, 2025). FRAC의 작품구입비는 운영비 내 독립 항목으로 편성하여 국가와 지역이 약 1:1의 비율로 공동 부담하며, 연 1회 구성되는 작품구매위원회(Comité technique d'achat)가 매입 대상 작품을 심의한다(Ministère de la Culture, 2024).
작품구매위원회는 FRAC 거버넌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문화부가 형식상 최종 승인 권한을 보유하기는 하지만, DRAC은 행정적 조정과 예산 집행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위원회의 지역적, 전문적 판단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구매위원회의 구성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예술가, 비평가 등 5~7인의 전문가로 되어 있다. 또한, 심의 과정에서 컬렉션의 공공적 역할과 지역적 맥락에서의 적합성, 사회적 다양성과 형평성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를 함으로써(Heinich, 1997) 형식에서는 예술의 분배나 접근성 신장과 같은 문화의 민주화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내용에서 문화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중앙집권적이었던 영국(UK)의 분권화는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행되었으며, 권력과 권한(power)까지 이양하는 형태의 분권(devolution)을 채택했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정치적 연합공동체(union)로서, 1997년에는 스코트랜드와 웨일즈가, 그리고 1998년에는 북아일랜드가 독립된 의회를 수립하여 각 지역 또는 독립된 구성국(constituent countries)의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BBC, 2024. 7. 9; Durrer et al, 2019)([그림 1] 참고). 영국의 구성 국가로의 권력 이양은 중앙에서 주도한 것이 아닌, “각 지역 정부가 국민투표를 통해 권력 이양에 찬성하고 그 결과 웨스트민스터 정부가 최종적으로 각 지역의 권력 이양 결정을 받아들인 결과”로 보아야 한다(장혜영, 2021:123). 중앙에서 지역으로의 권력 이양은 스코트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정부에서 이행되고 있는 반면, 아직 독립 의회가 없고 웨스트민스터 정부의 장악력이 강한 잉글랜드의 경우에는 잉글랜드 지역 정부에서 도시 정부로의 권한이양으로 분권화가 진행되고 있다(고인석, 2018; 장혜영, 2021; 전봉경, 2023). 영국의 분권 과정은 중앙정부 주도에 따른 일괄적 이행이 아닌 지역별 내부적인 협의와 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분권화 시류 속에서도 잉글랜드의 분권화(devolution) 속도는 다른 세 구성국(스코트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었다(House of Commons Library, 2024). 1990년대 말 스코트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각각 독립된 의회를 수립한 반면, 잉글랜드에는 독립 의회(parliament)가 설립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잉글랜드가 연합국(UK)으로부터 독립된 의회를 설립하게 되면 영국으로부터 많은 권한과 책임을 이양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연합국인 영국의 지위 약화에 대한 우려로 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Centre on Constitutional Change, n.d.). 이로써 잉글랜드의 분권화는 현재 행정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하나, 법적 분권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House of Commons Library, 2024). 문화정책과 관련해서도 잉글랜드는 영국 의회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나 문화 분야 전반에 대한 정책보고서 생산에서도 다른 구성국에 비해 우세함을 드러내어(Durrer et al., 2019), 다른 구성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앙과 밀접한 행정적인 관계를 나타낸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에 대하여 도시 정부로 권한을 이양하는 분권화를 진행하고 있다. 즉, 도시 권한이양 협상(city deals)을 통해 선출직인 시장에게 권한, 예산, 책무를 이양하는 방식의 분권을 이행하는 것이다(UK Civil Service, n.d.). 영국 정부는 2010년에 광역개발청(Regional Development Agency)을 폐지하고, 39개의 기초 단위 민관합동 지역발전기구인 ‘지역기업파트너십(Local Enterprise Partnership)’을 설립함으로써 광역에서 기초 단위로 분권화 정책 대상을 전환하였다(장혜영, 2021; 전봉경, 2023). 관련 법안으로 제정된 2011년 영국의 지방분권법(Localism Act)은 기초 단위 지방정부(local government)와 지역 공동체에 새로운 선택의 자율성과 권한을 제공하고, 행정적 계획 과정의 투명성, 민주화, 효율성 증진에 대한 개선을 명시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강화에 주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그간 중앙정부 주도로 이행된 행정 절차 또는 광역 단위 지역 정책을 지방정부 및 지역 공동체의 수요와 선거를 통해 결정할 수 있도록 행정체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Department of Communities and Local Government, 2011).
도시들과 진행되는 잉글랜드의 ‘권한이양 협상(Devolution Deal)’은 “대부분 개별 도시가 아닌 강력한 경제 구심점을 가진 핵심 도시와 그 주변 도시들이 도시지역(city-regions)을 결성하여 중앙정부와” 협상 체결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장혜영, 2021: 135). 권한이양 협상은 중앙정부의 담당팀과 지방정부 지도자들 간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해당 협상은 대중에 공표하지 않아도 되는 사적(private) 협상으로 진행된다. 단, 해당 지역에서 국민투표를 시행하여 권한이양 협상 추진 여부에 대한 찬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한이양 협상 과정을 통해 체결된 협상의 최종 협정문이 발표되더라도, 지역 의회(councils)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고 제안서를 거부하기로 의결하게 되면, 협상이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잉글랜드의 도시 권한이양 과정은 2014년부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의회 간 논의와 협상, 그리고 해당 지역의 국민투표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협상에 참여하는 지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협상의 과정에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장혜영, 2021).
잉글랜드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ACE)는 대영예술위원회(Arts Council Great Britain)가 지역별 예술위원회로의 분립을 통해 1994년에 설립된 조직으로, 설립 후 지속적인 조직 개편과 역할의 확대, 그리고 중앙집권형 정책, 국가 정책과 지역 정책 사이 발생하는 긴장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Durrer et al, 2019). 특히, 잉글랜드의 기초 단위 지방정부로의 권한이양 협상(devolution deals)이 진행됨에 따라 ACE도 지방정부와의 협력과 협상을 이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ACE는 왕실 헌장에 인가된 독립기관으로의 지위와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을 명시하면서, 권한이양 협상을 체결한 지방정부 및 제휴 정부(combined authorities, CA)와의 빠른 협력과 지원 방향 모색을 약속하였다. 이는 잉글랜드의 도시 분권 과정에서 ACE의 변함없는 지위와 권한, 역할을 확인하고, 대신 권한이양 협상으로 인해 조성된 제휴 정부(CA)처럼 새로운 행정 범위를 수용한 문화예술 지원을 이행하겠다는 계획을 표명한 것이다.
ACE의 문화 분권 또는 문화민주주의 지향적인 운영 방향은 조직 내부 거버넌스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ACE는 중앙위원회와 함께 다섯 개의 지역위원회가 런던, 중부, 북부, 남동부, 남서부에 각각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지역위원회는 문화예술, 창의 분야 인력 외에도 행정인력, 지역구의원 등 관련분야 전문성을 갖춘 지역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지역위원회의 위원 및 대표인력들은 또한 중앙 단위 분과별 위원회 참여를 통해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수요 및 입장을 건의 및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밖에도 잉글랜드 전역의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사업(National Portfolio)의 최종심의 결과 및 특별 지원사업, 그리고 재원 조성과 같은 재정 운영에도 지역위원회의 참여와 역할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ACE는 문화예술 분야의 지역 형평성, 즉 문화 분권 효과와 영향을 이루고자 한다(ACE, 2023, 2024; Durrer et al, 2019).
ACE는 2012년 ‘지방정부협의회(Local Government Association, LGA)’와 MOU 협약을 체결하고, 2016년 협의서를 발표함으로써 ‘권한이양 협상’ 과정에서 예술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이행할 것인지 공표하였다(ACE, 2012, 2016). 이는 기초 단위로의 권한이양이라는 중앙정부 정책 이행으로써, 지방정부와의 문화 분권을 위한 협력이다. 이 과정에서 ACE는 이미 문화예술 향유 기회의 보편성을 목표로 상정한 예술위원회의 장기 전략 방향에 대한 변화 및 수정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대신 지방정부는 지역공동체의 수요와 지역 정책을 대표하고, 예술위원회가 지방정부의 제시 내용을 중앙 정책의 전략과 조율하고 맞추어감으로써 지역문화의 발전과 지역민 예술향유 기회 증대를 위한 상호 협력을 합의하였다. 이처럼 예술위원회와 지방정부의 공동 목표는 지역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이라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문화 활동을 비롯하여 번영과 통합,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 건립을 지향하는 것으로서(LGA & ACE, 2023)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역량을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표 2> 참고).
출처: LGA & ACE. (March 2023). “Joint Statement: 2023~2025,” p. 6. 발췌 및 저자 번역.
또한, ACE와 LGA는 예술위원회가 지역의 문화 분야에 혁신적인 거버넌스 및 사업 모델을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해당 지역에 새롭게 부여된 권한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협력 및 지원한다는 것에 협의하였다. 더불어 지방정부의 새로운 재정과 예산 활용에 대한 논의를 개진한다는 내용이 협의서에 포함되어 있다(ACE, 2016). 단, 주목할 것은 ACE가 위원회의 예산을 지방정부로 분배하는 것이 문화 분권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명시함으로써 예술위원회의 재정이 지방정부 예산으로 편입 또는 사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는 점이다(ACE, n.d.: 5).
지역 문화에 대한 지원을 위해 ACE는 지방정부의 리더십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문화예술 관련 역량 강화와 지역의 (대표) 사례 개발을 돕는 간접 지원방안을 채택하였다. 지역과 지역의 수요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행정 및 선출 인력을 대상으로 문화와 예술정책에 대한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자체적인 재정 자원 확보와 환경 변화 및 예산 삭감에 대한 자구책 마련을 지원하려는 것이다(Durrer et al., 2019). 잉글랜드의 도시 권한이양 과정에서 ACE는 지방정부의 행정 역량 증진과 재정 재원 다원화를 돕는 간접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함께 문화 분권의 실현을 이행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기관의 목적과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영국 정부와의 관계는 유지하되 지방정부와의 협력을 다각화하고 증진함으로써 잉글랜드의 분권화 과정에 협력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행정부 시기에 의회가 여러 행정 영역의 주(state) 예산을 사업 개별 보조금 책정 방식에서 정액 교부금으로 변경하였는데, 디마지오(1991)는 이것을 미국 역사상 연방정부-주정부 간의 관계에 있어 주요한 변화를 이끈 사건 중 하나로 보았다. 이를 통해 주정부는 해당 영역 사업의 예산 운영에 있어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연방정부에서 내려온 예산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이양받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영국의 사례처럼 계획된 권한이양이라기보다, 예산 교부 방식의 변화에 따른 실제적인 권한이양 현상으로 보아야 하며, 심지어 공공예술지원은 이러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공공예술지원에서 광역 단위에서 실제적인 권한이양 현상을 겪게 된 것은 1983년에서 1987년 사이 미국경제의 회복세로 인한 주(state)의 세제 수익 증가에 따른 예산 출처 비율의 변화였다. 이에 따라 주립예술위원회에 대한 NEA의 지원금보다 주정부의 예산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이러한 재정 기여도의 변화가 예상 밖의 실제적인 권한이양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Ibid.: 223-224). 제한된 예산 규모와 정치 및 정권 교체로 인해 불안정한 환경적 특성을 드러내는 미국의 경우, 중앙 단위 즉, NEA의 직접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주립예술위원회 및 주정부와 같은 광역 단위로의 분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방 공공기관으로서 미국 56개 주와 관할 권역에 예산을 분배하는 일은 NEA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NEA는 법에 따라 연간 지원 예산의 40%를 주립예술위원회(State Arts Agencies, SAAs)와 지역예술단체(Regional Arts Organizations, RAOs)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미 전역에 분배하고 있다. SAAs와 RAOs는 ‘지역 협력 협약 지원사업(Partnership Agreement Grants)’을 운영하면서 NEA의 예산이 미 전역의 문화인프라 강화, 창작 촉진, 지역사회의 예술로 풍요로운 삶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도록 한다(NEA, 2023, 2024). 즉, NEA는 SAAs와 RAOs가 보유한 문화예술 분야 전문성과 지역에 대한 이해, 기초 지역단체와의 관계를 활용하여 지역의 문화예술 분야와 생태계를 간접 지원하는 것이다.
기초 지역예술위원회(Local Arts Agencies, LAAs) 지원은 SAAs를 통한 지원 외에도, NEA가 운영하는 일반 지원사업(Grants for Arts Project) 대상에 LAAs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지원사업 참여기회를 제공하고 있다(NEA 홈페이지, n.d.). NEA가 수혜 대상으로 삼는 LAAs는 기초 지방정부의 위탁을 받아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예술기관도 포함되며, 지방정부의 비예술 부서1)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NEA, 2025). LAAs 사업의 중요성은 사업 목적이나 방향성에서 주정부 및 연방정부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가짐으로써 다양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DiMaggio, 1991). 때문에 영토가 큰 미국의 상황에서 LAAs에 다층적 지원 기회를 구축하는 것은 문화 분권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주요한 지점일 것이다.
미국의 예술지원 행정체계 맥락에서 권한이양 분권은 세 가지에 의해 주요한 영향을 받는다. 우선 의회에서 의결되는 연방 단위의 공공 예술지원 예산 규모, 그리고 NEA 예산 중 주(state) 예산으로 책정할 기본 지원금(basic state grant) 비율에 대한 의회의 의사결정 및 역할, 마지막으로 SAAs와 LAAs와의 관계가 그것이며, 이에 따라 분권의 효과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DiMaggio, 1991). 결국 지역 예술위원회의 예산이 연방기관을 통해 더 많이 조달되느냐, 아니면 주정부로부터 지급되느냐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는 곳이 달라질 것이라는 관점으로서, 재정 분권에 따라 문화행정 영역의 분권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바이든 행정부 첫날 발행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인종 형평성 증진을 위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3985)에 따라, NEA도 재정 연도 2022~2026의 새로운 전략목표와 ‘형평성 이행계획(Equity Action Plan)’을 발표하였다. 동 계획의 핵심 전략 방향은 취약계층의 예술 참여, 지역사회 참여, 접근성, 데이터, 계약과 조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취약계층의 예술 참여’ 이행을 위해서는 미 권역별 예술위원회의 연합체인 여섯 개 RAOs와의 협력을 통해 유관 사업을 운영하는 방안이 구축되었다(NEA, n.d.). 이 같은 예술 지원에서의 형평성 증진 전략은 지역의 경제적 격차를 좁히는 데 문화 인프라와 취약계층의 예술적 표현과 참여기회 마련에 방점을 둔다. 이는 앞서 카와시마(1997)가 제시한 문화 분권의 특성인 창작 및 표현을 통한 문화 다양성과 접근성 증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형평성 이행계획’의 등장이 NEA의 예술을 통한 지역사회 활성화 전략과 지역별 취약계층 중심 예술생태계 지원의 시초는 아니다. 상술한 ‘지역 협력 협약 지원사업(Partnership Agreement Grants)’을 통해서도 NEA, SAAs, RAOs는 상호 협력을 통해 기초 단위 지역 취약계층의 예술 향유와 그들의 생활권 내 문화인프라 개선, 이를 위한 데이터 수집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2011년부터 NEA가 운영하는 ‘Our Town’ 사업은 예술, 문화, 디자인을 통합적으로 활용하여 지역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와 시설 개선 및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동 사업에서는 공공영역과 비영리 및 기업을 포함한 민간 협력을 필수 조건으로 전제하고 있어 수혜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다양한 분야와 민관협력을 포괄적인 견인을 지향한다. NEA의 이러한 사업은 소외 지역에서의 예술 활동과 향유, 그리고 지역사회 전반의 웰빙과 경제를 도모하려는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즉, 연방의 분권화 접근에는 예술과 같은 중점 분야의 활성화와 발전 외에도 지역 전반의 성장과 같은 전방위적 동기와 목적이 내재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SAAs는 LAAs에 연간 약 1,600건의 보조금 사업을 통해 6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SAAs는 LAAs 사업의 강화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을 비롯하여 추가적인 공공 지원금과 민간 기부금을 확보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한다. SAAs가 수여한 보조금의 46%는 LAAs 운영에 필요한 행정비용에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는데, 이는 NEA의 지원금이 대부분 예술 프로그램 운영예산으로 제한된다는 특성과 차별성을 가진다. LAAs의 전체 예산 규모별 수익 출처를 살펴보면, 기관의 예산 규모를 불문하고 연방정부로부터 내려오는 예산은 매우 미미한 것을 알 수 있다(<표 3> 참고). 또한, LAAs의 예산 규모가 작을수록 주정부로부터 받는 예산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예산 규모가 클수록 기초 지방정부로부터 받는 예산이 큰 특징을 보인다. 즉, LAAs의 예산 규모가 클수록 기초 지방정부의 예산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다. 한편, 예산 규모가 작은 LAAs의 경우, 연방정부 지원 수혜 가능성도 희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미국 LAAs의 예산 출처의 비중이 중앙보다 기초 및 광역 지방정부에 더욱 높게 나타나는 경향은 비단 미국이 연방국이라는 사실 외에도, NEA의 지원금이 ‘지역 협력 협약 지원사업’을 통해 SAAs 또는 RAOs와 같은 광역 단위 예술지원기관을 통해 분배되는 중앙-지역 지원체계의 특성을 방증하기도 한다.
출처: NASAA(2024). “2024 State Arts Agency Grant Making Facts: Local Arts Agencies.” 발췌.
광역에서 기초 단위로 예술 지원금이 어떻게 분배되는가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지원사업으로 주립예술위원회(SAAs)의 ‘분권 사업(Decentralization Program)’을 꼽을 수 있다. ‘분권 사업’은 LAAs에 SAAs의 예산을 정액 교부금으로 배분하여, 기초 관할 지역구에 재교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2024년 1월 기준 15개 주에서 운영 중이다(NASAA, 2025). 다음 <표 4>는 현재 운영 중으로 알려진 ‘분권 사업’ 중, 중복되는 내용과 폐지 예정된 사업을 제외한 5개 주(state)의 사업을 정리한 내용이다. SAAs-LAAs 간 ‘분권 사업’은 대부분 사업 참여에 사전 동의한 기초 예술기관이나 단체를 수혜 대상으로 하고, 일부 행정권역 전체를 수혜 대상으로 지정하는 주도 있다. 사업예산 규모는 $807,100(위스콘신주)부터 $241,447,000(뉴욕주)까지 주별로 큰 편차를 나타낸다. 지원금 책정은 주마다 심의 기준을 수립하여 결정하는데, 대부분 과거 지원기록과 자금조달 내역을 심의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인구 규모와 토지 면적, 기관이나 단체의 보유 자산액을 심의 기준으로 채택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편, 뉴저지주는 특별히 운영 사업의 질적 평가를 심의 기준에 포함함으로써 다른 주와의 차별점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SAAs의 ‘분권 사업’은 재정 분권의 일례로 볼 수 있는데, 예산을 정액 교부함으로써 기초 단위 지역예술위원회가 권한을 가지고 재량에 따라 예술 지원사업을 운영함으로써 해당 예산을 재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s://nasaa-arts.org/nasaa_research/decentralizationprograms/ 발췌. 저자 재구성 및 번역.
Ⅳ. 시사점 및 결론
본 연구는 지역 분권화 시대의 문화행정에서 중앙과 지역 지원기관 간의 협력관계를 조명하고자 프랑스, 영국(잉글랜드), 미국의 중앙-지역 문화예술 지원체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문화행정의 분권화 맥락에서 필요한 중앙-지역 협력 방안에 필요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한국 문화행정의 지역 분권화가 주로 재정적 분권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카와시마(1997)가 제시한 문화적 분권(정책목표)과 정치적/행정적 분권(정책 방안, 행정)의 복합적 관점에서 논의하였다(<표 5> 참고).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문화행정 모델을 유지하면서 지역의 수요와 전문가의 참여로 내용을 결정하는 ‘지역화된 중앙집권’의 중앙-지역 간 협력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큰 틀에서의 문화행정 이행은 중앙의 것을 따르되, 관련 예산에 있어 중앙정부와 지역 행정기관 즉, DRAC이 공동 편성하면서 각 지역의 문화 수요와 현실을 반영하는 실질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는 부분적인 정치적 권한을 확보함으로써 문화 분권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
영국은 보다 복잡한 분권상황에 처해 있다. 잉글랜드를 제외한 구성국은 정치적 분권을 확보한 가운데 잉글랜드는 여전히 정치적 권한이양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 권한이양 협상(Devolution Deal)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ACE는 중앙정부와의 관계는 유지하되, 권한이양 협상을 체결한 지방정부 및 제휴 정부(CA)와 협력 방안을 모색 및 이행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기초 지방정부협의회(LGA)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함으로써 지역문화의 발전과 지역민 예술향유 기회 증대를 위한 지원을 약속한 한편, 예술위원회의 장기 전략 방향이나 재정 이양은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즉, 영국 중앙정부와 ACE 협력체계와 재정 운영은 유지하되, 내부적으로는 ACE의 거버넌스 체계인 지역위원회, 대외적으로는 LGA와 협력관계를 통해 중앙-지역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로써 지방정부와 지역 문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 과정에 반영하고, 지역 리더십의 역량 강화와 네트워킹을 통해 지역 문화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이미 정치적 분권이 정착한 환경에서 NEA가 광역 예술지원기관(SAAs, RAOs)과의 계약(agreement)을 통한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재정 분권을 이행하고 있다. NEA는 SAAs와 RAOs와 같이 지역 네트워크와 밀접한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분배된 예산의 활용 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지역문화예술 생태계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배된 예산은 광역 단위 지원사업을 통해 다시 기초 지자체로 분배되는 형식을 드러낸다. 즉, 중앙-광역-기초로 연결된 예산 분배 체계에서 NEA는 상징적이고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이행하고, 실제로는 광역의 기초 지역에 대한 지원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치적 분권이 정착된 환경에서 미국은 이러한 예산 분배를 통해 문화 분권 또는 문화민주주의를 견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각국의 분권 상황이나 문화행정 체계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세 국가는 공통으로 지리적, 사회경제적 형평성을 중심으로 문화적 분권을 추진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문화적 형평성, 즉 분배와 문화적 대표성 및 표현 다양성 측면을 포괄하는 문화적 분권의 특성이 정책의 결과나 성과로 측정되기에 한계가 따르는 정성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공통된 특징은 문화적 분권이라는 정책 결과를 도모하는 가운데 지역 수요와 환경에 적합한 의견 수렴과 정책 일관성 등을 위해 중앙과 지역 간 정책사업 협의와 이행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내용은 우리나라 문화행정의 분권화 과정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중앙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분권 정책에 대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협력을 위한 협의, 그리고 한국의 문화예술 공공기관 지형을 고려한 다른 중앙 단위 문화예술 지원기관과의 영역 구분에 따른 역할 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의 역할이 중앙-광역 관계에만 고착되지 않고, 광역이 기초와 어떤 관계와 협력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 필요성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지역협력형 사업의 방향성이 중앙으로 재집중되는 것에 대한 재검토와 지역 문화생태계 중심 지원체계의 도구로 활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여 볼 때, 한국 문화행정의 분권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정 권한이양을 넘어서 문화적 가치와 지역 문화생태계 중심의 정책 수립이 가능하도록 중앙-지역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이 주도하는 문화예술정책 운영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과감한 권한 위임과 함께 지역의 정책 기획 및 집행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잠재적 위험 요소인 지역 문화정책의 위축 및 감소와 지방정부 간 문화정책 재정 격차에 대한 방안 마련도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관계와 협력, 그리고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의 역할 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추가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