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연구 개요
정부표준영정제도는 1970년대 국가 주도의 역사 인물 표준화 정책으로 도입되었으나, 현재는 도입 당시와는 상당히 다른 제도적 환경 속에 놓여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선현의 동상 및 영정 제작 과정에서 국가의 협조와 조정이 강하게 작동하였으나, 이후 제도 운영 방식은 점차 완화ㆍ조정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표준영정은 여전히 교과서, 기념사업, 전시, 화폐 도안, 지역 홍보 등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참조 기준처럼 호출되고 있으며, 기존 초상, 신규 제작 초상, 표준영정 사이의 활용상 혼선도 지속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2023, 2025). 즉, 정부표준영정제도는 국가표준으로서의 권위와 실효성이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음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공적 기억의 시각적 기준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점은 정부표준영정제도를 단순한 과거의 제도가 아니라, 제도 형성 이후의 변동과 현재적 함의를 함께 검토해야 할 정책 대상임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국가 단위의 역사 인식은 단순한 과거 서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과 가치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해 왔다. 특히 국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국가는 교육 제도, 기념사업, 문화유산 정책, 박물관ㆍ기념관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특정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며 공적 기억(public memory)을 조직해 왔다. 이러한 공적 기억은 개인적 기억의 총합이 아니라, 사회적ㆍ제도적 선택과 배제를 통해 구성되는 집단적 기억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최호근, 2003). 기억 연구의 고전적 논의에 따르면, 기억은 개인의 내면적 작용이 아니라 사회적 틀 속에서 형성되며, 집단은 기억을 유지ㆍ전승하기 위해 상징, 의례, 공간, 매체와 같은 외적 장치를 활용한다(Halbwachs, 1992). 이후 문화기억 이론은 기억이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장소, 의례 등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화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Assmann, 2011). 이러한 논의는 공적 기억이 단순히 무엇을 기억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식과 매체를 통해 기억이 가시화되는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시각적 재현은 공적 기억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지와 시각적 상징은 언어적 설명보다 즉각적이며, 반복 노출을 통해 기억을 자연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교과서 삽화, 기념비, 동상, 박물관 전시, 화폐 초상과 같은 시각적 형식은 특정 인물과 사건을 하나의 대표 이미지로 고정함으로써 기억의 해석 범위를 제한하고 공적 권위를 부여한다. 시각문화 연구와 기억 연구는 이러한 이미지가 기억의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 기억을 조직하고 확산시키는 핵심 매개임을 지적해 왔다(Hakoköngäs & Sakki, 2016). 국내 연구에서도 역사 인물과 사건이 시각적 형식을 통해 재현ㆍ확산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축적되어 왔다. 역사 인물이 현대 사회에서 문화 콘텐츠, 기념 조형물, 전시, 지역 정체성 자원 등으로 재구성되는 현상은 ‘역사 인물의 문화화’라는 개념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이는 기억이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요구 속에서 재해석된다는 점을 보여준다(이혜경, 2018). 또한 특정 역사 인물이 신격화되거나 상징화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들은 집단 기억이 사회적 갈등과 권력 관계 속에서 선택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이기태, 1998).
그러나 이러한 선행연구들은 주로 기억의 상징성, 문화적 실천, 사회적 의미 생산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시각 이미지가 국가 정책을 통해 공식 기준으로 승인ㆍ관리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논의를 제시해 왔다. 예컨대 역사 인물의 영정, 동상, 기념 조형물은 공적 기억의 핵심 매개로 기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제도적 기준 설정과 정책 결정 과정은 주로 부차적인 맥락으로 다루어져 왔다. 특히 영정은 전통적으로 제향과 추모의 대상이자 인물의 위상을 상징하는 시각물로 기능해 왔으나, 근대 이후에는 교육, 기념사업, 전시, 출판물 등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며 국가가 승인한 역사 인물의 대표 이미지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일 인물에 대한 다수의 상이한 영정이 공존하면서 공적 기억의 혼란이 발생하였고, 이는 특정 이미지를 정본으로 설정하려는 정책적 요구로 이어졌다(조은정, 2016).
정부표준영정제도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국가가 특정 역사 인물의 형상을 하나의 표준 영정으로 지정하고 이를 공적 기준으로 관리해 온 대표적 사례이다. 기존 연구들은 표준영정을 둘러싼 미술사적 논쟁, 개별 작품의 고증 문제, 작가의 이력과 윤리성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왔으며, 이순신 표준영정을 둘러싼 논쟁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정진술, 2012). 또한 화폐 초상 연구는 표준영정이 국가 시각물 전반의 원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표준영정이 국가 정체성과 신뢰성을 시각적으로 담보하는 핵심 자산임을 드러낸다(서대원,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표준영정제도를 공적 기억의 시각적 관리정책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의 형성과 변동 과정으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 즉, 표준영정이 어떠한 문제 인식 속에서 제도화되었는지, 어떤 정책대안과 정치적 조건이 결합되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이후 반복적으로 제기된 논쟁과 조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책 변동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정부표준영정제도를 공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관리ㆍ조정하는 문화정책의 한 유형으로 파악하고, 그 형성과 변동 과정을 정책 분석의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정부표준영정제도를 단순한 미술사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역사 인물의 시각적 재현을 어떠한 방식으로 제도화하고 다시 조정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정책과정의 사례로 재위치시키고자 한다.
본 논문은 정부표준영정제도를 공적 기억의 시각적 관리정책으로 파악하고, 그 형성과 변동 과정을 정책과정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연구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동일 역사 인물에 대한 복수의 시각 이미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조건과 문제 인식 하에 표준영정 문제가 문화정책 의제로 부상하였는가?
둘째, 표준영정이라는 정책 대안은 어떠한 정책적ㆍ정치적 조건 속에서 선택ㆍ정당화되었는가?
셋째, 제도 도입 이후 반복적으로 제기된 논쟁과 조정은 표준영정 제도의 성격과 한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기존 연구들이 표준영정을 주로 미술사적 고증 논쟁이나 개별 작품의 윤리성 문제로 다루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정부표준영정제도를 공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관리ㆍ조정하려는 문화정책의 한 유형으로 재개념화한다. 특히 다중흐름모형(MSF: Multiple Streams Framework)을 적용함으로써, 표준영정 제도가 단일한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 아니라 문제 인식, 정책 대안, 정치적 조건이 결합된 정책 과정의 결과임을 밝힌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지닌다.
본 연구는 질적 사례연구를 방법론으로 채택하였다. 분석 자료는 정부 훈령과 행정 지침, 문화정책 관련 공식 문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보고서, 기존 학술 연구 및 언론 보도 자료를 포함하며, 분석 대상 기간은 정부표준영정 제도가 본격화된 1960년대 초반부터 최근 제도 개선 논의가 이루어진 2020년대 초반까지로 설정하였다.
분석은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에 따라 문제의 흐름, 정치의 흐름, 정책대안의 흐름으로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각 흐름별로 주요 사건과 행위자를 정리한 후, 특정 시점에서 세 흐름이 결합되며 정책의 창이 열리는 과정을 재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정부표준영정 제도의 형성과 이후 변동을 정책 과정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였다.
II. 이론적 논의 및 선행연구
공적 기억(public memory)은 개인의 경험적 기억이 축적된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ㆍ제도적 맥락 속에서 선택ㆍ조직ㆍ유통되는 집단적 기억의 한 형태이다. 집단기억 이론의 고전적 논의에 따르면, 기억은 개인의 내면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틀(cadres sociaux) 속에서 구성되며, 집단은 기억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외적 장치를 활용한다(崔豪根, 2003). 이러한 관점에서 공적 기억은 국가, 제도, 공적 담론에 의해 승인된 기억으로서, 특정한 역사 인식과 가치 질서를 정당화 한다.
기억 연구의 이후 전개는 기억이 텍스트 중심의 서사뿐 아니라 이미지, 공간, 의례, 물질적 대상과 같은 다양한 매개를 통해 형성되고 전승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문화기억 이론은 기억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복할 수 있는 상징과 매체가 필요하며, 특히 시각적 형식이 기억의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Assmann, 2011). 이는 공적 기억이 단순히 ‘기억되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 가시화되는가의 문제와 직결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각적 재현은 공적 기억 형성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지닌다. 이미지와 시각적 상징은 언어적 설명에 비해 즉각적으로 인지되며, 반복 노출을 통해 기억을 자연화하는 효과가 있다. 교과서 삽화, 기념비, 동상, 박물관 전시, 화폐 초상과 같은 시각적 형식은 특정 인물과 사건을 하나의 대표 이미지로 고정함으로써 기억의 해석 범위를 제한하고 공적 권위를 부여한다. 시각문화 및 기억 연구는 이러한 이미지가 기억의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기억을 조직하고 확산시키는 핵심 매개임을 강조해 왔다(Zelizer, 2004).
특히 시각적 재현은 기억을 위계화한다. 어떤 사건과 인물은 반복적으로 시각화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기억은 공적 영역에서 점차 주변화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설명이나 논증을 거치지 않고도 특정 기억을 ‘자명한 것’으로 만들며, 공적 기억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보증하는 구실을 한다. 다시 말해, 시각 이미지는 기억의 내용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기억이 받아들여지는 방식 자체를 규율하는 장치로 기능한다(Hakoköngäs & Sakki, 2016).
국내외 연구들은 이러한 시각적 재현이 공적 기억의 확산과 사회적 합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해 왔다. 선행연구들은 역사 인물이 현대 사회에서 문화 콘텐츠, 기념 조형물, 전시, 지역 정체성 자원 등으로 재해석ㆍ활용되는 과정을 ‘역사 인물의 문화화’로 개념화하며, 기억이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요구 속에서 재구성된다는 점을 지적했다(이혜경, 2018).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이미지 분석 연구는 국가가 승인한 시각 자료가 특정 역사 해석을 자연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보여주며(Hakoköngäs & Sakki, 2016), 기념 조형물과 상징적 이미지에 관한 연구는 시각적 재현이 기억의 확산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논쟁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송진원ㆍ안병학, 2019). 이는 공적 기억의 시각적 재현이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가치 판단과 정치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재현이 어떠한 제도적 기준과 정책적 판단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승인ㆍ관리되는가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부분의 기억 연구는 이미지의 상징성이나 사회적 의미 생산에 주목하는 반면, 어떤 이미지가 공적 기억의 ‘정본’으로 채택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어떠한 정책적 논리를 통해 이루어지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시각적 재현은 종종 문화적 결과물로만 이해되고, 정책적 개입의 대상으로는 명확히 위치 지어지지 못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론적 공백을 전제로, 공적 기억의 시각적 재현을 정책적으로 관리되는 대상으로 파악한다. 시각 이미지는 공적 기억의 산물이자 동시에 기억을 조직하는 수단이며, 특히 국가가 승인한 이미지의 경우 제도적 권위를 통해 강력한 규범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음 절에서 논의할 ‘영정’이라는 시각적 형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공적 기억의 핵심 매개로 작동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정부표준영정 제도는 1973년부터 도입된 정부가 역대 위인의 용모를 표준으로 지정하는 제도로, 현행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영정동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작 및 지정되며 2025년 말 기준으로 103위가 지정되었다. 선현의 업적별 지정된 정부표준영정은 <표 1>과 같다.
주: 유관순은 여인상으로, 윤봉길과 신채호는 사대부상으로 구분함.
자료 : 한국문화관광연구원(2025), 정부표준영정 인식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정부표준영정 지정은 1973년부터 진행되었고, 표준화 제작 및 심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훈령인 「문화관광부 동상영정심의규정(현행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규정)」은 1996년 제정되었다. 1973년 제도도입 초기에는 선현의 동상 및 영정 제작 시 문화공보부 협조가 필수사항이었으나, 현재는 정부표준영정제도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동상 및 영정 제작은 가능하다. 정부표준영정이 필요한 지자체는 중앙정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표준영정 지정신청을 하는데, 초안에 대한 사전심의부터 최종 지정까지 평균 1년 10개월이 소요되며, 최소 7개월에서 최대 4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5).
영정은 전통적으로 특정 인물의 초상을 통해 그 인물의 위상과 덕성을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제의적 매개로 기능해 왔다. 조선시대의 영정은 단순한 초상화라기보다, 제향과 추모의 대상이자 인물의 도덕성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였으며, 엄격한 도상 관습과 제작 규범 속에서 관리되었다. 이러한 영정은 주로 사당이나 서원과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활용되며, 특정 공동체 내부의 기억 체계 속에서 기능하였다(이기태, 1998). 정부표준영정제도는 근대에 들어서 국가가 특정 역사 인물의 형상을 하나의 정본 영정으로 지정하고, 이를 공적 영역에서 활용 가능한 기준으로 설정하는 제도이다. 이는 시각적 재현의 영역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여 기억의 혼란을 정리하고 공적 통일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표준영정은 예술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제도가 아니라, 공적 기억을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행정적ㆍ제도적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영정 제작 관행과 구별된다.
정부표준영정을 제도나 정책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고 조은정(2016)의 연구가 대표적인데, 정부표준영정을 국가가 관리하는 ‘표준 얼굴’로 보고, 이를 통해 국민의 감정과 기억을 특정 방향으로 균질화ㆍ통합하는 정치적ㆍ정서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표준영정 제작을 목적으로 특정 선현 인물의 복식, 조형, 시각자료를 고증하는 연구가 일부 진행되고 있다. 오수원(2024)은 사명유정 진영의 역사ㆍ종교적 위격과 상징성을 검토하고, 라선정(2025)은 근초고왕의 포(袍)를 고고 자료와 복식사 연구를 바탕으로 검토하여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 위한 타당성을 논증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엄진성(2018)의 경우 단군 영정을 표준영정으로 지정하기 위한 검토를 유일한 국가 표준으로 정립하는 데서 발생하는 역사ㆍ신화ㆍ종교적 갈등과 정체성 문제를 짚으면서 표준화 작업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다.
선행연구는 정부표준영정제도를 고증이나 미술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으나, 이 제도가 어떠한 사회ㆍ정책적 이슈와 논의를 거쳐 탄생되고 변형되어 왔는지에 대한 연구는 진행된 바 없다. 공적 기억은 제도화를 통해 관리될 수 있으나, 완전히 고정되거나 합의될 수는 없으며, 사회적 가치 변화와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조정된다. 표준영정은 바로 이러한 기억의 제도화와 불안정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따라서 정부표준영정제도의 형성과 전개 과정은 단순한 제도사나 문화사적 서술로는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다. 따라서 특정 시점의 문제 인식, 정책 대안, 정치적 조건이 결합되어 형성되고 이후 사회적 논쟁 속에서 조정되어 온 정책 과정의 산물로 분석될 필요가 있다.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MSF: Multiple Streams Framework)은 정책이슈가 정부 의제화(Agenda)로 정책 결정되는 과정이 우연성, 타이밍, 정치적 흐름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설명하는 ‘의제설정 이론’에서 발전된 이론이다(Kingdon 1984; 1995). 조직선택의 쓰레기통모형(garbage can model)에서 발전되어, 문제(problem), 정책(policy), 정치(politics)라는 세 개의 흐름이 비교적 독립적으로 흐르다가,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릴 때 정책선도자(policy entrepreneur)에 의해 결합(coupling)되면 의제화 및 정책변화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Kingdon은 이 틀을 “의제설정 이론”으로 제시했지만, 실제 적용에서는 정책변화 전반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도 널리 사용된다(Cairney, 2024). 정책이 형성되고 변화되기까지 정책문제의 흐름, 정책대안의 흐름 그리고 정치의 흐름의 세 가지 흐름이 결합되어 정책의 창을 넘어서야 정책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제도화의 배경으로서 세 가지 흐름을 확인하는데, 정책 문제의 흐름(problems stream)은 주요 사건과 사회적 요구 실태를 확인하여 파악한다. 사회 다양한 이슈들이 정책 의제로 인식되는 과정으로, 어떤 문제가 정책결정자들에게 인식될지는 세 가지의 환경적 조건인 지표, 사건이나 위기, 환류의 영향을 받는다(Kingdon, 2011). 정치의 흐름(political stream)은 정부표준영정 제도를 둘러싼 정부 기조 변화를 파악한다. 정치의 흐름은 국가적 분위기, 선거 결과, 정권교체, 의회의 이념 또는 의석수의 변화, 이익집단의 압력 활동 등을 통해 영향을 받으며, 특히 대선ㆍ총선과 같은 선거의 결합은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Kingdon, 2011). 정책대안의 흐름(policy stream)은 선현 초상화를 정부가 표준화하기 위해 논의되었던 공식적, 비공식적 정책대안들을 분석한다. 정책 의제가 되기 전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대안이 논의되고 몇몇 가능한 대안들로 좁혀지며, 아이디어가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실행 가능성과 가치 수용 가능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Kingdon, 2011).
그리고 세 흐름이 결합되면서 본격적인 표준영정 지정이 추진되는 정책의 창이 어떻게 열렸는지, 그 과정에서 정책 선도가는 누구이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본다. 정책선도가는 대통령, 정부인사, 공무원, 국회의원, 이익집단, 연구자 또는 로비스트 등 누구라도 될 수 있다(Kingdon, 2011).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은 정책결정에 전통적인 합리모형을 벗어나 우연한 사건이나 정치적 타이밍에 이루어지는 비합리성과 동태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최근 문화정책 영역에서도 분석틀로 활용되고 있다. 단순한 문화정책 의제설정 단계를 넘어 법안이나 제도의 설계 표면 아래 정책 기제를 파악하고 정책변화를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정민 외(2013)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는 역동적인 과정을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으로 실증 분석하였는데, 예술인의 극심한 생활고(문제의 흐름), 2000년대 초반부터 제안된 다양한 복지 대안들(정책의 흐름),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적 관심 부족(정치의 흐름)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했음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으로 2011년 시나리오 작가(최고은 씨)의 사망 사건을 짚으면서 이로 인해 닫혀 있던 ‘정책의 창’이 급격히 열렸음을 규명하였다. 또한 김민경ㆍ윤아영(2021)은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과정을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으로 분석하였는데,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등 문화 주권에 대한 위기감(문제)과 2005년 유네스코(UNESCO)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으로 국제 협약 이행 의지(정치)가 결합하여 2014년 문화다양성법 제정이라는 정책 산출로 이어졌음을 규명하였다.
특정 이미지인 영정 초상화를 국가 표준으로 지정하는 강력한 시각적 관리정책으로서 정부표준영정제도는 제도의 표상 이면에 역동적 시대적 상황과 사회ㆍ정책적 사건에 의해 의제화되었다. 따라서 제도가 형성되기까지 정치적 목적과 사회적 사건, 결정적인 순간에 사회, 정책, 정치 세가지 흐름을 연결하는 행위자의 전략적 행위에 주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III. 연구의 모형
본 연구는 정부가 역대 위인의 용모를 표준으로 지정하는 정부표준영정제도의 정책 형성과 전개과정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자료는 70년대 형성된 제도의 수립과 변동 전반을 분석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문건(공문, 보도자료, 회의록 등), 정부의 보고서와 함께 학술논문과 언론 보도자료 등을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정부표준영정제도는 1973년 본격 지정하기 10년 전인 1963년 2월 12일 충무공기념사업회에서 문교부에게 영정에 대한 국가공인과 통일조치를 건의하면서 촉발된다. 당시 화가의 명예와 명성, 사회적 지위는 국전(國展)과 같은 강력한 국가 주도로 형성되었고, 이 시기 선현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것은 예술적 권위를 국가로부터 공인받는 것과 같았다. 동시에 광복이후 충무공 기념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여러 화가가 각기 다른 장소(현충사, 제승당 등)에 초상화를 봉안하는 경쟁이 과열되었고, 이것이 문교부에게 공인 정본 영정을 확정해 줄 것을 건의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1966년 8월 15일 발족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필두로 선현의 동상이 시내 곳곳에 세워지고 전국 학교ㆍ공원ㆍ놀이터에 충무공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이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제작되면서 수준 이하의 졸작 난립이 문제가 된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선현에 대한 영정 제작이 무분별하게 창작ㆍ유통되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19736년 대통령 지시(1973. 4. 28)와 총리 지시(1973. 5. 8)에 따라 전국에 난립해 있던 역사 위인들의 영정과 동상의 형식을 통일하게 되었다. 정부표준영정을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이고, 이것이 정부 훈령으로 규정화된 것은 1996년 「문화관광부동상영정심의규정」(문화체육부 훈령 제60호)이다. 정부표준영정 제도화 일지를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본 연구는 정부표준영정제도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분석틀로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MSF: Multiple Streams Framework)을 활용한다. 정부표준영정제도를 단순한 행정적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시각적 혼란에 대한 문제 인식, 표준 이미지라는 정책대안, 국가 주도의 정치적 계기가 결합하여 형성된 제도로 보고, <표 3>과 같은 분석틀을 구성하였다.
구체적으로 문제의 흐름에서는 어진의 소실, 동일 역사 인물에 대한 복수 초상화의 병존, 공적 활용 과정에서의 시각적 혼란이 어떻게 정책문제로 인식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정책대안의 흐름에서는 선현 초상화와 동상에 대한 심의 필요성, 공적 활용을 위한 기준 이미지 설정 요구, 표준영정 지정 및 관리 절차의 형성 과정을 검토한다. 정치의 흐름에서는 박정희 정부 시기의 민족문화 중흥 기조, 국가 정체성 강화, 상징정치의 확대가 제도 도입의 정치적 조건으로 어떻게 작동하였는지를 분석한다. 아울러 본 연구는 1973년 대통령 및 국무총리의 지시를 정책의 창이 열린 결정적 계기로 보고,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공보부를 제도화를 추진한 핵심 행위자로 파악한다. 예술인은 표준 이미지의 형식과 내용을 구체화하는 참여 행위자로 이해하였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이 세 흐름을 분석상 구분하여 검토하되, 실제 정책과정에서는 이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측면도 함께 고려한다. 또한 정부표준영정제도의 형성 과정뿐 아니라, 제도 시행 이후 나타난 운영상의 조정과 변동 양상 역시 같은 분석틀의 연장선에서 검토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정부표준영정제도를 단일 시점의 정책결정 결과가 아니라, 형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조정되어 온 정책과정의 산물로 파악하고자 한다. 결국 본 연구의 분석 초점은 정부표준영정제도가 어떠한 문제 인식 속에서 정책 대상으로 부상하였는지, 표준영정이라는 대안이 어떠한 정치적 조건과 결합하여 제도화되었는지, 그리고 제도 도입 이후의 변화가 그 성격과 한계를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있다.
IV. 정부표준영정 제도의 형성과 전개 분석
한국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 등 전쟁과 화재를 겪으면서 현존하는 어진(왕의 영정)이 태조, 영조, 철종, 익종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 등 5점에 불과하고(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왕실 어진이 대거 소실된 상황은 역사 인물의 실제 용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 자료 부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근대 이후 국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영정의 기능과 의미가 점차 변화하였다. 전통 사회에서 제의적 기능을 중심으로 작동하던 영정은 근대적 역사 인식과 결합하면서 교육, 기념사업, 전시, 출판물 등 다양한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정은 특정 공동체 내부의 추모 대상에서 벗어나, 국가가 승인한 역사 인물의 대표 이미지로 재위치되었다. 즉, 영정은 더 이상 제향을 위한 초상이 아니라, 공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핵심 매개로 기능하게 되었다(조은정, 2016).
근대 이후 공적 기억의 주된 대상이 된 선현들에 대해서는 기념사업회, 사당, 학교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해 초상화가 제작ㆍ유통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동일 인물에 대한 상이한 이미지가 공적 영역에서 병존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동일한 역사 인물에 대해 다수의 영정이 제작ㆍ유통되는 현상은 기억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공적 기억 차원에서는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교과서, 공공 전시, 국가 기념사업과 같이 공적 권위가 요구되는 영역에서 상이한 이미지가 병존할 경우, 어떤 형상이 ‘공식적인 얼굴’로 사용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영정이 단순한 예술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기억의 기준을 설정하는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정진술, 2012). 즉, 어진의 소실은 시각적 재현의 기준 부재라는 배경적 문제를 형성하였고, 선현 초상화의 난립은 이를 정책적 개입이 요구되는 구체적 문제로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편, 초상화를 제작하는 화가의 지위는 오랫동안 개인적 예술가라기보다, 국가가 요구하는 시각적 질서를 수행하는 전문 인력에 가까웠다. 조선시대 중앙관청인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화원들은 왕실의 의례와 국가 행사를 시각적으로 기록ㆍ재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이들의 작업은 개인적 창작보다는 국가 권위와 질서를 가시화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황정연, 2023). 이러한 국가 주도의 시각적 관리 전통은 근대 이후 관전(官展) 제도를 통해 제도적으로 계승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미술 양식을 선별ㆍ공인하는 장치로 기능하였으며, 이를 통해 특정 화가와 작품에 공적 권위를 부여하였다. 국전은 중앙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적 행사로서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강한 상징성을 지녔고, 수상 여부는 화가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적 기회를 좌우하는 기준으로 작동하였다(김달진, 2024). 초상화 제작은 역사적으로 자율적인 예술 활동이라기보다 국가가 승인한 주체와 양식을 통해 수행되어 왔으며, 이는 표준영정 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조건을 형성하였다.
정부표준영정 제도의 정치흐름은 60~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중흥’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행정부의 출범, 관련 정책에 부응하는 예술가의 활동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민족주체성 강조를 위한 유적지 성역화, 동상 건립, 대규모 미술품의 제작, 국전 및 문화재 정책 등이 특징적이며, 이를 통해 국민통합과 결속을 기대하였다. 광복 후 정부 수립기 한국은 일제 강점으로 파괴된 민족적 정통성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1968년 문화정책 전담 중앙부처인 문화공보부를 설치하고,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결집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을 전개하였다. 1973년 발표된 최초의 문화정책 중장기 계획인 「제1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1974~1978)」의 기조에서 정책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그 바탕 위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문화중흥을 이룩한다”로 기조를 설정하고 있다. 문화유산 및 민족문화의 복원ㆍ계승ㆍ발전을 통한 민족주체성 회복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문예중흥 5개년 계획 중 미술 분야에서는 국난극복 사실을 중심으로 한 민족기록화와 새마을 운동ㆍ경제 활약상을 기록하는 경제성장기록화 제작, 우수 미술작품 구입 및 상설전시 추진, 공공기관 등에 전시 권장 등을 명시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특히 호국영웅으로서의 이순신과 민족문화를 세워 우리 역사의 황금기를 구가한 세종대왕 정신을 부각시켰고, 다양한 기념사업과 교육현장(초등학교 등)에 이순신, 세종대왕 동상 제작을 확대하였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5).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이, 공적 기억의 시각적 재현이 정책 문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단순한 문화 표현을 넘어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박정희 집권기는 이러한 조건이 집약적으로 형성된 시기로, 공적 기억이 정권의 정당성을 보완하는 핵심 상징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 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국가 재건과 근대화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적 서사를 구성할 필요에 직면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사 인물은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현재의 국가 목표를 정당화하는 상징적 매개로 호출되었으며, 특정 인물의 선택과 반복적 재현은 정치적 판단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선행연구는 이러한 현상을 역사 인물의 ‘영웅화’로 설명하며, 이는 자연발생적 기억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해 선택ㆍ강화되는 기억정치의 산물임을 지적한다(권오현, 2009).
이러한 기억정치는 박정희 시기에 시각적 형태로 적극 구현되었다. 정호기(2007)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동상건립운동은 애국심 고취와 민족정기 선양을 명분으로 하였으나, 실제로는 국가가 특정 역사 인물을 선별하여 공적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정치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확산시키는 과정이었다(정호기, 2007). 특히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된 동상 건립은 민간의 자발적 추모라기보다, 정권의 이념과 방향성이 반영된 국가 주도의 상징 정책에 가까웠다.
이승만 집권기와 박정희 집권기의 동상을 비교한 연구는 이러한 정치적 선택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이승만 정권이 반공과 친미 이데올로기를 현존 인물과 외국 군인의 동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출한 데 비해, 박정희 정권은 전통적 역사 인물을 집중적으로 호출함으로써 군사 정권의 정통성을 간접적으로 보완하는 전략을 취하였다(이하연ㆍ김영호, 2018). 이는 박정희 시기의 동상이 개인 권위의 과시라기보다, 역사적 연속성과 민족적 정당성을 매개하는 정치적 장치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박정희 집권기의 정치적 흐름은 공적 기억을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 시각적 재현이 정권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공적 기억의 시각적 표현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ㆍ조정해야 한다는 정책적 문제의식을 낳는 정치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정책대안의 흐름에서는 앞서 확인한 정치적 조건이 구체적인 제도적 선택으로 수렴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박정희 정부(1961~1979)는 국가주도의 대규모 미술품의 제작, 성역화 사업, 국전 및 문화재정책을 통한 사회ㆍ문화적 통합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안인기, 2011). 1966년 이순신 영정을 모시는 현충사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애국정신의 상징적 구심점으로 삼았으며, 1970년대 말까지 전국 사당ㆍ유적지 성역화 사업으로 사당 정비와 동시에 영정 초상화 제작이 확대되었다. 동시에 1966년 8월 15일 발족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필두로 선현의 동상이 시내 곳곳에 세워졌고 동상 제막식에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면서, 역사적 인물 동상이 지방정부ㆍ민간단체ㆍ학교 등 다양한 기관에 의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박정희 정부 시기 진행된 성역화 사업과 동상건립운동은 공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공적 기억의 안정성과 권위를 위협하는 문제를 노출하였다. 동일 인물에 대한 복수의 영정이 병존하는 상황은 공적 기억 차원에서 이미지 혼란과 대표성 문제를 초래했다. 특히 교육, 국가 기념사업, 공공 전시와 같이 공적 권위가 요구되는 영역에서는 하나의 기준 이미지에 대한 제도적 요구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정호기(2007)는 동일 인물에 대해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상이한 용모와 형식의 동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공적 공간에서 전달되는 역사 이미지의 통일성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보았다(정호기, 2007: 338-341). 이는 공적 기억이 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러워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동상이 전달하고자 했던 정치적 상징성 역시 불안정해지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동상의 시각적 요소에 대한 비교 연구 역시 이러한 문제를 뒷받침한다. 이하연ㆍ김영호(2018)는 동상의 자세, 시선, 표정, 규모와 같은 형상적 요소가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요소에 대한 통제 부재가 동상의 상징적 효력을 약화시킨다고 분석한다(이하연ㆍ김영호, 2018: 609-610). 이는 공적 기억의 시각적 재현이 단순한 조형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관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영정의 문제는 ‘어떤 그림이 더 사실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이미지를 승인하고 관리할 것인가라는 제도적 선택의 문제로 재구성된다. 이 지점에서 표준영정은 공적 기억의 시각적 기준을 제도적으로 확정하려는 정책적 응답으로 등장한다.
한편, 영정이 국가주도로 다수 제작되는 과정에서 화가는 국가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공인받기를 희망하였다. 대표적 사건으로 1962년 정읍 충렬사의 충무공 영정제작과 관련하여 스승과 제자 관계이던 김은호와 장우성 중 누가 제작하는가를 놓고 논란 발생하며 어느 영정을 국가 공인 영정으로 볼 것인가 문제로 확장되었다. 김은호는 1953년 현충사에 이어 충렬사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제작되자, 자신의 충무공 영정을 공인 정본으로 확인해 줄 것을 문교부에 건의하면서, 선현 영정의 공인 내지 표준 문제가 촉발되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정부표준영정 제도는 국가통합 이데올로기와 국가 권위를 통해 명성과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예술인의 열망, 정치적 메시지 단일화와 공적기억 강화가 결합하여 정책의 창을 열었다. 1973년 4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이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을 맞아 아산 현충사에서 열린 이충무공 탄신기념제전에 참석한 후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전국 각지의 선현 용모 통일” 지시하여 빠르게 제도가 채택되었다. 1973년 5월 8일 국무총리가 “선현에 대한 동상건립 및 영정을 제작할 경우 문화공보부와 사전 협조하고 조정을 받을 것”을 지시하며, 문화공보부가 동상 및 영정 표준화 계획을 수립하고 심의절차를 마련하면서 본격 추진되었다.
대통령ㆍ관료, 특히 문화공보부는 정책의 창을 여는 정책선도가 역할에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선현의 초상화를 국가가 표준으로 공인해야 한다는 정책의 창이 열리기까지는 국전 수상자나 도화서 후예 등이 자신의 작품과 명성을 국가로부터 공인받길 희망하였기 때문에 예술인이 표준영정이라는 시각적 해법을 구체화ㆍ정당화하는 행위자로 작동하였다.
1960~70년대는 위인 숭상과 민족 정체성 확립과 국난 극복의 의지를 고취하기 위해 대규모 민족기록화 제작, 공공미술품 제작과 설치, 선현 의례사업이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당대 저명한 화가들이 동원되어 작품을 제작하고 국가의 공인을 받는데 주력하였다. 공공미술작품 제작의 경우 국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대학 교수직을 겸했던 명성있는 화가들이 대부분 참여했고 국가의 막대한 재정지원으로 미술계에 파급된 영향도 상당히 컸다(김현화, 2016). 이렇다보니 국가의 공인을 받고자하는 화가가 많았고, 화가의 작품은 국가가 유도하는 시대적 과제와 정신성에서 받은 영향을 반영하게 되었다. 정부표준영정제도 도입과정에 예술인은 민족정체성 강화라는 공익 담론에 참여하는 동시에 자신의 초상화를 국가 표준으로 공인받음으로써 상징자본과 직업적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이 맞물려 작동되었다.
1973년 문화공보부는 영정 및 동상 실태조사를 추진하였고, 조사결과 전국에 설치된 다수의 영정과 동상이 제작 수준과 형상 면에서 기준에 미달하며, 동일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일관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문화공보부, 1973). 1973년 6월 25일부터 7월 25일까지 ‘선현 영정 동상조사위원회’에서 전국의 734개 선현 영정 및 동상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였는데, 대다수가 충무공과 세종대왕으로 학교에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 실태조사 결과 전국에 734개 영정 및 동상(영정 72종 370점, 동상 32종 364점) 중 충무공 348개, 세종대왕 75개로 대체로 충무공과 세종대왕이 많고, 학교 내에 634개가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학교에 설치된 동상들은 거의가 학생들의 모금으로 제작되다보니 20만 원 내외의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어 수준 이하의 졸렬한 것이 많았으며 실물보다 작은 크기의 동상은 선현의 품위를 훼손한다고 판단하였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이 조사는 공적 기억의 시각적 재현이 자율적 창작에 맡겨질 경우, 국가가 의도한 상징 효과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행정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문화공보부는 사학, 철학, 미술계 전문가와 사회저명인사, 언론계 인사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영정통일위원회’에서 영정 통일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월전 장우성과 이당 김은호의 충무공 초상화를 검토하였고 최종적으로 월전 장우성의 충무공을 표준으로 채택하였으며, 결정된 영정 이후 충무공 영정 및 동상을 제작할 때 문화공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다. 1973년 6월 30일 선현의 정의 등을 포함한 「선현의 동상 및 영정 제작에 관한 심의 절차」(문화공보부 공고 제 181호)를 공고하고(국가기록원, 1982), 선현의 동상 건립이나 영정 제작 시에는 사전에 심의신청서를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동상 또는 영정의 명칭, 심의번호, 심의 연월일, 설치장소를 관보에 게재하도록 정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다양한 초상 제작을 허용하되, 공적 활용의 기준이 되는 하나의 이미지를 국가가 심의ㆍ지정함으로써 시각적 혼란을 관리하려는 방식이었다. 이는 동상건립운동과 같은 확산형 시각화 전략에서 벗어나, 선별과 승인에 기반한 집중형 관리 전략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선현 초상에 관한 이와같이 제도의 등장은 예술적 기준의 확립이나 미술사적 논쟁의 결과라기보다, 박정희 시기 공적 기억의 시각적 동원이 남긴 경험적 한계에 대한 정책적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확산되었던 시각적 재현이 다시 국가의 관리 대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표준화라는 정책대안이 선택된 것이다. 선현의 살아생전에 용모를 보지 못한 채로 인물에 대한 기록자료와 화가의 상상력을 더해 그려진 초상화를 국가가 표준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정부표준영정제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3). 이렇듯 강력한 시각적 관리정책은 대통령의 발언과 국무총리의 행정 지시는 문제흐름과 정책흐름을 동시에 작동시키며, 국가에서 부여된 지위가 중요했던 예술가와 결합하여 정책의 창을 단기간에 강제적으로 개방되었다. 선현의 용모 표준을 초상화로 국가가 지정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나 대안 경쟁없이 채택된 제도는 이후 변화된 사회 인식과 예술인에 대한 역할과 지위 변화, 역사 해석의 다양성 등에 의해 논란이 집중된다.
1973년 6월 30일 발표된 「선현의 동상 및 영정 제작에 관한 심의 절차」(문화공보부 공고 제181호)는 1996년 5월 폐지되고, 「영정동상심의규정」이 제정되었다. 규정은 현재까지 10차례의 개정이 있었으며, 주로 표준영정 관리(관보게재, 지정증 교부, DB 구축), 위원회 구성 및 운영(소위원회, 찬반의결 및 무기명 투표), 재제작 및 지정해제 관련 사유(멸실, 도난, 훼손, 사회통념)에 대한 사항이 조정되어 왔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1973년 제도도입 초기에는 선현의 동상 및 영정 제작 시 문화공보부 협조가 필수사항이었으나 1996년 폐지되었고, 이후 현재까지 선현 초상화 제작 시 표준영정 심의는 선택사항이다. 실제 선현을 보고 그린 초상화가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한 고증과 화가의 상상으로 그려진 초상화를 국가가 강제하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표준영정이 단일표준으로 구속력이 강해질 경우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선현 초상화의 나이대, 복식, 캐릭터 이외의 선현인물에 대한 해석과 초상화 제작이 축소되게 되며, 이는 선현 초상화 민간제작 수요 감소와 자율성에 과도한 침해가 된다. 실제로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선현초상화가 존재함에도 지자체의 선현사업용 영정, 한국은행의 화폐도안 영정을 새롭게 제작 활용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고, 현장에서는 기존에 전해져 내려오던(문화유산 등) 초상화와 표준영정 사이에 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5). 예컨대 한국은행은 이순신, 세종대왕, 이황, 이이 등 현재 표준영정으로 채택된 인물을 화폐도안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신사임당(32호)은 표준영정이 아닌 한국은행이 2009년 새롭게 제작(머리, 장식, 복식 등)한 초상화를 5만 원권 화폐도안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정부표준영정 제도 도입 취지는 국가 상징물(화폐, 교과서, 국가행사)의 통일화였으나 이후 지자체 관광ㆍ지역 홍보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변용 및 활용되고 있다. 2001년부터 정부표준영정은 중앙정부 제작이 없어지고 각급기관(주로 지자체)을 통해서 제작 신청할 수 있으며 중앙정부는 자문, 심의 및 지정, 게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3). 지자체 주도의 표준영정 지정이 증가하면서 제작 선현도 지역의 역사 자원화에 기여하고 사회적 영향력과 대중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다양한 계층과 신분이 발굴되고 있다. 정부표준영정제도 초기 1970~80년대에는 왕, 장군, 학자와 같은 각 부분의 권력자 층이 주요한 대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천문학자, 요리연구가, 여성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인물이 표준영정 대상이 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2).
그러나 공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표준화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논쟁을 수반한다. 특정 이미지가 국가의 공식 기준으로 승인되는 순간, 그 이미지에 반영된 역사 해석과 가치 판단 역시 공적 권위를 획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표준영정은 예술적 자율성, 역사적 고증, 윤리적 판단, 정치적 맥락이 교차하는 갈등의 장으로 작동해 왔다. 영정 제작 과정의 고증 문제, 작가의 이력과 가치관, 특정 역사 해석의 반영 여부 등은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는 영정이 고정된 상징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가치 충돌 속에서 끊임없이 문제화되는 대상임을 보여준다(조은정, 2016). 또한 제도 도입 시기가 고려되지 못한 점은 예술가의 지위변화와 저작권 문제이다. 70년대까지 화가는 국가 주도로 발굴되고 국가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로 명성과 지위를 획득해 왔으나, 현재는 독립적 창작자로서 개인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저작권법」에 의거, 1987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초상화 저작권 존속기간은 발행일로부터 30년이었고, 이후 1987년 7월 1일 「저작권법」 전부개정으로 저작재산권은 창작자에게 사후 50년간 존속, 이후 2011년 7월 1일부터 현재까지는 사후 70년간 존속된다. 복사와 유포를 전제한 표준영정은 제작을 의뢰한 발주처뿐 아니라 제3자의 소장처를 비롯한 일반 공중의 이용 가능성이 큰데, 표준영정의 저작권은 해당 그림을 그린 화가나 가족에게 귀속되므로 국가가 개인에게 독점적 이익 제공의 여지가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3).
V. 결론 및 정책적 함의
본 연구는 공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관리ㆍ통제하는 문화정책의 한 유형으로서 정부표준영정제도의 형성과 변동 과정을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을 통해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정부표준영정제도는 단일한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 아니라, 정책문제의 형성, 정치적 조건, 정책대안의 성숙이 결합된 정책 과정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정부표준영정제도가 어떠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제도화되었으며, 이후 어떠한 한계와 조정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상의 분석 결과는 다음 네 가지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제도의 형성 시기와 현재 운영 간의 구조적 간극이다. 분석 결과, 정부표준영정제도는 도입 당시 강력한 공적 기억의 시각적 관리 정책으로 기능하였다. 전쟁과 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어진 소실과 동일 인물에 대한 초상화 난립은 공적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각적 기준의 부재라는 정책문제를 형성하였고, 이는 선현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담보할 공식 이미지를 확정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정치의 흐름 측면에서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역사 인물을 영웅화하고 공적 기억을 하나로 집결하는 새로운 정치 서사를 필요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관료는 정책의 창을 개방하는 핵심 정책선도가로 작동하였으며, 예술인은 표준영정이라는 시각적 해법을 구체화ㆍ정당화하는 행위자로 기능하였다. 그 결과 정부표준영정제도는 충분한 공론화나 대안 경쟁 없이 단기간에 제도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이후 약 50년이 지난 현재, 정부표준영정제도는 도입 당시와는 다른 운영 환경에 놓여 있다. 1996년 이후 표준영정 심의가 강제에서 선택사항으로 전환되었고, 중앙정부 직접 제작 방식 역시 지자체 신청 중심 구조로 변화하였다. 그 결과 ‘정부표준영정’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국가표준으로서의 실효성은 상당 부분 상실되었다. 이는 제도의 형성 시기와 현재 운영 간에 구조적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표준영정제도의 정책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정부표준영정제도는 도입 당시 전국에 난립하던 선현 초상화와 동상의 형식적 혼란을 정리하고, 공적 기억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단일 이미지에 국가 표준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은 역사 해석의 다양성과 예술적 자율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실물 용모를 확인할 수 없는 선현의 경우, 불완전한 고증과 화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이미지에 국가표준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더불어 예술인의 지위 변화와 저작권 존속기간의 연장은 표준영정의 공적 활용과 사적 권리 간의 충돌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 분석에서 드러났듯, 1987년과 2011년의 저작권법 개정으로 저작재산권 보호 기간이 사후 70년으로 연장됨에 따라 표준영정의 공적 활용과 사적 권리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국가가 특정 화가에게 표준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발생하는 독점적 이익 제공의 문제는 제도의 공정성 논란으로 직결된다. 향후 정책 설계 시, 표준영정 지정과 동시에 저작권의 공적 기부나 이용 허락(CCL)을 제도화하는 등 행정적 비용과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제도 개선 논의는 표준영정의 존치 여부를 넘어서, 공적 활용 범위의 명확화, 재심 및 지정해제 절차의 제도화, 복수 이미지 허용 가능성 등 보다 유연한 관리 방식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표준영정제도를 공적 기억의 강제적 통제 장치가 아닌, 조정과 관리의 제도로 재위치시키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단일 이미지에 국가 표준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이 갖는 한계는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인물의 초상이 공적 영역에서 널리 활용되지만, 하나의 이미지를 법적ㆍ제도적으로 유일한 기준으로 고정하지는 않는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3). 이는 공적 기억의 안정성과 역사 해석의 다양성 사이에서 통제보다는 관리 중심의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본 연구는 정부표준영정제도 사례를 통해 공적 기억의 시각적 관리 정책이 지니는 구조적 특성을 확인하였다. 공적 기억은 제도화를 통해 관리될 수 있으나, 완전히 고정되거나 단일한 합의 상태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특히 시각 이미지는 반복 노출을 통해 기억을 자연화하는 강력한 효과를 지니는 동시에, 사회적 가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문제화되는 불안정한 매개이다.
분석 결과와 정책적 의의는 다중흐름모형의 구성 요소별로 <표 4>에 종합하여 정리하였다. 이는 정부표준영정제도가 단일한 제도사가 아니라, 문제 인식과 정치적 조건, 정책대안의 결합을 통해 형성ㆍ변동한 정책 과정의 산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다.
정부표준영정제도는 공적 기억의 시각적 관리가 지나치게 강한 제도화로 작동할 경우, 오히려 기억의 신뢰성과 수용성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교과서 삽화, 기념 조형물, 국가 상징 이미지 등 다른 공적 시각물 정책 영역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시사점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다중흐름모형이 문화정책, 특히 상징과 이미지가 핵심이 되는 정책 사례를 분석하는 데 유효한 이론적 틀임을 확인하였다. 정부표준영정제도는 문제 인식의 누적, 정책대안의 성숙, 정치적 계기의 결합이라는 MSF의 핵심 논리를 통해 그 형성과 변동을 설명할 수 있는 사례였다.
다만 본 연구는 정부 훈령, 정책 보고서, 학술 문헌 등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을 수행하였다는 점에서, 정책 형성 당시 행위자의 인식과 전략을 직접적으로 조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향후 연구에서는 정책결정자, 행정 실무자,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통해 분석을 보완할 필요가 있으며, 표준영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수용ㆍ변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 연구 역시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