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한국의 문화정책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제정과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설립을 제도적 출발점으로 하나, 정책 의제로서의 위상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문화부 신설을 전후한 시기로 평가된다(김정수, 2016; 박양우, 2017). 이후 문화정책은 각 정부마다 상이한 강조점을 띠며 발전해 왔다. 1990년대에는 문화행정 체계가 구축되기 시작하였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문화산업 진흥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임학순, 2009).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지역문화 분권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콘텐츠산업 정책, 문재인·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문화향유권 확장이 정책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정책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화정책 연구의 세부 영역 또한 점차 확대되었다.
정책 환경의 변화에 호응하여 문화정책 연구 역시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김정수(2016)에 따르면 행정학 분야 주요 학술지에 게재된 문화행정 논문의 비율은 1989년 0.4%에서 2015년 9.7%로 약 24배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학술 연구 전체를 장기 시계열로 조망한 동향 분석은 비교적 적다. 기존 동향 분석은 대체로 문화복지·문화산업·지역문화 등 특정 주제 영역이나 행정학 학술지로 분석 범위가 한정되었으며(김정수, 2016; 박상언·이병량, 2017), 분류 체계 또한 연구자의 정성적 판단에 의존해 왔다(임학순, 2009; 채경진, 2013).
최근에는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도입하여 동향 분석의 객관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박양우(2017)는 언어네트워크분석으로 ⌈문화정책논총⌋ 수록 논문의 주제어 구조를 분석하였고, 박상언·이병량(2017)은 행정학 학술지에 게재된 문화정책 논문에 텍스트 마이닝을 적용하였다. 이윤정(2024)은 구조적 토픽 모델링, 박재혁(2025)은 LDA를 적용하여 각각 문화예술정책 학술논문과 정책 보고서의 토픽 구조를 추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한국 문화정책 연구 동향 분석의 방법론적 적용 범위를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기여가 있다. 그러나 단어 빈도(bag-of-words)에 기반한 LDA 계열 모형은 어휘의 의미적 맥락과 다의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며, 토픽 수를 사전에 결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Grootendorst, 2022).
이러한 한계는 사전학습 언어모델에 기반한 BERTopic의 등장과 함께 일정 부분 극복되었다. BERTopic은 문장 임베딩을 통해 의미적 응집도가 높은 토픽을 도출하며, 다국어 환경 및 비교적 소규모 코퍼스(corpus)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평가된다(Grootendorst, 2022). 또한 Boutaleb 등(2024)이 제안한 BERTrend 알고리즘은 시기별로 독립 학습된 BERTopic 모형의 토픽들을 임베딩 유사도를 매개로 매칭·연결함으로써, 부상, 약신호, 쇠퇴 등 토픽의 시계열적 변동을 정량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 분석 틀을 제시하였다. 한편, 이 두 기법을 한국 문화정책 연구에 결합 적용한 사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문화정책 분야의 주요 학술지인 ⌈문화정책논총⌋의 누적 코퍼스 전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동향 연구도 부재하다.
본 연구는 BERTopic과 BERTrend를 결합 적용하여 1988~2024년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토픽 구조와 시계열적 변동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분석 대상은 문화정책 분야의 주요 학술지인 ⌈문화정책논총⌋에 게재된 논문 초록 510편이다. 구체적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연구 문제 1. 1988~2024년 한국 문화정책 연구에서 도출되는 주요 토픽의 구조는 어떠한가?
연구 문제 2. 도출된 토픽들은 정부에 따라 어떠한 분포 변화를 보이는가?
연구 문제 3. 시계열 상 부상 또는 쇠퇴하고 있는 토픽은 무엇이며, 그 변화는 어떠한 정책적·학술적 함의를 갖는가?
본 연구의 학술적 기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정책 분야의 주요 학술지인 ⌈문화정책논총⌋의 창간(1988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된 510편 전 코퍼스를 단일 분석 단위로 다룸으로써, 행정학 학술지 또는 특정 시기에 한정되어 있던 기존 동향 연구의 범위를 확장한다. 둘째, 한국 문화정책 연구를 대상으로 BERTopic과 BERTrend를 결합 적용한 시도로서 정태적 토픽 구조와 시계열적 변동을 통합 분석하는 방법론적 절차를 제시한다. 셋째, 8개 시기에 걸친 토픽 분포의 정량적 변화와 부상·쇠퇴 사슬의 식별을 통해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시계열적 구조와 향후 연구 방향에 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넷째, 길이 절단 분석, LDA 베이스라인 비교, 토픽 일관성 지수(NPMI), 매칭 임계값 민감도 분석 등 다층적 강건성 검증을 통해 결과의 신뢰성을 점검한다.
II.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한국에서 문화정책이 독립적인 학술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으로 평가된다(김정수, 2016; 박양우, 2017).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제정과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설립으로 정책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었으나, 이 시기까지의 문화정책 관련 저술은 정부 정책의 기술이나 실무 보고에 가까운 기초적 단계에 머물렀다(박양우, 2017). 문화정책 학술 연구가 본격화된 시기는 1987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산하 문화발전연구소의 설립과 1988년 동 연구소가 발간한 ⌈문화예술논총⌋(1992년 제5집부터 ⌈문화정책논총⌋으로 명칭 복귀; 김정수, 2016)의 창간이다. 동 학술지는 문화정책 분야의 다양한 학문 공동체가 모일 수 있는 학술적 장을 제공함으로써,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제도적 출발점이 되었다.
행정학에서는 1989년 정홍익이 ⌈행정논총⌋에 발표한 ‘문화행정 연구’가 문화행정·문화정책 연구의 효시로 평가된다(김정수, 2016; 박상언·이병량, 2017). 1990년 1월 기존의 문화공보부가 문화부로 개편되고 장관의 위상이 격상되면서 문화행정의 위상이 제도적으로 격상되었고(김정수, 2016), 이를 배경으로 1990년대 이후 정책학·행정학계에서는 문화정책의 시기 구분, 문화행정 체계 분석, 정책 이념과 철학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박양우, 2017). 임학순(1996)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6년까지의 선행연구를 대상으로 문화정책의 가치, 문화 계획, 문화행정 체계, 문화정책 지표, 문화경제, 문화시설·조직 경영 등을 분류 기준으로 제시한 최초의 동향 연구를 수행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문화정책의 영역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1995년 본격 시행된 지방자치제도는 지역문화재단·문화축제·문화관광·문화공간 등 지역문화 관련 정책 의제를 학계에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임학순, 2009).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국민의 정부 새 문화정책’은 문화산업 진흥을 10대 정책 과제 중 하나로 명시함으로써 관련 정책의 중심을 전통적 예술 진흥에서 산업적 가치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 같은 해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설립,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등 일련의 제도 정비는 문화산업·콘텐츠·저작권에 관한 학술 연구의 양적 확대를 견인하였다(박양우, 2017; 임학순, 2009).
2000년대에는 문화복지·문화e민주주의 논의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영되면서 학계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고, 2005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정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설립을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이 새로운 정책 영역으로 추가되었다(임학순, 2009). 임학순(2009)은 이러한 변화가 ‘문화정체성 확립’, ‘문화예술 발전’, ‘문화복지 증진’ 등 기존 정책 이념과 ‘문화의 경제적 가치 증진’이라는 새로운 이념 간의 긴장을 학계에 제기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문화정책 연구는 단일 분과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연구, 문화경제학, 문화산업 연구, 예술경영학 등 인접 학문과 학제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로 확대되었다(임학순, 2009; Mulcahy, 2006; Scullion & García, 2005).
이러한 영역 확장과 학제적 분화는 양적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김정수(2016)에 따르면 1989년부터 2015년까지 행정학 분야 10개 주요 학술지에 게재된 11,457편 가운데 문화행정 논문은 268편(2.34%)이었으며, 그 비율은 1989년 0.4%에서 2015년 9.7%로 꾸준히 증가하였다. 행정학 박사학위 논문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2015년까지 총 42편이 산출되었다. 그러나 김정수(2016)는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문화행정에 관한 일반 이론·개념·철학적 연구는 매우 드물고, 특정 주제별로 특화된 연구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에서 내용적 불균형이 남아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축적과 더불어 연구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 메타 연구의 여러 흐름도 형성되어 왔다. 첫 번째 계열은 정성적 분류와 내용 분석에 기반한 동향 연구이다. 임학순(1996)이 1980년대 중반부터 1996년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 이래, 임학순(2009)은 1998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약 10년의 기간을 공공부문 연구보고서와 민간 학술논문으로 나누어 검토하였으며, 박광국·채경진(2008)은 문화행정 60년의 축적을 ‘태동기·발전기·성숙기’의 세 시기로 구분하여 종합 평가를 시도하였다. 채경진(2013)은 행정학 분야 학술지에 게재된 문화정책 관련 논문 245편을 정부별로 분류하여 분석하였고, 김정수(2016)는 ‘한국 행정학 60년 문화행정 연구의 동향과 성찰’을 통해 1989년부터 2015년에 이르는 행정학 10개 학술지 논문 268편, 박사학위 논문 42편, 단행본 29권을 통합적으로 검토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서순복(2013)은 ⌈한국사회와 행정연구⌋ 30주년을 맞이하여 동지에 게재된 36편의 문화정책 논문에 관한 쟁점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구조를 정성적 분류 체계 위에서 정리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분류 기준이 연구자의 사전 이해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객관성과 재현 가능성에 일정한 제약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박상언·이병량, 2017).
두 번째 계열은 텍스트 마이닝과 네트워크 분석에 기반한 동향 연구이다. 박양우(2017)는 언어네트워크 분석으로 ⌈문화정책논총⌋ 2008년 10월부터 2017년 1월까지 게재된 186편의 논문에서 추출한 주제어 832개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문화’, ‘문화정책/행정’, ‘문화산업/문화콘텐츠’, ‘정책’, ‘창조산업’ 등이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주제어로 식별되었으며, ‘문화산업/문화콘텐츠’는 연결 중심성과 고유벡터 중심성은 높았으나 매개 중심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다른 주제어와의 매개 역할이 제한적임을 보고하였다. 박상언·이병량(2017)은 1989년부터 2016년까지 행정학 분야 12개 학술지에 게재된 문화정책 논문 283편을 텍스트 마이닝으로 분석하여 후속 연구 세대가 뚜렷이 형성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세부 주제 영역의 연구가 감소하는 흐름을 관찰하였다. 황서이·박양우(2019)는 토픽모델링과 의미연결망 분석으로 한국 예술경영 연구의 동향 변화를 추적하여, 문화정책과 인접한 분야에서도 학제적 영역 확대가 진행되고 있음을 정량적으로 확인하였다.
세 번째 계열은 더 진전된 확률적 토픽 모델링에 기반한 최근의 동향 연구이다. 이윤정(2024)은 1971년부터 2024년까지 RISS 데이터베이스에서 ‘문화’, ‘예술’, ‘정책’ 키워드를 포함하는 학술논문 2,564편을 대상으로 구조적 토픽 모델링을 적용하여 13개의 주요 토픽을 도출하였다. 분석 결과 ‘교육 혁신과 프로그램 개발’, ‘문화복지 및 공공사업’, ‘도시재생과 공공미술’이 상위 발현 토픽으로, ‘지방자치와 주민참여’, ‘지역 관광과 축제’가 하위 발현 토픽으로 보고되었다. 박재혁(2025)은 2000년부터 2024년에 이르는 동안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국책연구기관이 발간한 예술 관련 정책 보고서 39건을 대상으로 TF-IDF와 LDA 토픽 모델링을 적용하여 ‘법률 및 디지털 권리’, ‘사회복지 및 규제’, ‘청소년 및 지역 개발’, ‘남북 문화교류’의 네 가지 축을 도출하였으며, 정책 우선순위가 2000년대 남북관계 중심에서 2010년대 이후 디지털 플랫폼·법제 중심으로 이동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지현·김지현(2025)은 2006~2025년 논문을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을 수행하여 전통문화 보급, 정책적 방안, 시민 참여·소통이라는 세 가지 연구 경향을 식별하였다.
이상의 선행 연구는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구조를 다각도로 보여주었으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여전히 공백이 존재한다. 첫째, 분석 대상의 범위 측면에서 행정학 분야 학술지에 한정되거나(김정수, 2016; 박상언·이병량, 2017; 채경진, 2013) 비교적 짧은 기간(약 10년)에 한정된 경우(박양우, 2017; 임학순, 2009)가 다수를 차지한다. 둘째, 분석 방법의 측면에서 정성적 분류 체계에 의존한 연구(김정수, 2016; 박광국·채경진, 2008; 서순복, 2013; 임학순, 2009; 채경진, 2013)는 분류 기준의 주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단어 빈도와 공출현 관계에 의거한 언어네트워크 분석(박양우, 2017)이나 LDA·STM 계열의 확률적 토픽 모형(박재혁, 2025; 이윤정, 2024)은 어휘의 의미적 맥락과 동의어·다의어를 충분히 처리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Grootendorst, 2022). 셋째, 시계열 분석의 측면에서 기존 연구는 시기별 빈도 변화의 정성적 기술이나 STM의 메타데이터 회귀(이윤정, 2024)에 머물렀으며, 새로운 토픽의 부상(emerging)과 기존 토픽의 소멸(declining)을 사전 정의된 정량 규칙으로 구분 식별하는 분석 틀은 적용되지 않았다. 넷째, 결과의 강건성 검증 측면에서 기존 연구는 토픽 수 결정의 통계적 기준(STM의 잔차·일관성)이나 시각화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분석 결과가 매개변수, 모형 선택, 데이터 특성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지에 관한 다층적 검토는 충분히 수행되지 않았다.
토픽 모델링은 대규모 텍스트 코퍼스에서 잠재적 주제를 자동으로 추출하는 비지도 학습 기법이다. Blei et al.(2003)이 제안한 LDA는 학술 텍스트 분석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왔으나, 어휘의 의미를 단순 빈도로 처리하기 때문에 다의어 및 동의어 처리에 한계가 있고, 토픽의 수를 사전에 결정해야 하며, 짧은 문서에서 성능이 저하되는 제약이 있다(Grootendorst, 2022). Roberts et al.(2019)이 제안한 STM은 메타데이터를 토픽 발현율의 공변량으로 도입하여 LDA의 한계를 일부 보완하였으나, 어휘 빈도에 기반한다는 본질적 제약은 그대로 존재한다.
Grootendorst(2022)가 제안한 BERTopic은 위와 같은 한계를 보완하는 신경망 기반 토픽 모형으로 다음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Sentence-BERT(Reimers & Gurevych, 2019) 등 사전학습 언어모델을 사용하여 각 문서를 고차원 의미 벡터로 변환한다. 둘째, UMAP(McInnes et al., 2018)으로 임베딩을 저차원 공간으로 축소한다. 셋째, HDBSCAN(Campello et al., 2013)으로 밀도 기반 군집을 탐지하여 토픽 수를 자동으로 결정한다. 넷째, 클래스 기반 TF-IDF(c-TF-IDF)로 군집별 대표 키워드를 추출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BERTopic은 의미적 응집도가 높은 토픽을 도출하며, 다국어 환경 및 비교적 소규모 코퍼스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BERTopic은 정태적 토픽 구조를 효과적으로 식별할 수 있으나, 토픽의 시계열적 변화를 추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BERTopic이 제공하는 ‘topics_over_time’ 기능은 단일 모형 내에서 시기별 토픽 비중의 변화를 보여줄 뿐, 새로운 토픽의 등장이나 기존 토픽의 소멸을 명시적으로 구분하고 탐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Boutaleb et al.(2024)이 제안한 BERTrend 알고리즘은 다음의 절차로 토픽의 시계열적 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한다. 첫째, 시간 구간별로 BERTopic 모형을 독립적으로 학습한다. 둘째, 각 토픽에 속한 문서의 평균 임베딩을 토픽 임베딩으로 정의한다. 셋째, 인접 시기 간 토픽 임베딩의 코사인 유사도를 기준으로 그리디 매칭(greedy matching)을 수행하여 시기를 가로지르는 토픽 사슬(topic chain)을 구축한다. 넷째, 각 사슬의 시기별 빈도와 성장률을 종합하여 토픽 인기도(popularity) 지표를 산출하고, 사전 정의된 분류 규칙에 따라 부상(emerging), 약신호(weak signal), 강세(strong), 안정(stable), 쇠퇴(declining), 단발(sporadic) 등의 범주로 사슬을 분류한다. 본 연구는 이 BERTrend 절차를 한국어 학술 코퍼스에 적용함으로써 분석 절차의 한국어 환경 적용 가능성도 함께 점검한다.
토픽 모형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토픽 내부 어휘 간의 의미적 응집도를 측정하는 일관성 지수(coherence score)가 활용되어 왔다(Röder et al., 2015). 본 연구에서는 정규화된 점별 상호정보량(Normalized Pointwise Mutual Information; NPMI; Bouma, 2009)을 산출하여 BERTopic의 토픽 일관성을 LDA 베이스라인과 비교한다. NPMI는 −1에서 1 사이의 값을 가지며, 값이 클수록 토픽 내부 어휘들의 동시 출현 확률이 높음, 즉 토픽이 의미적으로 잘 묶여 있음을 의미한다.
III. 연구 방법
분석 대상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문화정책논총⌋에 1988년부터 2024년까지 게재된 논문의 초록 510편이다. 자료는 누리미디어에서 운영하는 학술데이터베이스 디비피아에서 수집하였으며, 변수는 게재 연도, 논문 제목, 초록의 세 항목이다. 시기별 분포는<표 1>, 연도별 게재 편수는 [그림 1]에 제시하였다.
분석 단위는 개별 논문의 초록이며, 정제 후 전체 평균 길이는 531자(표준편차 263)로 토픽 모델링에 충분한 의미 단위를 포함한다. 한편, 시기별 평균 길이에는 구조적 차이가 나타난다. 1988~2002년 시기에는 평균 약 265자에 그쳤던 반면 2008년 이후에는 평균 약 660자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한국 학술지의 초록 작성 관행이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양적으로 확대되었으며, 토픽 모델링의 입력 정보 밀도 측면에서 후기 시기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신호를 제공함을 의미한다. 다만 임베딩 단계에서는 모델의 최대 입력 길이 제약으로 이러한 길이 차이가 문서 벡터에 반영되는 정도가 제한적인데 이에 관해서는 III장과 IV장에서, 이러한 길이 차이가 시기 간 토픽 분포 비교 결과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IV장에서 검토한다.
한국어 학술 초록에는 ‘본 연구는’, ‘나타났다’, ‘제시하였다’, ‘시사점을 제시한다’ 등 자기지시적 표현이나 결과 보고에 해당하는 정형화된 어구가 빈번하다. 이러한 표현은 토픽 모델링 과정에서 의미 있는 주제 키워드로 잘못 추출될 가능성이 있어 사전 정제가 필요하였고, 본 연구에서는 다음의 두 단계 절차를 수행하였다.
1단계 정제에서는 자기지시 어구(‘본 연구는’ 261회, ‘이 연구는’ 145회 등)를 제거하였으며, 510편 가운데 425편이 수정되었다. 2단계 정제에서는 잔존하는 자기지시 표현, ‘연구자’ 등 메타 명사, 결과 보고 종결형 동사(‘나타났다’ 148회, ‘분석하였다’ 63회, ‘제시하였다’ 37회 등), 메타 연결 어구(‘연구 결과’ 84회), 상투적 결론 표현(‘의의가 있다’ 13회) 등을 추가로 제거하였다. 의미 전달에 기여하는 연결형 동사(‘분석하고’, ‘제시하여’ 등)는 보존하였다. 이 단계에서 463편이 수정되어 총 4,755자가 줄어들었다.
정제된 초록에 대해서는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 kiwipiepy를 활용하여 일반명사(NNG)와 고유명사(NNP)만을 추출하였으며, 1자로 된 명사 및 학술 메타 명사(‘연구’, ‘분석’, ‘고찰’, ‘시사점’ 등 36개)를 불용어로 제거하였다. 정제된 명사 목록은 c-TF-IDF 기반 토픽 표현 단계에 입력되었다. 한국어 형태소 분석의 분절 결과는 Kiwi 분석기의 어휘 사전과 학습 모델에 의존하므로, 신조어·전문용어·고유명사의 오분절은 토픽 도출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적 요인으로 남는다. 한편, 위의 명사 추출은 c-TF-IDF 기반 토픽 표현(키워드 추출) 단계에만 적용된 것으로 문서 임베딩 단계의 입력에는 형태소 추출을 거치지 않은 정제된 초록 원문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즉, 임베딩 모델은 문장 맥락을 보존한 초록 전문으로 문서 벡터를 산출하며, 명사 목록은 도출된 군집의 키워드 표현에만 활용되었다.
본 연구의 BERTopic 파이프라인은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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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베딩 모델: jhgan/ko-sroberta-multitask (768차원); 토크나이저는 모델에 내장된 서브워드(subword) 토크나이저, 최대 입력 토큰 수는 모델 기본값(128)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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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축소: UMAP (n_neighbors=15, n_components=5, metric=‘cosine’, random_state=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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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화: HDBSCAN (min_cluster_size=10, metric=‘euclidean’, cluster_selection_method=‘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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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픽 표현: CountVectorizer(min_df=2, max_df=0.95) 기반 c-TF-I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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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성 확보: 모든 확률적 단계의 random_state를 42로 고정
본 모형은 510편 전체에 대하여 단일 적용되었다. 도출된 토픽의 의미 해석은 각 토픽의 상위 10개 키워드와 대표 문서를 검토한 뒤 연구자가 명명하였다. min_cluster_size=10의 설정은 본 코퍼스의 규모(n=510)에서 토픽 분화와 이상치 비율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값이다. 아울러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이 고려되었다. 첫째, 본 연구에서 ‘토픽’은 임베딩 공간에서 도출된 문서 군집(위 파이프라인의 (1)~(3)단계 산출물)을 지칭하며, 각 토픽의 상위 10개 키워드는 해당 군집을 요약하는 ‘토픽 표현’((4)단계 산출물)으로서 양자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둘째, 임베딩 모델은 추가 미세조정(fine-tuning) 없이 사전학습된 상태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본문의 ‘학습’이라는 표현은 UMAP·HDBSCAN 등 비지도 단계의 적합(fitting) 과정을 가리키는 의미로 제한한다. 셋째, 주요 매개변수의 설정 근거는 다음과 같다. UMAP의 n_neighbors=15와 n_components=5는 지역적·전역적 구조의 균형과 군집화 전 차원 축소에 통용되는 권장 범위의 값이며(McInnes et al., 2018), metric은 문장 임베딩 간 방향 유사성을 반영하기 위해 코사인 거리로 설정하였다. HDBSCAN의 cluster_selection_method=‘eom’은 밀도 변화에 안정적인 군집을 우선 선택하는 기본 전략이고, CountVectorizer의 min_df=2와 max_df=0.95는 각각 1회성 희귀어와 범용어가 토픽 표현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설정이다.
임베딩 입력 길이와 관련하여 부연하면 위 임베딩 모델의 최대 입력 토큰 수는 모델 기본값인 128이며 본 연구는 이를 변경하지 않았다. 토큰 산정은 음절 단위가 아닌 서브워드(subword) 단위로 이루어지며, 본 코퍼스에서 1토큰은 평균 약 2.0자에 대응한다. 실측 결과 전체 초록의 83.7%(427편)가 128토큰을 초과하였고, 초과 문서의 유효 입력 창(effective window)은 중앙값 기준 초록 원문의 첫 257자(범위 202~306자)로 나타났다. 곧 임베딩 단계에서 모델이 실제로 읽는 것은 대다수 문서에서 초록의 앞부분 약 250~260자이며, 그 이후의 텍스트는 문서 벡터에 반영되지 않는다. 다만 c-TF-IDF 기반 토픽 표현(키워드) 단계는 초록 전문에서 추출된 명사를 사용하므로 이 제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BERTrend 분석에서는 정부 시기에 대응하는 8개의 5년 단위 시기 구분(1988~ 1992, 1993~1997, …, 2023~2024; 즉 시기 인덱스 0~7)을 적용하였다. 분석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시기에 대해 BERTopic 모형을 독립적으로 학습하였으며, 시기별 표본 규모를 고려하여 min_cluster_size를 5로 조정하였다. 둘째, 각 토픽에 속한 문서의 평균 임베딩을 토픽 임베딩으로 산출하였다. 셋째, 인접 시기 간 토픽 임베딩의 코사인 유사도를 산출하고, 0.55 이상의 값을 갖는 쌍에 한하여 유사도가 높은 순으로 그리디 매칭을 수행하였다. 넷째, 매칭을 연쇄적으로 적용하여 시기를 관통하는 토픽 사슬을 구성하였다. 이때 시기별 min_cluster_size를 5로 조정한 것은 시기별 표본 규모(34~113편)가 전체 코퍼스(510편)보다 작아 전체 분석과 동일한 기준(=10)을 적용할 경우 소규모 시기에서 군집이 거의 형성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단일 모형의 topics_over_time 기능 대신 BERTrend를 채택한 것은 전자가 전체 코퍼스에서 이미 도출된 토픽의 시기별 비중 변화만을 보여주는 반면, 본 연구의 관심은 특정 시기에 새로 등장하거나 소멸하는 토픽의 식별에 있기 때문이다. 전체 분석과 시기별 분석은 목적과 설정이 다른 만큼 도출 토픽이 일대일로 일치하지는 않으나, 주요 사슬은 전체 분석의 상위 토픽과 안정적으로 대응한다.
각 사슬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정량 지표를 산출하였다. 첫째, ‘시기별 빈도’(period frequency)는 해당 시기 내 사슬에 속한 문서 수를 그 시기 전체 문서 수로 나눈 비율이다. 둘째, ‘평균 빈도’(average frequency)는 사슬이 등장한 시기들의 빈도 평균이다. 셋째, ‘성장률’(growth rate)은 사슬의 마지막 등장 시기 빈도와 그 이전 등장 시기들의 평균 빈도 간 상대 변화로서 (recent − prev_avg)/prev_avg로 정의된다. 또한 사슬의 마지막 시기 인덱스가 6 이상인 경우(즉 2018~2022 또는 2023~2024 시기에 등장한 경우)를 ‘최근 등장’(recent)으로, 그 미만인 경우를 ‘비최근 등장’(old)으로 구분하였다. 이상의 지표를 토대로, 본 연구는 사전 정의된 결정 규칙에 따라 각 사슬을 7개 범주로 분류하였으며, 분류 규칙은 <표 2>에 제시한 바와 같다. 분석 환경은 Python 3.14, BERTopic 0.17.4, sentence-transformers 5.3.0, scikit-learn 1.8.0이다. 임베딩 모델과 토픽 표현 방식은 모든 시기에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시기 간 비교 가능성을 확보하였다.
주: 분류는 위 조건을 위에서 아래로 순차 평가하여 처음 충족되는 범주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최근 등장’은 사슬의 마지막 등장 시기 인덱스가 n_periods − 2(=6) 이상, 곧 2018~2022 또는 2023~2024 시기에 등장한 경우를 의미한다. 임계값(50%, −30%, 5%, 8%, 4시기)은 Boutaleb 등(2024)이 제시한 권고 범위를 기반으로 본 연구의 코퍼스 규모(n=510, 8개 시기)를 고려하여 설정한 값이다.
한편, 위의 시기 구분은 논문의 ‘게재 연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학술 논문은 문제의식의 형성, 집필, 심사를 거쳐 게재에 이르기까지 통상 1년 내외의 리드타임(lead time)을 가지므로, 각 시기 초입에 게재된 논문은 실질적으로 직전 시기에 착안·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정부 명칭은 5년 단위 시기를 지칭하는 서술적 라벨로 사용하며, 시기별 결과를 특정 정부의 정책 기조에 직접 귀속시키는 해석은 지양한다. 게재 리드타임을 반영한 시차 조정(예: 게재 시점의 1년 이월) 분석은 본 연구에서 수행되지 않았다.
본 연구의 결과가 모형 선택, 데이터 특성, 임계값 설정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다음의 다섯 가지 강건성 분석을 추가로 수행하였다. 첫째, BERTopic 적용 결과에서 어느 토픽에도 배정되지 않은 이상치(noise) 문서의 시기별 분포를 점검함으로써 시기 간 토픽 비교의 기저가 동질적인지를 확인한다. 둘째, 모든 초록을 일정 길이(250자)로 절단한 후 BERTopic을 재학습하여 앞서 관찰된 시기별 길이 차이의 영향을 분리한다. 셋째, 동일 코퍼스에 K=12로 LDA를 적용하고 BERTopic 결과와 비교함으로써 신경망 기반 모형의 상대적 이점을 평가한다. 넷째, BERTopic과 LDA 모두에 대하여 NPMI 토픽 일관성 지수(Bouma, 2009)를 산출하여 토픽 응집도를 정량적으로 비교한다. 다섯째, BERTrend의 매칭 임계값을 0.45부터 0.70까지 변화시켜 사슬 구성 결과의 변동을 추적함으로써 임계값 의존성을 검토한다.
Ⅳ. 분석 결과
BERTopic 분석을 통해 510편의 초록에서 12개의 주요 토픽이 도출되었다. 어느 토픽에도 배정되지 않은 이상치 문서는 155편(30.4%)이었다. 도출된 토픽의 빈도와 상위 키워드는 <표 3>에 제시하였으며, 토픽 간 의미 거리는 [그림 2]의 2차원 UMAP 사영 결과로 가시화하였다.
주: 12개 토픽의 합계 비율은 69.6%이며, 나머지 30.4%는 어느 토픽에도 배정되지 않은 이상치 문서이다.
<표 3>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토픽은 ‘문화정책 일반·이론’(T0, 14.5%)으로, 문화정책의 이념·체계·발전 방향에 관한 정책 일반 논의를 포괄한다. 이어서 ‘지역문화·축제’(T1, 10.4%), ‘문화소비·향유’(T2, 9.6%), ‘디지털 문화산업’(T3, 8.6%)이 핵심 토픽으로 식별되었다. 한편 ‘예술인 노동’(T6), ‘문화복지·예술교육’(T7), ‘남북·국제교류’(T11) 등은 상대적으로 작은 빈도를 보였으나, 정책적 함의가 큰 세부 영역이 독립된 토픽으로 분화되어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도출된 12개 토픽이 상호 대등한 위상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HDBSCAN 기반 군집은 연구자가 사전에 설계한 상호배제적 분류 체계가 아니라 문서 밀도에 따라 귀납적으로 형성되는 구분이므로 상위 토픽(T0~T5)이 비교적 뚜렷한 정책 영역에 대응하는 반면 소규모 토픽(T6~T11)에서는 분야와 기능이 혼재된 군집이 나타난다. 예컨대 T8(산업효율·출판)은 산업 조직·성과 담론과 출판 정책이 하나의 군집으로 묶인 경우로, 콘텐츠·저작권·미디어 중심의 T3(디지털 문화산업)와 키워드 구성상 구분되기는 하나 그 경계가 명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T7(문화복지·예술교육)과 T9(예술교육·전문인력)은 교육 관련 어휘를 공유하되 전자는 향유자·복지 관점, 후자는 전문인력 양성 관점의 문서가 응집된 결과이며, T10(해외사례 비교연구)은 정책 영역이 아니라 연구 접근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다른 토픽과 위상이 다르다. 이러한 소규모 토픽의 혼재성은 본 연구의 한계이다. 다만 이후의 시기별 분포 분석(<표 4>)은 상위 6개 토픽을 중심으로 하고 T6~T11을 ‘기타’로 통합하여 다루므로, 소규모 토픽 구분의 불확실성이 핵심 결과의 해석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림 2]의 토픽 거리 지도를 살펴보면, 토픽 간 의미적 분포는 본 연구의 명명 체계와 대체로 일치한다. ‘디지털 문화산업’(T3), ‘남북·국제교류’(T11) 등 영역 특수적 의제가 주변부에 분포하는 반면, ‘지역문화·축제’(T1), ‘문화유산’(T4), ‘해외사례 비교연구’(T10) 등은 의미 공간의 중앙부에 모여 있으며, 가장 큰 군집인 ‘문화정책 일반·이론’(T0)은 중앙부와 특수 의제군 사이에 넓게 자리한다. 또한 ‘문화소비·향유’(T2)와 ‘예술인 노동·일자리’(T6), ‘산업효율·출판’(T8)이 한쪽에 모여 있고, ‘문화유산’(T4) ·‘지역문화·축제’(T1)·‘문화재정·예술지원’(T5)이 다른 쪽에 모여 있는 분포는 수요·향유 영역과 공급·시설 영역의 의미적 분리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박양우(2017)가 동일 학술지의 2008~2017년 표본에서 ‘문화정책/행정’과 ‘문화산업/ 문화콘텐츠’를 핵심 주제어로 보고한 결과와 부합하며 본 연구가 분석 기간을 1988년까지 확장함으로써 ‘문화정책 일반·이론’이 초기 시기 학술 연구의 중심 토픽이었음을 추가로 보여준다. 다만 소규모 토픽의 좌표는 문서 수에 민감하므로, 이 의미 지도는 확정적 구조라기보다 탐색적 참고 자료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도출된 12개 토픽이 8개 시기에 걸쳐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표 4>와 [그림 3]에 정리하였다. <표 4>의 각 셀은 해당 시기 내 토픽의 비율(%)이며, 행 합계는 100%(이상치 포함)이다. [그림 4]의 누적 영역도는 이상치를 제외한 토픽 구성의 상대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완한다.
<표 4>와 [그림 3] 및 [그림 4]의 결과는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시기별 구조 변화를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서술에 앞서 두 가지 해석 원칙을 명시한다. 첫째, 이하의 시기별 서술은 게재 연도 기준의 기술적 요약이며, 정부 명칭은 시기 라벨로만 사용한다. 앞서 언급한 게재 리드타임을 고려하면, 시기 경계 부근에 게재된 논문의 문제의식은 직전 시기에 형성되었을 수 있다. 둘째, 특정 법령·제도와 토픽 변동의 연결은 시기적 일치에 근거한 잠정적 해석이다. 제시된 정책 영역 대부분이 모든 정부 시기에 걸쳐 운영되어 온 만큼, 동일한 결과에 대해 대안적 설명이 성립할 수 있음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첫째, 김영삼 정부 시기(1993~1997)에는 ‘문화정책 일반·이론’(T0)의 비중이 50%에 달하여 정책 일반 논의가 지배적이었다. 이는 1990년 문화부 신설을 전후로 문화정책의 제도적 기반이 활발히 형성되던 시기적 맥락(김정수, 2016)과 부합한다.
둘째, 김대중 정부 시기(1998~2002)에는 ‘디지털 문화산업’(T3)이 18.5%를 차지하며 주요 토픽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이는 동 정부의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1999) 및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2001)과 시기적으로 연결되며, 임학순(2009)이 동 시기를 문화정책 영역이 문화예술에서 문화산업으로 확대된 변화 시점으로 평가한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셋째, 노무현 정부 시기(2003~2007)에는 ‘지역문화·축제’(T1)의 비중이 34.3%로 최고치에 도달하였다. 이는 동 시기 지역문화재단의 전국적 설립 확대와 분권형 문화정책의 활성화가 학술 연구에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2013~2022)에는 ‘문화소비·향유’(T2)가 각각 17.7%, 15.2%로 떠올랐다. 이는 ⌈문화기본법⌋(2013년 제정·2014년 시행)의 입법 및 문화 향유권에 관한 학술적 관심의 확대와 시기적으로 연결된다. 다만 이 연결 역시 시기적 동시성에 근거한 잠정적 해석이며, 문화향유 연구의 확대에는 관련 통계 기반의 정비와 실증 연구 방법의 확산 등 학계 내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였을 수 있다.
다섯째, 윤석열 정부 시기(2023~2024)에는 ‘문화유산’(T4)의 비중이 11.8%로 직전 시기(8.7%)보다 증가하여, ‘지역문화·축제’(T1, 11.8%)와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시기별 독립 군집에 기반한 BERTrend 분석에서도 문화유산·박물관 사슬의 최근 시기 빈도가 29.4%로 산출되어, 문화유산 관련 연구의 상대적 부상이 두 분석에서 공통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증가는 200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비준 이후 축적되고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전후로 본격화된 무형유산 연구 흐름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2024년 국가유산청 출범과 같은 최신 제도 변화는 게재 리드타임을 고려할 때 2023~2024년 게재 논문에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동 시기 표본 수가 34편에 그치고 이상치 비율이 47.1%에 달한다는 점에서, 비율의 해석에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1988~1997년에는 한두 개의 토픽이 담론을 주도하는 단일 구조였던 반면, 2008년 이후로는 다수의 토픽이 5%~15% 대의 유사한 비중으로 공존하는 구조로 이동하는 변화가 관찰된다. 이는 문화정책 연구의 세부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 박상언·이병량(2017)이 행정학 학술지를 대상으로 관찰한 ‘세부 영역 연구의 분산화’ 흐름과도 맥을 같이한다.
BERTrend 분석을 통해 시기를 관통하는 11개의 토픽 사슬이 식별되었다. 앞서 제시한 <표 2>의 결정 규칙을 적용한 사슬별 분류 결과는 <표 5>에, 부상·쇠퇴 사슬의 시기별 변동은 [그림 5]에 제시하였다. 식별된 주요 사슬은 전역 토픽과 상위 의제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대응한다. 예컨대 ‘문화유산·박물관’ 사슬은 T4(문화유산), ‘관람·콘텐츠·여가’ 사슬은 T2(문화소비·향유), 거대담론 사슬은 T0(문화정책 일반·이론), ‘세제·민간지원’ 사슬은 T5(문화재정·예술지원), ‘북한·음악·교육’ 사슬은 T11(남북·국제교류)에 각각 대응한다. 두 분석은 min_cluster_size 등 설정이 다르지만, 상위 의제 수준에서 일관된 구조를 보여준다.
분석 결과, 11개 사슬 가운데 두 개가 부상, 다섯 개가 쇠퇴 또는 감소, 네 개가 단발로 분류되었다. ‘강세’ 또는 ‘안정’ 범주에 해당하는 사슬은 식별되지 않았다. 이는 <표 2>의 결정 규칙이 ‘부상/약신호/쇠퇴/감소’ 조건을 ‘강세/안정’ 조건보다 우선 평가한 결과이자, 본 데이터에서 모든 시기에 걸쳐 큰 비중을 일관되게 유지한 단일 사슬이 존재하지 않음을 함께 반영한다.
가장 두드러진 부상 사슬은 ‘문화유산·박물관’이다(성장률 +144%, 최근 빈도 29.4%). 이 사슬은 2008~2012년에 8건으로 처음 등장한 이후 2013~2017년에 19건으로 정점에 이르렀고, 2018년 이후로도 시기 당 10건의 안정적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슬의 정점이 2013~2017년에 형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그 배경으로는 200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비준 이후 축적된 논의가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2016년 시행)을 전후로 종목 지정, 전승 체계, 보전·진흥 정책 등 구체적 연구 질문으로 분화된 흐름을 지목할 수 있다. 곧 문화유산 의제는 입법이 학술적 논의를 종결시키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연구 수요를 창출한 사례에 해당하며, 이는 아래에서 살펴볼 세제·민간지원 의제의 궤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두 번째 부상 사슬은 ‘관람·콘텐츠·여가’이다(성장률 +69%, 최근 빈도 20.6%). 이 사슬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8~2022년에 17건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는 문화향유권 논의의 확산과 더불어 문화소비·관람 행태에 관한 실증 연구가 학계 내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윤정(2024)이 STM 분석에서 ‘문화복지 및 공공사업’과 ‘도시재생과 공공미술’을 상위 발현 토픽으로 보고한 결과와도 흐름이 닿아 있다. 다만 이 사슬의 키워드 군이 관람·콘텐츠·여가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어, ‘수요 중심 정책으로의 변화’라는 단일 해석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규모의 쇠퇴 사슬은 ‘문화정책 일반·이론’(거대담론)이다(성장률 −43%). 이 사슬은 1988년부터 2024년까지 모든 시기에 등장하나, 비중은 점진적으로 감소하였다. 1988~1992년 26건과 2003~2007년 26건의 정점을 거친 이후, 2018년 이후에는 시기 당 6~7건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학계의 관심이 정책 일반 논의에서 구체적 의제 영역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단서이며, 김정수(2016)가 지적한 ‘일반 이론·개념적 연구의 부재’와도 흐름이 닿아 있다.
‘세제·민간지원’ 사슬(−64%)은 2008~2012년 20건으로 정점에 이른 후 2018~2022년 6건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이 감소 국면이 2014년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정 직후와 겹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메세나·기부 활성화를 둘러싼 현장의 쟁점이 입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리되면서, 제도화 이전에 활발하던 학술적 질문이 상당 부분 소진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008~2012년 시기에만 등장한 ‘기부 활성화’ 단발 사슬(아래 3)항 참조)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문화유산 의제(입법 이후 확장)와 세제·민간지원 의제(입법 이후 축소)는 입법이 학술 의제에 미치는 상반된 효과를 보여주는 대조 사례이며, 어떤 조건에서 의제가 입법과 함께 종결되고 어떤 조건에서 오히려 확장되는지는 그 자체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후속 연구 질문이다. ‘시설·공간’ 사슬(−49%) 또한 1998~2012년에 걸쳐 등장하였으나 2013년 이후에는 사슬로서의 연속성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는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향유 중심으로의 정책 환경 변화와 연결되어 이해할 수 있으나, 이를 곧바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으로 단정하기는 무리가 있다.
‘북한·음악·교육·오케스트라’ 사슬(30편, −53%)에 관해서도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다. 이 사슬은 남북 문화교류 논의와 음악·예술교육 연구가 하나의 군집으로 결합된 경우로, 오케스트라 등 음악을 매개로 한 교류가 남북 문화협력의 상징적 수단으로 부각되었던 시기적 맥락이 임베딩 공간에서 두 의제를 근접시킨 것으로 보인다. 사슬의 축소는 남북관계의 경색과 함께 문화교류 의제의 학술적 동력이 약화되어 온 흐름과 병행하며, 정세 의존성이 큰 의제가 학술장에서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단일 시기에만 등장하여 단발 사슬로 분류된 사례에는 ‘디지털·문학’(1998~ 2002), ‘예술인 자격제도’(2008~2012), ‘기부 활성화’(2008~2012), ‘저작권·공연’(2018~2022)이 포함된다. 이들은 시기 특수적 정책 이슈에 대응하여 등장하였으나, 학술 연구로 정착하지는 못한 의제군으로 이해할 수 있다.
BERTrend 분석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결과는 다수의 부상·감소·단발 사슬이 2008~2012년 시기에 처음 등장한다는 점이다. ‘문화유산·박물관’, ‘관람·콘텐츠·여가’, ‘세제·민간지원’, ‘북한·음악·교육’ 등의 사슬이 이 시기에 출현하였다. 이는 콘텐츠산업 정책의 강화와 박물관·미술관 관련 정책 환경의 변화 등 정책 환경의 변화가 연구 주제 구조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이 시기와 동시에 학술지의 초록 작성 관행에도 변화(평균 길이가 약 265자에서 660자로 증가)가 관찰된다.
BERTopic 적용에서 이상치로 분류된 155편(30.4%)의 시기별 분포는 <표 6>과 같다.
이상치 비율은 시기에 따라 15.0%(김영삼)에서 47.1%(윤석열)까지 분포하며, 후기 시기(2008년 이후 평균 35.9%)가 초기 시기(1988~2007년 평균 23.1%)보다 다소 높게 나타난다. 전체 30.4%에 해당하는 이상치 비율은 BERTopic 적용 사례에서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하므로, 그 원인에 관해서는 단일한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다음의 복수 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알고리즘 매개변수의 영향이다. BERTopic의 군집 단계에 사용된 HDBSCAN의 min_cluster_size(=10)는 510편 규모의 코퍼스에서 토픽 분화와 이상치 비율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한 설정이나, 이 값을 더 작게 조정할 경우 이상치 비율은 줄어드는 대신 토픽 수가 과도하게 늘어날 수 있다. 둘째, 코퍼스 자체의 희소성·이질성이다. 본 코퍼스는 8개 시기에 걸친 다양한 정책 영역을 포괄하므로 의미 분포의 꼬리(long tail)에 위치하는 문서가 적지 않게 존재할 수 있다. 셋째, 한국어 전처리상의 영향이다. 형태소 분석기 Kiwi의 분절 결과에 의존하는 만큼 신조어·전문용어·고유명사의 오분절은 임베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넷째, 시기 간 임베딩의 안정성 문제이다. 사전학습 한국어 임베딩 모델은 학습 시점의 어휘 분포에 의존하므로, 최신 시기(2023~2024)의 신어·신생 의제는 기존 토픽에 응집되지 못한 채 이상치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군집 단계의 민감성이다. 본 코퍼스의 군집 구조는 임베딩 공간의 작은 변화에도 해상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시기 간 이상치 비율 차이의 일부는 이러한 민감성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이상의 가능성들을 종합하면, 후기 시기 이상치 비율의 상승은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세부 영역이 확대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이해될 수 있는 한편, 동시에 알고리즘적·언어적·구조적 요인이 결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한편, 알고리즘적 요인과는 별개로 이상치의 내용적 성격을 확인하기 위해 이상치 155편의 제목을 전수 검토하였다. 검토 결과는 두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 첫째, 2018년 이후의 이상치 47편에서는 도출된 12개 토픽에 대응하지 않는 신규 의제군이 뚜렷이 관찰된다. 성평등·젠더 의제(여성혐오 표현 논쟁, 문화예술계 성 격차, 성평등 지원 정책 등), 예술인 노동·계약·권리 의제(예술인 고용보험, 대중문화예술산업의 계약 갈등, 예술계 블랙리스트, 문화산업 노동문제 등), 디지털 플랫폼·데이터 기반 연구(온라인 문화예술 플랫폼, 음원 사재기, 빅데이터·텍스트마이닝 방법론 등), 그리고 문화영향평가·ESG·문화 ODA 등 새로운 정책 도구에 관한 연구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학술장에 진입하고 있으나 아직 안정적 군집을 형성할 만큼 축적되지 못한 의제들로 최근 시기 이상치 비율의 상승(2023~2024년 47.1%)이 단순한 알고리즘적 잡음이 아니라 기존 토픽 구조에 편입되지 못한 신규 의제군의 존재를 반영하는 신호임을 뒷받침한다. 반면 코로나19 대응이나 OTT 규제와 같은 일부 최신 정책 현안은 이상치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정책 현장의 의제가 학술지 지면에 흡수되기까지 상당한 시차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둘째, 초기 시기의 이상치는 성격이 다르다. 1980~2000년대의 이상치는 특정 장르(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의 개별 정책론이나 시론적 글이 다수를 이루어 신규 의제라기보다 의미 분포의 꼬리(long tail)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이상치는 ‘제거해야 할 잡음’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성격을 달리하는 ‘구조 밖의 신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관찰된 시기별 초록 길이의 구조적 차이(1988~2002년 평균 약 265자, 2008년 이후 평균 약 660자)가 토픽 도출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리하기 위하여, 모든 초록을 동일하게 첫 250자로 절단한 후 BERTopic을 재학습하였다. 그 결과 절단본에서는 토픽이 단 2개로 도출되었고 이상치 비율은 0.0%로 산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급격한 변화가 임베딩 입력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서 확인하였듯 임베딩 모델의 유효 입력 창은 중앙값 257자이므로, 250자 절단은 임베딩 입력을 거의 변화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원본 초록과 250자 절단본의 문서 임베딩 간 코사인 유사도를 산출한 결과 평균 0.998(최소 0.974)로 사실상 동일하였다.
따라서 이 결과의 함의는 당초의 설계 의도였던 ‘길이 효과의 분리’와는 다른 데 있다. 첫째, 토픽 수의 급감(12개→2개)과 이상치의 소멸(30.4%→0.0%)은 임베딩이 거의 동일한 상태에서 발생하였으므로, 그 원인은 정보량의 감소가 아니라 UMAP 차원 축소와 HDBSCAN 밀도 기반 군집화 단계가 임베딩 공간의 미세하지만 체계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데 있다. 곧 본 코퍼스의 의미 공간은 12개의 세밀한 군집(이상치 30.4%)과 2개의 거친 군집(이상치 0%)이라는 두 가지 군집 구조가 모두 가능한 경계 부근에 위치하며, 군집 구조의 해상도가 입력의 작은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같은 이유에서 시기별 초록 길이 차이(초기 약 265자, 후기 약 660자)가 임베딩·군집 단계에 미치는 영향은 당초의 우려보다 제한적이다. 유효 입력 창(약 257자)을 넘는 텍스트는 임베딩에 반영되지 않으므로, 초기 시기의 짧은 초록(평균 약 265자)과 후기 시기의 긴 초록은 임베딩 단계에서는 사실상 유사한 분량의 입력을 제공한다. 길이 차이의 영향은 초록 전문의 명사를 사용하는 c-TF-IDF 키워드 표현 단계에 국한된다. 한편, 본 연구는 절단되지 않은 원자료를 사용함으로써 각 시기의 고유한 정보 밀도를 보존한 채 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시기별 정보 밀도의 차이 자체가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양적·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이해될 여지도 있다.
BERTopic의 토픽 응집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동일 코퍼스에 K=12로 LDA를 적용하고, 양 모형의 NPMI 일관성 지수(Bouma, 2009)를 산출하여 비교하였다. 결과는 <표 7>과 같다.
| 모형 | 토픽 수 | NPMI | 비고 |
|---|---|---|---|
| BERTopic(원본) | 12 | 0.184 | 본 연구의 주분석 모형 |
| BERTopic(250자 절단) | 2 | 0.088 | 군집 병합(12개→2개)으로 응집 저하 |
| LDA(K=12) | 12 | 0.076 | 전통적 토픽 모형 베이스라인 |
BERTopic의 NPMI는 0.184로 LDA(0.076) 대비 약 2.4배 높은 응집도를 보였다. 이는 본 데이터에서 BERTopic이 LDA보다 의미적으로 더 일관된 토픽을 도출함을 보여준다. 절단본에서는 응집도가 절반 수준(0.088)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앞서 확인한 군집 병합(12개→2개)으로 상이한 의제가 하나의 토픽으로 묶인 결과로 이해된다. LDA가 도출한 12개 토픽의 키워드 또한 BERTopic 결과와 유사한 의미 영역(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 지역·축제, 예술 지원 등)을 포착했으나, 단일 토픽 내 키워드의 의미적 혼합도가 BERTopic 대비 높게 나타났다.
BERTrend 사슬 구성에 사용된 매칭 임계값(코사인 유사도 0.55)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기 위하여, 임계값을 0.45부터 0.70까지 변화시키며 사슬 분류 결과를 재산출하였다. 결과는 <표 8>과 [그림 6]에 제시하였다.
| 임계값 | 총 사슬 수 | 2개 시기 이상 등장 사슬 | 최장 사슬 길이 | 부상 분류 | 쇠퇴 분류 |
|---|---|---|---|---|---|
| 0.45 | 11 | 7 | 8 | 2 | 5 |
| 0.5 | 11 | 7 | 8 | 2 | 5 |
| 0.55* | 11 | 7 | 8 | 2 | 5 |
| 0.6 | 11 | 7 | 8 | 2 | 5 |
| 0.65 | 11 | 7 | 8 | 2 | 5 |
| 0.7 | 12 | 7 | 8 | 2 | 5 |
분석 결과, 임계값을 0.45에서 0.65까지 변화시켰을 때 총 사슬 수, 다회 등장 사슬 수, 최장 사슬 길이, 부상·쇠퇴 사슬 수가 모두 동일하게 산출되어 결과의 강건성이 확인되었다. 임계값을 0.70까지 상향 조정했을 때만 한 사슬이 분리되어 총 사슬 수가 12로 늘어났으나, 핵심 분류 결과(부상 2개, 쇠퇴 5개)는 변동되지 않았다. 이는 본 연구의 채택값(0.55)이 임의적 휴리스틱이 아니라 광범위한 임계값 구간에서 안정적인 신호를 산출하는 값임을 보여준다. 한편, 본 분석은 매칭 임계값 한 가지 차원의 강건성에 국한되며, 시기별 BERTopic의 독립 학습 자체가 갖는 잠재적 한계(임베딩의 시기 간 안정성, 토픽 분절 등)는 별개의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보다 엄격한 의미의 강건성, 곧 min_cluster_size 등 하이퍼파라미터 전 구간에서의 결과 불변성이나 상이한 방법론(BERTopic, BERTrend, LDA) 간 결과의 교차 재현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V. 결론 및 논의
본 연구는 1988~2024년 한국 문화정책 연구를 BERTopic과 BERTrend로 분석하여 다음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한국 문화정책 연구는 12개의 주요 토픽으로 구조화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문화정책 일반·이론’, ‘지역문화·축제’, ‘문화소비·향유’, ‘디지털 문화산업’이 핵심 의제군을 이룬다. 도출된 토픽의 NPMI 일관성(0.184)은 LDA 베이스라인(0.076)에 비해 약 2.4배 높아 본 데이터에서 BERTopic의 상대적으로 높은 토픽 응집도가 확인되었다. 토픽 간 의미 거리 지도([그림 2])는 ‘디지털 문화산업’·‘남북·국제교류’ 등 영역 특수적 의제가 주변부에 분포하고, ‘지역문화·축제’·‘문화유산’ 등 다수 의제가 중앙부에 모여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학술 연구의 시기적 구조는 거시적 정책 논의에서 세부 영역으로 이동하는 흐름과 연결된다. 1988~1997년에는 거시적 정책 이론이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였으나, 2008년 이후로는 다수의 토픽이 유사한 비중으로 공존하는 다원적 구조로 이동하는 변화가 관찰된다. 한편, 동 시기 이상치 비율도 함께 상승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가 학술 연구의 실질적 세분화에 더해 알고리즘적·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일부 포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BERTrend 분석에서는 사전 정의된 결정 규칙(<표 2>)에 따라 ‘문화유산·박물관’(성장률 +144%)과 ‘관람·콘텐츠·여가’(+69%)의 두 사슬이 부상(emerging), 다섯 사슬은 쇠퇴 또는 감소(declining)로 분류되었다. 매칭 임계값을 0.45~0.65 구간에서 변화시켰을 때 분류 결과가 동일하게 유지되어 이 결과의 임계값 강건성이 확인되었다.
넷째, 다수의 부상·감소·단발 사슬이 2008~2012년 시기에 처음 등장한 점은 동 시기가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토픽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동 시기에 학술지 초록의 평균 길이가 약 265자에서 660자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형식적 변화도 함께 관찰되며, 양자가 어느 정도 함께 작용하였는지에 관해서는 후속 연구의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본 연구의 학술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정책 분야 주요 학술지의 누적 코퍼스 전체에 BERTopic과 BERTrend를 결합 적용함으로써, 행정학 학술지 또는 비교적 짧은 시기에 한정되어 있던 기존 동향 연구(김정수, 2016; 박상언·이병량, 2017; 박양우, 2017)의 분석 범위를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하였다. 둘째, 정태적 토픽 구조 분석과 시계열 변화 분석을 통합하는 방법론적 절차를 제시함으로써, 정성적 분류 또는 단어 빈도에 의존해 온 기존 동향 연구의 방법론적 적용 범위를 확대하였다. 셋째, 학술 연구의 구조적 변화가 정부 시기 정책 환경의 변화와 시계열적으로 동기화되는 흐름을 정량적으로 확인하였다. 넷째, NPMI 일관성 비교, 길이 절단 분석, 임계값 민감도 분석, 토픽 거리 지도 가시화 등 다층적 강건성 검증을 수행하여 결과의 신뢰성을 담보하였다. 다섯째, BERTrend 분류 결정 규칙을 제시함으로써 분류의 투명성과 재현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분석 결과로부터 다음의 정책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단, 본 연구의 결과는 학술 연구의 토픽 구조 변화에 한정된 것으로 정책 환경 자체의 인과적 평가가 아니므로, 다음의 함의는 시사적 해석으로 제시한다.
첫째, 시설·세제 지원 관련 사슬의 쇠퇴와 관람·향유 사슬의 부상은 한국 문화정책 연구가 하드웨어·공급 중심 의제에서 사용자 경험·접근성 의제로 무게중심을 옮겨 가는 흐름과 연결된다. 이는 정책 초점이 공급 영역에서 향유 영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일정 부분 보여준다. 향후 정책은 시설 공급뿐 아니라 향유 격차의 해소, 접근성 제고, 수요자 다양성 증진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문화유산·박물관 관련 의제의 학술적 비중이 최근 시기 빠르게 증가하는 변화가 관찰된다. 문화유산·박물관 사슬의 2023~2024년 빈도가 29.4%에 이르고 전역 토픽 기준 T4 비중(11.8%)도 직전 시기보다 상승한 결과는 단기 추세 이상의 변동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 시기 표본 수가 34편에 그친다는 점, 게재 리드타임을 고려할 때 이 증가를 2024년 국가유산청 출범과 같은 최신 제도 변화와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고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이후 축적된 연구 기반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문화정책 일반·이론’ 사슬의 쇠퇴는 학계가 더 이상 정책 이념·정체성에 관한 거시적 논의를 활발히 생산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김정수(2016)가 지적한 ‘일반 이론·개념적 연구의 부재’ 문제의식과도 닿아 있으며, 문화정책 학문의 정체성 재구성 필요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본 연구는 다음의 한계를 갖는다. 첫째, 분석 자료가 단일 학술지 ⌈문화정책논총⌋의 초록에 한정되어 있어 한국 문화정책 연구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속 연구에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정책 보고서, 인접 학술지(예: ⌈문화경제연구⌋, ⌈지역문화연구⌋ 등) 및 행정학·정책학 분야 학술지를 포함한 통합 코퍼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둘째, BERTopic 분석에서 이상치 비율이 30.4%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며, 시기에 따라 15.0%에서 47.1%까지 변동한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이상치 비율은 학술 연구의 세부 영역 확대에 더하여 HDBSCAN의 매개변수 설정, 코퍼스의 희소성·이질성, 한국어 형태소 분석상의 오분절, 사전학습 임베딩 모델의 시기 간 안정성, 군집 단계의 민감성 등 복수의 요인이 결합한 결과일 수 있다. 후속 연구에서는 min_cluster_size·min_samples 등 매개변수 격자 탐색, 이상치 재배정(reduce_outliers) 적용, 한국어 신어·전문용어 사전을 보강한 형태소 분석, 보다 큰 규모의 코퍼스를 통한 보완 등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시기별 초록 길이의 구조적 차이는 잠재적 교란 요인이나, 그 영향 경로는 분석 단계별로 다르다. 앞서 확인하였듯 임베딩 단계에는 유효 입력 창(약 257자)의 제약으로 길이 차이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반면, 초록 전문에서 추출한 명사를 사용하는 c-TF-IDF 키워드 표현 단계에는 길이 차이가 그대로 반영된다. 아울러 절단 분석에서 드러난 군집 해상도의 민감성(12개→2개)은 길이와는 별개의 강건성 한계로 남는다. 향후 연구에서는 길이 정규화 또는 이항 비교(예: 길이 일치 무작위 부분 표본 추출) 등 보다 엄밀한 통제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넷째, BERTrend의 알고리즘적 가정에 따른 한계이다. BERTrend는 시기별로 BERTopic을 독립적으로 학습한 뒤 토픽 임베딩의 코사인 유사도로 사슬을 구성하는 구조이다. 이로 인해 다음 두 가지 위험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사전학습 임베딩 모델의 학습 시점·도메인이 시기별 어휘 분포와 동질적이라고 가정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시기마다 어휘 분포·신어 출현 패턴이 달라 임베딩 표상에 미세한 시기 간 편차(embedding drift)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동일한 의미적 주제가 시기별 표본 규모와 의미 분포 차이로 인해 어느 시기에서는 단일 토픽으로, 다른 시기에서는 두 개 이상의 토픽으로 분화되는 토픽 분절(topic fragmentation)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의 임계값 민감도 분석은 사슬 매칭 임계값 차원에서의 강건성만을 점검한 것이며, 임베딩 드리프트와 토픽 분절 자체에 대한 직접적 통제는 수행하지 못하였다. 후속 연구에서는 시기 간 공통 임베딩 공간을 학습하는 정렬(alignment) 기법, 시간적 평활화(temporal smoothing) 또는 동적 토픽 모형(Dynamic Topic Model; Blei & Lafferty, 2006)과의 비교 등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토픽의 명명은 연구자의 해석을 거치는 만큼 주관성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 후속 연구에서는 KeyBERT, MMR(Maximal Marginal Relevance) 기반 표현 모형, 또는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자동 라벨링과의 비교 검증, 복수 코더 간 일치도 산출 등이 필요하다.
여섯째, 정부 시기와 토픽 등장 간 관련성에 관한 본 연구의 해석은 시기적 동시성에 근거한 것으로, 인과 관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학술 연구의 변화는 정책 환경뿐만 아니라 학계 내적 동력(연구비 구조, 학술지 정책, 연구자 코호트의 변화 등)에 의해서도 결정되므로, 후속 연구에서는 이러한 대안적 설명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본 연구의 시기 구분은 게재 연도를 기준으로 하므로, 논문의 투고부터 게재까지의 리드타임(통상 1년 내외)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시기 경계 부근에 게재된 논문은 직전 시기에 착안·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시기별 분포를 정부 시기별 특성으로 해석할 때에는 이 시차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후속 연구에서는 게재 시점을 1년 내외 이월하여 시기를 재구획한 민감도 분석을 통해 시기 귀속의 강건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여덟째, 도출된 토픽들은 상호 대등한 위상을 갖지 않으며, 소규모 토픽(T6~T11)에서는 분야와 기능이 혼재된 군집이 관찰된다. 밀도 기반 군집화가 산출하는 구분은 연구자가 설계한 상호배제적 분류 체계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는 방법론에 내재된 특성이나, 소규모 토픽의 해석과 명명에는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 후속 연구에서는 토픽 병합·계층화(hierarchical topic reduction)나 준지도(semi-supervised) 토픽 모델링을 통해 분류 체계의 체계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한국 문화정책 연구의 시계열적 구조와 변화에 관한 실증적 토대를 제공하며, 부상·쇠퇴 토픽의 식별을 통해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 모두에게 함의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